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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풍무(96)
애명환(愛鳴環)이 머무를 자리.
아침저녁으로 내리는 서리는 산야를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었다. 산
꼭대기부터 시작한 붉은 단풍의 물결은 점점 빠르게 산을 타고 내려와
어느새 숭산의 절반 가까이를 덮쳤다.
중원의 웅장한 기세를 간직한 아름다운 산 다섯 곳을 오악이라 칭하
는데, 동악 태산, 서악 화산, 남악 형산, 북악 항산, 그리고 중악 숭
산이 바로 그것이다.
숭산은 태실산(太室山)과 소실산(少室山)으로 불리는 두 개의 산맥
사이에 끼어 있다. 양쪽에 각각 서른 여섯 개의 봉우리가 있어 숭산
칠십이 봉이라고 불린다.
태실산과 소실산의 거리는 대략 이십 리. 그 사이 숲 속에 소림사가
자리하여 있는데, 이름 또한 소실산 숲에 있다고 하여 소림사(少林寺)
라 지어졌다고 한다.
공현에서 소림사까지는 백 오십리 길이다.
가파른 비탈길은 없지만 시종일관 숲을 따라 가야하기에 딱히 편한
길이라 할 수도 없었다.
공현에서 식사를 마친 백산 일행은 남으로 길을 잡았다. 배에서처럼
여전히 일행은 네 사람이었다.
백산 입장에서야 바로 헤어졌으면 했지만, 배를 얻어 탔으니 밥은
자신들이 사야한다며 남궁미령이 동행을 제안하여 같이 가게 되었다.
숭산을 향하는 길에는 배에서처럼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처음 와 본 사람들이나 과거에 와 본 사람들이나 붉게 물든 산의 정
취에 흠뻑 빠진 듯, 아득한 눈으로 숭산을 올려다보았다.
백산 또한 다른 이들과 다르지 않았다. 다만 그의 눈이 아득하게 변
한 이유는 과거의 기억 때문이란 사실이 다른 이들과 달랐다.
5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숭산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때는 마령호 뼈가 가득 들어있는 커다란 마차를 끌고 이 길을 갔
었다.
"동생은 여기 처음 오는가?"
"아니고 할머니 그만 하십시오. 배에선 장난이었단 말입니다."
자연스럽게 동생이라 부르는 남궁미령의 목소리에 백산은 몸을 부르
르 떨었다. 갑자기 오한이 들며 한기가 밀려들었던 까닭이다.
"무슨 그런 섭섭한 소리를. 나이 먹었다고 사람 괄시하면 못쓰는 법
일세. 나는 미남 곁에 있으니 좋기만 하구만."
오히려 남궁미령은 한 발짝 가까이 다가들며 호들갑을 떨었다.
'아이고 미치겠네. 진작에 소령이라 밝힐걸. 이게 뭐야?'
남궁창을 나무랄 욕심에 소령이라 밝히지 못했던 게 화근이었다. 몇
번이고 소령이라 밝히고 싶었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다.
끊임없이 쫓아다니는 남궁창의 시선 때문에 지금껏 미루다 보니 어
느새 숭산까지 오고 말았다.
"숭산 처음이냐고 물었네, 동생."
"휴-우! 아닙니다. 두 번째 방문입니다."
백산은 나직하니 한숨을 내쉬었다. 갈 데까지 가보는 수밖에 지금으
로서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뭘 봐 새끼들아! 니들 갈 길이나 가 임마."
공연히 옆을 지나가는 무인들을 향해 윽박질러보지만 불편한 심기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또 아무나 붙잡고 시비를 건다. 미남 미녀가 함께 가고 있으면 원
래 타인의 시선을 받는 거야. 한두 번 겪어 본 일도 아닐 텐데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네."
"미남은 맞지만 미녀는 틀렸습니다. 누가 할머니를 미녀로 본다고
그런 망발을 하십니까. 남들이 들으면 노망났다고 합니다."
"하기야 서방까지 도망을 쳤으니 노망날 나이도 되었지. 그래서 나
도 젊은 총각 붙잡고 바람 좀 피워볼까 생각중이라네."
남궁미령은 화사하게 웃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청년이었다. 왠지 남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조카인 창보다 처음 본 청년이 더 편하다는 것
이었다. 배를 내리고서도 헤어지지 못하고 청년과 동행하게 되었던 이
유였다.
