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된 알리바이 12 (3)
그는 그 이튿날 검찰에 출두해 정식으로 고소장을 제출했다. 저작권법 위반과 출판물 판매 가처분 신청이었다. 그는 저작권법에 밝은 Y변호사를 찾아갔다. Y변호사는 그에게 합의할 것을 종용했다. 그러나 그는 거절했다. 처음부터 손해에 대한 배상을 바라지 않았던 탓이기도 했다. 검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는 것을 안 유준성이 김진석을 찾아왔다. 그는 전보다 훨씬 누그러졌다. 그러나 여전히 말속에 가시가 들어 있었다. "선배님, 꼭 그래셔야만 합니까? 괜히 소문이 나면 선배님에게 불리해집니다. 저는 증인들이 있습니다. 작품 속에 나오는 여자주인공을 확보해 놓았습니다. 그 여자가 증언을 해 주겠습니다."
그 여자란 미카엘 신부의 딸을 말함이었다. 김진석은 웃었다. "이 사람아. 이 세상에 미카엘 신부란 사람은 처음부터 존재 하지도 않았어. 그리고 엘레나 수녀도 그렇고‥‥‥그런 존재하지도 않았던 사람들이 어떻게 자식을 둘씩이나 낳았겠나. 그건 자네도 알고 있지 않나." "무슨 말씀이십니까? 미카엘 신부의 딸을 직접 만나 보시면 알 것 아닙니까?" "나는 미카엘 신부라고 자처하는 사람을 만났어. 그러나 가짜 였어. 탁현총이란 친구가 적당히 매수해서 미카엘 신부를 만들어 놓은 인물이었네. 자네 역시 그 사람의 딸을 만들어 놓을 작정인가?" "무슨 말씀이 십니까?" "내 말이 틀렸나? 나는 벌써 그들의 뒷조사를 해 보았어. 미카엘 신부가 있었다는 D성당도 가 보았어. 거기엔 그런 신부가 없었다는 거야. 그리고 탁현총이가 그렸다는 십자가의 길 제14처 피에타 상도 조사해 보았어. 그러나 그것은 그림이 아니라 부조 (浮彫)였어. 자네 가톨릭에 대한 교리 공부를 좀 해야겠네." 김진석은 작품을 이끌어 가면서 많은 의문점을 발견했다. 그래서 그의 친구인 가톨릭 신자를 찾아가 약간의 교리 공부를 했다. 생각 같아서는 영세까지 받을 참이었다. 유준성은 그 말에 울상을 했다. 그러나 끝까지 버티었다. 바로 이 이튿날, 김진석에게 한 여자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누구냐고 물었더니 꼭 한번 만나 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문득이 여자 역시 유준성이 시킨 인물 같아 보였다. "누구십니까?" 묻자 상대방은 또렷또렷한 목소리로, "작가시죠? 소재를 제공해 드리고 싶은데 만나 뵈었으면 해서요. "어떤 소재인데요?"
"제가 소설 속의 주인공입니다. 그래서 좀더 자세한 이야기를 알려 드릴까 해사요. 소설에는 없던 이야기죠." "글쎄 댁은 누구시죠?" "유준성 선생님이 쓰신 소설의 주인공 박영숙입니다." "박영숙 씨라고요?" 김진석은 이 여자가 분명히 유준성이 다급해서 사주한 인물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유준성이 녹음기에 담은 목소리와는 또 틀린 목소리였다. 녹음기 속의 여자는 아나운서처럼 발음이 정확했으나, 이 여자는 중간 중간에 바람 빠진 목소리를 냈다. 아마 누군가를 교육시켜 전화를 하게 만든 것 같았다. 김진석은 그냥 전화를 끊을까 했으나 상대가 어떻게 나오나 싶어 그냥 들어 주었다. 그리고 물었다. "그림 신부님의 따님이신가요?" "그렇죠. 저의 아버지는 신부님이셨죠." "신부님들은 장가를 들지 않는다고 하는데, 장가를 들지 않았으면 양딸인가요?" "신부님이 장가를 들지 않는다고요? 처음 듣는데요?" "그럼 어머니는 누구신가요?" "수녀님이죠." "수녀님도 이름이 있을 것 아닙니까?" 아마 유준성이 일러 준 이름을 잊어 먹은 것 같았다. 김진석은 목소리의 주인공에게 타일렀다.
