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 누구요 ?"
"춘향의 모요."
"어째 찾나 ?"
"우리 춘향이가 옥중에서 봉사님을 잠깐 오시라 하오"
"날 찾기 의외로군. 가 보세."
봉사가 옥으로 들어갈 때 춘향모 봉사의 지팡이를 잡고 길을 인도하였다.
"봉사님 이리 오시오. 이것은 돌다리요, 이것은 개천이요, 조심하여 건너시오."
"애고 봉사님, 어서(보이지않음)"
봉사는 춘향이가 일색이란 말을 듣고 반가워한다.
"음성을 들으니 춘향 각시인가 ?"
"예 기옵니다."
"대체 나를 어째 청하였나 ?"
"예 다름이 아니라 간밤에 흉몽을 꾸었기로 해몽도 하고 우리 서방님이
어느 때나 나를 찾으까 길흉 여부를 점치려고 청하였소."
"그리하세."
봉사가 점을 치는데,
"저 태서의 믿음직한 말을 빌려 존경을 다하여 축원하옵나니 하늘
이 언제 말씀하시었고 땅이 언제 말씀하셨으리요마는 두드리오면 곧 응하
시는 것이 신령하심이니 옹감하시어 신통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산토을 철겅철겅 흔들더니 말한다.
"어디보자. 일이삼사오륙칠, 허허 좋다. 좋은 괘로구나. 자네 서방님이
머지 않아 내려와서 평생의 한을 풀겠네. 걱정마오. 참 좋다."
춘향이 대답한다.
"말대로 그러하면 오죽이나 좋사오리까. 간밤꿈의 해몽이나 좀 하여 주옵소서."
"어디 자상히 말을 하소."
"단장하던 체경이 깨어져 보이고, 창 앞의 행두꽅이 떨어져 보이고, 문
위에 허수아비가 달린 듯이 보이고, 태산이 무너지고 바닷물이 말라 보이
니 나 죽을 꿈 아니오 ?"
봉사 가만히 생각하다가 얼마 있다 말하였다.
"그 꿈이 장히 좋다. 꽃이 떨어지니 능히 열매를 맺을 것이요, 거울이 깨
지니 어찌 큰소리 한 번 없겠는가. 문 위에 허수아비 달렸음은 만인이 다
우러러봄이라. 바다가 말랐으니 용의 얼굴을 볼 것이며, 산이 무너지면 평
지가 되리라. 좋다. 쌍가마 탈 꿈이로세. 걱정말게, 멀지 않네."
한참 이리 수작할 때, 까마귀가 뜻밖에 옥 밖의 담에 와 앉아서 '가옥가
옥' 울거늘 춘향이 손을 들어 날리며 말하였다.
"방정맞은 까마귀야. 나를 잡아가려거든 조르지나 말려무나."
봉사가 이 말을 듣더니 묻는다.
"가만 있소. 그 까마귀가 가옥가옥 그렇게 울었지 ?"
"예, 그래요."
"좋다 좋다. 가는 아름다울 가요, 옥은 집 옥이라. 아름답고 즐
겁고 좋은 일이 불원간에 돌아와서 평생에 맺힌 한을 풀 것이니 조금도 걱
정하지 마소. 지금은 복채 천냥을 준대도 아니 받아갈 것이니 두고 보고 영
귀하게 되는 때에 괄시나 부디 마소. 나는 돌아가네."
춘향은 장탄 수심으로 세월을 보내었다.
이 때 한양성 이도령은 주야로 시서 백가어를 숙독하였으니 글로는 이백이요,
글씨는 왕희지라. 국가에 경사있어 *태평과를 보일때에 서책을 품에 푸모 과거장에 들어
가 좌우를 둘러보니 수많은 백성과 허다한 선비가 일시에 절을 한다. 어악
풍류 청아한 소리에 앵무새가 춤을춘다. 대제학을 택출하여 *어제를 내리시매
소승지 모셔 내어 홍장에 걸어 놓으니, 글제에 하였으되 '춘당춘색이 고금동이라'
뚜렷이 걸렸거늘 이도령 글제를 살펴보니 익히 보던 바더라. 시제를 펼쳐 놓고 해제를 생각하여,
용지연에 먹을 갈아 당황모 무심필을 반중동 덤벙 풀어 왕희지 필법으로 조맹부 체를 받
아 단붓으로 휘갈겨 내니 상시관이 글을 보고 자자마다*비점하고, 구구마다*관주하였다.
