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계4:1-11)
갈등
1. 요한계시록 내러티브 열 번째 시간입니다. 계시록-묵시는 신앙 박해 시대의 문학입니다. 로마 황제 숭배와 유대교와 타종교로부터 큰 압박을 받으며 초대 교회들이 어려움을 겪었어요. 이들 가운데 최고의 위협은 로마 황제숭배였습니다. 오늘은 4장 전체를 봅니다. 4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사도 요한을 천상으로 인도하신 이야기입니다. 1-3장에서는 이 땅의 이야기를 하다가 4-5장에서는 하늘 이야기로 이어졌어요. 이런 이야기는 상당히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면서, 양 세계를 다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지상)-저 세상(천상)입니다. 사도 요한은 그의 생애에서 가장 감격스러운 경험을 했습니다. 천상에 올라가는 경험을 했으니까요. 생전에 이 경험을 한 사람은 성경에 두 명이 나옵니다. 스데반 집사(행7:55-56)와 사도 요한입니다. 이 사도 요한이 박해 가운데 밧모 섬에서 외롭게 하나님만 바라며 하루하루 보낼 때, 하나님께서 그를 하늘로 이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요한을 어떻게 하늘로 올리신 것은
2. 1절,“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이리로 올라오라는 말은 하나님의 허락을 의미해요. 하나님께서 요한의 천국 입성을 허락하셨습니다. 이런 일은 개인적인 황홀한 경험을 위해서 주시지 않아요. 요한도 하나님께서,‘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네게 보이리라.’말씀하셨어요. 이 놀라운 경험을 하나님께서 이때 요한에게 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갈등 심화
3. 하나님께서 사도 요한을 천상으로 이끄실 때, 요한이 성령에 감동되었습니다. 요한이 그곳을 보자마자 외쳤습니다. 보라! 이 말은 감탄사에요. 미국의 대협곡 그랜드캐년에 도착해서, 차량에서 내려 전망대로 가면서 협곡을 보는 순간 모든 사람들이 탄성을 지릅니다. 이런 세계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입이 벌어지면서 아!... 요한의 눈과 마음이 바로 이런 상황이었어요. 요한이 본 것은 하늘 보좌였습니다. 하늘 보좌에 앉으신 이-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사도 요한이 본 하나님의 모습은 3절,“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요한은 자신이 하나님의 보좌와 앉으신 이를 보았는데, 색깔만 말하고 있어요. 그것도 정확히 이렇다고 말하지 못하고 같고 같더라고 끝냈어요. 하나님은 모양-형상이 없으십니다. 이것이 십계명에서 우상을 만들지 못하게 하신 이유입니다. 하지만 그의 보좌는 분명히 있고, 요한 그 이야기를 말하는데 너무 신비롭고 놀라워서 사람의 말로 정확히 옮기지 못하고 단지 같고 같더라고 말할 뿐이었어요.
4. 오늘 우리도 하늘을 본다고 마찬가지입니다. 천상에는 하나님만 계시지 않고, 오늘 본문에 보면 이십사 장로들이 나오고 네 생물이 또 나옵니다. 이들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또 그들이 마땅히 하는 일은 없고, 단지 한 가지만 반복하는 모습을 사도 요한이 전해주었어요. 8절,“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
9-11절에도,“그 생물들이 보좌에 앉으시사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리고,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에게 세세토록 살아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천상에서 하나님 외에 피조물들이 하는 일은 오직 하나만을 사도 요한이 전해주고 있어요. 그것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것입니다. 요한은 왜 이 모습만을 신앙 박해 가운데 있던 교회들에게 전해주었을까요?
실마리
5. 사도 요한이 하늘 보좌를 본 것은 인생 최고의 경험이었습니다. 야곱이 얍복 강가에서 밤새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하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야곱이 그곳 이름을 브느엘(하나님의 얼굴)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존되었다.”(창32:30) 하나님께서 요한에게 보게 하신 것은 요한이 자기 황홀경에 빠지는 것이 아니고, 세상에 증거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특히 박해 가운데 있던 교회들에게 천상의 모습을 말해주면서, 그들도 끝까지 승리할 수 있도록 격려할 수 있었습니다.
