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녀(娼女)의 “사람 사랑”을 못 따르는 한국 정치인의 국민사랑 !!
창녀(娼女)는 돈을 받고 몸을 파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여자다.
역사 속에 창녀(娼女)에 대한 이야기는 많다.
“창녀문학(娼女文學)”이라는 장르(genre)가 있을 정도로 창녀(娼女) 소설도 많다.
구약성경에도 선지자(先知者) 호세아(Hoshea)편에 창녀(娼女)내용이 있다.
창녀(娼女) 소설 중에서 한국에서 많이 알려진 소설이
프랑스 소설가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Alexandre Dumas)의 작품인
“춘희(椿姫)”라 생각한다.
소설의 원 제목은
“La Dame aux Camélias(동백꽃을 들고 있는 여인)”이라 하였다.
뒤마(Dumas)는 소설 “몽테크리스토 백작”과 “삼총사”를 쓴
알렉상드르(Alexandre Dumas) 뒤마의 아들이다.
일본에서 이를 “춘희(つばきひめ椿姫)”라고 번역했다.
“참죽나무 여인”이라는 뜻이다.
“춘(椿)” 한자가 “참죽나무 춘” 자다
“춘(椿)”을 일본에서는 동백나무를 뜻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춘희(椿姫つばきひめ)를 그대로 받아들여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명백한 오역(誤譯)이다.
창녀의 역사는 오래 되었다.
고대 그리스에도 BC 6세기 아테네에 공창가(公娼街)가 있었다 한다.
기록에는
그리스 7 현인(七賢人) 중 한 명인 정치가이며 시인인 솔론(Solon)이
공창가(公娼街)를 조성했다고 한다.
그 때문에 솔론은 매춘제도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거지와 창녀와 천사”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어 요약(要約)하여 소개한다.
【30년 넘게 구걸하며 연명하는 걸인 총각이 있었다.
총각은 집에서도 버림받은 선천성 뇌성마비 환자였다.
그는 듣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는 생존을 위해 구걸 외에는 다른 일을 할 수 없었다.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목에 앉아서 하루 종일 구걸하면 5만원이 될 때도 있었다.
그러나 구걸한 돈은 있지만 허기진 배는 채울 수가 없었다.
음식점에 가면 바로 쫓겨났기 때문이다.
돈 내고 음식을 먹겠다고 해도 식당에서는 그에게 음식을 팔지 않았다.
이유는 온몸이 떨리고 뒤틀려서 수저로 밥을 먹어도 입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흘리는 게 더 많았기 때문이다.
식당에서는 총각의 더러운 모습이 손님들에게 거부감을 준다는 이유로
음식점에서 들어오지도 못하게 했다.
서럽고 배고픈 생활의 연속이었다.
겨우 비닐봉지에 싸인 빵으로 배를 채웠다
빵도 한 끼 두 끼다.
어려운 삶에서도 그는 기독교 신앙의 힘으로 버티었다.
항상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의 기적을 늘 기도했다.
그러나 총각의 간절한 신앙도 육체의 허기를 채워주지는 못했다.
자기를 향해 전부 문을 꼭꼭 닫아버린 세상에서
그가 찾아간 곳은 창녀촌이었다.
돈만 내면 문전박대하지 않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그는 창녀촌에 가서 그동안 모은 큰돈을 내고 비싼 음식들을 주문했다.
그리고 창녀에게 한 가지를 더 요구했다.
돈은 별도로 더 줄 테니 밥을 자신의 입에 떠 넣어 먹여 달라고 했다.
창녀가 음식을 차려 왔다.
그리고 걸인 총각에게 먹여주기 시작했다.
걸인은 평생 처음 받아본 인간다운 대접에 감격해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내가 밥을 먹다니 !
아!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인가 !
그리고
“병신인 나를 내쫓지 않고 맞아준 저 여인이야말로 정말 천사가 아닐까”
총각은 말했다.
“다…당신이 바…바로 처…천사요….”
창녀는 깜짝 놀랐다.
“천대와 손가락질만 받아오고 세상의 제일 밑바닥 인간인 나보고 천사라니!’
평생 처음 들어본 이 말에 창녀는 감격했다.
그 감격에 그녀 역시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녀는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총각걸인에게 말했다.
“창녀를 천사라고 말하는 당신이야말로 진짜 천사입니다!”
둘은 같이 울고 고백했다.
“당신은 나의 천사입니다!”
“당신이야말로 정말 나의 천사입니다!”
두 사람은 사랑을 키워갔다.
그리고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가정을 꾸몄다.
작은 가게를 열어서 장사하며 새 출발했다.
걸인은 이제 음식점에서 문전박대를 당하지 않는다.
매일 밥을 떠 먹여주는 아내가 있다.
이제 총각이 아닌 젊은이는 세상은 천국이라고 찬양한다.
창녀였던 아내도 이제는 세상의 수모를 당하지 않고도 살 수 있다.
남성들을 저주하는 삶이 진심으로 한 남자를 사랑하는 인생이 되었다.
하루하루가 기쁘고 감사했다.
그들을 이토록 새로운 삶을 준게 누구인가
걸인을 구한 것은 국가사회복지정책이 아니다.
그 요란한 자선단체도 아니다.
입만 열면 “천국이 너희 것이요” 하던 교회도 아니었다.
김수환 추기경 같은 교인 성직자도 아니었다.
바로 한사람 창녀였다 !
또한
창녀를 구한 것은 윤락방지법도 아니었다.
국가 여성가족부도 아니었다.
인생 상담자도 아니었다.
바로 온몸이 뒤틀린 지체부자유 총각걸인이었다.
인생은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고 감사하면서 살아갈 때 천국이다.
서로 미워하고 사는 삶은 천만금을 쌓아 놓아도 지옥이다.
그 삶에 진정한 행복과 소망이 있을 수 없다.
신약성경 누가복음 17장 20절~21절에 기록되어 있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물으니
예수께서 대답하기를
하나님의 나라는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 하나님의 나라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 하는 말도 거짓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마음속 안에 있느니라.》
천문학적인 연봉을 받는 대통령과 공직자들이여 !
그리고 권력을 가진 정치인들이여 !
국민은 지체부자유 총각처럼 밥을 입에 떠넣어달라고 하지 않는다.
공직자들은 죽을 때까지 국민의 세금으로 연금을 받기 때문에
최소한도 지체부자유 걸인 총각처럼 구걸할 염려는 없다.
그것은
창녀 대접도 못 받는 국민이 먹여 살리기 때문이다.
농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