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날은 희망이 샘솟았다가 어떤 날은 절망의 나락에 떨어지곤 한다.
최근 몇 주 동안은 희망보다는 절망의 나날들이 계속 된 것 같다.
그리고 지금도 불안하긴 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불안이어서, 이건 나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어제도 그제도..
나는 무슨 생각들을 했을까.
금요일에 오래된 고등학교 친구를 보고....그 친구의 딸내미랑 놀고...
어린 아이들이 얼마나 마음의 위안이 되는지 모를거다. 그 순수한 아이들의 마음은 외로운 내 마음을 녹여주기에 충분하다. 어떤 계산도 없고, 그냥 좋으면 좋은거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그렇구나 해주고, 이모한테 들러붙어서 그 말랑말랑한 팔뚝으로 스킨십도 심각(?)하게 해준다. 어른인 친구들과는 못하는 그런 행동들을 애기들이랑은 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게 얼마나 마음의 위안을 주는지, 그 아이도 나도 친구도 다른 사람들도 전혀 몰랐을 것이다. 모르겠다. 적어도 지난 금요일은 그랬다. 이모를 언제 봤다고 그렇게 짧은 시간에 정 붙어서 이모한테 늘러붙고, 빠빠이 하니까 눈물 콧물 다 빼면서 울어제끼고. 그 순수한 마음이 너무나도 위로가 된 것 같다. 솔직히 아이가 부모에게 주는 것이 훨씬 많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무조건적인 사랑은 부모가 아이에게 먼저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바라보는 그 무한한 사랑의 눈길을 보고는 시작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아이에게 부모는 우주와 같으니까. 아이가 먼저 주는 것이다. 아이는 그만큼 사랑을 응축해서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나는, 너무 늦지만 않는다면 꼭 아이를 기르는 경험을 하고 싶다. 세상의 모든 문제는, 사랑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순수한 사랑에 욕망이 끼어드는 순간, 그건 어른의 것이 되어버리며 조건부가 되어버린다. 모든 마음의 병은,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치유될 수 있다. 깨끗이. 그리고 그것은, 어른은 할 수 없다. 부모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예로 많이 들지만 그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들은 어른이기 때문이다. 많은 걸 사랑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지만 사실 100% 순수하지 못하다. 그들의 잘못은 아니고, 어른인 이상 어쩔 수 없다. 어른은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안젤리나 졸리가 캄보디아에서 매덕스를 만난 후 달라진 행보를 접했을 때, 나는 이런 생각들을 했다. 그 순진무구한 눈으로 본인을 어떤 편견도 없이 무조건적으로 수용해 바라봐주는 걸 느꼈기 때문에, 실제로 구원받았다는 생각이 들었을 거라고. 그만큼 아이들은 그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마음을 치유해주는 힘을 본인도 모르게 가지고 있다.
내가 오늘 말하려던건 이건 아닌데, 그냥 뭔가, 밖에도 안 나가고 처박혀있던 지난주 내내 무슨 생각을 했을까를 돌이켜보다가 말이 길어졌다. 그런데 분명, 금요일의 오래된 친구와의 만남이 뭔가 울림을 준 거 같긴 하다.
다 싫고, 다 그만 두고 싶었다.
그리고 계속 불안하고, 잠만 오고...
심장이 너무 두근대서 힘들었다. 한동안 괜찮은 줄 알았는데..
나는 참 별 짓을 잘한다. 미신도 잘 믿는 것 같고..
어깨가 너무너무 아파와서 내가 뭘 했는줄 아나? 난 아무래도 친구가 점집 다녀와서 한 말을 자꾸 신경쓰고 있었던 것 같다. 내 어깨에 시커먼 뭐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는 이야기를. 그래서 나는, 소금통을 들고 씻으러 들어가서 양 어깨에 소금을 뿌리면서 네가 있을 곳이 아니라면서 나가라고 이야기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웃기지.
그래도 어깨는 편해지지 않았다.
그러다 언제 편해졌는 줄 아나? 친구랑 다시 그 점집 얘기를 하다가 그 사람이 터무니없는 액수를 치성 드리라며 요구했을 때, 그때 잠이 확 달아나는거다. 미친놈. 어깨에 뭐가 있고 어쩌고 그런 얘기를 이렇게나 신경쓰고 있던 내가 바보같았다. 그 친구랑 시시덕대면서 미쳤네, 하면서 얘기하는데, 마법처럼 아팠던 어깨가 갑자기 안아프고 가벼운거다. 역시....잠을 깰 때는 현실이 가장 확실하다는 걸, 그때도 느꼈다. 사람 마음이 참...
상담선생님이 그런 얘길 한 적이 있다. 나 같은 사람이 뭔가 최면? 아니 최면까지는 아닌데 뭐라했지 암튼 그런 속임수 같은 것에 잘 휩쓸릴 수 있다고. 그런 얘길 들었을 때, 나는 아닌데? 하고 부정하는 내가 있었다. 머리로는 그럴지 모르겠다. 그런데 마음 깊숙히 난 그런 미신같은걸 많이 믿는 것 같다.
