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풍무(102)
"억? 아미타불!"
십팔나한승들은 일제히 불호를 읊었다. 다른 사람들도 아니고 중에
게 백번 하는 방법을 가르치다니. 일순 숨이 턱 막혔다.
"너무 좋아들하지 마 이 녀석들아. 입 찢어진다. 나 밥 먹을 테니까
먼지 한 톨이라도 날리면 알아서 해. 그 놈은 이렇게 만들어 준다."
쿵! 쿵!
전방을 향해 두 걸음 걸어나가며 백산은 오른 손과 왼손을 번갈아
내질렀다. 단순한 동작. 그러나 십팔나한의 시야 끝에서 벌어지는 상
황은 백산의 동작처럼 단순하지는 않았다.
과앙!
광!
일순 광자와 광오를 비롯한 십팔나한승은 저도 모르게 입을 쩍 벌렸
다.
오십 년 전, 새로 심은 두 그루의 나무를 가루로 만들어버린 붉은
기운은 소림절기의 하나인 백보신권(百步神拳)이었다.
자신들 또한 백보신권을 알고 있고 '공천답(空天畓) 승내기(昇內氣)
적지기(積地氣).'라는 백보신권의 요결을 깨우쳤다.
하지만 지금처럼 동시에 두 번의 백보신권을 펼치는 이는 아무도 없
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두 개의 붉은 기운이 동시에 나아갔음에도 불
구하고 왼손에서 뻗어나간 경력은 나무에 부딪친 지 한 참만에 터졌다
는 것이다.
"방금 시전한 무공을 두번신권이라고 한다! 뭐하냐 실시해라!"
"알겠습니다, 사숙!"
백산을 향해 일제히 머리를 숙인 십팔나한은 광자의 구령에 맞춰 바
닥 다지기를 시작했다.
백번신권의 의미를 비로소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건 백번신권이
아니라 연환백보신권이었다. 백번동안 끊임없이 펼칠 수 있는 무공.
"소림에 새로운 무공이 탄생했습니다. 사형!"
담 너머에서 백산과 십팔나한의 모습을 지켜보던 요정은 요인대사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백산에게 십팔나한을 맡긴 건 두 사람의 생각이었다. 십팔나한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쳐 달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어떤 일에 몰두하게 하여
과거의 아픔을 빨리 잊었으면 하는 마음에 십팔나한을 맡겼던 것이었
다.
그런데 그에 의해 새로운 소림 무공이 탄생하고 있다.
"사숙을 보면 문득문득 괴물 같다는 생각이 들어."
오십 년 전에도 그랬다. 누군가를 가르칠 때 백산은 절대 입으로 설
명하는 법이 없다. 먼저 몸이 깨닫게 한 다음 그 원리만 간단하게 설
명해준다. 어떻게 보면 참으로 무식한 방법이지만 무공을 익히는 속도
는 상상을 초월한다.
"살황시주도 무섭게 변하고 있습니다."
연무장 가운데로 밥상을 들고 가는 유몽을 가리키며 요정은 말했다.
그 또한 처음 소림사에 왔을 때와는 천양지차로 변하고 있다.
푹푹 빠지는 땅을 밟고 가는데도 그의 주변엔 먼지 한 톨 날리지 않
는다. 곁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심득을 쌓아가고 있는 것이다.
"참, 무당파와 세가 자제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
"사숙과는 달리 명상 중에 있습니다. 몸을 최상의 상태로 만들기 위
한 작업이지요. 사숙님과는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참! 오늘
밤에 회합을 가지기로 했습니다. 백의전(白衣殿)에서 새로운 정보를
알아냈다고 합니다."
무림문파의 성격이 강하고, 많은 부분이 세속과 관련되어 있다보니
소림도 여타 문파처럼 정보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그들이 바로 백의전 소속 무승(武僧)들이다.
간밤에 백의전으로 급한 소식이 전해왔던 것이었다.
"잘됐네, 각 세가의 인물들에게 사숙을 소개시켜야 하니까."
"들어가시죠."
