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창조한 신이 틀림없이 존재해야 한다는 믿음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타베이 준코)
타베이 준코 田部井 淳子 Junko Tabei (1939.9.22.-2016.10.20. 복막암으로 77세망)는 일본의 산악인이자 교사로 쇼와여자대(1958-1962)서 영문학을 공부했고, 일본여성산악인 12명의 원정대를 구성하여1975년 5월 16일 여성으로선 처음으로 에베레스트 산 등반에 성공했고 모든 대륙에서 가장 높은 정상인 7군데를 오른 최초의 여성입니다.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동일본대지진으로 피해본 청소년들을 위하여 후지산 등반을 이끌었습니다. 스포츠 중에 비경쟁적인 특성과 정상에서의 놀라운 자연경관을 즐기는 등산을 교사활동을 하며 본격적으로 하는데, 여성들의 조용한 강인함을 추구하는 일본의 전통적인 가치로 여성산악인들의 고충을 이겨내고자 애를 쓴 여성이었습니다. 네팔왕과 일본정부로부터 메시지를 받고 동경공항에서 환대를 받았지만 그녀는 36번째 오른 한 사람이지 에레베스트산을 최초로 오른 여성이 될 생각이 없다고 겸손하게 말을 했습니다. 그녀는 기업후원을 수락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자금을 마련하여 등정했습니다. 구글은 그녀의 기념글로 “"포기하지 마십시오. 계속 탐구하십시오.”였고, 명왕성 산맥이름을 타베이 산맥으로 지었고, 산이름 주제를 “지구, 바다, 하늘 탐험에서 새로운 지평을 넘은 역사적 개척자”입니다. 영문으로 “높은 곳을 기리며. Honouring High Place: 타베이 준코의 산악생활”(2017)로 책이 나왔습니다. 지리산종주와 설악산과 한라산을 등정한 타베이준코였고 성품이 좋고 인간적이라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습니다. 7대륙 최고봉을 완등한 한국의 김영미와 최고령 에베레베스트 등정자 송귀화등 과 2011년 지리산 종주를 함게 한 타베이입니다.
타베이 1주기의 인터뷰기사 모음집입니다(2017).
1. 질문: 등산을 처음 경험한 것은 초등학교 때 화산 나수산을 등반했을 때였습니다. 등산에 대한 첫인상은 어땠나요?
- 타베이: 바위투성이의 마른 언덕과 온천에서 나오는 뜨거운 물줄기에 너무 놀랐습니다. 여름이라 산 정상에 있는 동안 조금 쌀쌀한 느낌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세상에는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것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 자신의 경험을 통해 직접 보고 배우는 것이 즐겁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갈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2. 5월 16일 정상에 도착시 무엇을 처음 생각했나요?
나는 아무 소리도 지르지 않았지만 "오, 더 이상 올라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고 네팔의 갈색고지대와 바위빙하라는 두 가지 대조적인 전망이 인상적이었습니다.
* 집에 돌아왔을 때의 반응은?
세 살 딸은 모든 카메라를 무서워했고 황제의 궁전초대, 장관들의 오찬에 참여하고 네팔정부로부터 명예훈장을 받고 강연을 해야만 했습니다. 나는 단순히 산을 올랐을 뿐인데, 내가 첫 번째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주변 환경이 너무 많이 바뀌었습니다. 나는 에베레스트에 오른 최초의 여성이 될 생각이 없었습니다.
3. 당신은 에베레스트 이후에도 계속해서 자신을 밀어붙였습니다. 당신은 일곱 정상을 등반했고 그 이후로 다른 많은 정상을 등반했습니다. 등반을 계속하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 산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으로 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저는 세계 모든 나라의 모든 최고봉을 오르기 위해 도전하고 있습니다. 나는 암을 앓고 있지만 계속 내 길을 가고 산을 오르고 싶습니다.
4. 그리고 만약 당신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면, 그리고 어렸을 때 스스로에게 조언을 해줄 수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 포기하지 마십시오. 계속해서 탐구하세요. Do not give up. Keep on your quest.
“일본 여자는 사회의 고정 관념을 무시하면서 산을 오른다.”(로스엔젤스 타임스 1991년 3월 31일).
