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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I Love Soccer (축구동영상) 원문보기 글쓴이: 피고인FIGO
가제타 델로 스포르트의 파올로 포르콜린 씨의 인터뷰입니다.
월드사커다이제스트 2014년 7월 3일판에 수록되었습니다.
출처-http://occhiali.tistory.com/
숫자만으로 사람을 평가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근거는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비에르 사네티의 프로 경력은 22년에 달하고 통산 1112경기에 출장했다. 평균적으로 연간 50경기를 넘기는 수치이다. 철인이라는 별명은 괜히 붙은 것이 아니었다.
인테르에서의 공식전 858경기 출장, 외국인으로서 세리에A 618경기 출장, 아르헨티나 대표 145경기 출장, 어느 기록이나 사상 최다이다. 인테르에서의 스쿠데토 5번, 코파 이탈리아 4번, 클럽월드컵과 챔피언스릭, 그리고 UEFA컵(현 유로파리그) 각 1번을 제패하는 등 총 16개의 타이틀을 따내었다.
인테르의 반디에라였으며, 은퇴전부터 이미 레전드로 추앙받으며 40세까지 현역을 이어왔다 선수계약은 6월 30일에 끝나지만 7월 1일 아침이 밝아오면 클럽의 간부가 될 것이다. 이미 부회장 취임이 확실시되고 있다.
꿈에나 나올 듯한 커리어지만 평탄한 길을 걸었던 것만은 아니다. 인테르에 입단할 당시 주목 받은 건 그가 아니라 세바스티안 람베르라는, 다른 아르헨티나인이었다. 사네티는 덤 같은 대접이었다. 커리어 초반에는 고난이 계속되었다. 절대 포기하지 말라며 격려해주던 아버지가 없었더라면 그는 미장이가 되었을테고, 위대한 칼챠토레를 한명 잃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탈리아에 도착했을 당시 애칭은 트랙터였다고 하더군요. 최근에는 자주 못 듣게 되었지만요. 어떤 유래가 있는 건가요?
사네티 - 제가 공을 잡으면 쭉쭉 나아가면서 아무도 막지 못했거든요. 이탈리아에 오기 전부터 마치 트랙터 같다면서 붙었던 별명이었죠.
듣고보니 딱이네요. 별명이 붙었을 무렵의 경기나, 생활, 축구를 시작했을 당시의 모습이라거나 기억나시는 게 있으신가요?
사네티 - 어릴 적 살던 마을에는 축구장이라고 부를만큼 괜찮은 시설은 없었어요. 아버지를 비롯해서 어른들이 공을 찰 공간을 만들어주셨죠. 거친 땅이었지만 그래도 그 덕에 축구를 시작했어요.
축구에서 기쁨을 느꼈던 가장 오래된 기억이라면?
사네티 - 인디펜덴테 유스팀에 입단하게 되었을 때겠죠.
그렇다면 역으로 분했던 적은 언제였나요?
사네티 - 그것도 인디펜덴테였어요. 팀을 나가라고 했던 일이었죠. 덩치가 너무 작고 더 이상 클 것 같지 않다면서요.
이건 유명한 이야기일 것 같은데 아버지 일을 도와주다가 근육이 자연스레 발달했다고 하더라구요?
사네티 - 그 덕에 타예레스, 그리고 다음은 반필드에 입단할 수 있었죠. 스무살 무렵에는 이적료로 16만 달러가 메겨졌죠. 그 때 받은 등번호 4번을 계속 등에 짊어지고 있었습니다.
아르헨티나 시절 가장 만족스러웠던 경기는 어떤 경기였나요?
사네티 - 3:0으로 인디펜덴테를 꺾었던 경기예요. 3득점 중 하나는 제가 넣은데다가, 다른 무엇보다도 저를 내쫓았던 인디펜덴테가 상대였으니까요.
이탈리아에 와서는 19년간 인테르에만 있었죠.
사네티 - 이탈리아에 "왔다"라기보다는 "돌아왔다"가 적절할 것 같아요. 저희 할아버지께서 우디네 쪽에 있는 사칠레라는 도시 출신이니까요.
하비에르의 헤어스타일은 19년간이나 변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요. 가르마나 앞머리 같은 거도 그렇구요. 바꿔보려고 했던 적은 없으셨나요?
사네티 - 그런 생각은 없었어요. 저희 집은 무척 가난한 집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아버지께서 입이 닳도록 하시던 말씀이 있었어요. 바깥에 나갈 때에는 깨끗한 신발을 신어라, 그리고 머리를 단정히 하고 다녀라 라는 거였죠. 그 말씀이 아직 남아있을지도 모르겠네요.
