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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고를 졸업할 즈음에 말야. 최고구속이 138km에 지나지 않는 나의 공은 나를 초고교급 투수로 만들지 못했어.
내 또래엔 임선동, 조성민, 손경수와 같은 빛나는 선수들이 너무 많았거든.
하지만 난 조금도 상심하지 않았고, 자신감도 잃지 않았어. 그리고 내 갈 길은 어디인지 난 알고 있었어.
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이글스 구단을 찾아갔고, 당당히 계약을 했어.
난 독수리의 일원이 된 것이 너무도 기쁘고 뿌듯했어. 내가 고등학생일 때 이글스는 명실상부 최고의 팀이었거든.
송진우, 한희민, 이상군 등 형들이 버티는 탄탄한 마운드와 이정훈-이중화-이강돈-장종훈으로 이어지는 타선은
그야말로 공포의 그 자체였거든. 항상 TV로 보면서 동경했던 형들과 내가 함께 뛰게 된다니! 세상에~
헌데, 한 가지 걱정이 있었어. 송진우, 이상군, 한희민 등 다른 형들이 다들 한자리씩 하고 있는대다가
우리팀에는 나 말고 지연규 형이 엄청 기대를 받고 있었는 터라서 내겐 기회가 올 것 같지 않아서 말야.
그런데 말야. 지연규 형이 시즌을 앞두고 스프링캠프에서 부상을 당했지 뭐야. 사실 좋아하면 안되는데 난 내게
주어진 실낱같은 희망의 끈을 놓칠 수 없었어. 난 다른 선수들보다 더 열심히 노력했고, 결국 난 꿈에 그리던
개막 로스터에 합류하게 됐어~!!
난 이제 겨우 고등학교를 졸업한 풋내기에 지나지 않았고, 기라성 같은 타자들을 상대할 때면 무섭기도 했어.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포수형님의 미트만 보고 공을 던질 뿐이었어. 게다 난 변화구도 좋지 못해서 빠른공만 던졌는대도
이상하게 타자들은 내 공을 쉽게 쳐내지 못하는거야. 난 그제야 알게 되었어. 다른 사람들보다 유독 긴 내 손가락 때문에
내 공은 초당 회전수가 엄청 많다고 하더라구. 난 그 때부터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어. 그리고 신나게 던졌어.
난 신인에 걸맞지않게 좋은 성적을 냈고, 우리팀은 그 해 페넌트레이스 1위에 올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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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년 시즌은 우리가 우승할 확률이 가장 높았고, 또 자신감도 다들 충만해 있었어.
하지만 우린 우승하지 못했고, 그 해 우승은 거인들의 차지가 되어 버렸어. 형들은 염원하던 우승을 못한것에
대한 허탈감이 엄청 심했나봐. 우리팀 공격의 핵이던 이정훈, 이중화, 이강돈 형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고, 대한민국 최고 홈런왕이던 종훈이형도 더 이상은 홈런왕이 아니었어.
한희민 형은 삼성으로 가 버렸고, 에이스였던 이상군 형도 평범한 투수로 전락해 버렸어.
그렇게 우리는 92년을 끝으로 강팀의 이미지를 벗어버렸어. 난 매 경기 혼신의 힘을 다해 던졌지만 잘 던지고도
승리를 챙기지 못하는 날은 많아져만 갔어. 그렇지만 난 묵묵히 팀을 위해 던지고 또 던졌어.
그렇게 던지기를 몇년... 어느새인가 사람들은 나를 "에이스" 라고 부르기 시작했어. "비운의 에이스" 라고.
물론 내가 입단한 해를 끝으로 팀이 약해져 버려서 내가 잘 던져도 승리하지 못하고 주목받지 못하는 난 운없는
투수일지도 몰라. 하지만 나를 얻어서 팀은 운이 있는거라면 난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어. 야구란 그런거니까.
수십명의 선수들이 '팀' 이라는 이름 아래 모여서 '우승' 이라는 하나의 목표에 인생을 내 던지는 거니까.
난 팀을 위해서 완투하고, 또 완투하고, 또 완투를 할 수 있었어. 그래서 우리팀에게 1승을 챙겨 줄 수 있다면
그까짓것쯤은 문제도 아니었어. 하지만 내 마음과는 달리 내 팔꿈치는 해가 갈수록 걸레짝이 되어갔어.
언젠가부터 던질때마다 팔꿈치가 욱신거리며 아파왔지만 난 쉴 수가 없었어. 팀에게는 나의 팔이 절실히 필요했어.
그러던 98년도 어느날에 난 '팔꿈치 건초염' 진단을 받았어. 힘들어도 아파도 쉴 수 없었던 나의 팔꿈치는 결국
더 이상 견디지 못했던거야. 그렇지만 오래 쉴 순 없었어. 우리 식구들 모두가 피 땀 흘려 겨우 우승이란 녀석에게
근접했는데 나 하나때문에 그 모두의 희망과 노력을 수포로 만들 순 없었어. 결국 난 다시 던지기 시작했고
99년도.. 우린 드디어 그 녀석을 우리것으로 만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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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년도 팀을 우승 시키고야 난 홀가분히 내 새로운 목표에 도전 할 수 있었어. 그리고 난 일본 최고의 구단인
<요리우리 자이언츠>와 계약했어. 난 자신이 있었어. 성공할거라 확신했지.
하지만 아직날대로 아작나버린 내 팔꿈치는 더 이상 예전과 같은 공을 던지지 못하게했고, 일본에서는 한낱 용병에
지나지 않은 나를 기다려 줄 리 만무했어. 감독은 날 신뢰하지 못했고, 나 역시 자존심이 상했어.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어. 잠시 아파서 그런것일뿐이라고. 조금만 지나면 내 칼날같은 빠른공의 구속은 회복 될꺼라
믿었어. 팀은 믿어주지 않았고, 난 다시 독수리 군단으로 돌아왔어. 너희들 후회하게 될꺼란 생각과 함께.