용사비등하고 평사낙안이라. 금세의 큰 인재로다.
금방에 이름을 불러 어주 석 잔 권하신 후 장원급제 *휘장하시었다.
신래 진퇴 나올 적에 머리에는 임금이 내린 꽅이요, 몸에는 앵상이요, 허리에는 학대로다.
삼일간 거리에서 논 연후에 산소에 제사지내고 임금께 절하니 임금께서 친히 불러 보신 후에,
"경의 재주 조정의 으뜸이라."
하시고 도승지 입시하여 전라도 어사를 내리시니, 평생에 소원하던 바였다.
수의 , 마패 , 유척을 내주시니, 전하께 하직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철관 풍채는 깊은 산의
맹호와 같았다.
이튿날 서리 중방을 불러 분부하되,
"막중한 국사를 거행함에 있어 비밀을 지키지 않으면 죽기를 면치 못하리라."
추상같이 호령하며, 서리 불러 분부하되,
"너는 좌도로 들어, 진산, 금산, 무주, 용담, 진안, 장수, 운봉, 구례로 이 팔 읍을 둘러
아무 날 남원으로 대령하고, 홍방 역졸 너희들은 우도로 용안, 함열, 임피, 옥구, 김제,
만경, 고부, 부안, 홍덕,고창, 장성, 영광, 무장, 무안, 함평으로 둘러 아무 날 남원으로
대령하고, 종사, 너는 익산, 금구, 태인, 정읍, 순창, 옥고, 광주, 나주, 창평, 담양,
동복, 화순, 강진, 영암, 장홍, 보성, 홍양, 낙안, 순천, 곡성으로 둘러 아무 날 남원으로
대령하라."
분부하여, 각기 나누어 보내신 후에 어사 또 행장을 차리는데,모양 보소.
숫제 사람을 속이려고 모자 없는 헌 파립에 벌이줄을 총총 매어 갓끈 달아 쓰고 당만 남은 헌
망건에 갑풀 관자 노끈 당줄 달아 쓰고 의뭉하게 헌 도복에 무명 실띠를 가슴속에 둘러매고
살만 남은 헌 부채에 솔방울 *선추달아 햇볕을 가리고 내려올 때 한내, 주엽정이, 가린내,
싱금정 구경하고, 공북루 서문을 얼른 지나 남문에 올라 사방을 둘러 보니 서호 강남 여기로다.
차차로 암행하여 내려올 때 수령들이 어사 났단 말을 듣고 민정을 가다듬고 *전공사를 염려
할 때 누구인들 편할까. 이방, 호장 넋을 잃고 공사의 회계하는 형방 서기 여차하면 도망할
준비로 신발끈을 감고 수많은 청상이 넋을 잃어 분주할 때, 이 때 어사또는 임실 구화뜰 근처를
당도하니 마침 농사철이라.
농부들이 농부가를 부르며 이러할 때 야단이었다.
'어려로 상사뒤요, 천리 건곤 태평시에 도덕 높은 우리 성군 강구연월 동요 듣던
요 임금 성덕이라. 어여로 상사사뒤요.
순 임금 높은 성덕으로 내신 성기, 역산에 밭을 갈고 어여로 상사뒤요.
신농씨 내신 따비 천추 만대 유전하니, 어이 아니 높으던가. 어여로 상사뒤요.
하우씨 어진 임금 구 년 홍사 다스리니, 어여로 상사뒤요.
은왕 성탕 어진 임금 대한칠년 당하였네. 어여로 상사뒤요.
백초를 심어 사시를 짐작하니, 유산한 게 백초로다. 어여로 상사뒤요.
청운 공명 좋은 호강 이 업을 당할소냐. 어여로 상사뒤요.
남북 전답 기경하여 *함보고복 하여 보세. 얼럴럴 상사뒤요. '
한참 이러할 때, 어사또 주령 짚고 이만치 떨어져서 농부가를 듣다가,
"올해도 대풍이로고."
