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사야9:1
"약함을 자랑한다"는 바울의 말을 이해하는가? 힘이 진리와 정의를 결정하고 행복을 좌우하는 세상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그 하나님의 통치를 실현하는 방식은 약함입니다. 그것이 예수께서 보여 주신 십자가입니다. 강대국들에 둘러싸인 유다에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방식은 무엇인가? 공주야! 하나님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셔서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다. 욕망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던 죄를 사하시고, 빛의 백성으로 새롭게 지으셨다.
Do you understand Paul's saying, "Proud of Weakness"? Isn't it a world where power determines truth and justice and determines happiness? Nevertheless, the way those who believe in God realize his rule is weakness. That's the cross Jesus showed us. How does God history Judah surrounded by great powers? Princess! God lifted us from the power of darkness and transferred us to the kingdom of the Son of Love. He apologized for his sin of living as slaves of desire and rebuilt us as people of light.
-
공의와 의로 다스리는 평강의 왕의 백성이 되었다면 이제 빛을 비춰야할 것이다. 본문은 시제는 모두 완료형이다(5절 제외). 성취의 확실성을 보여주는 예언자적 완료 또는 이뤄진 사실을 그대로 기술한 과거 시제로 간주 할 수 있다. 후자의 경우에는 역사적으로 해석해야 하고, 전자의 경우는 종말론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사야가 예언한 아이가 누구든 간에 그가 내다본 구원과 회복의 소망은 구약시대에는 성취되지 않았다.
If you have become the people of the king of Pyeonggang, who governs by righteousness and righteousness, you must shine a light now. The text is that all tense is in the completion form (excluding Section 5). It can be regarded as a past tense that describes the fact that the prophetically completed or accomplished, showing the certainty of achievement. The latter case should be interpreted historically, and the former case can be interpreted as apocalyptic. Regardless of who Isaiah predicted, his hopes for salvation and recovery were not fulfilled in the Old Testament.
-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빼앗겼던 북 왕국의 영토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더 나아가 다윗 왕조도 회복되기는커녕 주전587년에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약성경은 이사야의 예언이 예수의 출현으로 성취되었다고 선포한다. 마태는 예수의 갈릴리 출현에서 이사야9:1-2의 성취를 보았고(마4:15-16), 누가는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가 9:2를 인용해 구원시대의 도래를 찬양한다(눅1:79).
The territory of the Northern Kingdom, which had been taken away by DiGlaat Vilessel, king of Assur, did not return, and furthermore, the David dynasty was destroyed by Babylon in 587, let alone recovered. Nevertheless, the New Testament declares that Isaiah's prophecy was accomplished by the appearance of Jesus. Matthew saw the achievement of Isaiah 9:1-2 in the appearance of Jesus Galilee (Matthew 4:15-16), and someone praises the arrival of the Salvation Period by quoting Zarya, the father of John, 9:2 (Muk 1:79).
-
뿐만 아니라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이사야9:7의 약속이 그녀 아들의 출생으로 성취된 것을 고지한다(1:32-33). 결국 주변 나라들에 시달리는 흑암의 땅에 빛이 비칠 것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에 떨던 땅에 평화의 빛이 비칠 것이다. 아무도 넘볼 수 없는 강대한 나라가 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기다리는 하나님 나라다. 그 나라를 오늘 여기에서 그 하나님의 사랑과 그를 향한 믿음으로 누리길 원하신다. 자유의 나라가 되기 위해 해방의 역사가 먼저 있을 것이다.
In addition, Gabriel, an angel, notifies Maria of the fulfillment of Isaiah 9:7's promise by the birth of her son (1:32-33). Eventually, the light will shine on the land of black cancer suffering from the surrounding countries. The light of peace will shine on the land of fear and anxiety of death. It will be a powerful country that no one can overcome. This is the kingdom of God that we are waiting for. He wants to enjoy the country here today with the love of God and faith in him. To become a free country, there will be a history of liberation first.
