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말을 하리오. 20240817
내려 앉은 꽃잎을 뒤로하고
동우의 천지처럼 빛을 내다 뒤안길로 사라진 얼굴을 잊어가며
타의적인 불의하고 폭력적인 희생, 몸에 여러 상처 남기며
지는 불순물 가득한, 그렇게 외지고 도사리 가득한 꽃 묻힌 묘지에 서있으면서
저 상천을 읊어 대는 것이 과거, 고개 옆. 눈 돌리면 떨어질 듯한 구덩이 옆에서 어림잡아 들었더라면.
감미로운 감동으로 다가왔을 지 몰라도.
지금의 내가 이 기둥 없는 땅 위에서 무슨 말을 하리오.
무슨 눈으로, 어찌 눈을 들어 도대체 무엇을 보리오.
시리고 어둔 밑바닥으로, 잔뜩 망가진 골목의 길바닥으로. 강압적인 헌신이라 부를 지,
말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것들 따위에 휘둘렸던 흔적이라 부를 지.
기둥이길 희망한 자들의 쓸데 없는 흙토양이, 지금에 우리에 이르러 철저히 불행한 규명을 맺고 마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혹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거든 돌로 쳐서 죽이라.
지가 누구이기에 안타까움을 논하는지. 랍비인지, 귀족인지, 성인인지, 열심인 군자인지
상관없이 나와 같은 시대의 같은 동산 위에 서있는 자라 하면. 돌로 쳐서 죽이라.
이 동산은 피와 희망으로 쌓여 우리가 발을 딛음으로 패망해졌으니.
피는 굳고 바람에 휘갈겨 더러운 먼지가 되어버리고 희망은 희미해져
따지고 들 수 없는 뭉텅이가 되어 전산에 뿌려져 중심을 잃어 버렸으니.
딛은 발걸음을 자책하고 영원히 책망하라. 그 발을 손수 열심 만든 도끼로 찍어 모든 신경을 잃게 하라.
그러지 않으면 우리가 도대체 무슨 감상으로, 인간됨으로 이 동산 위에 서리.
남쪽 산 북쪽 고을 그 이음의 좌정한 모든 것을 깊이 탐닉하여 한 가지의 의지를 품었던 얼굴 앞에 어찌 마주서리.
남쪽과 북쪽 그 모든 결에 따라 끊긴 의지들을 한 대 모아 불사르자.
이 땅에서 저이들의 땅으로 오기로 오롯이 칼과 총을 들고 그 남은 초목의 모가지를 불 사르자.
그어낸 선에 또 한 선들 그어 그 줄에 불을 붙이자. 이리서 저리로, 저리서 이리로 뛰어 넘어가며
서로 밀치는 요상하고 매료적인 관경을 눈에 그을려 영원히 담아내자.
최고의 자리에 저들을 앉히고 그대로 내버려두자.
결단코 간섭하지 말자, 바퀴벌레들에게 휘황찬란한 코스 요리를 대접하자.
무겁게, 억세게, 처참하게, 역겹고, 지저분하게 모든 온전한 굽이 쳐 모인.
모든 철면피로 쌓인 굳건한 것을 불태우는 일을 바로 이곳에서 구경하자.
발만 딛으면 된다. 불사르자. 아름다운 불꽃에 환장하며 뛰어드는 나방 놈들에게 손 키스를 날려주자.
이리오려무나, 이리오려무나. 따라 외치고서는. 같이 외쳐보자. 불사르자, 불사르자.
이제는 저들이 말하니, 불사르자, 불사르자. 우리는 할 것이 없구나.
모든 토양이, 선지들의 희망이 서로 손뼉치며, 그렇게 파괴의 인사말과 함께 흐트러짐을 노래함이.
저들의 손 끝에 움직이는 온건한 삽 질에게 나옴이니. 오히려 두렵구나, 곧 있으면 불사를 것도 없겠으나.
그럼에도 전부 뒤엎고 잠시 나온 푸르는 것을 불사르자.
전부, 아우성도, 아우성도, 아우성도. 전부 불사르자.
살려달라 외치는 선조들의 선지의 부르짖음을 뒤를 이은 이 짐승들아. 우리 함께 불사르자.
멍청함을 노래하며 자기들은 위대함에 빠져보고. 과거의 임재함은 현재의 금으로 바꿔 놓자.
진리이던, 열지 말아야 할 상자이던 금이 된다면 바꿔 놓자. 이것이 불사름.
그냥 너네들이, 우리의 지휘와 함께 연주하는 너희들이 하는 모든 음계의 불협화음이 불사름.