또 한편을 바라보니 이상한 일이 있이었다. 중년이 넘은 노인들이 끼리끼리
모여 서서 등걸밭을 일구는데, 갈명덕 숙여 쓰고 쇠스랑 손에 들고 백발가를 부르는 것이다.
'등장 가자. 등장가자. 하느님 전에 등장 갈 양이면 무슨 말을 하실는지.
늙은이는 죽지 말고, 젋은 사람 늙지 말게. 하느님 전에 등장 가세.
원수로다, 원수로다. 백발이 원수로다. 오는 백발 막으려고 우수에 도끼들고,
좌수에 가시 들고, 오는 백발 두드리며, 가는 홍안 걸어 당겨 청사로 결박하여 단단히
졸라매되 가는 홍안 저절로 가고 백발은 스스로 돌아와, 귀 밑에 살 잡히고 검은 머리 백발 되니
조여청사 모성설이다.
무정한 게 세월이라. 소년 행락 깊은들 왕왕이 달라가니, 이 아니 광음인가.
천금 준마 잡아 타고 장안 대도 달리고저, 만고강산 좋은 경치 다시 한 번 보고지고 , 화조월석
사시가경 눈 어둡고 귀가 먹어 볼 수 ㅇ벗고 들을 수 없어 하릴없는 일일세.
슬프다. 우리 벗님, 어디로 가겠는고. 구추 단풍잎 지듯이 선뜻 선뜻 떨어지고,
새벽 하늘 별 지듯이 삼삼오오 스러지니, 가는 길이 어드멘고. 어여로 가래질이야.
아마도 우리 인생 일장춘몽인가 하노라.'
한참 이러할 때 한 농부 썩 나서며,
"담배 먹세, 담배 먹세."
갈명덕 숙여 쓰고 두덩에 나오더니 곱돌조대 넌짓 들어 꽁무니 더듬더니
가죽 쌈지 빼어 놓고 담배에 세우 침을 뱉어 엄지손가락이 자빠지게 비빗비빗 단단히 넣어
짚불을 뒤져 놓고, 화로에 푹 질러 담배를 먹는데, 농군이라 하는 것이
대가 빡빡하면 쥐새끼 소리가 나것다. 양 볼때기가 오목오목, 콧구멍이 벌름벌름,
연기가 홀홀 나게 피워 물고 나서니, 어사또 반말 하기는 공성이 났지.
"저 농부, 말 좀 물어 보면 좋겠구만."
"무슨 말 ?"
"이 고을 춘향이가 본관에 수청 들어 뇌물을 받아 먹고 민정에 폐를 끼친단 말이 옳은지 ?"
저 농부 열을 낸다.
"게가 어디 삽나 ?"
"아무 데 살든지."
"아무 데 살든지라니 ? 게는 눈콩알 귀콩알도 없나 ? 지금 춘향이는 수청 아니 든다 하여 형장
맞고 갇혔으니 창가의 그런 열녀 세상에 드문지라. 옥결 같은 춘향 몸에 자네 같은 동냥아치가
더러운 말을 지껄이다가는 빌어먹도 못하고 굶어 죽으리라. 올라간 이도령인지 삼도령인지
그 놈의 자식은 한 번 간 후 소식 없으니, 인사가 그렇고는 벼슬은 커녕 사람 구실도 못 하지."
"어, 그게 무슨 말인고 ?"
"왜, 어찌 됩나 ?"
" 되기야 어찌 되랴마는, 남의 말이라고 구습을 너무 고약하게 하는군."
"자네가 철모르는 말을 하매 그렇지."
수작을 파하고 돌아선다.
"허허, 망신이로고. 자, 농부네들 일하시어."
하직하고 한 모롱이를 돌아드니, 아이 하나 오는데 주령막대 끌면서 시조 절반 사설 절반
섞어 중얼거린다.
"오늘이 며칠인고. 천리길 한양성을 며칠 걸어 올라가랴. 조자룡이 강 건너던 청총마가 있더라면
오늘로 가련마는. 불행하다 춘향이는 이서방을 생각하여 옥중에 갇혀서 목숨이 경각에 달렸으니
불쌍하다. 몸쓸 양반 이서방은 한 번 간 후 소식이 없으니, 양반의 도리는 그러한가 ?"