이 경험은 아무에게 아무 때나 임하지 않아요. 극심한 고난 가운데서 믿음을 지키는 사람들에게만 임했어요. 왜 내게는 이런 경험을 주시지 않고 스데반이나 요한에게만 주셨습니까? 이렇게 묻지 말고, 우리가 쉽지 않은 세상 속에서 스데반과 요한과 같이 믿음으로 승리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됩니다. 스데반이 복음을 전하다가 유대교인들에게 돌에 맞아 죽어가는 때 하늘 문이 열렸습니다. 비겁하게 굴복하지 말고 죽어도 하나님만 바라도록 힘을 주셨어요.
6. 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때로 은혜를 주시는 것(치유든 환상이든 어떤 능력이든지)은 나 자신의 황홀한 신앙 경험이 목적이 아니에요. 세상에 나가서 증거하게 하십니다. 제 경우에도 참 놀라운 일들을 보고 경험하게 하셨는데, 목적은 세상에 나아가 전하라고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강단에서, 메타버스로(SNS), 아시아-아프리카-유럽으로 보내십니다. 증거할 것이 있기에 저를 사용하시고 파송해주십니다. 선교지에 저와 동행하는 분들도 마찬가지에요. 우리 교우들이 계속 교대로 열방에 나가서 하나님이 살아계심과 그가 행하신 일들을 증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도 요한이 천상에 하나님의 보좌와 거기에 앉으신 것을 보았지만, 형상 이야기는 전혀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보좌를 몇몇 색깔들을 언급하며 같고 같더라고 제한적인 표현이 나옵니다. 솔직한 그의 증언이에요. 증언은 본 대로 본 만큼만 사실대로 전하는 것입니다. 나를 죽인다고 해도 거짓 없이 있는 그대로만 전하는 것이 증인의 역할이에요. 천상에 나타난 이십사 장로들은 믿음으로 세상을 이긴 자들을 의미합니다. 꼭 24명만을 말하지 않아요. 이것을 문자적으로 이해하여 그들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곤란합니다. 이들의 숫자는 많아요. 144,000도 같은 맥락의 의미입니다.
7. 네 생물은 사자 같고, 송아지 같고, 사람 같고, 독수리 같은데 역시 같다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고 이들은 천사들을 말합니다. 이십사 장로들에게는 관-크라운이 있지만, 천사들에게는 관이 없어요. 천사들은 영원히 하나님의 심부름꾼에 불과하지만, 믿음으로 승리하여 이십사 장로들 가운데 하나가 되는 우리는 왕관을 쓰고 보좌에 앉게 될 것입니다. 주님과 더불어 영원히(천 년 동안, 20:6) 왕 노릇 할 것입니다. 천상에서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이십사 장로들과 천사들이 하는 일은 오직 한 가지만 소개되었어요.
그것은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에게 찬송과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겨룩하십니다. 거룩은 구별을 의미해요. 피조물들과 구별되는 하나님의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세 번 반복해서 노래했습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오늘 현대인들이 하나님의 거룩하심-그의 존재를 분명히 알고 살아야 행복합니다. 하나님이 누구이신 줄 알면 내가 누구인 줄 알고,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것을 초대 교회 박해 가운데 있던 이들에게 전하며 승리하도록 편지를 보냈습니다.
복음 제시
8.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계신 천상에 들어가려면 우리도 거룩해야 합니다. 연약한 피조물인 우리가 어떻게 거룩할 수 있습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의를 말해줘요. 우리가 거룩하게 되는 것은 우리 스스로 불가능합니다.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희생제물이 되시고, 그를 믿는 우리에게 의롭다고 인정하시는(칭의) 선언을 받아야 합니다. 롬8:33,“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우리가 하나님의 의를 힘입어 거룩하게 되고 거듭나요. 이렇게 해서 우리는 천국에 들어갈 것입니다.
기대
9. 오늘도 박해가 있기는 하지만, 요한계시록을 기록할 당시와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평안의 때를 누립니다. 박해가 없을 때, 우리 마음이 헤이해지기 쉬워요. 이때 방탕하고 방랑하기 쉽습니다. 현대인들이 하나님에게서 점점 더 멀어지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때로 고난을 당하며 정신을 차릴 수 있다면 그것이 되레 은혜가 됩니다. 시편119편 기자가 고난의 유익을 말하는 것처럼요.(65-72절) 67절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71절,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우리가 고난을 받지 않고 깨어서 믿음으로 승리하면 최상입니다. 이 시간 기도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깨어 세상을 이김으로 천상에 24장로들 가운데 하나가 되게 하소서. 주님을 영원토록 찬양하며 영광을 돌리고 주님과 더불어 영원히 왕 노릇 하도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