-
멍에와 채찍과 압제자의 막대기도 꺾일 것이다. 기드온을 통해 미디안을 치신 것 같이 당신이 친히 싸우실 것이다. 이젠 전쟁이 그칠 것이니 군화와 군복이 필요 없어질 것이다. 늘 전쟁의 공포와 두려움 속에 살던 나라가 이제 두 발 뻗고 살 수 있는 평화로운 나라가 될 것이다. 사람과 동물도 평화롭게 공존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11장). 오늘도 부당한 권력과 착취로부터, 인간다움의 권리를 빼앗긴 데서부터 해방과 회복이 일어나는 곳에 하나님 나라가 선다.
The yoke, the whip and the oppressor's stick will also be broken. You will fight personally as if you beat Midian through Gideon. Now that the war will stop, you will not need military boots and uniforms. A country that has always lived in the fear and fear of war will now become a peaceful country where people and animals can live on their feet. The time will come when people and animals coexist peacefully (Chapter 11). God's country stands where liberation and recovery take place from unjust power and exploitation.
-
아하스 시대에 대안으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권능을 보이실 방법은 ‘한 아이의’ 출생이다. 그가 지혜롭고 강하고 영원하고 평화를 만드는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가 될 것이다. 정의와 공의로 다스릴 것이다. 하나님의 열심(질투)으로 이 나라를 기어이 이루실 것이다. 어린아이와 젖먹이로 권능을 세우신 하나님,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온 땅을 구원하시고 다스리신 하나님, 그분의 지혜가 세상의 지혜를 이길 것이다.
In the Ahaz era, the alternative way for God to show your power is by the birth of "one child." He will be the proxy ruler of God, who is wise, strong, eternal, and peace making. He will rule with justice and righteousness. God's zeal (jealousy) will build this country. God, who built power with children and milk, God who saved and ruled the whole land through Jesus Christ, your son, will prevail over the wisdom of the world.
-
빛은 비추었고 우리는 어둠에서 해방되어 빛의 자녀들이 되었다. 죄와 사망의 지배에서 벗어나 성령의 통치 아래 사는 이들이 되었다. 그럼에도 죄에 종노릇 한다면 영원한 사망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해방의 두 가지 의미가 무엇인가? 하나님이 인간의 강함을 이기고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는 방식은 무엇인가? 하나님 나라는 왜 칼과 권력이 아니라 빛과 어린아이와 십자가를 통해 세워지는가? 왕의 백성답게 살기 위해 내가 보여야 할 변화는 무엇인가?
The light shone, and we were freed from the darkness and became children of the light. They came out of the rule of sin and death and lived under the rule of the Holy Spirit. Nevertheless, I warn you that if you are guilty, there will be eternal death. What are the two meanings of liberation? What are the ways in which God overcomes the strength of man and establishes the kingdom of God? Why is the kingdom of God established through light, children, and crosses, not through swords and power? What are the changes I need to show in order to live like a king's people?
-
역사적 배경(1)
구원의 기쁨(2-3)
a.큰 빛을 보는 백성:2
b.주 앞에서의 기쁨:3
기쁨의 내용(4-7)
a.압제에서 해방:4
b.전쟁에서 해방:5
c.한 아이의 출생:6
d.영원한 통치:7
-
전에 고통 하던 자에게는(1a)
흑암이 없으리로다(1b)
옛적에는 여호와께서(1c)
스불론 땅과(1d)
납달리 땅으로(1e)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1f)
후에는(1g)
해변 길과 요단 저편(1h)
이방의 갈릴리를(1i)
영화롭게 하셨느니라(1j)
-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2a)
큰 빛을 보고(2b)
사망의 그늘진 땅에(2c)
거하던 자에게(2d)
빛이 비취도다(2e)
-
주께서 이 나라를(3a)
창성케 하시며(3b)
그 즐거움을(3c)
더하게 하셨으므로(3d)
추수하는 즐거움과(3e)
탈취 물을 나누는(3f)
때의 즐거움 같이(3g)
그들이 주의 앞에서(3h)
즐거워하오니(3i)
-
이는(4a)
그들의 무겁게 멘 멍에와(4b)
그 어깨의 채찍과(4c)
그 압제자의 (4d)
막대기를 꺾으시되(4e)
미디안의 날과 같이(4f)
하셨음이나이다(4g)
-
어지러이 싸우는(5a)
군인의 갑옷과(5b)
피 묻은 복장이(5c)
불에 섶 같이 살라지리니(5d)
-
이는(6a)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6b)
한 아들을(6c)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6d)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6e)
그 이름은 기묘자라(6f)
모사라(6g)
전능하신 하나님이라(6h)
영존하시는 아버지라(6i)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6j)
-
그 정사와(7a)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7b)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7c)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7d)
자금 이후 영원토록(7e)
공평과 정의로 (7f)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7g)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7h)
이를 이루시리라(7i)
-
흑암의 땅을 비추신 하나님_God who illuminated the land of darkness.