어사또 그 말 듣고 묻는다.
"얘, 어디 사니 ?"
"남원읍에 사오."
"어디를 가니 ?"
서울 가오."
"무슨 일로 가니 ?"
"춘향의 편지 갖고 구관 댁에 가오."
"얘, 그 편지 좀 보자꾸나."
"그 양반 철모르는 양반이네."
"웬소린고 ?"
"글쎄 들어 보오.남의 펴닞도 어렵거든 황차 남의 내간을 보잔단 말이오 ?"
"얘,들어라.*행인이 임발우개봉이란 말도 있나니라. 좀 보면 관계하냐 ?"
"그 양반 몰골은 흉악하구만 문자 속은 기특하오. 얼른 보고 주오."
"후례자식이로고."
편지 받아 떼어 보니 혈서로 하였는데, 평안 낙안 기러기 격으로 그저 툭툭 찍은 것이 모두 다
애고로다. 어사 보더니 두 눈에 눈물이 맺거니 듣거니 방울방울이 떨어지니 저 아이 말한다.
"남의 편지 보고 왜 우시오 ?"
"어따 얘, 남의 편지라도 설운 사연을 보니, 자연 눈물이 나는구나."
"여보, 인정 있는 체하고 남의 편지 눈물 묻어 찍히오. 그 편지 한장 값이 열닷 냥이오. 편지값
물어 내오."
"여봐라, 이도령이 나와 죽마고우로서 하향에 볼일이 있어 나와 함께 내려오다 완영에 들렀으니,
내일 남원에서 만나자 언약하였다. 나를 따라가 있다가 그 양반을 뵈어라."
그아이 가로막고,
"서울을 저 건너로 아시오 ?" 하며 달려들어,
"편지 내오."
서로 다툴 때 옷자락을 잡고 힐난하며 살펴보니 명주 전대를 허리에 둘렀는데 제기 접시 같은
것이 들었거늘 물러나며 말하였다.
"이것 어디서 났소 ? 찬 바람이 나오."
"이 놈, 만일 천기 누설하였다가 성명을 보전치 못하리라."
당부하고 남원으로 들어올 때 박석치를 올라서서 사면을 둘러보니, 산도 예 보던 산이요,
물도 예 보던 물이다. 남문 밖 썩 내달아, 광한루야 잘 있었더냐, 오작교야 무사하냐.
*객사청청유색신은 나귀매고 청운낙수 맑은 물은 내 발 씻던 청계수라. 녹수진경 넓은 길은
왕래하던 옛길이라."
어사또 누에 올라 자세히 살펴보니 석양은 서에 있고 잠자려는 새는 숲으로 들어갈 때 저 건너
버드나무는 우리 춘향 그네 매고 오락가락 놀던양을 어제 본 듯 반갑도다. 푸른 숲 사이에 춘향
집이 저기로다. 저 안의 내동원은 예 보던 모습이요, 석벽의 험한 옥은 우리 춘향 우는 듯
불쌍하고 가엾다.
서산에 해지는 황혼에 춘향 문전 당도하니 행랑은 무너지고 몸채는 꾀를 벗었는데,
예 보던 벽오동은 수풀 속에 우뚝 서서 바람을 못 이기어 추레하게 서 있거늘 나지막한 담 밑의
백두룸은 함부로 다니다가 개한테 물렸는지 깃도 빠지고 다리를 징금, 낄룩 뚜루룩 울움 울고,
빗장 앞 누런 개는 기운 없이 졸다가 구면의 손님을 몰라보고 컹컹 짖고 내닫는다.
"요 개야, 짖지마라. 주인 같은 손님이다. 너의 주인 어디 가고 네가 나와 반기느냐 ?"
중문은 바라보니 내 손으로 쓴 글자가 충성 충자 완연하더니 가운데 중은 어디 가고 마음 심자만
남아 있고, 누운 용 같은 힘 있는 글씨 입춘서는 동남풍에 펄렁펄렁, 이내 수심 돋워 낸다.
그렁저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