프로 세계에서 40살까지 버티려면 튼튼한 몸이 제일 중요하겠죠. 무엇보다도 다리가 가장 중요하겠죠?
사네티 - 말씀대로입니다. 저는 지금도 한쪽발로 레그프레스 190킬로그램은 할 수 있어요. 옛날에는 연습의 일환이라면서 파울라를 다리로 들어올리는 것도 자주 하곤 했는데요.(웃음)
아내분의 이름이 나왔으니 말인데 하비에르의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이겠죠?
사네티 - 그렇죠. 꽤 어릴 적부터 알고 지냈고, 그 뒤로는 떨어진 적이 없으니까요. 아이도 셋이나 있고 이 이상 좋은 인생을 바랄 수는 없을 거예요.
하비에르의 커리어에 간섭하거나 하진 않았나요?
사네티 - 여태까지는 한번도 없었지만 요새는 하더라구요. 감독만은 절대로 하지말라구요. 다른 건 뭐든 해도 괜찮은데 감독만은 하지말라고 하고 있죠. 22년간 축구의 세계에 빠져있었으니까 당분간은 집에서 쉬면서 가족과의 시간을 우선해야할 것 같네요.
유명한 에피소드가 있던데요. 하비에르는 결혼식 당일에도 연습하러 나왔다면서요?
사네티 - 좀 말하기 그렇긴 한데 그거 한번으로 끝난 게 아니에요.(웃음) 결혼식 전이랑 후 합쳐서 두번. 쭉 하던 스케줄에 따랐죠. 식이 끝나고 시계를 보니 시간이 될 것 같더라구요.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트레이닝을 시작했습니다. 파울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이런 놈이라는 걸 이해하고 모두 받아들여줬죠.
스스로 커리어를 돌아보면서 가장 감탄할만한 부분이라면?
사네티 - 남은 기록이네요. 프로로서 1112경기에 출장했는데 누군가가 이 기록을 넘는다면 아마 그건 골키퍼 정도일 거예요. 아르헨티나에서는 1000경기를 넘는 선수가 한명도 없죠. 가끔 보면 내가 남긴 기록이 맞긴 한가 모를 때도 있습니다. 세리에A 외국인 최다출장기록을 가지고 있고, 인테르에서는 저보다 많은 경기를 뛴 사람은 없죠. 아르헨티나 대표로서도 최다 출장기록을 가지고 있구요. 뭐야 이거 진짜인 건가 싶네요.
하비에르가 이탈리아에서 사랑받는 사람이라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을텐데요. 아르헨티나에서도 마찬가지일까요?
사네티 - 아르헨티나를 떠나온지 20년 가까이 되었지만 제가 대표팀에 조금이나마 기여를 했다는 건 인정해주는 것 같아요. 때로는 언론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하지만, 일반인들은 호감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요.
절대 잊혀지지 않는 경기라면 어떤 게 있을까요?
사네티 - 2010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죠. 마드리드에서 바이에른을 꺾은 경기라면 앞으로 백번은 더 떠오를 겁니다. 그만큼이나 감동적이었어요. 우연히도 그게 인테르에서 출장한 통산 700번째 경기였고 주장이었습니다. 너무 완벽해서 꿈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어요.
특별한 에피소드 같은 건 없었을까요?
사네티 - 결승 전날밤은 저만이 아니라 룸메이트였던 코르도바도 긴장해서 좀처럼 잠들지 못하는 것 같았네요. 이렇게 된 거 깨어있는 상태로 밤 12시를 기다려보자고 했죠. 그 날은 성 리타 축일이었거든요.(역주1) 날짜가 바뀌어서 5월 22일 0시 1분이 되었을 때에 초를 켜고 성 리타에게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러고 겨우 눕긴 했는데 촛불은 계속 켜진 상태였어요. 저거 떨어져서 불 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결국 아침까지 거의 못 잤어요. 한쪽 눈은 감고 한쪽 눈은 촛불을 지켜보는 그런 느낌이었어요.(웃음)
※역주1 : 카시아의 성 리타. 가톨릭에서 좌절하거나 희망이 없는 상황의 사람들의 수호성인으로 5월 22일을 축일로 함.
그러면 반대로 되돌리고 싶은 경기라면?
사네티 - 2002년 월드컵 스웨덴전이겠네요.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경기를 1:1로 비기는 바람에 우승후보였던 아르헨티나가 조별예선에서 탈락했습니다. 분명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충격이었어요. 할 수 있다면 그 경기를 다시 하고 싶습니다.
인테르 이외의 팀에서 뛰려고 했던 적은 없었을까요?
