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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내고향 풍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성철
#1. 지금, 가장 중요한 일
어느 한 신사가 어머니에게 보내드릴 꽃다발을 주문하기 위해서 꽃가게 앞에 차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한 소녀가 꽃가게 앞에 앉아 울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신사는 그 소녀에게 다가가 왜 우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소녀는 신사에게 대답했습니다.
"엄마에게 드릴 꽃을 사고 싶은데 제가 가지고 있는 돈은 저금통에 들어 있는 동전 몇 개가 전부라서요."
신사는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습니다.
"나랑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내가 꽃을 사줄게"
신사는 소녀를 데리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 소녀에게 꽃을 사주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어머니에게 드릴 꽃다발도 함께 주문하고, 배달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신사는 가게를 나오면서 소녀에게 집까지 태워다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소녀는 신사에게 정말 고맙다고 말하면서 길을 안내하였습니다.
그런데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뜻밖에도 공동묘지였습니다.
차에서 내린 소녀는 한 묘지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엄마' 하면서 꽃을 내려 놓았습니다.
이 소녀의 모습을 본 신사는 크게 깨달았습니다.
신사는 곧바로 꽃 가게로 돌아가서 어머니에게 보낼 꽃배달을 취소했습니다.
그리고는 가장 예쁜 꽃다발을 직접 사 들고나와 멀리 떨어져 있는 어머니의 집으로 갔습니다.
#2. 어머니의 비닐 목도리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시장 어귀에 줄줄이 늘어선 좌판들 틈에 어머니의 생선가게가 있습니다.
가게라지만 사실 바람막이 하나 없는 길목에 한 뼘도 안 되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좌판입니다.
어머니는 길거리에 생선박스를 내려놓고 오늘도 힘껏 소리치십니다.
어머니는 생선을 토막 내 손님들에게 팔았습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생선을 두어 상자씩 받아다 팔아 자식 다섯을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셨습니다.
"한 마리 사. 내 싸게 줄게. 고춧가루 팍팍 풀고 맛나게 끓여 드셔."
"아주머니 많이 파세요."
단골이 하나 둘씩 늘어났지만 궁색한 형편을 벗어날 순 없었습니다.
추운 겨울, 길거리에서 어머니를 따뜻하게 해 줄만한 것은 연탄의자 뿐이었습니다.
당신은 그렇게 변변한 외투 하나 없이 한데서 겨울을 나고 감기가 떨어질 새 없었지만, 자식들 앞에선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의 궁상맞은 나날을 지켜보는 게 끔찍이도 싫었던 나는 서둘러 결혼해서 집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를 오랫동안 찾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사느라 지쳐 정말 오랜만에 어머니를 찾아 갔던 날!
어머니는 오랜만에 찾아온 딸을 괘씸타 않으시고 기쁘게 맞아 주셨습니다.
"아이구, 이 추운 날 네가 워쩐 일이냐?"
그때 옆에서 지켜보던 아주머니가 한마디 거들었습니다.
"아따, 딸만 춥고 엄마는 천하장사감?"
"에이! 원 별소리를 다하네."
옆 가게 아주머니의 말씀에 어머니는 손을 휘휘 내저으며 화를 내셨습니다.
그 말에 처음으로 어머니의 옷차림을 찬찬히 뜯어본 나는 그만 목이 메었습니다.
"엄마~ 목에다 왜 비닐을?"
"니가 몰라서 그러지 바람 막는 덴 비닐이 최고다."
어머니는 생선을 담아 파는 비닐을 목에 더 단단히 묶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생활이 힘들다는 이유로 목도리 하나 사 드리지 못한 내가 부끄럽고 한심해 얼굴을 들 수 없었습니다.
나는 그 길로 가서 털 목도리를 하나 샀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달려가 털목도리를 둘러 드렸습니다.
“돈도 없는데 뭐 하러 이런 걸..."
그 작은 털목도리 하나에 어머니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습니다.
"엄마, 딸이 설마 목도리 하나 살 돈 없을까?"
그날 나는 생선비린내가 밴 어머니의 비닐 목도리를 손에 꼭 쥔 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사는 게 힘겨울 때마다, 좋은 집, 좋은 옷, 맛난 것이 그리울 때마다, 비닐 목도리를 꺼내보며 어머니를 생각해 봅니다.
#3. 믿음의 가치
한 남자가 시골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계산하려고 주머니를 뒤졌는데 지갑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식당 주인에게 말했다
"돈을 놔두고 나왔습니다.
한 시간 안에 돈을 가져와 지불해도 될까요?"
늙은 식당주인은 펄쩍 뛰었다.
돈을 당장 지불하지 않으면 신고하겠다고 외쳤다.
계속되는 실랑이를 바라보던 식당 웨이터는 주인에게 말했다.
