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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6:1
다 끝났다고 여겨지는 순간이 있을 것입니다. 불행한 일은 한꺼번에 닥쳐서 숨도 못 쉬게 멱살을 잡고 흔들어댑니다. 죽기를 기다리는 거밖에는 길이 안 보입니다. 바라는 것은 상황의 역전도, 극적인 구원도 아닙니다. 다만 얼른 끝났으면 싶습니다. 그런 유다에게도 희망은 있고 대안은 있습니다. 공주야! 누구나 구원의 확신을 갖기 원한다. 그러나 그 확신은 개인의 노력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알고, 그분의 약속을 알고, 그분과 동행하면서 얻어지는 것이다.
There must be a moment when it is considered over. Unfortunate things happen all at once, and they grab each other by the collar and shake so that they can't breathe. All I see is waiting to die. What I want is neither a reversal of circumstances nor dramatic redemption. However, I hope it ends soon. Even for Judah, there is hope and an alternative. Princess! Everyone wants to have confidence in redemption. But that conviction cannot be obtained through individual efforts. Knowing God, knowing his promise, and accompanying him, I get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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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실하신 언약 적 사랑을 알고 신뢰할 때만, 인간은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이사야는 유다 왕 웃시아가 죽던 해 하늘 보좌에 앉아 스랍들의 찬양을 받으시는 여호와를 본다. 예루살렘과 유다에 미치는 한 왕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걱정할 것이 없다. 불안한 후계자와 건재한 열강들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처음부터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은 여호와였고, 한 번도 부재하신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부재의 위기다. 그 위기는 여호와가 아니라 이스라엘로부터 왔다.
Humans can only be certain if they know and trust the faithful covenant love. Isaiah sees Jehovah, who is praised by the slabs, sitting on the throne of heaven the year Utsia king of Judah died. There is nothing to worry about, despite the king's death in Jerusalem and Judah. Unstable successors and thriving powers are not a problem. Because from the beginning the true king of Israel was the Lord, and he was never absent. But now it is a crisis of absence. The crisis comes not from the Lord, but from Isra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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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이사야가 선지자로 부름을 받는다. 영광스런 하나님을 보고도 부정한 이사야가 죽지 않는다. 자기 죄를 고백한 그를 하나님께서 정결하게 하셔서 자신의 입으로 사용하신다. 이사야의 부름과 죄 사함은 심판을 앞둔 이스라엘에게 구원의 길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자신의 부정함을 인식하고 주님의 은총에 맡기는 것이다. 이사야의 사명은 이스라엘로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완악한 마음을 더 완악하게 하여 심판을 확정 짓는 일이다.
At this time, Isaiah is called a prophet. Even when he sees the glorious God, the unclean Isaiah does not die. God purifies him, who has confessed his sins, and uses him as his mouth. Isaiah's call and sinfulness show Israel what the way to save is before judgment. Recognize your injustice and leave it to the grace of the Lord. Isaiah's mission is not to repent to Israel, but to not to repent. It is to make the evil heart stronger to confirm the judg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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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침 받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고침을 받을까 염려하는 하나님의 진노를 전달하는 일이다. 남은 자가 있겠지만, 소수에 불과 할 것이다. 그의 사역이 얼마나 많은 반대와 시련 속에서 전개될지를 보여준다. 이스라엘의 완악함은 멸망으로 끝날 것이다. 하지만 멸망 중에도 이사야처럼 자기 죄를 인정하고 돌아온 자들을 통해 은총의 역사가 새롭게 전개될 것이다. 베인 나무에 남겨진 그루터기에서 새싹이 돋아나듯, 멸망한 이스라엘에게 거룩한 씨가 남아 새로운 나라, 새 역사를 시작할 것이다.
It is not about wanting to be healed, but about God's anger about being healed. There will be others, but only a few. It shows how much opposition and trials his ministry will unfold. Israel's totality will end in destruction. But even during the destruction, the history of grace will be renewed through those who have come back after acknowledging their sins like Isaiah. Just as sprouts sprout from the stumps left on the cut tree, a holy seed will remain for the destroyed Israel to start a new country and a new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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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자신을 계시하시는 분, 거룩함의 대명사, 이사야를 불쌍히 보시고 죄를 처리해 주심, 사람의 마음을 굳게 하심, 그루터기를 남기심, 심판 중에도 구원에 대한 계획에는 변함이 없으신 분이다.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일 때, 하나님은 왜 심판보다 먼저 자신의 거룩함을 보여 주시는가? 왜 소명을 첫 장이 아닌 6장에서야 언급하고 있을까? 나는 죄를 자복하고 새로 출발할 생각은 없는가?
