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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보면 그녀는 여인으로서도 괜찮은 용모였다.
사실은 절세미녀라 해도 괜찮은 용모였다.
운기려는 자신의 생각에 완전히 빠져 대도오의
미묘한 기분변화같은 것은 느낄 수 없었다.
왜 오빠가 그렇게 반쯤 미친 듯 보이게
되었던가...왜 자신은 이렇게 해야 했던가...
"현 맹주는 부담을 견딜 수 없어 구부러진 나무같이
된 사람이야. 부담이 나중엔 없어졌지만 이미
구부러진 나무가 똑바로 펴질 수는 없었던 거야."
뚜렷한 눈과 코, 도톰한 입술이라는 여성적인 용모,
그러나 그 여성스러움을 가려버리는 남성적인
옷차림의 부조화가 만들어내는 중성적인 매력.
'묘한 색감(色感)을 풍기는군!'
대도오는 생각했다.
'가장 최근에 여자랑 자본 것이 언제였더라?'
운기려가 정신을 차리고 대도오를 보았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는
그것이 자기 얘기에 대한 반응이라고만 생각하고
속마음을 털어놓은 어색함에 말을 돌렸다.
"선물을 받았다고?"
"음."
대도오는 흐르는 시냇물에 손을 슬쩍 담그며 짧은
신음으로 긍정했다.
차가운 물이 은근히 달아오른 기분을
진정시켜주었다.
운기려가 그의 눈치를 보는 듯 슬쩍 시선을 주며
물었다.
"여자를 주겠다는 걸 거절했다면서?"
"낡은 여자라더군!"
"......!!"
그녀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분한 표정으로 대도오의
등판을 노려보았지만 뭐라 말할 입장이 아니었다.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간신히 진정한 그녀가 다시
물었다.
"낡은 여자라서 거절했나?"
대도오는 물에 담근 손을 빼서 얼굴을 문대었다.
정신은 드는데 갈증은 여전했다. 아니 오히려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사고치겠군!'
짐짓 매몰차게 말한다.
"낡았든 아니든 남이 주는 여자는 싫어. 잠깐
데리고 놀다 버려도 된다면 모르지만..."
운기려가 혐오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게 남자야? 남자는 다 그런거야?"
"남자에게 있어서 여자는 장식품일 뿐이니까.
언제든지 필요할 때 바꿀 수 있는거야. 정은 주지만
버리는 걸 주저해선 안되지!"
운기려가 참지못하고 뺨을 때리려 손을 내밀었다.
대도오는 그 팔을 잡아 뒤로 끌어당겼다. 운기려가
맥없이 그의 가슴에 당겨왔다.
대도오가 지긋이 그녀의 눈을 보았다. 운기려는 온
몸에 맥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가슴이 정신없이 뛰고
귀가 멍해볐다. 이렇게 가까이 남자의 숨결을 느끼는
것은 처음이었던 것이다.
대도오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왔다.
"음-!"
운기려의 입술에 부드러운 감촉이 닿았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신음을 냈다.
그 입술 틈으로 축축한 무엇인가가 침입하려들었다.
'이게 뭐야?'
순간 뒤통수를 치는 충격에 운기려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안돼!"
대도오의 입술이 떨어졌다. 미소를 지으며 그가
속삭였다.
"뭐, 그 나이에 이게 처음은 아닐텐데...
호법님께선 나같은 하급무사랑은 싫다는 말인가?"
짜악-!
분노의 일격이었던 모양, 대도오의 고개가 홱
젖혀졌다.
"더러운 자식!!"
운기려는 오솔길을 뛰어 사라져갔다.
대도오는 뺨을 만지며 씨익 웃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볼만한 구경거리는 끝났으니 이제 나오지!"
반효가 빙글빙글 묘한 웃음을 흘리며 나무 뒤에서
걸어나왔다.
"간도 크시오. 맹주의 누이를 그렇게 다루다니..."
대도오가 비웃는 듯한 미소를 흘렸다.