Junko Tabei는 일본의 고정 관념을 무시합니다. 51세의 주부는 아들이 학교에서 어떤 성적을 받는지에 대해 정말로 초조해하지 않습니다. 여성의 관용, 즉 참음과 견딤이라는 아만 我慢을 중시하는 나라 일본에서 타베이는 가능한 한 많은 나라에서 최대한 많은 산을 오르겠다는 꿈을 뻔뻔스럽게 이뤘습니다. 그것은 그녀를 순응에 대한 열광으로 인해 인생을 즐길 수 없는 대부분의 일본인과 구별된다고 그녀는 말합니다. "일본의 생활 방식은 무섭고 의미가 없다"고 그녀는 말합니다. "당신이 정말로 살지 않는다면 비싼 집을 짓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돈을 남겨 두는 대신 '이런, 재미 있지 않았어?'라고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남편과 추억을 나누기 위해." 그러나 1975년 5월 16일, 타베이는 눈사태로 입은 부상과 젊은 일본 어머니들을 집에 머물게 하는 사회적 압력을 극복하고 세계 정상인 에베레스트 산 정상에 선 최초의 여성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등산의 일생에서 하나의 정점이었습니다. 7남매 중 다섯번째 딸인 다베이는 일본 동북부 후쿠시마의 푸른 산과 논에서 자랐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때 등반을 시작했습니다. 등반을 할 때가 아니었습니다. 1945-46 년 전쟁 직후. 사람들은 여전히 먹을 것이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저를 데리고 황량한 화산인 나수잔으로 가셨어요. 강에는 뜨거운 물이 흘렀고 여름에는 추웠습니다. 내가 몰랐던 세상을 보게 되었고, 그로 인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다른 곳을 보고 싶었습니다."
에베레스트 등정 후 타베이의 첫 번째 소원은 남극에 가고 싶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16년 후 Tabei는 남극 대륙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Vinson Massif의 정상에서 미소를 집게 되었습니다. 타베이는 6개 대륙에서 가장 높은 산의 정상을 성공적으로 등정한 유일한 여성입니다. 그녀는 에베레스트와 빈슨 마시프 외에도 유럽의 몽블랑, 아프리카의 킬리만자로 산, 남미의 아콩카과 산, 알래스카의 매킨리 산을 제쳤습니다. 남극의 "Vinson Massif는 숨이 멎을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라고 그녀는 말합니다. "산들은 새하얀 눈의 광활한 창공에 완벽한 피라미드처럼 흩어져 있습니다. 일년 중 이맘때에는 해가 지지 않고, 눈은 밝은 푸른 얼음 위로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입니다.
"나는 종교적인 신자는 아니지만, 그런 아름다움을 보고 그곳에 있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깨달을 때, 세상을 창조한 신이 틀림없이 존재해야 한다는 믿음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남극 등반은 악천후에도 불구하고 쉬웠다고 Tabei는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돈이 많이 든 등정이었습니다. 에베레스트 정복 후 Tabei는 집에 작은 과외 학교를 세웠습니다. "제 딸은 겨우 3살이었기 때문에 일하는 동안 집에 있어야 했습니다. 그녀는 이웃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쳤고, 나중에, 그녀는 그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내가 가본 장소에 대해 모두 이야기하고, 나는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어른들은 성실하지 않은 경향이 있기 때문에 어른들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정직합니다." Tabei는 또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등산 투어를 안내하여 번 돈을 저축합니다. 그녀가 3년에 한 번만 주요 정복을 할 수 있는 느린 과정입니다. "나는 수천 달러짜리 반지 나 목걸이를 원하지 않는다"고 그녀는 말합니다. "돈을 써서 새로운 곳을 보고 나만의 추억을 만들고 싶어요."그녀 다른 일본 여성 등반가들과 차별화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평생의 헌신이라고 말합니다.
"아직 독신일 때 짧은 시간 동안 등반하는 일본 여성이 많은 데 비하여 타베이는 에베레스트 등반 외에도 Tabei-san은 가족을 부양하면서 수년 동안 등반했습니다. 그녀는 리더입니다. 많은 일본인들이 그녀가 한 일을 하고 싶어 하지만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우리 세대의 대부분의 일본 남성들은 여성이 집에 머물면서 집을 청소하기를 기대합니다."라고 Tabei는 말합니다. "그녀는 그가 집에 도착하기 전에 집에 도착하는 한 일할 수 있었습니다. "내 차례로, 나는 그가 직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도록 압력을 가하지 않습니다. 차라리 그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 힘을 쏟았으면 좋겠습니다. 기업은 수백 년 동안 계속 운영할 수 있지만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시간은 정말 제한되어 있습니다." 12살 난 아들과 18살 딸을 위해 타베이는 대학 입학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하면서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하는 '교육 엄마'의 역할도 거부했다고 말합니다. "내가 화를 내는 것은 나쁜 성적이 아닙니다. 지각하고, 약속을 어기고, 불친절하게 대하는 것, 나는 그것에 대해 정말로 꾸짖습니다."