그 모든 것의 제목은 ‘금’. 그리고 마무리 연주는 ‘떠넘김’ 그렇게 아름다운 하모니. 이것이 불사름.
우리가 무슨 말을 더 할까. 이미 잘해주고 있기에. 불사르자, 계속.
더 이상 그 전에 심어둔 아주 푸르른 수정에 이르는 것들을. 산은 높고 물은 맑으니 불사르자.
이 음탕한 노랫소리를 따라 부르고 있던 입을 꼬맬 수 없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가.
한탄하며 저 먹이 낀 구름에게 소리질러 쏟아내게 하지 않고서는 참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아무 곳에서나 올라 그저 가만히 서 있음이 얼마나 부끄러운가. 그때의 생각은 떨어지는 솔잎을 보며 손으로 잡을까 말까 하는 것이니. 눈 앞에 밝았다가 곧바로 감기어진 사내자가 없음이 얼마나 추한 일인가.
콘크리트를 깔아 그 위에 금을 쌓음이, 아무렇지 않게 침을 뱉고는 깊은 산속 봇물 터지는 올라오는,
그러다 굽이치며 꺾이고 그대로 얽히고 설켜 아담한 돌 길 따라 내려오는 그 계곡을 보고는.
감사의 감상으로 시간 선 줄 끊고 날아가 말과 물 마심으로 마음 표하지 못할 망정.
옆에는 동상 새우고 밑 둥이 커, 흰 부분 많은 수박이나 잠시 물 위에 올려두고.
백숙집 차려 앉는 것이 얼마나 고통으로 할복해야 할 일인가.
무슨 망상하리오, 무슨 표현하리오, 무슨 가식으로 무슨 소설을 쓰리오.
내가 그 천하고도 참한 눈. 빤히도 아니라 조금도 바라볼 수 없음에 다른 무슨 핑계를 대리오.
빤히 쳐다보지 말아 주시오. 그저 부탁할 수 있는 것은 이것 뿐이니. 그 눈길 좀 돌려 주시오.
죽음은 패망이 아니었고, 실패와 살인은 절망이 아니었지, 해어짐은 끝남이 아니었으며, 희생은 슬픔일 수 없었지만.
또한 빈 산등, 그 능선에 올라 허공에 소리침은 무의미함이 아니었지만.
그렇지만, 철저히 삐뚤어진 저이의 글은 이상한 것이 아니었지만.
나와 너가 이 모든 기둥으로 만들어진 동산에 발 딛은 그 순간 모든 것이 한 대 어우러져
패망이 되고, 절망이 되었지, 끝났으며, 슬픔이며, 무의미함이며, 이상한 것이 되어.
그렇게 기둥은 무너지지도 않고서는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되고. 그때 우리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리오.
머리를 동산에 박을까 하여 한번 내리쳐 보는데 이 머리가 불에 타고 있으니.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그대로 있을까.
행동을 하였고 망가진 물건들이 서로 손을 잡고 내동댕이쳐지며 이 대가리와 함께 동산을 불태울 때.
굳은 피는. 그 소망은. 어디로 갔을까?
무슨 질문을 하리오. 무슨 자격이 있으리오.
불살라지는 저 동산이 어떻게 보이나?
내가 무슨 말을 하리오.
기뻐 춤추는 망나니들의 칼부림이 어떻게 느껴지나?
내가 무슨 말을 하리오.
꺼먼 연기가 피어나 먼지 구름 되어 그 코앞에 내려지는 껌댕이의 냄새가 어떤가?
내가 무슨 말을 하리오.
뉘집 사람이 뛰쳐 나와 그나마 남은 풀에 무릎, 가슴, 얼굴을 차례대로 가져다 내다가 큰 소리로 비명 지르는 것이 어떻게 들리는가?
내가 무슨 말을 하리오.
한 날에 이르러 새까맣게 타버린 재구덩이에서 금을 쌓는 그 촉감은 어땠는가?
내가 무슨 말을 하리오.
가식과 높임 말로 지나간 날의 외침들을 짓밟고 그날들의 부르짖음을 묵살한 후 아부 떨며 그나마 남은 희망의 씨앗조차 뿌리 뽑는 그 혀놀림의 감촉은 어떤가?
내가 무슨 말을 하리오.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오.
불지르지 않아도, 기둥을 쓰러뜨리지 않아도,
패망의 길로 과거의 과정을 결론 짓지 않아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래도 억울치 않은 것은.
우리들의 발 딛음으로 당신들의 희망찬, 그나마 위안을 얻을 수 있었던 미래를 망친 것이.
우리가 이에 대하여 무슨 말을 하리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