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제약회사 영업직,
저를 비롯해 인생 막장에 몰린 이들이 모였더군요
30살이던 이때 저는 기자를 처음 꿈꾸었습니다.
냉정히 계산해서 기자가 될 확률은 0%
토익이 뭔지, 기자가 되려면 뭘 공부해야는 지도 잘 몰랐습니다.
다만 벌레처럼 살 바엔 안 살고 만다는 마음만 있었습니다.
그나마 먹고 살 수는 있는 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서 무모한 도전을 했을때
겪을 최악의 경우를 상상했습니다.
밥 먹을 돈이 없어 공원 노숙자가 되는 상상 같은 것을요
그런 상황이 오더라도 오늘의 이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지
그 공포를 감당할 수 있는 지 끊임없이 되물었습니다.
그리고 한달의 고민 끝에 결국 박차고 나왔습니다.
모든 상상력을 동원해 극단적인 상황을 상정하고
그에 대한 각오를 굳히고 시작했음에도
그 후에 겪은 일은 그런 각오 따위를 훨씬 초월했습니다.
한계를 뛰어넘는 노력으로 스스로를 다듬어도
강철을 녹이고도 남을 열정이 차고 넘쳐도
솜털 만큼의 기회조차 주지 않는 세상,
너무나 도움이 절실해 나를 잡아줄 손을 찾지만
잡은 손은 죄다 나를 이용하고
적은 사방에 있으나 친구나 동지는 단 한명도 없는 현실,
무엇보다 무서운 건 세월이더군요
한두번의 고난은 싸워나가지만
그것이 긴 세월 이어져가면 결국
패기와 투지 각오할 것 없이 녹이 슬어버리고
열정은 재가 되며 희망은 꿈 꿀수조차 없게 됩니다.
몸도 마음도 꾸준한 절망에 철저한 만신창이가 됩니다.
내가 왜 이길을 선택했나 수도 없이 후회하다못해
그런 후회조차 지겨운 일이 되버렸을 무렵쯤
모든 것에서 완전한 의미의 체념이 비로소 가능해지더군요.
그렇게 6년이 지난 지금 저는 꿈을 이루었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했어도
도전하는 행위만은 계속했습니다.
꿈을 위해서도 아니고
열정이 남아서도 아니고
희망이 있어서도 아니었습니다.
그런 것은 애저녁에 사라진 지 오랩니다.
그저 습관이었기 때문입니다.
항상 해오던 것이니 안하기 뭣해서 했을 뿐입니다.
그러다가 결국 꿈이 이뤄졌습니다.
저를 살린 건 결국 습관이었네요
아무 의미 없고 대단할 것도 없는 그냥 습관....
제가 겪을 일을 미리 알았다면
저는 감히 이런 선택을 하지 못했을 겁니다.
꿈을 이룬 지금 너무 그 결실이 달콤하지만
그 과정은 그 이상으로 참담해
다시는 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스트 라는 영화 보셨나요?
마을에 낀 정체 불명의 안개 속에서 괴물들이 출현하고
결국 주인공들은 차를 타고 안개를 벗어나려 시도합니다.
하지만 기름이 떨어지고 차가 멈출 때까지 안개를 벗어나지 못하자
주인공은 자기 아들과 애인을 총으로 쏴죽이고 자신도 자살을 하려고 하죠
그런데 그 순간 안개가 걷힙니다.
저같이 승산이 희박한 상황에서 도전하려는 분들,
솔직히 말리고 싶습니다.
그래도 정히 하고 싶으시다면
일단 뛰어든 이상 절대 포기를 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열정이고 꿈이고 희망이고 다 사라지더라도
의미 없는 습관에 의지하더라도
차에 기름이 떨어지면 걸어서라도
안개를 벗어나기 위해 걷기를 멈추지 마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꼭 아랑에 합격후기를 써보고 싶었습니다. 긴 넋두리를 양해해주세요 (--)(__)
첫댓글 몇번을 읽습니다. 완벽하게 공감하면서요. 계속 도전하는 제가 징하고 싫었는데 말이죠. 정말 축하드려요.
웰컴. 후배 형님(추정). 그 과정이 궁금해지네요. 저도 술을 먹나, 야근하나 1년간 조금씩이라도 축구를 연습한 덕에 기자협회 축구대회 주전 출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ㅎㅎ(아직 확정은 아니지만ㅠ)
와 멋져요
정말 마음이 찡하네요.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는 입장에서 너무너무 많이 느끼고 가요.
글이 너무 담백하면서도 진솔하신거 같아요. 좋은 기자님이 되실 것 같아요. ^^
정말 마음이 찡하네요22 근데 전 제목만 보고 <꽃미남 수사대> 경찰들의 필수품 (수분)미스트를 떠올렸다는...ㅜ저질이네요 저.
감사합니다. 아직 좀 남은 것 같은데요, 남은 열정과 희망, 꿈이 다 떨어져도 해 보겠습니다.
감동적이네요. 박수를 보냅니다.
축하드려요~ 황혼기의 어르신들에게 한 설문 중 '자신이 살아오면서 가장 후회하는 것'의 1위는 '도전해보지 못한 자신'이라고 하더라구요. 그런 의미에서의 축하 겸입니다. 후훗.
만나고 싶어지는 분이군요.
일하고 있으면서도 이 글 보니, 울컥하고 왈칵하네요.
겸손하게 습관 이라고 말씀 하셨지만, 정말 쉽지 않거든요. 오로지 자신이 가야하는 길을 묵묵히 걸어오신 강한 의지에
박수와 부러움을 표하고 싶네요. 축하합니다.^^ 마른땅에 단비와도 같은 합격수기 였어요~
부럽습니다 그냥..
멋져요!!! 읽고 또 읽는 글이네요.
내 안의 연료가 떨어져 가는, 아궁이의 불씨가 조금씩 꺼져 가는 느낌에 많이 혼란스러웠는데... 그런 것이었군요... 멋진 분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