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장 돌파(突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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칵-!
'목뼈에 부딪쳤나 보군! 날이 망가지지나 않았나
몰라.'
좌측으로 찔러오던 구륜교도의 목을 날리며
대도오는 그런 한가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죽엇!!"
정면에서 한 인영이 튀어나오며 난폭한 몸짓으로
철추(鐵錐)를 휘둘러 왔다.
'생사가 오가는 순간에 이런 평범한 말밖에 할 수
없을까?'
바짝 다가가 적의 코 끝에 얼굴을 들이밀며
대도오는 의문스럽게 생각했다.
하나 집에서는 돼지도 못잡는 인물들이 인간의 피를
보려하고 또 봐야하는 이 상황, 이 극도의 긴장상태
속에서 더 이상 무슨 근사한 말을 하겠는가.
'그럴 수도 있겠지!'
오른 손에 거꾸로 들린 그의 칼이 철추를 휘두르던
사내의 목을 파고드는 것을 보면서 대도오는 그
사내의 평범한 말을,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는 그
배경(背景)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크아악-!"
코 끝에 짙은 피비린내가 풍겼다.
이것은 한동안 떨어지지 않고 그의 코 끝을 맴돌
것이다. 피는 그의 얼굴 전체에 뿜어졌으므로...
'다행스럽게도 비명소리만은 개성(個性)이 있군!'
글쎄 그것이 위안이 될 수 있을까?
대도오는 짙은 피비린내 속에서 머리 한 쪽으로는
그런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생각들을 하며 눈앞에
나타나는 적들을 기계적으로 베어넘겼다.
그렇게 다섯을 연속으로 꺼꾸러뜨리자 겨우 숨돌릴
틈이 생겼다.
대도오는 공격과 죽음, 다시 공격과 죽음이
이어지는 사이의 그 짧은 간격 속에서 전체적인
상황을 다시 평가할 틈을 얻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적을 사이에 두고 저만치
떨어져있던 노대와 시선을 마주치면서 그의
상황평가는 확신을 얻었다.
'적기당은 오지 않는다.'
적들이 그들의 계획을 짐작하고 미리 적기당을
봉쇄(封鎖)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적기당이 배신했을 확률이 더욱 높지!'
어느 쪽이든 그들은 오지 않을 것이고 흑기당은
이곳을 홀로 빠져나가야 한다.
'최악이군!'
정말 최악의 상황이었다.
적(敵)은 삼백, 흑기당은 오십이다. 그리고 지금은
더욱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계획에 따라 빠져들었던 궁지(窮地)는 이제 처음
의도와는 달리 실제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여기가 무덤이 될 것인가?'
허탈하게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죽엇!!"
또 한 명의 구륜교도가 창을 찔러대었다.
"개자식아! 그 소리는 듣기 싫댔잖아!!"
대도오는 신경질적으로 소리지르며 다가오던 그의
목을 단칼에 날려버렸다.
아마도 창을 든 사내는 죽고 나서도 자신이 왜 욕을
먹어야 하는지 고민해야 했을 것이다.
또 하나의 목숨을 지옥으로 보내고 나서야 대도오의
몸 속에 분노, 혹은 죽음에 대한
혐오감(嫌惡感)이라고도 불리우는 힘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이 힘 덕택으로 그는 죽을 고비에서 살아난 것이 몇
번인지 몰랐다. 이 힘이 발동하면 지친 육신이 힘을
얻고, 갈갈이 찢겨진 집중력이 기사회생(起死回生)을
하며, 살갗 하나하나까지 퍼진 신경이 다시 기능을
하는 것이다.
"이야-합-!"
그 자신의 기합성도 그리 개성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까? 대도오는 오늘 처음으로 기합성을 지르며
광폭(狂暴)하게 칼을 휘둘러 길을 뚫었다.
노대는 아까전부터 계속 변변치 않은 상대를 데리고
싸우며 그 자리에 있었다.
대도오의 눈에는 그것이 상대를 데리고 노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얄밉다는 눈으로 노대를 보다가 좋은
생각이 났는지 그의 뒤로 바짝 붙었다.