"맹주의 누이면 계집이 아닌가?"
반효는 어이가 없는지 아니면 그의 배짱에 질렸는지
비실비실 웃고만 있었다.
대도오는 문득 반효를 보며 물었다.
"그런데 여긴 웬일인가?"
그제서야 생각났다는 듯 반효가 말했다.
"아, 그렇군요. 전할 말씀이 있어서 왔었죠."
묘한 눈으로 대도오를 바라보는 것이다.
"총당주가 찾습디다."
대도오는 무표정하게 앉아 있었다.
서문벽의 미소는 그의 눈에는 가식(假飾)임이
너무도 확연히 보였다.
입에 발린 찬사를 한참이나 늘어놓던 총당주가
본론을 꺼내 놓았다.
"흑기당이 공을 세웠다지만 사실 자네의 공이라
말해도 별반 틀리지 않네! 그래서 말이네만..."
그의 어조가 은근해 졌다.
그럴수록 대도오의 눈은 날카로워지고 태도는 더욱
뻣뻣해졌다.
"자네가 안당주를 보필하는 자리, 말하자면
부당주를 맡아줬으면 좋겠네!"
대도오는 덤덤하게 그를 보기만 하고 대답이
없었다.
그의 얼굴을 보고 기대했던 반응이 보이지 않자
의아한 얼굴로 보충해 말했다.
"철기맹 역사상 유례(類例) 없이 파격적인 진급인데
자넨 기쁜 기색이 아니군?"
대도오가 딱딱한 어조로 대답했다.
"그렇게 진급할 이유는?"
"척후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지난 일이지만
강구심을 격살했지 않은가? 적의 수뇌인물을 죽인자를
그냥 두면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출신도 모호한 신입을 부당주로 삼는 것에
대해서는?"
"자네도 남의 이목을 생각하나?"
"가치없는 일로 미움받긴 싫으니까!"
거의 반말에 가까운 응대였다.
어차피 안소에게도 반말로 하는 놈이라 들었으니
예상한 일이었으나 서문벽의 기분은 무척 나빴다. 그
문제는 차치하고 말투보다 부당주직을 가치없는 일로
여기는 그 태도가 서문벽의 깊은 곳을 자극했다.
"부당주가 가치없다 생각하나?"
이제까지의 은근하던 어조를 버리고 낮은 어조로
그러나 위협적인 투로 말하는 그를 대도오는 빤히
바라보았다.
"부당주직에 무슨 가치가 있을까?"
서문벽의 말문이 막혔다. 표정이 얼음장 같이
굳어지고 이마에 핏대가 솟았다. 여태 그가 남앞에서
보인적이 없는 극도의 분노였다.
그는 이 몇마디 대화로 대도오가 자신과는 전혀
다른 세계에 속하는 사람임을 알았다.
그에게 가치있는 것, 아니 생의 전목표가 되는 것이
이 사생아, 후레자식에게는 길가를 구르는 똥덩어리
만큼의 가치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소리 않고 떨리는 손가락을 들어 문을
가리켰다.
자신이 생명처럼 소중히 여기는 것이 타인에게
냄새나는 똥덩어리 처럼 취급받는다면 어떻게 될까?
목숨을 바쳐 사랑하는 여인을 창녀취급하는
개자식을 만나면 어떤 기분이 될까?
아까워서 남에게 손톱만큼도 나누어주고 싶지 않은
음식을 눈물을 머금고 줬더니 인상을 쓰며 뱉어버리는
것을 본다면 뭐라 말해야 할까?
서문벽의 기분이 지금 그랬다.
말 한마디로 그의 인생이 부정되고 진흙발에 밟혀
거름구덩이에 던져진 것이다.
참을 수 없는 분노와 모멸감이 뱃속으로부터
끓어나와 목구멍을 타고 올라왔다.
엽평은 옆방에 앉아 과장된 모습으로 두 손가락으로
귀를 막았다.
