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크 비아노
99년 3승 3패 방 7.06 72.2이닝 59볼넷 37삼진
당시 캠프에 참가한 투수 중 최고기량을 뽐낸 정통파라는데-_- 당시 25세였던 비아노는 직구 최고구속 145㎞를 기록했다. 그러나 뚜껑을 열고보니 컨트롤에 문제가 있었고, 김성근 쌍방울에서 뛴다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을 것이다.
헨슬리 뮬렌
2천년 14경기 .196 1홈런 3타점 6볼넷 18삼진
네덜란드 국적의 흑인3루수 뮬렌의 본명은 묄렌스다. 지난 94∼96년 3년간 일본 지바 롯데와 야쿠르트에서 77홈런을 터뜨린 선수인데, 캐리어가 지나서 한국에 오니 중심이동이 매끄럽지 못하고, 넓은 한국 존에서 슬라이더를 쫓아다니기 바빴다. 3루 수비는 물흐르듯 부드러웠다. 구단 자금사정으로 계약금(3만달러)을 못받아 의욕도 별로 없었던 것 같다. 2천 시드니 올림픽에서 네덜란드 대표로 출전, 제법 활약했지만 정작 한국전에선 박석진에게 전타석 삼진을 먹었다.
타이론 혼즈
2천년 23경기 .317 1홈런 10타점 7볼넷 14삼진
본명은 타이론 혼인데, 발음상 편의를 위해 '혼즈'로...98년도 더블A에서 날라다니 흑인 좌타 외야수인데, 알고보니 더블 A죽돌이라 성적이 빼어났던 것이다. 생쥐같은 외모에 단타는 곧잘 뽑아주었는데, 사실 장타력은 별로 없었다. 단타만 치고도 우즈처럼 하늘에 손을 들어올리는 제스처를 취해 비아냥을 사기도 했다. 홈런 못치는 그에게 더 이상 볼 일은 없었다.
틸슨 브리또
2천년 SK.338 15홈런 70타점 31볼넷 55삼진
2001년 .320 22홈런 80타점 57볼넷 53삼진
2002년 삼성.283 25홈런 90타점 35볼넷 84삼진
2003년 .255 20홈런 58타점 31볼넷 58삼진
SK 와이번스가 처음 얻은 외국인 성공작이다. 뮬렌의 뒤를 이어 들어왔는데 유격수를 보면서 맹타를 휘둘렀다. 당시 강병철 감독이 '우리 팀 전력의 60%'라 할만큼 복덩이였다. 시즌 막판엔 타격왕에 도전했는데, 경쟁자인 현대 박종호가 타율관리를 위해 출장하지 않고 현대 투수 박장희가 브리또의 정강이에 공을 맞히는 술수를 써 아쉽게 타격왕을 놓쳤다. 밤에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울분을 삼키던 브리또는 결국 그 다음날 출국해버렸다.
처음 2년간 브리또의 활약은 환상적이었다. 유격수로선 정면타구 처리에 약점을 보여 실책이 다소 많았지만, 수준급의 어깨를 바탕으로 3유간 수비에서 강점을 보였다. 2002년엔 삼성에 건너가 좀 더 파워에 중점을 두며 활약한다. 그러나 작년엔 부진을 보이다가 무릎부상을 당해 후반에 탈퇴당했다. 올해 다시 SK와 계약했지만 예전같은 의욕과 실력이 나오지 않고있다.
하비 풀리엄
2천년 91경기 .267 16홈런 55타점 27볼넷 54삼진
67년 샌프란시스코생의 풀리엄은 91년에 캔자스시티에서 빅리그 데뷔를 했다. 6년간 통산 성적 .262 49안타 8홈런 22타점을 올린 후, 98~99 2년간 일본 오릭스로 건너가 2할대 후반 타율에 20홈런을 넘기는 준수한 활약을 펼친다.
2천년엔 SK와이번스에서 뛰게되는데 용병 3명 출전금지 조항때문에 빅터 콜이나오는 날이면 항상 브리또에게 밀려 출장기회가 적었다. 좌우존이 좁은 일본에 있다가 슬라이더가 많고 존이 넓은 한국에서 초반엔 고생을 했다. 괴물같은 파워는 아니었지만 괜찮은 외야수였다.
호세 에레라
2001년 SK .340 15홈런 63타점 15도루 24볼넷 53삼진
2002년 롯데 53경기 .305 6홈런 20타점 8볼넷 28삼진
에레라는 96시즌에 미국 메이저리그 오클랜드에서 108경기에 출장, 2할6푼9리의 타율을 기록한 타자다. 볼을 맞히는 재주가 뛰어나고 타격 페이스가 꾸준한 게 장점이지만, 볼넷을 거의 고르지않았다.
