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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8:1
자녀를 키워보면 나도 그랬나 싶을 때가 있습니다. 말이 참 가볍습니다. 달래고 설득하고 윽박질러도 안 통합니다. 직접 겪어 봐야 알고 당해 봐야 정신을 차릴 때가 있습니다. 부모가 포기하지 않고 일으켜 세워 주기를 수차례 반복해야 겨우 깨달을까말까 입니다. 이스라엘이 그러니 하나님도 아셨을 것입니다. 공주야! 재난 영화를 보면 다가오는 재앙의 전조를 무시하다가 순식간에 위기에 처하는 장면들을 기억할 것이다. 하나님은 심판하시기 전에 경고하시고 전조를 주신다.
When I raise my children, there are times when I think I did the same. The words are very light. It doesn't work even if you appease, persuade, and scold them. There are times when you have to experience it firsthand to come to your senses. I wonder if my parents will not give up and raise me up several times before I can finally realize it. Because Israel did that, so God must have known. Princess! If you watch a disaster movie, you will remember scenes in which you ignore the harbingers of the coming disaster and are in danger in an instant. God warns and gives you harbingers before you ju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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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일에 빠진 자들이 그 사인을 알아차리지 못할 뿐이다. 머잖아 닥칠 일을 이사야 선지자의 자녀 출생을 통해서 드러내신다. 아이가 선악을 분별할 줄 아는 나이(두세 살)가 되기 전에 이뤄지리라 했던 일이 이제 아이가 엄마 아빠라 부를 줄 알 때(1세)일어날 것이라고 앞당겨 주신다. 지금 유다를 공격하는 아람과 북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약탈을 당할 것이다. 이 확실한 증거, 확실한 미래에 걸맞는 유다는 확실한 믿음으로 반응해야한다.
Those who are complacent do not notice the cause of death. He reveals what is to come soon through the birth of the Prophet Isaiah's child. He said, "What was to be accomplished before the child reaches the age of two years old, when the child knows how to discern good and evil, will happen when the child knows how to call him mother and father (1 year old)." Aram and North Israel, which are attacking Judah now, will be looted by Assur. Judah who is worthy of this solid evidence and a solid future must respond with solid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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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에게는 주 하나님만 믿어야 마땅할 만큼 확실한 계시와 그 계시가 성취해온 역사가 있지 않은가, 나 자신과 자녀들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역사주권의 산 증거와 계시가 된다면 얼마나 복될까?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숭상하는 자들은 항상 있다. 하나님의 보호 약속을 무시한 채 반 앗수르 정책에 동조하는 자들이 유다 안에도 있다. 친 애급 인사들이다. 반 앗수르파나 친 앗수르파 모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데에서는 동일했다.
Right now, we have a certain revelation that deserves to be trusted only by the Lord God, and a history that it has achieved. How blessed would I be if the existence of myself and my children itself became evidence and revelation of God's living spirit and historical sovereignty? There are always those who worship their ideology rather than God's word. There are also those in Judah who sympathize with the anti-Atsur policy, ignoring God's promise of protection. They are pro-Atsurists. Both anti Atsurists and pro-Atsurists were the same in not relying on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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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를 돕기 위해 앗수르를 부르셨지만, 천천히 흐르는 실로의 물인 다윗 왕조(유다) 역시 큰 하수 앗수르에 의해 물이 목에 차기까지 압박을 당할 것이다. 나라와 교회의 앞날을 하나님보다 주변 나라들이나 특정 정파에 기대는 것도 이와 같이 어리석은 일이다. 앗수르의 침략이 아람과 북이스라엘에게는 멸망의 사건이 되겠지만, 유다에게는 목숨을 구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여호와께서 어미 새가 날개를 펴서 새끼 새들을 보호하듯이 당신의 백성을 지켜주실 것이다.
You called Assur to help Judah, but the David dynasty (Judah), the water of the slow flowing thread, will also be pressured by the big sewage Assur until the water gets stuck in your throat. It is foolish to lean on the neighboring countries or certain factions rather than God for the future of the country and the church. The invasion of Assur will be an event of destruction for Aram and North Israel, but it will be an opportunity for Judah to save lives. Jehovah will protect your people just as the mother bird spreads its wings to protect the baby bi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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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백성과 함께해주실 것이다. 공주야! 왜 하필 내가 그 사랑을 받는지 설명 할 수 없지만, 그 사랑에 어떻게 화답해야 하는 지는 알고 있지 않은가? 자크엘룰은 ‘세상속의 그리스도인’에서 그리스도인은 필연적으로 세상 속에 있더라도 세상에 속하거나 의존하는 자가 아니라고 하였다. 성도는 다른 주인을 섬기고 있으며 그 주인에 의하여 세상 속으로 보내진 존재다. 여호와께서 앗수르를 사용하여 예루살렘을 치시지만, 아람과 에브라임처럼 앗수르도 심판에 떨어진다.