이윽고 옆방에서 짐승의 절규같은 괴성이 한참을
울렸다. 그것은 상처입은 호랑이의 포효(咆哮)와도
흡사한 소리였다.
백마흔은 팔짱을 끼고 맞은편 벽에 기대어 서서
엽평을 보았다.
그 가면( 面)같은 얼굴이 한끝에서부터
일그러지더니 미소 비슷한 모양이 되었다.
엽평도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평소의 맑고 온화한, 그러나 가식적(假飾的)이었던
미소가 아니라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 음침한
미소였다.
그들은 오늘에야 그들 주군의 치명적인 약점을
발견한 것이다. 이것은 중요한 변수가 될 것임에
틀림없었다.
예상대로 황기, 청기당은 흑기당에 흡수되었다.
당주는 인도부 안소가 그대로 맡고 전 황기당주
일장번천 상학이 상처에서 회복되는대로 부당주를
맡게 되었다.
산귀초 노종도가 수석향주, 철심호 가도가
제이향주를 맡는 등 적은 인원에도 불구하고 제법
쟁쟁한 인물들이 자리를 잡아 흑기당 자체로는 강화된
측면이 컸지만 태반이 부상자였으니 총 인원은
육십여명 밖에 되지않았다.
이 숫자는 총당(總堂)의 일개 향보다도 적은
숫자였다.
그러나 한달여의 휴식 후 다시 구륜교와의 싸움에
나갔을 때 흑기당은 그들과 싸우는 구륜교에게는
철기맹보다 더 알려졌고, 흑기당 보다는
흑풍조(黑風組)가 더 잘 알려졌다.
흑풍조!
흑풍조는 대도오의 풍자조를 부르는 이름이었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흑기당 풍자조라는 이름대신에
흑풍조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제는 누구나가 그들을 흑풍조라고 불렀다.
그들은 다른 조의 반 밖에 안되는 여섯명이었지만
어떤 위험한 임무도 해내었고, 어떤 싸움에서도
패하지 않았다.
또한 그들 중 누구도 죽지 않았다. 그들은 싸우면서
더욱 강해졌고, 생사의 고비를 숱하게 넘기면서 그
하나하나가 전문적인 싸움꾼이 되었다.
그들은 이제 흑풍조의 흑기당, 흑기당의
철기맹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일개
말단조직(末端組織)이었던 흑풍조가 철기맹의 이름을
능가하는 기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해가 지고 다시 해가 떠올랐다.
쌍방이 시체는 거두어갔지만 부러진 칼과 창,
넘어진 말들의 시체가 사방에 널부러져 있었다.
부러진 깃발 하나가 비스듬히 꽂혀있는 강변의
자갈밭을 중심으로 철기맹과 구륜교의 진영이
마주보고 있는 이 곳은 이상하리 만큼 고요한 적막에
쌓여있었다.
생사평(生死坪)!
왼쪽 평원 멀리 기련산 줄기를 보며, 오른 쪽으로는
메마른 땅에 한 줄기 좁은 강물이 흐르고 있는
넓디넓은 평원이었다.
거기 지금 철기맹과 구륜교가 강궁을 쏘아 겨우
닿을 듯한 거리를 두고 마주 대
하고 있는 것이다.
철기맹의 흑기, 적기당에 마주한 구륜교는 하향월이
패배의 책임을 지고 총단 내에서 근신을 하는 동안
이사자(二使者) 벽력수(霹靂手) 위지한파(慰遲寒波)가
세 명의 사자를 거느리고 새로 지휘를 맡고 있었다.
그중 하나인 칠사자(五使者) 혈전궁(血箭弓)
혁련이(赫連二)가 생사평에 드리운 침묵의
원인이었다.
일반적으로 무림인들의 싸움에서 활은 잘 쓰이지가
않는다.
웬만한 화살은 기공을 익힌 고수들의 몸을 뚫지도
못할 뿐아니라 날아오는 동안 먼저 보고 퉁겨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혈전궁은 달랐다.