연무장 가운데서 식사에 열중하고 있는 백산을 향해 싱긋 미소를 던
진 두 사람은 몸을 돌렸다.
하지만 백산의 십팔나한 훈련은 해가 져도 끝날 줄을 몰랐다. 가르
치는데 재미라도 들렸는지 하루 종일 땅일 파고 다시 다지기를 반복했
다.
백산과 십팔나한의 하는 양을 지켜보던 소림 승들은 연신 고개를 갸
웃거렸다. 십팔나한을 제외하고는 백산을 아는 이들이 거의 없었던 탓
도 있었지만 무공 수련을 하는 건지 장난을 치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난 들어가서 밥 먹고 올 테니까……."
"저희들은 계속하고 있겠습니다!"
십팔나한승은 일제히 우렁차게 소리를 질렀다. 신바람이 났다. 어느
순간부터 단전의 내기가 기묘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백산의 가르침대로 지면을 향해 발을 내뻗었을 뿐인데 단전으로부터
엄청난 힘이 위로 솟구쳐 올랐다.
손을 내뻗으면 전면으로 터져 나갈 것 같은 탄력을 간직한 내기였
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발을 디딜 때마다 같은 증상이 연이어
나타났다. 그제야 알았다. 백번신권이라 하였던 무공이 점점 틀을 잡
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그래도 함부로 싸면 안 된다. 내가 싸도 된다고 할 때까지는 참고
있어야 하다! 참아라! 오줌을 참으면 정력이 강해지고, 내기(內氣)의
분출을 참으면 내력이 강해진다!"
이상한 말로 십팔나한의 대열을 흩뜨려놓은 백산은 뒷짐을 진 채로
유유히 나한전을 빠져나왔다.
"주공! 꼭 그렇게 말해야 했습니까?"
곁에서 따르던 유몽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살수야, 머릿속에 박히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뭔지 아냐? 가장
좋아하는 거나 가장 싫어하는 걸 말해주면 된다."
"그래도 그렇지……."
"옷은 준비해 뒀냐?"
"예! 다림질까지 깔끔하게 해 두었습니다."
"참! 어디서 모인다고 했지?"
"방장실 옆에서 모인다고 했습니다."
"읊어봐라!"
"예! 남궁세가 인물은 이미 만나보았고, 하북팽가에서는 가주인 참
마도(斬魔刀) 팽월(彭月)과 신진십룡의 일인인 도파룡(刀破龍) 팽진원
(彭眞元)이 참가했고, 무당에서는 장문인인 현진자(玄眞子)와 무검(舞
劒)이란 인물입니다. 그리고 개방은 용개(龍 ) 호연작(鎬聯爵) 방주
와 후개 장중(張仲)이 왔습니다. 후개란 개방의 차기 방주를 말합니
다."
"실력은 어느 정도로 보이더냐?"
"무검(舞劒)을 제외한 나머지는 남궁창과 비슷한 경지였습니다. 제
가 봤을 땐 무검이 가장 강자로 보이더군요."
"쯧쯧! 병신들, 그렇게 당했으면 정신차리고 제대로 가르칠 일이지,
이제 강기( 氣) 경지가지고 놈들을 잘도 이기겠다."
"모든 걸 주공 입장에서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들이 아직 서른도 안
됐습니다. 그런 가문들이 아니라면 꿈도 꾸지 못하는 경집니다."
"그래서 하는 말이야 임마. 집에서 모든 지원을 다해줬잖아. 영약도
양껏 처먹였을 테고. 그런데도 이제 강기경기라면……. 관두자 관둬."
성가시다는 듯이 손사래를 친 백산은 방안으로 들어섰다. 그러면서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꾸만 광풍대원들과 비교하는 것도 버려야 할 습관 중의 하나다.
요정의 말마따나 그 녀석들은 천재였다. 아니 무공을 익히는 것으로
세상에 대한 한을 풀었던 놈들이다. 그들과, 좋은 환경에서 집안의 대
폭적인 지원을 받고 무공을 익히는 자들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인
게다.