He will be with your people. Princess! I can't explain why I am loved, but don't you know how to respond to my love? Jacques Eloule said in "Christ in the World," that Christians are not necessarily part of or dependent on the world, even if they are in it. The Saints are serving other masters and have been sent into the world by them. The Lord uses the Assur to strike Jerusalem, but like Aram and Ephraim, the Assur falls to judg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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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는 먼나라 백성들에게 무장을 하고 전쟁에 나서라고 부추기면서, 이들이 패할 것을 선포한다. 결국 반 앗수르 연합군을 결성한 아람과 북 이스라엘의 계획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계획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친 앗수르도 아니고 반 앗수르도 아닌,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자들 가운데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이시기 때문이다. 이사야가 따라야 할 길은 이 백성의 길이 아니라 여호와의 길이다.
Isaiah encourages the people of distant countries to arm themselves and go to war, declaring that they will be defeated. In the end, the plan of Aram and North Israel, which formed the anti Atsur coalition, will not be carried out. Because it is not a plan from God. Because God is not with him. Because God is Immanuel, who is not a pro-Atsur or anti-Atsur, but among those who rely solely on God. The path Isaiah must follow is not the path of these people, but the path of the L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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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반역자로 오해 받는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반역자가 되지 않도록 여호와만 두려워하고 무서워해야 한다. 믿는 자들에게는 그가 성소가 되시고 진정 하나님께 반역하는 자들에게는 그가 걸림돌이 되실 것이다. 하나님보다 앗수르를 더 의지하기로 마음을 정한 아하스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의미가 없어졌고 선지자는 쓸모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렇더라도 그 말씀은 때가 되면 성취될 것이니 미래를 위해 보존하기로 한다.
What he should fear is not to be misunderstood as a traitor. Only Jehovah should be afraid and afraid not to become a traitor to God. He will be the sanctuary to those who believe, and he will be an obstacle to those who truly rebel against God. For Ahaz, who decided to rely on Assur more than God, the word of God became meaningless and the prophet became useless. Nevertheless, the word will be fulfilled when the time comes, so I will preserve it for the fu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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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는 자신과 자식들이 말씀의 진정성을 증명하는 증거가 될 것임으로 자신은 심판하실 여호와를 기다리겠다고 선언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무시당하는 현실에서도 나와 자녀와 교회는 그 말씀의 신실 성을 입증하는 보루가 되어야 한다. 선지자의 말을 믿으려거든 차라리 신접한 자와 마술사에게 물으라고 조롱하는 자들에게 고통과 흑암의 미래만 있을 것이다. 심판의 날 곤고하고 주릴 것이다.
Isaiah declares that he and his children will be proof of the sincerity of the word, and that he will wait for Jehovah to judge. Even in the reality that the word of God is ignored, me, my children, and the church should be bastions of the truth of the word. If you would rather believe the prophet, there will be only pain and the future of black cancer for the newcomers and those who mock him to ask the magician. Judgment Day will be given with difficul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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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자를 위해 살아계신 하나님이 아니라 죽은 자를 의지 하는 자들에게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마헬살랄하스바스(노략이 속히 임하고 희생이 임박했다)를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말해도 안 듣고 당해도 안 듣는 자들에게 길은 있는가? 그대로 망해야 하는가? 오늘 어떻게 시간과 만남 가운데 다르게 살 것인가? 세상의 거대한 힘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한다는 것은 오늘 어떤 선택으로 나타나는가?