SK에 들어가 타격 4위에 오르는 고감도 스프레이 타격을 보였다. 발은 빠르지만 중견수로서 수비 판단은 조금 미흡하단 평가를 받기도했다. 다음 해엔 중도에 롯데에 들어와 결승타 5개를 때려냈는데, 백인천 감독이 외국인선수 필요 없다는 방침을 세우고 내보냈다. 한국서 3할 타율은 보장해주는 교타자였다.
페르난도 에르난데스
2001년 14승 13패 방 3.89 233.2이닝 148볼넷 215삼진
2002년 2승 방 2.82 44.2이닝 16볼넷 45삼진
날이 더우면 빡빡머리 콘헤드의 땀을 연신 훔치던 흑인투수를 기억하시는가. 파워피처 에르난데스는 초반 제구력에 난조를 보이며 엄청나게 볼넷을 내주고 많은 투구 수를 기록했다. 저러다가 어깨가 작살나던가 퇴출되던가 둘 중 하나라 보았는데, 시간이 지나며 적응력을보이며 많은 탈삼진을 뺏어냈다. 143~150KM에 이르는 강속구와 각도 큰 슬러브는 매우 치기 힘든 공이었다. 스태미너도좋아 강병철 감독의 혹사에도 불구하고 잘 버텨주었다. 강감독이 용병은 일단 믿고 써보자~는 주의여서 결국 후반기에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당시 투수부문 골든글러브는 신윤호(엘지)가 가져갔지만, 피칭내용은 SK 이승호 &에르난데스 콤비가 가장 뛰어났다. 2002년엔 컨트롤을 잡으며 순항을 하다가 손의 신경부분에 이상이 생겨 퇴출되었다. 역시 전년에 무리하긴 무리했었다... 가장 인상적인 외국인투수 중 하나다.
호세 페르난데스
2002년 .281 45홈런 107타점 49볼넷 114삼진
애너하임 산하 3A서 활약하던 3루수로 거포로 각광받았다. 시즌 초엔 적응에 어려움을 겪다가 중반부터 홈런포를 뿜어대기 시작했다.3루수비는 꾸준하고 나쁘진 않은데 실책은 많은 타입이었다. 이상하게 한국언론에선 질책을 많이 해댔는데, 좋은 타자였다. 시즌 종료 후엔 돈이 안맞아 이듬해 일본으로 진출해 지바 롯데에서 3할 30홈런 100타점을 넘겼고, 올해는 세이부의 주포로 활약하고 있다.
제프 잉글린
2002년 78경기 .282 6홈런 36타점 23볼넷 47삼진
러핀 퇴출 후 긴급수혈한 키작은 백인 좌익수로 처음엔 제법 잘쳐댔다. 홈런타자는 아니지만 중거리포로 어느 정도 쓸만했다. 그렇지만 임팩트는 없었고...소문으로 방귀를 잘 뀌어댔다고 한다.
쟈니 러핀
2002년 1승 방 2.60 17.1이닝 8피안타 7볼넷 18삼진
한때 콜로라도에서 활약하던 흑인 불펜투수로 타자들이 공략하기 힘든 다양한 변화구를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시범경기 145KM를 찍던 구속은 뭔가 부상이 생겼는지 개막 후 135 내외로 줄어들었다. 대신 떨어지는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을 구사했는데 타자들이 하나도 쳐내지못했다.
몸이 아파 퇴출되었는데 그 직전까지 변화구로 타자들을 솎아낸 요상한 경우다.
호세 카브레라
2004년
흑인 정통파투수로 144~150KM에 이르는 쾌속구를 뿌린다. 탄착군도 안정되어있고 체인지업,슬라이더를 구사해 현대 멜퀴 토레스와 비슷한 유형의 투구를한다. 직구가 위력적이라 큰 기대를 받았는데, 개막 후 잔부상을 당하고 구원진들이 난조를 보여 승 수를 별로 챙기지못하고 있다.
트래비스 스미스
2003년 7승 10패 방 4.20 152이닝 61볼넷 82삼진
안경잡이에 무척 체격이 작은 백인투수다. 178CM에 70KG대로 평균구속은 140KM초반 정도이며 커브, 슬라이더, 체인지업, 스플리터 등 변화구가 뛰어나다. 2002년엔 세인트루이스 산하 멤피스에서 2점대 초반의 방어율을 기록해 기교파 컨트롤러로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한국에서 낮은 공을 스트라잌 판정받지못해 은근히 고전했다. 무릎에 걸치는 공을 잘 던졌는데, 운이 없는 편이었다.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 한화와의 최종전에서 6이닝 2안타 무실점으로 역투해 막판 추격하던 한화를 떨어뜨렸고, 플레이오프에선 해태전에서 역투해 한국시리즈 진출의 공신이 되었다. 만약 스미스가 정규시즌 한화전에서 졌더라면 SK의 2002년 성적은 2위가 아닌, 5위가 되었을 것이다. 결국 올해 미국으로 건너가 스미스는 리치먼드에서 2점대 방어율을 찍고, 중반에 아틀랜타 빅리그로 올라와 활약하고 있다.