"제가 보장하겠습니다. 지갑을 깜박하고 외출하는 건 있을 수 있는 일이죠. 제가 대신 내겠습니다. 이 분은 정직해 보입니다."
얼마 후 남자가 식당에 돌아와 주인에게 말했다.
"이 식당을 얼마에 팔겠오?"
주인은 욕심껏 말했다.
"3만 프랑이요."
그는 그 자리에서 3만 프랑을 주고 그 식당을 사서
"당신이 나를 믿어준 건, 3만 프랑보다 더 값진 일입니다."라고 말하며 웨이터에게 주었다.
그는 평복 차림으로 나왔던 나폴레옹 이었다.
우리도 모두에게 믿음을 주는 그런 인연이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4. 현관문 비밀번호가 같은 집 이야기
둘째 며느리 집에 갔다가
나는 가슴 따뜻한 며느리의 마음을 느꼈다.
아파트 현관문의 비밀번호가
우리집하고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 뒷동에 사는 큰아들네도
우리집하고 비밀번호를 똑같이 해놓았다.
엄마가 오면 언제라도 자유롭게
문을 열고 들어오라는 뜻이었다.
지금은 워낙 비밀번호 외울 게 많아
헤맬 수 있기 때문이리라.
그 이야기를 듣고 기분이 참 좋았는데,
작은아들네도 같은 번호를 쓰는 지는 몰랐었다.
그런데, 그 사소한 것이
나를 그렇게 마음 든든하게 만들었을까?
언제 내가 가더라도
마음 놓고 문을 열 수 있게 해놓은 것.
그 마음이 어느 것보다도 기분을 좋게 했다.
우스개 말로 요즘 아파트 이름이 어려운 영어로 돼 있는 게
시어머니가 못 찾아오게(?) 그랬다는 말이 있다.
설마 그러랴 만은 아주 헛말은 아닌 듯한 생각도 든다.
결혼한 아들네 집에 가는 일.
김치를 담가서도 그냥 경비실에 맡겨 두고 오는 것이
현명한 시어머니라는 말은 누가 만든 말일까?
그런데 엄마가 오실 때 그저 자연스럽게
엄마 사는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처럼
그렇게 오라고 만든 두 아들네 집 비밀번호.
그것만 생각하면 가지 않아도 마음 든든하고 편하다.
그건 두 아들의 마음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두 며느리의 배려가 아니었을까.
('행복이 전염되는 집'에서)
#5. 120만원의 인생 경험
지난 어느 날 영동고속도로 ○○휴게소.
"아저씨~ 아저씨, 잠깐만요."
한 중년 부인이 승용차 창문을 반쯤 내리고 부근에서 빗자루질하는 미화원 P씨를 불렀다.
P씨는 부인이 부르는 '아저씨'가 자신이란 걸 뒤늦게 알고 고개를 돌렸다.
"이거(일회용 종이컵) 어디에 버려요?"
"이리 주세요."
(그걸 몰라서 묻나? 쓰레기통까지 가기가 그렇게 귀찮은가?...)
P씨가 휴게소 미화원으로 일한 지 이 날로 꼭 한 달째다.
그런데도 아저씨란 호칭이 낯설다.
지난 27년 동안 신부님이란 소리만 듣고 살았기 때문이다.
안식년을 이용해 휴게소 미화원으로 취직해서 청소부가 된 P신부.
그는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12시간 동안 휴게소 광장을 다람쥐 쳇바퀴 돌 듯하며 빗자루질을 한다.
그의 신분을 아는 사람은 주변에 한 명도 없다.
기자의 기습에 깜짝 놀란 그는 "아무도 모르게 하는 일인데..." 하며 사람들 눈을 피해 어렵사리 말문을 열었다.
"사람들 사는 게 점점 힘들어 보여서 삶의 현장으로 나와 본 거예요.
난 신학교 출신이라 돈 벌어본 적도 없고 세상 물정에도 어두워요.
신자들이 어떻게 벌어서 자식들 공부시키고 집 장만하고 교무금을 내는지 알아야 하잖아요."
그는 세상에 나오자마자 소위 빽을 경험했다.
농공단지에 일자리를 알아보려고 갔는데 나이가 많아 받아주는 데가 없었다.
아는 사람이 힘을 써줘서 겨우 휴게소 미화원 자리를 얻기는 했지만, 사오정이니 오륙도니 하는 말이 우스갯소리가 아니란 걸 피부로 느꼈다.
그는 출근 첫날 빗자루를 내던지고 그만두려고 했다.
화장실 구역을 배정받았는데 허리 펴볼 틈도 없이 바쁘고 힘이 들었다.