Death awaits those who rely on the dead, not God who is alive for the living. How to apply Mahel Salalhasbas (rules are quickly coming and sacrifice is imminent)? Is there a way for those who do not listen even if they say it or are not heard? Should I fail as it is? How will we live differently today in time and in meetings? What choice does it appear today to be to fear God more than the great power of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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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헬살랄하스바스(1-4)
a.표적행위의 명령:1
b.표적행위의 증인:2
c.아이의 출생과 이름:3
유다까지 뒤덮는 대홍수(5-8)
a.도입부:5
b.고발:6
c.심판 선언:7-8a
d.펼친 날개:8b
민족들의 심판(9-10)
진정한 두려움의 대상(11-15)
a.여호와께서 이사야에게 주신 경고:11
b.이사야가 너희에게 주는 경고:12-13
c.걸림돌이 되신 여호와:14-15
시온 산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16-18)
a.봉함된 말씀:16
b.여호와를 기다리는 이사야:7
c.징조가 된 이사야와 그의 아들:18
다른 신탁을 구하는 자들(19-22)
a.거짓 신탁:19
b.이사야의 예언:20
c.절망적 상황: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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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1a)
내게 이르시되(1b)
너는 큰 서판을 취하여(1c)
그 위에 통용 문자로(1d)
마헬살랄하스바스라 쓰라(1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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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진실한 증인(2a)
제사장 우리야와(2b)
-여베레기야의 아들(2c)
스가랴를 불러(2d)
증거 하게 하리라 하시더니(2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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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내 아내와 동침하매(3a)
그가 잉태하여(3b)
아들을 낳은지라(3c)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3d)
그 이름을(3e)
마헬살랄하스바스라 하라(3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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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4a)
이 아이가(4b)
내 아빠, 내 엄마라(4c)
할 줄 알기 전에(4d)
다메섹의 재물과(4e)
사마리아의 노략물이(4f)
앗수르 왕 앞에(4g)
옮긴바 될 것임이니라(4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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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5a)
다시 내게(5b0
일러 가라사대(5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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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백성이(6a)
천천히 흐르는(6b)
실로아 물을 버리고(6c)
르신과(6d)
르말리야의 아들을(6e)
기뻐하나니(6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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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주 내가(7a)
흉용하고 창일한 큰 하수(7b)
곧 앗수르 왕과(7c)
그의 모든 위력으로(7d)
그들 위에 덮을 것이라(7e)
그 모든 곬에 차고(7f)
모든 언덕에 넘쳐(7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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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 유다에 들어와서(8a)
창일하고(8b)
목에까지 미치리라(8c)
임마누엘이여(8d)
그의 펴는 날개가(8e)
네 땅에 편만하리라(8f)
하셨느니라(8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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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민족들아(9a)
훤화하라(9b)
필경 패망하리라(9c)
너희 먼 나라 백성들아(9d)
들을 지니라(9e)
너희 허리를 동이라(9f)
필경 패망하리라(9g)
너희 허리에 띠를 띠라(9h)
필경 패망하리라(9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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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함께 도모하라(10a)
필경 이루지 못하리라(10b)
말을 내어라(10c)
시행되지 못하리라(10d)
이는 하나님이(10e)
우리와 함께 하심이니라(10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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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강한 손으로(11a)
내게 알게 하시며(11b)
이 백성의 길로 행치 말 것을(11c)
내게 경성시켜 가라사대(11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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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백성이(12a0
맹약한 자가 있다 말하여도(12b)
너희는 그 모든 말을 따라(12c)
맹약한 자가 있다 하지 말며(12d)
그들의 두려워하는 것을(12e)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12f)
놀라지 말고(12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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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군의 여호와 그를(13a)
너희가 거룩하다 하고(13b)
그로(13c)
너희의 두려워하며(13d)
놀랄 자를 삼으라(13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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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거룩한(14a)
피할 곳이 되시리라(14b)
그러나 이스라엘의(14c)
두 집에는(14d)
거치는 돌(14e)
걸리는 반석이(14f)
되실 것이며(14g)
예루살렘 거민에게는(14h)
함정, 올무가 되시리니(14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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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15a)
그로 인하여 거칠 것이며(15b)
넘어질 것이며(15c)
부러질 것이며(15d)
걸릴 것이며(15e)
잡힐 것이니라(15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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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16a)
증거의 말씀을 싸매며(16b)
율법을(16c)
나의 제자 중에 봉함하라(16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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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야곱 집에 대하여(17a)
낯을 가리는 여호와를(17b)
나는 기다리며(17c)