"컥! 웬, 양귀비 방귀뀌는 소릴……."
'석두 이 개자식 어떻게 했기에 그 현숙하던 제수씨가 이 모양으로
망가졌냐.'
내심 욕설을 뱉어내며 이를 갈았다.
"동생도 생긴 것에 비하면 입이 거의 걸레 수준이구먼."
"허허! 애들 듣는 데서 그런 상스러운 말을……. 체통을 지키십시
오. 애새끼들 앞에선 품위와 예의를 갖춰야지요, 그러다 배웁니다."
붉으락푸르락한 얼굴로 땅바닥을 툭툭 차는 남궁창을 곁눈질로 힐끔
살피며 말했다. 하지만 자신 또한 애새끼들이란 말을 썼다는 사실을
백산은 알지 못했다.
'개자식!'
남궁창은 내심 욕설을 내뱉었다. 고모가 누구던가. 중원 무림에서
가장 강하다는 사황의 일인인 화황(花皇)이다.
그런 대 선배를 향해 누님이라 칭하는 것도 대 죄이거늘, 망발, 노
망, 양귀비 방귀뀌는 소리까지, 거의 욕설 수준의 말을 턱턱 뱉어내다
니. 고모만 아니었다면 당장 칼을 뽑아 육시를 내버렸을 것이다.
왼쪽 허리춤에 차고 있는 용명검의 검병을 틀어쥐었다 놓은 게 수십
번은 되지 싶었다.
치미는 울화를 간신히 참고 있자니, 뜻밖에도 기회가 찾아왔다. 멀
리 뒤쪽에서 빠르게 달려오는 무인들의 기척이 감지되었던 것이다. 남
궁창의 입꼬리가 슬몃 치켜 올랐다.
"길을 터라!"
강한 내공을 실어 전방에 대고 고함을 지르는 것 외에 다른 말은 일
절 없었다.
"어이그. 그 자식 뭘 처먹었간디 저렇게 목소리가 우렁차냐. 살수야
정중하게 몸을 피해라. 공연히 서 있어봐야 먼지만 먹는다."
재빨리 남궁미령을 끌어당겨 길 가장자리로 몸을 피했다. 하지만 몸
을 피해 걸어가는 세 사람과는 달리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있는 사람
이 있었다.
"저 자식 또 사고 치겠네. 도대체 누님 집안 사람들은 왜 나서지 못
해서 안달이래요?"
"창아……."
"비키라고 했다 놈!"
남궁창을 부르는 남궁미령의 목소리보다 뒤에서 들려오는 고함소리
가 더 컸다. 백색 가마 하나가 다가오며 남궁창을 향해 기다란 뭔가를
날렸다.
가마를 매고 있던 여섯 명중 가장 선두에 있던 자의 몸에서 튀어나
온 건 채찍이었다. 상당한 내공을 가진 자인지 일 장 남짓한 채찍에서
는 검은색 광채가 은은하게 흘러나왔다.
"타핫!"
누군가가 시비를 걸어주기를 지금껏 기다렸던 남궁창이다.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날카로운 고함을 지르며 용명검을 뽑아 다가오는
물체를 향해 휘둘렀다.
얼굴조차 돌리지 않고 취한 행동이었다.
"으헛!"
남궁창의 검에서 흘러나온 기운이 강기( 氣)임을 감지한 채찍의 주
인은 헛바람을 들이키며 재빨리 손을 흔들어 강기를 막아갔다.
쿠앙!
가죽 북 터지는 소성과 함께 백색 가마를 매고 있던 자와 남궁창은
동시에 두어 걸음 물러났다.
말릴 사이도 없이 벌어진 일이었다.
백색 가마를 발견한 남궁미령의 얼굴이 흠칫 굳어졌다. 마차 측면에
새겨진 글.
백야(白夜).
동창제독 하후장설(夏候場薛)의 별호를 나타나는 글귀였다.
"곤란하게 되었군."
그녀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가마 안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백야교(白夜轎)에 행패를 부리다니!"
백야교란 말에 남궁창의 얼굴이 해쓱하게 변했다.
힘을 과시하듯 달려오는 자들이 고까워 검을 뿌렸을 뿐인데, 하필
그들이 관부인물 일 줄이야. 더구나 백야교라 하였다. 아니 중원 천하
에 백색 가마를 타고 다니는 자는 동창제독 하후장설(夏候場薛)밖에
없다. 벌집을 건들인 기분이었다.