주께서 주실 해방과 승리_The Lord's liberation and triumph.
하나님 나라 왕의 통치_ The reign of the king of the kingdom of God_
-
주께서 황폐한 삶을 비추는 큰 빛을 비추셨고 평강의 나라를 세우셨나이다. 정의가 파괴된 현실가운데 살지만 하나님을 생각하며 수치를 씻게 될 그 날을 고대하겠습니다. 특별히 제 안의 어두움을 몰아내시고 참 빛을 비춰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이후로는 내 삶에 어두움이 없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께서 인류의 샬롬을 위해 한 아기를 보내시고 새롭게 만들어 가시는 당신의 구속의 열심을 찬양합니다.
For the LORD has shed light on the desolate life and established the kingdom of peace. I look forward to the day when I will live in the midst of a reality where justice has been destroyed, but I will wash my shame for God. In particular, thank you for driving out the darkness inside me and shining the light. Thank you for telling me that there will be no darkness in my life after that. Praise the Lord for the love of mankind's flesh-Rom and for the passion of your restraint that he sent a baby and made a new one.
2026.7.26.sun.Clay
신학 비평//
강함은 세상을 지배하지만, 왜 하나님은 한 아이로 세상을 구원하시는가? 이사야 9장은 절망의 시대에 가장 역설적인 하나님의 통치 방식을 선포한다. 아하스 시대의 현실은 강대국의 군사력과 정치력이 역사를 결정하는 것처럼 보였다. 사람들은 더 큰 군대와 더 강한 왕을 원했지만, 하나님은 한 아이를 보내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세상은 강함을 대안으로 찾지만 하나님은 생명과 사랑을 대안으로 제시하신다. 바울이 "약함을 자랑한다"고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
약함 자체가 미덕이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인간의 약함 속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십자가는 패배처럼 보였지만 하나님의 승리였고, 부활은 그 승리가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하나님은 인간의 힘을 조금 더 크게 만드는 분이 아니라, 힘의 논리 자체를 뒤집으시는 분이다. 본문에서 말하는 해방도 두 차원을 가진다. 첫째는 외적인 해방*이다. 멍에와 채찍과 압제자의 막대기가 꺾이는 정치적·사회적 해방이다. 둘째는 내적인 해방이다.
-
죄와 죽음, 두려움과 욕망의 지배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영적 해방이다. 성경은 이 둘을 분리하지 않는다. 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세상의 억압에도 저항하며, 하나님 나라는 인간의 영혼뿐 아니라 공동체와 역사까지 새롭게 한다. 또한 이사야는 완료형으로 미래를 말한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선언한다. 이것은 현실을 외면하는 낙관주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믿음의 언어이다.
-
그래서 신약은 이 예언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읽는다. 갈릴리에 비친 빛은 단지 한 지역의 변화가 아니라 온 인류를 향한 새 창조의 시작이었다. 오늘날에도 세상은 성공과 권력, 경쟁을 통해 행복을 얻으려 한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여전히 빛을 비추는 사람, 평화를 만드는 사람,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원수를 사랑하는 사람을 통해 확장된다. 이것은 현실 도피가 아니라 가장 급진적인 저항이다. 미움의 질서를 사랑으로, 폭력의 질서를 화해로 바꾸는 것이야말로 하나님 나라의 정치이며 예수의 통치 방식이다.
-
결국 이사야 9장은 한 아이의 탄생을 넘어 한 왕의 통치를 선포한다. 그 왕은 사람들을 더 강하게 만드는 왕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으로 새롭게 만드는 왕이다. 그러므로 왕의 백성은 세상의 힘을 흉내 내는 사람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도 빛을 비추고 절망 속에서도 소망을 증언하며, 약함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 삶이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의 가장 분명한 증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