그를 바라보리라(17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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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나와(18a)
및 여호와께서(18b)
내게 주신 자녀들이(18c)
이스라엘 중에(18d)
징조와 예표가 되었나니(18e)
이는 시온 산에 계신(18f)
만군의 여호와께로(18g)
말미암은 것이니라(18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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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이 너희에게 고하기를(19a)
지절거리며 속살거리는(19b)
신접한 자와 마술사에게(19c)
물으라 하거든(19d)
백성이 자기 하나님께(19e)
구할 것이 아니냐?(19f)
산 자를 위하여(19g)
죽은 자에게(19h)
구하겠느냐 하라(19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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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히 율법과(20a)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20b)
그들의 말하는 바가(20c)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20d)
그들이 정녕히(20e)
아침빛을 보지 못하고(20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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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으로 헤매며(21a)
곤고하며 주릴 것이라(21b)
그 주릴 때에 번조하여(21c)
자기의 왕 자기의 하나님을(21d)
저주할 것이며(21e)
위를 쳐다보거나(21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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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굽어보아도(22a)
환난과 흑암과 고통의(22b)
흑암뿐이리니(22c)
그들이 심한 흑암 중으로(22d)
쫓겨 들어가리라(22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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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교사 북 이스라엘_Northern Israel, a Warning Example
고집불통 남 유다_Stubborn Southern Judah
신실하신 여호와_ The Faithful L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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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왕국이 망하는 것은 유다가 멸망하는 서곡인 것을 깨달게 하옵소서. 이 백성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리고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을 기뻐하였으므로 앗수르에 흉용하고 창일한 큰 하수가 휩쓸게 된 것 처럼 나의 유다가 이 사건을 보고 애통한 마음을 갖게 하시고 내게마헬살랄하스바스가 미치기 전에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시옵소서. 내 시선이 흐려질 때 하나님은 더 이상 보호자가 아니라 올무가 되는 것을 배웁니다. 온 세상과 교회까지도 세상을 의지하지만 그래서 때로 외롭고 서글프지만,"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라는 말씀을 기억하며 우리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위하여 분류된 주님의 제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특별히 원하는 것은 말씀에 의한 선포가 아니면 그에게는 아침빛(새벽빛)이 없다고 하였으니, 이 땅의 강단에서 더 이상 무당신학을 멈추고 바른 말씀이 선포되어지길 간절히 기도 하옵나이다.
Let me realize that the destruction of the Northern Kingdom is the prelude to the destruction of Judah. As the people abandoned the water of Siloa, which flowed slowly, and rejoiced at the son of Rhesin and Lemaliyah, my Judah saw this event and made me grieve, just as a great sewage was swept away by Assur Let there be a history of repentance before Mahel Salalhasbas goes crazy. When my gaze is blurred, God learns to be no longer a protector but a snare. The whole world and even the church depend on the world, but sometimes it is lonely and sad, but remember the words "Who will oppose us if God is for us?" so that we may be the disciples of the Lord classified for the words of the Lord. What I especially want is that he has no morning light (dawn light) unless it is a declaration by the word, so I pray earnestly that the right word will be proclaimed and stopped from the pulpit of the land.
2026.7.25.sat.Clay
신학 비평//
실로아의 물을 버린 사람들, 이사야 8장은 심판의 원인이 단순히 앗수르의 강대함에 있지 않고,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린 유다의 불신앙에 있음을 보여 줍니다. 유다는 하나님의 조용한 약속보다 제국의 눈에 보이는 힘을 더 현실적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구원자로 불러들인 앗수르는 곧 목까지 차오르는 홍수가 되었습니다. 하나님 아닌 것을 의지하면, 그것은 결국 우리의 주인이 됩니다. 마헬살랄하스바스는 심판이 막연한 미래가 아니라 이미 가까이 왔다는 경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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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심판 전에 말씀하시고 징조를 주십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데 있지 않고, 사람이 그 경고를 듣고도 자기 길을 고집하는 데 있습니다. 말해도 듣지 않는 자에게 남은 길은 더 큰 소리가 아니라, 때로 자신이 선택한 결과를 통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임마누엘의 날개는 유다의 목까지 차오른 물 위에도 펼쳐집니다. 하나님의 함께하심은 무조건적인 안전을 뜻하지 않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성소가 되지만, 거역하는 자에게는 걸림돌과 올무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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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하나님이 누구에게는 피난처가 되고 누구에게는 심판이 되는 것은, 인간이 그분 앞에서 취하는 태도 때문입니다. 이사야가 백성의 길을 따르지 않고 말씀을 봉함하여 기다린 것은 중요한 신앙의 자세입니다. 모두가 정치적 동맹과 미신적 해답을 찾을 때, 선지자는 말씀의 성취를 기다렸습니다. 신앙은 다수의 공포에 휩쓸리지 않고, 세상이 조롱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미래를 위한 증거로 보존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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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오늘 교회의 위기는 세상의 힘이 너무 강해서가 아니라, 실로아의 물보다 앗수르의 강물을 더 신뢰하는 데 있습니다. 말씀에 맞지 않는 신학과 설교에는 아침빛이 없습니다. 교회가 회복되는 길은 더 강한 정치적 후원이나 더 화려한 종교적 기술이 아니라, 다시 율법과 증거의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믿음은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 두려워하는 거룩한 분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