타베이는 유엔이 인정한 167국가 중에서 32개의 가장 높은 곳을 등정했고 56개국의 159개 산을 올랐습니다. "모든 봉우리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를 오르고 싶어요"라고 그녀는 말합니다. "내가 관리할 수 있는 산을 선택하는 한, 나는 계속 등반할 수 있습니다. 평균 수명이 있다면 30년은 더 살 수 있습니다. 더 많은 산을 오르고 싶어요. '정말 좋았다'고 생각하다가 죽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9월 22일은 추계제로 수도자와 성직자들을 위한 기도를 바친이후 타베이의 7주기 기일로 타베이의 영혼을 위하여 기도를 하느님께 바칠 것입니다. 타베이 준코의 산악인의 삶이 제게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축소판을 본 듯 하였습니다. 높은 산에 오름으로 창조주 하느님을 믿을 수밖에 없다는 타베이의 고백이 세상의 창조물을 보며 하느님을 믿을 수밖에 없다는 그리스도인의 고백으로 들립니다. 타베이의 알지 못하는 세상에 대한 탐색은 대단히 놀랍습디다. 마치 그리스도인의 알지 못하는 미지의 하느님을 알아가는 과정의 모습과 너무 닮았습니다. 하느님과의 말씀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과 산악인의 생활과는 너무 닮았습니다. 줄 하나에 생명이 오가는 산악인의 신뢰가 생명인것처럼 영적인 생명이 오가는 하느님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 생명을 살리는 신심과 너무 닮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을 향하여 늘 친절하듯이 동료 산악인 서로 간의 우정은 서로의 생명을 지키는 약속이자 신뢰입니다. 세상의 어른은 성실하지 않은 경향이 있지만 아이들은 그러하지 않다고 본 타베이의 생각이 성실한 그리스도인을 떠올리게 합니다. 타베이는 히말라야 전역의 "정화" 등반을 주도한 유명한 생태학자로 창조주의 본래의 모습을 지키려는 마음이 우리의 영혼을 정호하려는 마음을 만들게 합니다. 산에 오르는 것처럼 왕국에 오르기 위해서 그리스도 예수와의 교제가 너무 좋아서 죽을 수 있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들이 그러하기를 빕니다. 아멘.
9월 21일은 사도 성 마태오 복음사가의 축일입니다. 복음사가들은 듣고 싶어하지 않는 전체 체계에 맞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이야기를 전한 성인들입니다. 용기와 위험을 감수하려면 겸손이 매우 필요한 것임을 경험적으로나마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이날은 외로움과 대인관계에 고통을 풀어나간 핸리 나웬 Henri Nouwen(1932.1.24.-1996.9.21. 네덜란드)사제가 소천한 날로 Yale과 Harvard에서 수년간 교수로 재직한 Nouwen은 길을 잃었을 때 장바니에와의 만남으로 길을 찾아가는 만남을 가졌고, 생애의 마지막 10년을 온타리오의 리치몬드에 있는 라르슈L'Arche 공동체에서 발달 장애가 있는 사람들과 함께 살고 일하며 보냈습니다. Daybreak 커뮤니티 구성원의 무덤 근처에 있기를 원하는 그의 열망에 따라 Richmond Hill에 있는성요한 성공회 묘지 St. John's Anglican Church Cemetery에 묻혔습니다. “나는 오늘 평화를 제안하였는가? 내가 어떤 사람의 얼굴에 미소를 갖다 주었는가요? 내가 치유의 말을 했나요? 나는 내 분노와 원망을 버렸나요? 나는 용서했나요? 나는 사랑했나요? 이런 것들이 실제적인 질문들입니다. 지금 뿌린 작은 사랑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이라고 믿어야 합니다.”고 핸리 나웬사제는 글을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