유몽이 받아둔 물에 몸을 씻은 백산은 주하연이 만들어 주었던 옷을
걸치며 지나가는 말로 슬쩍 물었다.
"천괄 그녀석이 했던 말 다시 한번 읊어봐!"
"무슨……?"
일순 유몽은 의아한 얼굴로 백산을 쳐다보았다. 느닷없이 천괄이 왜
튀어나오는지 알 수가 없었던 탓이었다.
"그 우수 어쩌고 했던 말 있잖아 임마!"
"우수에 젖은 얼굴과 영롱한 피부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데……."
"지금 그렇게 보여?"
"……."
망연한 눈으로 백산을 바라보았다. 얼마 전에야 비로소 그를 확실히
알게 되었고 여든 정도 되었다는 말 역시나 의심 없이 믿었다.
여든. 일명 산수(傘壽)라고도 부른다. 그 연원에 대해선 모르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있다.
여든 된 부모가 돌아가신 집에 가보면 초상집 분위기가 나지 않는
다. 호상(好喪)이란 말로 부르고 있으니 무슨 말이 필요할까.
살만큼 살다가 저승으로 갔다는 말이다. 살만큼 산 사람, 그건 백산
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나쁜 놈들 봤나! 중이라는 것들이 상한 밥을 줘!"
백산을 빤히 쳐다보던 유몽은 문을 박차고 나가며 버럭 소리를 질렀
다.
"미친놈! 내가 없는 말했냐? 이 정도면 준수하다 못해 차고 넘치지.
그래서 하는 말이 있어 임마. 늙으면 지가 알아서 땅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말 말이다."
어느새 앞뜰에 서 있는 유몽을 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다시 한번 옷매무새를 단정히 추스른 백산은 낮게 헛기침을 하며 밖
으로 나왔다.
"턱을 당기고, 가슴을 편 다음 두 팔은 자연스럽게 내리고, 전면을
응시하면서 편하게 걸으라고 했겠다."
주하연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자세를 똑바로 한 백산은 잠자코 유몽
의 뒤를 따랐다.
잠시 후.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방장실 옆에 마련된 조그마한 건물 앞이었
다.
"살수야! 넌 그만 잠수해라."
"알겠습니다."
나직한 목소리와 함께 유몽의 신형이 조금씩 허공으로 녹아 들었다.
마치 먼지로 흩어지듯 다리부터 조금씩 사라져가던 유몽의 동체는
마침내 얼굴만 남았다.
"그런데 따라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내 새끼 내가 데리고 다닌다는데 누가 말려! 짜증나려고 하니까 우
중충한 상판때기 빨리 치워라!"
"주공! 제발 얼굴에 어울리는 말을 구사하십시오. 촉촉하고 우수가
어려봐야 뭐합니까. 입에서 나온 말은 죄다 시궁창 냄새 나는……."
쉬익!
픽!
붉은 기운을 머금은 주먹 하나가 허공을 가르자, 허공 중에 떠있던
유몽의 머리는 꺼지듯 사라져 버렸다.
"나쁜 놈!"
잠시 허공을 노려보던 백산은 이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턱을 당기고, 가슴을 편 다음……."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안으로 들어선 백산은 흠칫, 기이한 분위기에
몸을 떨었다.
커다란 탁자를 가운데 두고 앉아 있던 모두의 시선이 한곳을 주시하
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사제 마침 잘 왔네. 저게 무슨 해괴망측한 소린가?"
백산 앞으로 득달같이 달려온 무광은 창백한 얼굴로 소리쳤다.
"무슨……. 아-!"
의아한 얼굴을 하였던 백산은 이내 싱긋 미소를 물었다. 일순 실내
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에 감탄의 빛이 떠올랐다.
"살인적인 미소네."
용개(龍 )의 그 한마디는 일행의 심정을 대변했다. 백산의 미소는
눈이 부실 정도였다.
"험! 물건 달린 종자는 사양이니까 침흘리지 마시오, 용개(龍 ) 양
반!"