금요일에 친구랑 잠깐 만나고 집에 돌아오는데, 외로웠다. 외로움....
난 혼자다.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평가를 들을까봐 내 생각과 아이디어들을 사람들과 공유하지 않는다. 확실히 성공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만 공유를 하며, 확실히 옳다는 말을 들을 것들만 공유를 한다. 그건 나를 다른 사람들과 벽이 생기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두렵다. 아직도 이 부분은 놓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언젠가는 놓게 될까? 글쎄..가까운 미래는 아닐 것 같다. 나도 이런 내가 싫지만 근데 이게 나다.
이 친구랑 헤어지고 돌아오는길에, 곧 생일인 친구에게도 연락했다. 둘째를 낳은지 얼마 안되었는데..그래도 가까우니까 한번 들러도 될까 싶어서. 근데 너무 정신없어보이는 이 친구...아기 낳고 너무 아프고 온 몸이 만신창이인데다 애도 이제 둘이어서 힘든 것 같았다. 그냥 뭐랄까...그렇구나, 예전같을 순 없는거구나. 이 친구는 삶이 너무나도 달라졌고..가정이 있지. 하면서 엄청난 외로움이 온 몸을 휘감았다. 예전엔 날 많이 챙겨주던 친구였는데. 그런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자기 하루하루 챙기느라 바쁜 모습..정신도 없고..유독 이 친구가 좀 정신없긴 한데, 무튼.....옛날과는 전혀 다르구나 우리 사이가, 아니 우리 사이라기보다 그 아이의 삶이, 그리고 나는....그러면서 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옮겨가야 할까? 나도 이제 새로워진 환경에 적응하고, 과거를 놓아야 할까. 나는 변화를 참 싫어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나도 이제는,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야 할까?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지금의 나는 이쪽도 저쪽도 속하지 않는다. 속하는 곳이 없다. 저런 외로움이 온 몸을 휘감는데, 또 인스타를 보니까 예전 직장 동료들이 아주 꾸러기 젊은이(?)같은 예쁜 사진을 찍어서 올려놓았고, 반응이 폭발적인거다. 순간 쪼끔 질투도 났다. 이 양반들은 아직도 예쁘네. 그리고 또 잘 어울리네, 끼리끼리 논다. 이런 느낌. 지금의 내가 거기 낀다면 나는 참 초라해보일 것만 같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나를 그 모습이 끼워 맞추고 싶진 않았다. 나는 그렇게 화려한 사람이 아니다. 지쳐서 은퇴했잖아..ㅋㅋ
그냥 내가 살아온 모든 삶의 순간들에 하나도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까 도대체 난 뭘 하며 뭘 추구하며 살아온 건지를 모르겠다. 그러다보니까 난 더더욱 외로워졌다. 내가 지금껏 해온 건 뭐지...왜 이렇게 공허하고 동떨어진 느낌일까.
혼자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 나 혼자 내 세계를 움켜쥐고 있어봤자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왜냐면 난 이 세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며, 나를 사람들이 알아줄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럴 일은 없을거고, 이미 펼쳐져 있는 세상에 나로써 어떻게 적응할 건지를 고민하는게 훨씬 나을 것 같다. 머리론 이렇게 생각한다.
상담을 그만 두는것도 생각해봤다.
나아지는게 없는 것 같아서. 어쨌든 내가 결심해야 이뤄지는 것들일텐데, 난 그러지 못하고 있고, 그게 상담한다고 해서 뭐 더 빨라진다거나 이뤄지는 건 아닌거같아서. 그리고 지금 벌써 6년도 지났는데 지식만 많아지고 달라진건 없는거같다. 다만 알고 있으니까 좀 더 이해되는 정도. 나는 변하지 않을 것 같으니까. 어차피 계속해서 불안하고, 계속해서 현실을 피하는데 상담한다고 달라질 줄 알았는데 글쎄 그냥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안정제를 맞는 느낌이니까...그냥 그만하면 어떨까 하고.