"유준성 씨로부터 부탁받은 모양인데, 부탁받아서 할 일이 있고 해서는 안 될 일이 있어요. 처음부터 미카엘이란 신부는 저희들끼리 만들어 놓은 인물이에요. 그런 사람의 딸이라니, 아버지 없는 딸이 생길 수가 있습니까?" 하며 더 듣지도 않고 끊었다. 몇 차례의 전화가 걸려 왔으나 그는 받지 않았다. 김진석은 소장을 법원에 낸 후 내게 찾아와 울분을 터뜨렸다. "그 자식 순 사기꾼이야. 처음부터 계획적이었어. 세상에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서 우리들을 농락한 거야. 이런 작자들은 이번 기회에 혼이 나야 해." 하면서 그는 고소를 취소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나는 김진석에게, "탁현총이 말을 믿은 우리에게도 잘못은 있지 않았는가? 최소한 가톨릭에 대한 기본 상식 같은 게 있었어야 해. 신부와 수녀가 놀아났다는 대목에서 나는 수상쩍은 감을 느꼈지만, 그럴 수도 있으려니 생각했던 거야. 소설적인 흥미만 느꼈지, 그 이야기의 진실을 무시했거든. 그건 유준성이도 마찬가지였어. 소설의 주제를 흥미로써 관찰하려고 했던 성급함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알려 주려 했어 우리나 대부분의 독자들은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지. 이건 서로가 창피한 일임에 분명하네." 하며 그에게 고소를 취하해 줄 것을 종용했다. 그러나 는 완강히 거부했다. "고소를 하게 되면 그만큼 돈이 들 텐데‥‥‥‥ "돈이 들어도 끝까지 이들을 응징할 생각이네. 양심의 소리를 외면하고 거짓을 합리화하려는 작자들은 혼내 줘야 해." 그는 변호사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여기저기에 빚을 졌다. 공탁금을 걸기 위해선 돈이 필요했던 것이다. "자네가 내 측의 증인이 돼 줘야겠어. 증인이라고 자네밖에 없을 테니까. 잘못했다간 우리가 유준성에게 당하게 돼 있어. 그 친구는 나를, 인기 작가를 시샘해 말썽 피우는 비열한 문학 지망생으로 몰 테니까 말이야. 그는 유명"작가의 프리미엄을 최대한 발휘해 많은 어용 평론가를 끌어들일 거야. 안 그래."
하며 변호사 사무실로 같이 가 줄 것을 요구했다. 나는 그의 요청에 처음엔 가지를 않았다. 나와 탁현총의 관계를 생각할 때 그랬다. 내가 만일 고소인 측의 증인이 된다면 탁현총이 가만있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탁현총은 내가 김진석의 증인이 됐다 는 말을 들었는지 밤늦은 시간에 전화를 걸어 왔다. 술에 취한 음성 이었다. "형님이 증인이 되신다고요?" "아직 생각중이야." "정말 그럴 수가 있습니까? 그 동안 나는 형님을 믿어 왔습니다. 그래서 제 진심을 숨김없이 이야기했던 것입니다. 제 탄생의 비밀까지도 부끄러운 모든 이야기를 해 드렀던 것입니다. 그런데 형님은 그걸 역이용했던 것입니다. 저를 마치 파렴치한 인간으로 취급해 김진석 씨 편에 들어서 증인으로 설 궁리를 하시고‥‥‥‥“ "아직 미정이라고 했잖아, 내일 아침에 술 깬 담에 이야기 하자구." 하며 전화를 끊었더니 계속 그는 전화를 걸어 왔다. 왜 끊느냐 것이었다. "형님, 윤찬준이가 이 세상에 없는 인물이란 말입니까? 형님만은 믿어 줄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럼 제가 사기꾼이란 말입니까? 보셨잖아요. 찬준이가 그런 '최후의 석양'을‥‥‥‥ 저로 인해 형님이 피해를 입은 적이 있습니까?" "이 사람 정말 형편없는 친구로군. 내가 증인으로 나가건 나가지 않건 그건 내가 결정할 문제야. 자네가 떳떳하면 내가 증인으로 나간다고 해서 하나도 겁날 것이 없잖아. 그리고 자네는 고소인의 상대가 아니라 참고인에 불과한 거야."
"참고인이 피고인이 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저는 정말 잘못이 없습니다." "사람을 속인 잘못이야. 자네는 모든 걸 조작했어. 알리바이까지도." 나는 '최후의 석양 건을 이야기하려 했으나 그만두었다. "속인 것은 이말동 기자입니다. 이말동 기자를 소개해 준 것은 형님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형님도 책임이 없다고 볼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럼 그 원고는 자네가 이말동에게 넘겨주고, 이말동의 손을 거쳐 유준성에게 갔단 말인가?" "저는 잘못이 없습니다. 모든 책임은 이말동에게 있습니다." 탁현총은 발뺌을 하려 애썼다. 밤 1시가 넘었는데도 탁현총은 계속 전화를 걸어 왔다. 그래서 나는 아예 전화선을 뽑아 버렸다. 잠자리에 누워서 나는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탁현총의 선량한 눈매, 그리고 이야기할 때마다 느껴지는 인간적인 냄새, 그것들을 생각할 때마다 인간적인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 그래서 나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김진석의 편에서 증인으로 나갈 것을 다짐했다. 내가 증인이 된다면 유준성과 그에 얽힌 인물들, 이말동, 탁현총 등이 모두 참고인에서 피고인 편에 앉혀질 것이었다.
계 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