"컥! 얼굴은 송옥인데 입은 걸레라는 화황의 말이 맞습니다, 그려."
"허허! 어떤 염병할 종자가 이 귀광두를……. 혹시 누님이 그러셨습
니까?"
참으로 말은 점잖았다. 하지만 백산의 말을 곱씹어보면 화봉 남궁미
령을 향해 염병할 종자라고 한 거나 진배없었다.
더구나 누님이라니.
"사제! 그게 무슨 망발인가? 누님이라니!"
당혹한 얼굴로 소리를 지르는 무광대사의 얼굴에 진땀이 흘렀다.
"왜 그러십니까 사형. 그러게 매운 것 좀 작작 드십시오. 어이쿠 땀
좀 봐라. 그리고 누님이란 말은 제가 먼저 한 말이 아닙니다. 누님이
원해서 그렇게 된 겁니다. 안 그렇습니까, 누님!"
"맞아요. 내가 걸레 동생의 미남계에 넘어갔어요. 그런데 저 소리는
뭐지?"
별일 아니라는 듯 미소를 짓던 남궁미령의 얼굴이 대번에 굳어졌다.
쿵! 쿵! 쿵! 쿵!
"참아라! 그럼 강해진다.! 참으면 강해진다! 싸지 말고 참아라!"
바로 이 소리 때문이었다. 바닥을 다지는 듯한 발자국 소리와 광자
(廣子)의 목소리가 나한전 담을 넘어 일행의 귓전까지 들려온 것이었
다.
"저 소리 때문에 심기가 불편했군요. 살수야!"
"네, 주공!"
"허억!"
허공을 비집고 유몽의 얼굴이 불쑥 튀어나오자 여기저기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나한전에 가서 광자에게 전해라! 발자국 소리 때문에 회의 진행이
안 된다고. 소리를 죽이지 않으면 내일부터는 대가리에, 아니 마빡,
아니 머리가 반질반질하도록 광을 내준다고 해."
"그럼 지금보다 두 배로 힘들 텐데……. 그럼 입은 어떻게 할까요?"
"그건 참기 위해 지르는 소린데 냅둬야지."
"알겠습니다."
허공에 머물던 유몽의 얼굴과 함께 기척이 사라졌다.
"놀랍군, 극성에 달한 월영은둔술(月影隱遁術)을 익히고 있는 자가
있을 줄이야."
유몽의 모습을 좇던 용개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금방 살수녀석이 시전한 그게 극성이라고요?"
화들짝 놀란 백산은 남궁미령의 말에 대답해야한다는 사실도 잊고
말았다.
"제길, 그럼 월영은둔술인가 하는 것도 별 것 아니잖아. 애들만 빼
고 전부 알아차리는데, 그게 무슨 은신술이라고?"
남궁미령이 고개를 끄덕이자 백산은 볼멘소리를 했다.
"이 녀석아, 신이라도 여기 있는 이들을 속일 수 없어, 그나저나 조
금 전 물었던 건 대답 안 할 거냐?"
"그런가요? 대단한 무공은 아니고 백 번 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
고 있습니다."
일순 남궁미령을 제외한 모두는 허탈하다는 듯, 서로를 보았다. 다
른 사람들도 아니고 십팔나한을 상대로 무공을 가르친다 하여 대단한
거라도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백 번 하는 방법이라니.
"진각(震脚)을 가르치는 거더냐?"
"맞습니다. 편하게 살아서 그런지 중이라는 것들의 얼굴에 개기름이
번지르르해요. 북황련이나 남천벌 녀석들이 먹겠다고 달려들만 하더라
고요. 이번 기회에 기름기도 좀 빼고, 출렁이는 뱃살도 근육으로 만들
어 줘야겠습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잘읽었습니다
즐독.감사합니다.
즐독하였습니다
즐감합니다.
즐감하고 감니다
즐~~~~감!
즐독입니다
즐독 입니다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재미 있게 읽고 갑니다
항상 건강 하고 행복 하세요
감사 하고 사랑 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o^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