휘잉!
대도오를 따른 사내가 거대한 감산도를 휘둘렀다.
대도오가 슬쩍 자리를 비키자 감산도는 노대의 등을
향해 내리쳐졌다. 호절에게 배운 보법이 이럴 때
도움이 되었다.
노대는 어이 없다는 눈으로 대도오를 보며 한 발을
내밀어 감산도를 휘두르는 사내의 낭심을 걷어차 날려
버렸다.
"자기 일을 남에게 미루다니 조장답지 못합니다."
대도오는 빙글빙글 웃었다.
"자기 일도 제대로 않는 조원에게는 일이
추가되어야 공평한 일이겠지!"
다시 한 자루 창이 배후를 찔러왔다.
대도오는 건들건들 피하고, 노대가 그 창을 잡아
지금까지 상대하던 자의 배에 찔러넣었다. 그리고
자신의 귀두도를 휘둘러 창을 빌려준 사내의 목을
쳤다.
"으아악-!"
처절한 비명이 울리는 그 틈에 대도오가 말했다.
"뚫고 나가야겠지?"
노대가 날이 무딘 귀두도를 버리고 옆에 구르는
얍상한 안령도(雁翎刀) 한 자루를 주워들었다.
"온 방향으로 다시 돌아가야 할 겁니다!"
대도오가 슬쩍 주변을 보더니 말했다.
"자넨 안당주를 데리고 그리 가게! 난 반대편이야!"
노대가 회의적(懷疑的)인 빛을 보였다.
"그 길은 어렵습니다."
"누가 가든 가야잖은가!"
그 말에 노대는 고개를 끄덕였다.
적진돌파(敵陣突破)는 한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원칙(原則)이지만 이 곳처럼 도망갈 길이
한정되어있는 곳에서는 두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이 한 방향으로 전력을 집중하는 것보다 살
확률이 높은 것이다. 그렇다면 길은 둘, 후퇴와
전진이다.
누가 가든 한 쪽은 전진을 해야 하는 것이다.
대도오는 그 전진 쪽을 택했다.
대도오가 다시 말했다.
"누가 살 지는 모르는 게지."
노대는 안소가 있는 방향을 보았다. 안소는 나환검
양류정과 호교사령 하나를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노대는 나무라도 하러가는 것처럼 손에 침을 뱉고
안령도를 비껴잡은 다음 안소를 향해 나아가며
대도오의 말을 긍정했다.
"그 말이 옳습니다."
길을 뚫는 것은 어려웠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적아(敵我)가 구분되지 않는 혼전 중이라 탈출은
오히려 쉬웠던 것이다.
대도오와 노대는 '이리로 가자' '뚫고 나가
탈출해야 한다'는 등의 말은 하지 않았다. 단지 먼저
구멍을 뚫고 앞서 나갔을 뿐이었다.
둑 안에 가득 고여있던 물이 터져나갈 길을 찾은
것처럼 흑기당원들은 그들을 따라서 두 방향으로 마구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그 서슬에 구륜교도들도 미처
물러서지 못하고 섞여버렸다.
서로 밀리고 밀어서 구륜교와 철기맹은 한 뭉터기가
되어서 싸움터의 양 방향으로 흘렀다.
교도들에게 밀려 안소를 놓친 양류정은 짜증스런
표정을 지으며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신경질적으로
내뱉었다.
"놔둬라! 죽을 시간이 좀 연장(延長)된 것 뿐이야!"
매봉옥은 지금까지 살아온 중에 가장 빠른
경공술(輕功術)을 발휘하고 있었다.
귓가로 스치는 바람이 칼날처럼 느껴지고, 두 눈에
비치는 기암과 괴석은 긴 그림자가 되어 그의 곁을
스칠 뿐 명확한 형태는 보이지도 않았다.
발 끝에 한 개 바위의 첨단(尖端)이 밟히고 그 순간
다시 발은 그 곳을 떠났다. 다음으로 매봉옥의 발이
밟는 곳은 십장이나 멀리 있는 또 하나의 바위였다.