자려고 누웠는데 심장이 너무 뛰어서, 내가 진짜 불안한가보다 생각했다. 뭐에 대한 불안인지도 모르겠고, 어디서부터 오는 불안인지도 모르겠어서 더 미칠 것 같다. 이렇게 불안하게 뛰다가는 언젠가는 멈춰버리겠다는 생각도 들고. 이럴땐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고 누군가에 의지하고 싶지만 그럴수도 없고. 혼자서 겨우겨우 달래곤 하는데...최근에 미드를 보다가 갑자기 심박수가 150까지 치솟는 환자에게 긴급처치로 경동맥 마사지를 하니까 다시 안정을 찾는걸 보고 따라해봤다.ㅋㅋ 미드는 그래도 의학적 감수를 빡시게 한다고 들었으니까, 어쩌면 긴급처치로 나한테도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해서. 근데 정말 신기한건, 이게 마사지의 효과인지 아니면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서인지 몰라도 진짜 심박수가 금방 안정이 된다는거다. 어쩌면 불안에 빠져 있을 때 지압되는 곳으로 시선이 돌려져서 잠시 불안함보다 지압되는 것에 신경쓰게 되어서 안정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러닝머신을 할 때 심박수 재는 패드가 있는데, 내가 티비를 보면서 타고 있을 땐 심박수가 두자리수이지만, 심박수 판을 보고 있으면 130까지 치솟는 게 몇 초 안에 일어난다. 그만큼 나는 뭔가를 하고 있을 때 그것에 엄청나게 신경을 쓴다는 거겠지. 무튼..긴급조치이다. 그리고 경동맥에서 손을 떼는 순간, 그 러닝머신처럼 몇 초 안에 심박수는 다시 불안함으로 원상복귀된다. ㅎㅎㅎ...
어제도 너무 불안하게 뛰어서 잠도 잘 못 들고, 힘들었다.
그러다 그냥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불안하지. 근데 이 불안한 나도 어쩔 수 없는 나다. 같이 가자. 나까지 얘를 버리면 눅 얘를 구해주겠어. 난 항상 이 불안한 애를 두고 먼저 앞서서 가려고 했지. 근데 우리는 한몸이라서 그럴 수가 없을 거 같다. 내가 이 애를 두고 먼저 간다면 난 늘 이 불안한 애한테 발목잡힐거야. 같이 가자. 내가 같이 가줄게.
그런데 정말 신기한 일이, 그렇게나 두근댔던 가슴이 진정이 되는거다. 그 후로 지금까지 쭉...
나한테는 내가 둘이 있다.
하나는 참 빠르다. 뭐든 탁탁 해결해내고 빨리빨리 앞을 향해 나아가려고 한다.
다른 하나는 참 불안하다. 뭘 해도 이러면 어떡하지? 저러면 어떡하지? 하는 마음이 있고,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기 전에는 움직이려고 하지 않는다.
내가 의식적으로 쓰려고 하는 건 빠른 애인거같다. 근데 아무리 의식적으로 그러려고 해도, 불안한 애가 힘이 참 세다. 버티기를 시전하면 아무리 빠른 애가 용을 써도 움직이지를 않는다. 꼬맹이가 힘이 겁나 세다....
둘이는 사이가 별로 안 좋은데, 빠른 애는 불안한 애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왜 이렇게 못 따라오냐고 질책할때도 많다.
불안한 애는 빠른 애한테 막 뭐라 하진 못하는데 그냥 힘이 무지 세서 말을 안 듣거나 버티기로 불만을 표시한다.
그런데 어제는, 빠른 애가 불안한 애한테, 그래 그러면 같이 가자, 내가 너 같이 데리고 갈게 했던 거 같다. 앞서 가려고 하다가 둘이는 어차피 한 몸이라는 걸 깨달은 모양이다.
계주같은거 하다가 뒤쳐지는 애한테 되돌아와서 같이 부축하고 뛰어주는 것, 딱 그런 느낌.
되게 웃긴다. 그러니까 불안하게 뛰던 심장이 괜찮아졌다.
불안이 많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꿈을 꿨다.
두번째 회사 동기였던 언니가 전시장? 같은 곳에서 부스를 차리고 본인 작품을 팔고 있었다. 종이에 수채화로 꽃을 그려서 돌돌 말아 작은 병에 넣은 후, 그 병목에 리본을 묶어서 팔고 있었다. 나는 그걸 보고, 그림이 되게 여리여리하고 예쁜데, 이거를 타투로 해서 팔면 어때? 하고 언니한테 말했다. 언니는 그건 별로인 모양이었다. 그냥 일단은 이렇게 하고싶다고. 그렇게 해서 스웨덴에 판다고 했다. 나는 그렇구나, 하고 언니한테 아이스라떼 한잔 달라고 했다. 언니는 커피도 같이 팔고 있었던 것 같다. 언니는 나한테 바로 아이스라떼를 줬다. 난 그걸 들고 어떤 여자와 미팅하러 미팅 테이블에 앉았는데, 음료를 마시다 보니 이건 커피가 들어간 라떼가 아니고 그냥 우유에 얼음을 넣은 것이었다.
내 안에서 뭐가 일어나는걸까.
그래도 뭔가 이제는 혼자서 지 잘났다고 먼저 막 가려고 하던 빠른애가 불안한 애랑 같이 하려고 마음먹은 거 같아서 그건...좋은 일 같다. 진짜로 그렇게 결심한건지 며칠 못 갈 일인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그래도 오늘만큼은 뭔가 좀 후련한것도 같고 앞으로 나아갈 수도 있을것도 같고 기분이 나쁘지 않다.
그냥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달은 것 같다.
아무리 그렇게 혼자 앞서나가려고 해도. 반쪽으로는 그럴 수 없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