사네티 - 레알 마드리드에서 오퍼가 왔을 때에는 기뻐했죠. 그래도 거절하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았어요. 이런 선택은 클럽 이름만 가지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저도 가족들도 이탈리아에서 사는 게 좋았어요. 그러니 대답은 거절이었죠.
하비에르가 은퇴하면 인테르는 새로운 주장을 선출해야합니다. 완장은 누구에게 돌아갈까요?
사네티 - 주장으로서의 책임과 자부심을 이어나갈 수 있는 선수 중 하나가 라노키아겠네요. 인테르 유니폼을 입고 뛰는 것의 의미를 잘 이해하고 있어요. 후계자로서 적당하죠.
아르헨티나 대표에서라면요?
사네티 - 포지션적으로는 사발레타죠. 월드컵에서 좋은 플레이를 보여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브라질 월드컵은 어떻게 예상하시나요?
사네티 - 가장 유리한 건 브라질입니다. 그 다음은 아르헨티나, 독일, 스페인. 다크호스로는 이탈리아와 프랑스. 벨기에, 칠레, 일본이 이변을 일으킬 수 있는 팀이겠네요.
함께 뛴 선수 중 가장 뛰어난 선수는 누구였나요?
사네티 - 다른 것 제외하고 뛰어난 선수라면 호나우도네요. 마크한다는 게 거의 불가능했어요. 천재라고 부를만한 건 메시. 저를 빠져들게 한 선수는 바죠였어요. 경쾌하고 재기 넘치는 선수였죠.
다른 클럽 선수들 중에는요? 가능하면 맞붙고 싶지 않았던 라이벌을 말씀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사네티 - 잔뜩 있죠. 지단은 마주 서는 자체가 싫은 상대였고, 긱스는 보고 있기만 해도 두통이 오는 상대였어요. 카카를 막는 것도 정말 어려운 일이었구요.
잊혀지지 않는 감독이라면?
사네티 - 인테르에서 트레블을 안겨준 무리뉴. 잊을 수 없죠.
축구 인생에서 가장 슬펐던 기억이라면?
사네티 - 2002년 5월 5일 선두를 달리던 세리에A 최종라운드에서 스쿠데토를 놓친 겁니다. 승부에 한해서라면요.
그렇다면 가장 대단했던 골이라면?
사네티 - 인테르에서는 97-98 시즌 UEFA컵을 우승했죠. 라치오와의 결승에서 넣었던 골이에요. 사모라노가 머리로 떨궈준 공을 뒤에서 달려오던 제가 아웃사이드로 찼죠. 골대 오른쪽 위로 들어갔어요.
후회가 있다면?
사네티 - 아르헨티나 대표로 그다지 우승하지 못했던 점이겠네요. 타이틀을 딸 정도의 힘이 있었다고 생각하니까요. 그 유니폼 소매에 145번이나 팔을 넣을 수 있었던 건 큰 기쁨이었지만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시메오네 감독은 인테르, 아르헨티나 양쪽에서 팀동료였죠. 아쉽게도 챔피언스리그까지 2관왕은 불가능했지만, 리가 에스파뇰라 우승감독이 되었는데요. 시메오네처럼 인테르를 이끌어보겠다는 생각은 없으신가요?
사네티 - 감독은 제가 갈 길은 아니에요. 게다가 저는 마차리 감독을 굉장히 존경하고 있구요. 촐로(시메오네) 이야기는 잘 알고 있어요. 챔피언스리그에서 준우승에 그친 게 굉장히 아쉬울 겁니다. 아틀레티코에서 어떻게 하면 리벤지할 수 있을까 그것만 생각하고 있겠죠.
하비에르는 총명하고 언제나 온화한 성품을 가지고 계신데, 화내거나 하는 일은 없으신가요?
사네티 - 물론 화낼 때도 있죠. 그것도 많이요. 말하자면 화내는 걸 잘 숨기는 것 뿐이라는 겁니다.(웃음)
언제나 숨길 수 있는 건 아니겠죠? 예를 들면 로이 호지슨에게 화낸 사건이라든가.
사네티 - 기억하고 있어요. UEFA컵 결승 2차전(역주2) 샬케와의 경기에서 결판이 나지 않고 승부차기에 돌입할 때가 되자 경기 종료전에 호지슨은 저를 벤치로 불러들였어요. 대신 승부차기에 강한 니콜라 베르티를 투입했습니다. 저는 미친듯이 화냈고 미스테르(역주3)와 맞붙어 싸우게 되었어요. 팀동료가 말려줬지만 알고 있는 욕을 미스테르에게 다 날렸죠. 몇분후에는 반성하고 사과했지만요.