난 한국으로 돌아와서 다시 독수리가 되어 화려하게 날아 오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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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으로 복귀한 해에 난 더 이상 내 공은 예전같지 않음을,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어.
머리론 인정할 수 있었지만, 가슴으론 받아 들일 수 없었어. 난 애초부터 빠른공을 앞세운 파워피쳐였기 때문에
변화구를 앞세운 기교파 투수로 전환하기도 쉽지 않았어. 내가 자신있게 구사할 수 있는 것도 커브정도.
게다가 자존심도 상했어. 누가 뭐래도 난 파워피쳐인데 이젠 안된다니...
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계속 빠른공을 던져댔지만 늘 얻어터지기 일쑤였어.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나의 복귀를 누구보다 환영했고 기대했던 내 10년지기 친구와도 같은 팬들.
그들은 나를 비난하지 않았어. 오히려 나를 격려해줬고, 또 아픔을 같이 해 주었어.
난 그들을 위해 무엇이든 해야했어. 더 이상 나의 자존심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어.
난 다시 야구를 처음 배우고, 변화구라는 것을 처음 던져보던 그 때로 돌아가 배우기 시작했어.
커브는 더욱 연마했고 체인지업, 너클커브, 슬라이더, 스플리터.. 배울 수 있는것은 뭐든 배웠어.
주위에선 나를 '아리랑볼 투수'가 됐다며 비아냥 거렸고, 때론 괴로웠지만 난 팬들을 위해 팀을 위해 힘을냈어.
불펜피칭이 끝나면 15m의 짧은 거리에서 개인 훈련을 했고, 제구력 가다듬기에 더욱 노력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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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그렇게 피땀흘린 각고의 노력끝에 난 다시 돌아왔어. 내 이름에 걸맞는 투수로.
한 때는 혼신의 힘을 다해 잘 던져도 이기지 못하는 반복에 지치기도 했어.
팔이 너무 아픈대도 쉬게 해주지 않는 구단을 원망했던 적도 있어.
팔이 망가져 예전같은 공을 던질 수 없을 때 절망했고, 기교파 투수로의 변신은 불가능하다고도 생각했어.
하지만 말야. 내 가족같은 팀을 위해, 내 친구같은 팬들을 위해 난 그대로 쓰러질 순 없었어.
하고자 하는 굳은 의지만 있다면 어떤일이든 할 수 있는거야.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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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만큼 민철형님이 마운드 위에서 힘들어 하시는 모습은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하루 빨리 민철형님의 해맑은 미소를 보았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매일 저녁마다 야구를 보다말고 분통이 터져 소리를 지르게 되는 저이지만 매일 저녁 6시 30분이 되면 결국 저는
또 그 자리에 앉아 이글스를 보게 됩니다. 하루를 동생이 말했습니다. 매일 화내면서 왜 보느냐고.
안 볼 순 없습니다. 그런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이미 내 심장의 반은 주황색으로 칠해여 있는 듯 합니다.
여러분, 지금 팀이 많이 힘들고 그만큼 팬들도 힘들지만 그래도 그들에게 비난보단 격려를 해줍시다.
제게도 너무 쉽지 않은 일이지만, 우리가 격려하는만큼 그들은 몇 배로 땀을 흘릴것이라 생각합니다.
89년도부터 이글스와 연을 맺었으니 벌써 20년이네요. 20년지기 내 친구 이글스에게 더 많은 격려를 해줍시다.
첫댓글 민철오라버니 화이팅♡
정민철 선수 제가 머 그리전문가는아니지만 한가지 말씀드리면 예전엔 각도큰 슬로우커브 잘던지던데 요즘은 최일언 투수코치가 떠나고서 그구종을 잃어버린건지 왜안던지시는지 완급조절이필요합니다 ... 정민철선수는 완급조절이에여 그정도 스피드 물론 자존심상하시겟지만 정민철선수는 슬로우커브의제구가 투수인생을 좌우할수잇습니다 ..
아아...우리의 레전드..힘내요!
좋은 글 잘 봤습니다. 민철선수 힘내세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정민철 선수 꼭 부활하시길!!
정민철 부활을 기원하는 백일 기도라도 ㅅㅣ작해야겠어요... ㅜㅜㅜ 힘내요~ 우리의 에이스~!!!
무조건 화이팅!!!!!!!!!!!!!!!!!!!!!!!!!!!!!!!!!!!!!
세상에서 젤 이쁜 투구폼을 갖고 있는 정민철선수!! 힘내세요!! 화이팅!!
최고의 에이스 민철형님 힘내십시요^^
정말좋은글입니다!!! 네번째 달락 읽으면서 눈물이 날듯하네요...
힘내세요!! 아직 할수있어요 !!!
전 29살인데! 장종훈과 더불어 좋아하던 선수입니다
갑자기 눈물 핑입니다..ㅡㅡ
부활하십쇼~ 이렇게 무너질순 없어요! 힘내세요~민철님!
일다보면서 눈물이 조금씩 나오긴 처음이네요 정민철 선수 사랑 합니다 남자지만 다시부활하셔서 우리 영건들 많이 이끌어주세요 파이팅
당신때문에 야구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까지 당신과 함께 하겠습니다.
당신은 한화 이글스의 전설입니다. 화이팅~!^^
화이팅!!
저도 정민철 선수의 해맑은 웃음이 좋습니다 ^^
태클은 아니고, 정민철 선수가 2점대 방어율, 10승 투수가 되어 자신의 이름에 걸맞는 투수로 부활한 시즌은 2007년도입니다.
형님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