대소변 묻은 변기 닦아내고, 발자국 난 바닥 걸레질하고, 담배 한 대 피우고 돌아오면 또 엉망이고…
그래도 일이 고달픈 건 견딜만 했지만, 사람들 멸시는 정말 마음이 아팠다!
어느 날, 한 여성이 커피 자판기 앞에서 구시렁거리며 불평을 했다.
무엇을 잘못 눌렀는지 커피가 걸쭉하게 나와 도저히 마실 수 없는 상태였다.
P신부는 휴게소 직원으로서 자신의 동전을 다시 넣고 제대로 된 커피를 뽑아 주었다.
그랬더니 그 여성이 "고마워요. 저건(걸쭉한 커피) 아저씨 드시면 되겠네"라며 돌아서는 게 아닌가?!
"제가 그 때 청소복이 아니라 신사복 차림이었다면 그 여성이 어떤 인사를 했을까요?
겉모습으로 사람을 평가하면 안 되죠."
P신부는 "그러고 보면 지난 27년 동안 사제복 옷 덕분에 분에 넘치는 인사와 대접을 받고 살았는지도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눈물 젖은(?) 호두과자도 먹어 보았다.
아침식사를 거르고 나왔는데 허기가 져서 도저히 빗자루질을 할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호두과자 한 봉지를 사들고 트럭 뒤에 쪼그려 앉아 몰래 먹었다.
손님들 앞에서 음식물 섭취와 흡연을 금지하는 근무규정 때문이다.
그의 한달 세전 월급은 120만원.
그는 "하루 12시간씩 청소하고 한 달에 120만원 받으면 많이 받는 거냐, 적게 받는 거냐?"고 기자에게 물었다.
또 "언젠가 신자가 사다 준 반팔티셔츠에 10만원 넘는 가격표가 붙어 있던데"라며 120만원의 가치를 따져 보았다.
이번엔 기자가 "신부님이 평범한 50대 중반 가장이라면 그 월급으로 생활할 수 있겠어요?"라고 물었다.
"내 씀씀이에 맞추면 도저히 계산을 못하겠네요.
그 수입으로는 평범한 가장이 아니라 쪼들리는 가장 밖에 안 될 것 같은데, 신자들은 그런데도 헌금에 교무금에 건축기금까지 낸다."며
"이제 신자들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P신부는 말했다.
그는 "그동안 강론대 에서 '사랑'을 입버릇처럼 얘기했는데 청소부로 일해 보니까 휴지는 휴지통에, 꽁초는 재떨이에 버리는 게 사랑임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면 누군가가 그걸 줍기 위해 허리를 굽혀야 합니다.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은 평범한 일입니다.
또 과시할 것도 없고, 누가 알아주기를 바랄 필요도 없죠.
시기질투도 없습니다.
그게 참사랑입니다."
그는 "신자들이 허리 굽혀 하는 인사만 받던 신부가 온종일 사람들 앞에서 허리 굽혀 휴지를 주우려니까 여간 힘든 게 아니다"며 웃었다.
그는 "퇴근하면 배고파서 허겁지겁 저녁식사 하고 곧바로 곯아 떨어진다."며
"본당에 돌아가면 그처럼 피곤하게 한 주일을 보내고 주일미사에 온 신자들에게 평화와 휴식같은 강론을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 날은 그의 마지막 근무일이다.
애초에 한 달 계획으로 들어왔다.
그는 낮은 자리에서의 한달 체험을 사치라고 말했다.
"난 오늘 여기 그만 두면 안도의 한숨을 돌리겠죠.
하지만 이곳이 생계 터전인 진짜 미화원이라면 절망의 한숨을 쉴 것입니다.
다시 일자리를 잡으려면 얼마나 힘들겠어요.
나도 빽 써서 들어왔는데.
그리고 가족들 생계는 당장 어떡하고...
그래서 사치스러운 체험이라는 거예요."
그는 인터뷰가 끝나자 곧바로 청소하는 일터로 뛰어갔다.
한 시간 가량 자리를 비운 게 마음에 걸려서 그런 것 같다.
미화반장한테 한소리 들었을지도 모른다.
쓸고, 닦고, 줍고… 몸을 깊숙이 숙인 채 고속도로 휴게소를 청소하는 P신부님.
그에게 빗자루질은 사제생활 27년 동안 알게 모르게 젖어든 타성에서 벗어나고 마음의 때를 씻어내려는 기도인지도 모른다.
*작고 못생긴 사과
http://cafe.naver.com/csleader7/462
*또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저물어 가는 2021호 열차에서 내리실 때는 나쁜 보따리는 다 버리시고,
건강 보따리, 사랑 보따리, 웃음 보따리, 행복 보따리... 등은 꼭 챙기셔서 다가오는 2022호 열차에 탑승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