God is a man who has himself, the epitome of holiness, and Isaiah, who takes pity on him and deals with sin, solidifies the heart of man, leaves a stump, and remains unchanged in his plan for salvation during judgment. When it seems that everything is over, why does God show his holiness before the judgment? Why is the calling mentioned only in Chapter 6, not in the first chapter? Do I have no intention of confessing my sin and starting a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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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마음-둔하게 in a calm mindedly
b -귀-막히고 deafening in the ear
c -눈-감기게 for the sake of closing one's eyes
x-염려 하건데 I'm afraid
c'-눈-보고 Eye-Reporting
b'-귀-듣고 by ear
a'-마음-깨닫고 with one's mind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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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좌의 환상(1-4)
a.보좌의 하나님:1
b.스랍들의 모습:2
c.스랍들의 찬양:3-4
부정의 고백과 죄 사함(6-7)
a.이사야의 반응:5
b.죄 사함:6-7
완악함과 그 결과(8-13)
a.이사야의 파견:8
b.이사야의 사명:9-10
c.완악함의 결말: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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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시야왕의 죽던 해에(1a)
내가 본즉(1b)
주께서 높이 들린(1c)
보좌에 앉으셨는데(1d)
그 옷자락은(1e)
성전에 가득하였고(1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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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랍들은 모셔 섰는데(2a)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2b)
그 둘로는(2c)
그 얼굴을 가리었고(2d)
그 둘로는(2e)
그 발을 가리었고(2f)
그 둘로는 날며(2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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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창화하여 가로되(3a)
거룩하다(3b)
거룩하다, 거룩하다(3c)
만군의 여호와여(3d)
그 영광이(3e)
온 땅에 충만 하도다(3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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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이 창화하는 자의(4a)
소리로 인하여(4b)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4c)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4c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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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에 내가 말하되(5a)
화로다 나여(5b)
망하게 되었도다(5c)
나는 입술이(5d)
부정한 사람이요(5e)
입술이 부정한(5f)
백성 중에 거하면서(5g)
만군의 여호와이신(5h)
왕을 뵈었음이로다(5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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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6a)
화저로 단에서 취한바(6b)
핀 숯을 손에 가지고(6c)
내게로 날아와서(6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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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내 입에 대며(7a)
가로되 보라 이것이(7b)
네 입에 닿았으니(7c)
네 악이 제하여졌고(7d)
네 죄가(7e)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7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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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또 주의(8a)
목소리를 들은즉(8b)
이르시되 내가(8c)
누구를 보내며(8d)
누가(8e)
우리를 위하여 갈꼬?(8f)
그 때에 내가 가로되(8g)
내가 여기 있나이다(8h)
나를 보내소서(8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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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가라사대(9a)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9b)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9c)
깨닫지 못할 것이요(9d)
보기는 보아도(9e)
알지 못하리라 하여(9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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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백성의 마음으로(10a)
둔하게 하며(10b)
그 귀가 막히고(10c)
눈이 감기게 하라(10d)
염려컨대 그들이(10e)
눈으로 보고(10f)
귀로 듣고(10g)
마음으로 깨닫고(10h)
다시 돌아와서(10i)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10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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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로되(11a)
주여 어느 때까지이나이까?(11b)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11c)
거민이 없으며(11d)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11e)
이 토지가 전폐하게 되며(11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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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여호와께(12a)
멀리 옮겨서(12b)
이 땅 가운데(12c)
폐한 곳이(12d)
많을 때까지니라(12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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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 십분의 일이(13a)
오히려 남아 있을 찌라도(13b)
이것도 삼킨바 될 것이나(13c)
밤나무, 상수리나무가(13d)
베임을 당하여도(13e)
그 그루터기는(13f)
남아 있는 것 같이(13g)
거룩한 씨가(13h)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13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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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를 통해 교훈하시다_teach through one's brothers.
회개를 촉구하시다_call for repentance
회복을 약속하시다_promise recov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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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상품을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과 열심에도 불구하고 회개의 기회를 없애버린 이스라엘에게 가서 회개하지 못하도록 막으라고 하였사오니 주여, 정녕 피할 수 없는 심판만이 남은 겁니까? 오 주님,내 입술을 지져서 저들의 화를 막을 수는 없는지요. 주님, 제게 다시 한 번 은사를 불붙듯 일어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당신께선 심판을 위한 심판이 아니라 회복을 위한 심판을 하고 계심을 전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God's grand plan for making dramatic products and his zeal to stop Israel from repenting, which in spite of its desperation, is there only an inevitable judgment left, Lord? O Lord, can't you stop their anger by smearing my lips? Lord, let me rise once more like a fire to my grace. So be it that you are not a judge for judgment, but a judge for recovery.
2026.7.23.thu.Clay
신학 비평//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일 때, 하나님은 왜 심판보다 먼저 자신의 거룩함을 보여 주시는가? 이사야 6장은 한 선지자의 소명 이야기 이전에 **하나님 나라의 왕권 선언**입니다. 웃시야 왕은 죽었지만 하나님은 보좌에서 내려오지 않으셨습니다. 인간의 왕은 사라져도 역사의 주권자는 여전히 하나님이십니다. 절망의 시대에도 희망이 남아 있는 이유는 상황이 아니라 **보좌가 비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가장 역설적인 부분은 "회개하지 못하게 하라"는 사명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회개 자체를 원치 않으신다는 뜻이 아니라, 오랫동안 거부된 은혜가 결국 심판으로 굳어지는 **언약의 최종 판결**을 보여 줍니다. 반복해서 거절한 마음은 결국 자신이 선택한 완악함 속에 머물게 됩니다. 심판은 하나님의 변덕이 아니라, 끝까지 회개를 거부한 인간의 결말입니다.
그러나 이사야 6장은 심판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베인 나무에도 그루터기가 남듯이 하나님은 **남은 자**를 통해 새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거룩한 씨는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결코 끊어지지 않았음을 증언합니다. 그래서 심판은 파괴가 목적이 아니라 **회복을 위한 거룩한 수술**입니다.
또한 소명 기사가 1장이 아니라 6장에 나오는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이사야를 거룩하심 앞에 세우시고, 죄를 깨닫게 하시며, 죄를 사하신 뒤에 사명을 맡기십니다. **사역은 재능에서 시작되지 않고, 은혜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은 자신이 깨끗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사람입니다.
결국 이사야 6장은 우리에게 한 가지 진리를 선포합니다. **나라가 흔들려도 보좌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회개를 거부하는 자에게는 심판이,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자에게는 그루터기에서 새싹이 돋듯 새로운 시작이 열립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심판 속에서조차 회복의 길을 준비하시는 거룩한 왕이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