'제기랄…….'
내심 욕설을 뱉어내며 남궁창은 황급히 포권을 취했다.
"죄송합니다. 남궁세가의 남궁창이라 합니다. 제독동창께서 오신 줄
모르고 실수했습니다."
뭐라 핑계될 말이 없었다. 무림인라면 어떻게 해보겠는데 상대는 관
리. 하늘을 가르는 무공이 있다해도 고개를 숙이는 수밖에 다른 도리
가 없다. 더구나 잘못은 자신에게 있으니.
"남궁세가의 위세가 대단한 줄 알고 있었지만 관을 향해 칼을 휘두
를 줄은 정말 몰랐구나!"
"아-아니외다. 그럴 의사는 전혀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제독가에 무기를 겨누다니요 천부당만부당한 말씀이십
니다. 소신 남궁미령이라 합니다. 부디 노화를 거두시길."
결국 보다 못한 남궁미령이 남궁창 곁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가마
안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여전히 곱지 못했다.
"화황(花皇)이 계셔서 그렇게 기세가 등등한 모양이구려."
"잘못을 인정하면 무릎을 꿇으시오!"
전면 채찍을 쥔 자가 남궁미령과 남궁창을 향해 고함을 내질렀다.
일순 남궁미령의 낯빛이 파르라니 질려갔다.
남궁창이 잘못했다고 하지만 자신에게 무릎을 꿀라 할 줄은 정녕 생
각지 못했다. 다른 곳도 아니고 길 한 가운데가 아닌가.
"진정 무릎을 꿇기를 원하십니까?"
"원하고 원하지 않고를 떠나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화황(花皇)이
라 하여 관을 능멸할 죄를 감해 줄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키가 큰 자의 목소리는 제법 우렁찼고 그의 얼굴을 가만히 살펴보자
니 은연중에 현 상황을 즐기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알겠소이다, 원하신다면 그렇게 하도록 하지요."
두 주먹을 불끈 쥔 남궁미령은 용서를 구하기 위해 전면으로 나섰
다. 그러나 그 참에 바로 곁에서 들려온 목소리가 가던 발을 멈춰 세
우게 만들었다.
"저기 밥도 못 먹고사는 놈처럼 비쩍 마른 새끼는 뭐라고 부르는 개
새끼냐?"
나직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대부분 무공을 익힌 무인들, 듣지 못할
리가 없었다. 분명 개새끼라 하였다.
남궁미령에게 무릎 꿇기를 강요했던 자는 물론이고, 가마를 매고 있
던 모든 사람들의 몸에서까지 미약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살기
였다.
"장마(長魔) 기용삼(基龍森)이란 잡니다. 그 옆에 있는 자는 단마
(短魔) 소불(蘇佛)이란 자고요. 칠사에 속해 있는 자들입니다."
유몽 또한 다른 자들과 다르지 않았다. 놀란 얼굴로 백산을 보며 두
사람에 대해 말했다.
"그럼, 가마 안에 있는 종자는?"
"제독동창의 가맙니다."
"동창? 그러니까 거시기 없는 사내새끼를 말하는 거냐? 천하에 화황
을 보고 무릎을 꿇으라는 걸 보면 높은 자리는 맞는 것 같은데…….
서른 살도 안돼서 동창제독이 됐으면 대단한 놈인가 보다?"
"주공!"
급기야 질겁한 목소리로 유몽은 낮게 소리쳤다. 동창제독을 향해 물
건이 없는 새끼라고 쏘아붙이다니.
"저런 죽일 놈!"
"멈춰라!"
몸을 날리려는 장마를 제지시킨 목소리는 가마 안에서 흘러나왔다.
차가운 목소리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누구냐?"
"할말 있으면 나와서 해라. 그리고 상대를 묻기 전에 먼저 자신을
밝히는 게 사내라고 알고 있는데? 하기야, 물건이 없으니 그럴 수도
있겠……."
첫댓글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즐감하고 감니다
즐독하였습니다
즐감합니다.
즐~~~~~감!
즐독입니다
재밌어요 감사합니다
오늘두 좋은날
감사합니다
즐감 했습니다
즐독 입니다
잘읽었습니다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잘읽었습니다
즐독.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재미 있게 읽고 갑니다
항상 건강 하고 행복 하세요
감사 하고 사랑 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o^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