길은 보이지도 않았고 볼 필요도 없었다. 그는
눈으로 임의(任意)의 두 점을 연결하고 그 길을 따라
일직선으로 달릴 뿐이었다.
누군가 그 모습을 보았다면 단지 독수리 한 마리가
낮게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고 했을 것이다.
'다시 혼자가 될 수는 없어!'
매봉옥은 속으로 부르짖고 있었다.
혼자라 느끼는 삶은 이미 지겹게 겪어 보았다. 아니
대도오가 조장으로 온 이후의 몇 달을 제외하면 그는
일생을 혼자라는 느낌을 안고 살아왔다.
매봉옥의 과거에는 거인(巨人)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 거인은 그에게서 아버지를 빼앗고 다시 어머니를
앗아가 버렸으며, 그가 원한 적이 없던, 그리고
앞으로도 원하지 않을 많은 것들을 주려했었다.
그는 매봉옥의 조부(祖父)였다.
조부는 그를 새장 속에 가두고 한 마리 독수리로
키우려 했지만 그는 차라리 자유로운 까마귀가 낫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지금 매봉옥이 여기 있게 된
것이다.
전면에 말의 머리처럼 생긴 거대한 검은 바위가
보였다. 그 뒤는 높은 암벽 틈으로 난 좁고 긴
길이었다.
"차-앗!"
매봉옥은 어두운 기억을 떨쳐버리려 한마디 우렁찬
기합성을 지르고 바위를 박차고 날아올라 암벽 틈으로
사라져갔다.
이 때의 그는 자기도 모르게 독수리를 닮고 있었다.
간신히 구륜교의 포위망을 뚫고 온 길을 다시 찾아
나가는 노대의 뒤에는 여덟 명 만이 따르고 있었다.
우습게도 흑기당의 영수급 인물들인 안소와 상학,
노종도가 거기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일개 하급무사가 쟁쟁한 당주와 부당주를 인도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우습지 않았다.
길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확신을 가지고 거침없이 길을
가는 사람이 유일한 의지처가 되는 것이다.
노대도 웃지 않았다. 그는 겉으로는 가야할 길을 다
아는 것처럼 의연하게 보이려 하고, 속으로는 이
위기를 뚫고 탈출하기 위해서 전 심기(心氣)를 다하고
있었다.
'다기망양(多崎亡羊)이라...'
길이 많으면 양을 잃는다는 뜻이었다.
'양은 어느 쪽이 될 것인가...'
그들이 양이 된다면 무사히 도망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미묘해서 적들이 양이
될 수도 있었다.
이 미로 속에서는 그들도 적도 서로의 위치를
짐작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끝을 알 수 없는 이런 길은 유리하게도 불리하게도
작용할 수 있다. 찾는 쪽도 힘들겠지만 도망가는 쪽이
더 힘들 것은 분명했다.
'의표(意表)를 찔러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그 때 대도오도 같은 생각을 하고있었다.
'의표를 찌르는 선택을 해야한다!'
보이는 것은 바위투성이, 길은 험난했다. 아니 아예
제대로 된 길은 보이지도 않았다.
'돌아가봐야 개정천은 배신자거나 죽어있을
것이다.'
만약 작전대로 하다가 적의 공격을 받아 오지
못했다면 개정천이 살아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살아있다면...
'그 땐 내 손으로 목을 비틀어 주겠다.'
대도오는 다짐을 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험난한 격전을 치른 탓인가, 뒤를 따르는 사람은
흑풍조의 화웅. 호절. 반효 밖에 없었다.
'그래도 처음 포위를 뚫을 땐 열댓 명은
되었는데...'
그만큼 포위는 두터웠고, 탈출은 어려웠던 것을
말해주는 것이리라.
훤히 뚫린 대로(大路)라면 모르지만 이런 험하고
좁은 바위틈은 화웅의 적성(適性)에 맞지 않았다.
첫댓글 즐감하고갑니다.~~~~
즐독^^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
감사해요
즐독^^
즐감
재미 있게 읽고 갑니다
항상 건강 하고 행복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