그의 활은 활이라 부를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 거대한 강철 화살은 창에 가까울 정도로 무겁고
강했다. 어떤 기공을 연마했어도 그 철전(鐵箭)
앞에서는 종잇장처럼 뚫려버렸다.
그의 활은 또한 빠르고 멀리 나가는데다
정확하기까지 했다.적기당 부당주가 나서서 싸움을
걸다가 입을 관통당해 죽은 이후 사흘, 철기맹의 요인
중 구륜교 진영앞 삼백장거리까지 접근해서 살아온
사람이 없었다.
활 한 자루 앞에 오백 철기맹도가 꼼짝을 못한다는
우스운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적기당주 개정천은 절반은 절박한 필요성때문에,
나머지 대부분은 '너희라고 별 수 있으랴'하는 생각에
이 우환의 해결을 흑풍조에 맡겼다.
대도오라는 그 건방진 조장녀석은 하기 싫어 온갖
인상을 썼지만, 자기가 철기맹 소속인 이상은 안 할
도리가 없을 것이었다.
개정천은 웃을 일이 아닐텐데도 남모르게 비틀린
웃음을 짓고 있었다.
"전 한번도 활을 쏴본 적이 없는데요!"
화웅이 멀뚱멀뚱 황소눈알을 굴렸다.
"명중시키지 않아도 좋다! 삼백장거리까지 화살을
날릴 수 있는 사람이 너 뿐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대도오는 막무가내였다.
어디서 구해왔는지 자기 키만큼이나 큰 강궁(强弓)
하나를 화웅에게 안기는 것이었다.
화웅이 난처한 표정으로 강궁을 받아들며 머리를
긁었다.
매봉옥이 그를 놀렸다.
"어디 한 번 쏴 봐! 미련곰텡이!"
평상시에는 아웅다웅하지만 화웅과 그는 이제
절친한 사이가 되어 있었다. 별 나쁜 감정 없이
놀리는 것이다.
화웅이 별 수 없다는 듯 시위를 당겼다.
지끈-!
피-잉-!
활은 큰 만곡을 그리며 굽더니 수수깡처럼 맥없이
부러져 나갔다. 화웅이 다시 머리를 긁적거렸다.
"사실은..."
그는 천생의 신력 때문에 활을 쏠 수가 없었다.
그가 잡은 활치고 부러지지 않은 활이 없었던 것이다.
입을 벌리고 놀라던 매봉옥이 키득키득 웃기
시작했다.
노대가 물었다.
"도대체 뭘 계획하고 계신 것입니까?"
대도오는 어깨를 으쓱했다.
"저기 생사평은 보기에는 평탄해 보이지만 사실은
곳곳에 웅덩이도 있고, 바위도 있다."
"그래서요?"
"우선 내가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듣고있는 조원들의 눈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대도오는 무시하고 말을 계속했다.
"가까워지면 그들도 날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마 혁련이가 그 괴물을 쏴대겠지!"
'아마 여러 발 쏴댈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한 발이면
충분할테니까!'
노대는 그런 생각을 입 밖에 내놓지는 않고 침을
삼켰다.
"그 다음은요?"
'설마 거기서 그냥 죽어쓰러진다는 것은 아니겠지!'
이 말이 거의 목구멍밖까지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눌러 참았다.
"막거나 피한 다음 웅덩이에 숨는다. 그 때 화웅이
그가 숨은 곳을 향해 활을 쏜다. 그는 우선 피하겠지!
나는 그사이에 그에게 접근하고, 다시 활을 쏘면
숨고하는 것을 반복해서 그에게 다가가 죽인다."
설명은 끝났다.
첫댓글 감사...
잘 읽었습니다
즐감하고갑니다.~~~~
즐독^^
감사합니다
잘읽었습니다
감사해요
즐감
즐독! 감사 합니다^^.
감사해요
재미 있게 읽고 갑니다
항상 건강 하고 행복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