역주2 : http://www.youtube.com/watch?v=d9h_WaAYcmc 당시는 홈/어웨이 제로 치러졌으며 1차전 원정에서 1:0 패, 2차전 홈에서 1:0 승으로 승부차기에 돌입했지만 사네티 대신 투입된 베르티 차례까지는 돌아오지 못하고 패배.
역주3 : 영어의 미스터Mister 에서 유래된 말로 이탈리아에서 감독을 나타내는 단어 중 하나.
은퇴한 후에는 어떤 게 가장 그리울까요?
사네티 - 라커룸에서 동료와 보내던 시간이나, 경기에서의 긴장감.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요. 어떤 선수에게도 끝은 오는 법이니까요.
라커룸에서의 에피소드 중 특히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요?
사네티 - 유토(나가토모)가 인테르에 갓 입단했을 당시의 일인데요. 저희 같은 고참들이 농담을 했습니다. "신입은 들어오면 우리 앞에서 춤을 춰야지" 라구요. 그러니까 유토가 갑자기 열심히 춤을 추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것도 이상한 막춤으로요., 모두 배를 잡고 웃었죠.
인테르에서는 19년간 뛰셨는데요. 20년을 채워야겠다고 생각하시진 않으셨나요?
사네티 - 정말로 물러날 때가 왔으니까요. 통산 22년간 프로 생활을 해왔는데요. 22라는 숫자는 나누면 2랑 2고 2+2는 제 등번호 4가 됩니다. 이 정도면 됐죠.
등번호 4번을 인테르의 영구결번으로 지정하자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된다면 역시 기쁘겠죠?
사네티 - 무척 영광이겠지만 그건 클럽이 결정할 일입니다. 참견은 하고 싶지 않아요.
은퇴를 확실히 결심한 순간이 있었나요?
사네티 - 있었죠. 아킬레스건 부상을 당하고 수술한 후 긴 재활을 거쳐 피치에 복귀한 첫 경기였어요. 10분 정도 뛰고 그만둘 때라고 깨달았습니다. 그 무렵, 뭔가가 떠올랐어요. 뛰기 힘들어서가 그만두는 게 아닙니다. 그 반대예요. 아직 건강하게, 진짜 선수로 머물러있을 수 있는 시간 동안에 은퇴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일까. 그런 점을 통감했습니다.
잊을 수 없는 경기가 되었겠군요.
사네티 - 몇번이나 시계를 쳐다봤습니다. 지금 흘러가고 있는 시간이, 축구선수로서는 최후의 순간이라고 생각하니 솔직히 가슴이 먹먹했어요.
은퇴를 발표한 후에 기뻤던 일도 있었나요?
사네티 - 마음이 담긴 메세지를 많이 받았던 점이죠.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애정을 보여주셨어요. 그리고 은퇴후에도 스탭으로서 인테르에 남는다는 뉴스... 어떤 업무를 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에요. 사랑하는 클럽에 남을 수 있다는 자체가 더없이 중요한 부분입니다. 인테르에 계속 남는 것이 제 꿈이었으니까요.
첫댓글 인터뷰 참 담백하면서 멋지네요.
호돈이 대단하긴 대단하네요...말디니,네스타,칸나바로 같은 역대급 수비수들다 다 막기 힘든 선수를 호돈이라 하더니 사네티까지..ㄷㄷㄷ
인테르시절 호나우도가 육체적으로 가장 전성기였던 시절 아닌가요? 아마도 그래서 더 힘들었을지도..
@느림보 2222222
그리고 당시엔 대인마크가 많았으니~
대단한 사람!
제가 본 선수 중 가장 존경스러운 수비수 ㅜㅜ
로쏘네리에 말디니라면 네라주리에는 사네티죠.
이번에 월드컵은 뛰고 은퇴하길 바랬는데...마짜리만 아니었더라도..ㅡㅜ
결혼식후 하객들에게 양해구하고 트레이닝 ㅋㅋ
캬... 인터뷰만 읽어도 돋네요
진짜 최고로 존경하는 축구선수..다만 이 인터뷰에는 한가지 실수한점이 있네요 ㅠ "다크호스로는 이탈리아와 프랑스. 벨기에, 칠레, 일본이 이변을 일으킬 수 있는 팀이겠네요" 일본이라니..ㅠㅋㅋ
근데 일본은 꽤 많은 전문가들이 다크호스라고 평하긴 했었죠. 그리고 팀동료에 일본선수가 있었고하니 립서비스있을수도 있구요. ㅎㅎ
일본이 그리 폭망하고 알제리가 그리 잘할지는 아무도 몰랐죠!
스페인 이탈리아 일본 ㅋㅋ
일본이 축구하는 스타일이 이뻐서 외국에서도 항상 실력대비 기대치가 높았죠. 이번엔 모의고사 성적까지 좋아서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