에디 디아즈
2003년 .285 22홈런 63타점 32볼넷 47삼진
키작은 베테랑 전천후 내야수, 유격수를 제외하곤 내야 전포지션을 본다. 일본 히로시마에 백업용 수비수로 들어왔다가 3년만에 3할 30홈런을 넘기며 일본 성공시대를 맞았던 친구다. 특출난 내야수가 없던 SK에 들어와 3루-2루, 그리고 1루를 맡아 송구력은 보통이지만 무난한 수비를 선보였다.
중간에 엘지 이승호의 직구에 정강이를 맞아 한 달 가까이 결장했지만 잘 회복했다. 타구를 좌중간으로 잡아당기는 재능이 좋았다. 올해는 중도에 한화와 계약해 활약 중이다.
한화
조엘 치멜리스
98년 .279 17홈런 63타점 29볼넷 58삼진
베네주엘라 출신으로 아마추어 시절엔 경력이 제법 화려했던 2루수/유격수다. 아마 시절 오마 비즈켈과 키스톤콤비를 했다는 얘기도...그럭저럭해주었다는 느낌이다.
마이크 부시
98년 .213 10홈런 28타점 16볼넷 81삼진
박찬호 경기때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만루포와 3루플라이 낙구로 한국팬에게 인상을남긴 197CM의 대형1루수다. 홈런왕이 될거라 떠들었지만, 모티베이션이 약해져 결국 중도에 떠났다. 키가 큰데 그에 맞는 침대를 제공하지 않는 등 구단의 대우에도 문제가 있었다.
제이 데이비스
99년 .328 30홈런 106타점 35도루 41볼넷 93삼진
2000년 .334 22홈런 80타점 22도루 25볼넷 92삼진
2001년 .335 30홈런 96타점 15도루 60볼넷 74삼진
2002년 .287 21홈런 72타점 14도루 46볼넷 97삼진
99년 3할, 30-30클럽 가입에 이어 2천년에도 3할(타격5위)에 20-20클럽 가입. 부상으로 30경기 가까이 결장하긴 했지만, 반대로 그러고도 이런 성적을 냈다는 것은 괄목할만 하다. 수비범위 5발자국 좌익수 이영우 때문에 좌중간도 많이 커버하는 폭넓은 수비를 펼치는 중견수다. 비록 초기엔 지나치게 공격적인 타격습관으로 볼넷으로 걸어나가기를 거부(?)한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자신의 공격력으로 이를 충분히 때워줄 수 있는 선수며, 최근엔 볼넷도 제법 얻고 있다.
아마도 국내 프로야구에서 뛰는 선수들 중 5-tool(타율, 파워, 주루, 수비, 어깨) 종합점수로 따져 빅 3안에 들 수 있을 것이다. 한화라는 비주류 구단에서 뛰고, 또 그냥 무난하게생긴 흑인이라 그런 것일까? 언론에선 그전까지 그다지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지않은 선수다. 강한 어깨를 소유한 중견수인데 간간이 판단미스를 범할 때가 있다. 물론 예상치않던 주자를 잡는 스페셜 플레이도 보여주며, 잡을 수 없는 타구를 잡는 듯한 페인트모션을 보이는 데는 국내 1인자다.
KFC의 오리지널 치킨다리를 좋아하고 다른 부위는 먹지않는다. 피부 색깔때문에 그런지 콜라/커피는 마시지않고 사이다를 즐긴다. 제일 좋아하는 곳은 버거킹인데 양파, 양상치, 토마토등 야채를 빼고 먹는다. 이 곳 음식이 미국과 제일 잘 맞는다나?
그리고 당연히 TGI 프라이데이, 토니 로마스, 베니건스 등 의 패밀리 레스토랑을 즐기는데, 대전엔 거의 없어서 서울 /대구 경기때 즐긴다고 한다. 다른 음료수로는 오렌지쥬스와 양주 말리부를 좋아한다.
댄 로마이어
99년 한화 .292 45홈런 109타점 74볼넷 100삼진
2천년 .296 29홈런 96타점 53볼넷 115삼진
2001년 엘지 60경기 .268 11홈런 47타점 25볼넷 50삼진
볼티모어의 칼 립켄 주니어와 흡사하게 배트를 뒤로 뉘이는 말많은 베테랑 백인 1루수다. 99년 그가 친 45홈런은 외국인타자 홈런 기록이다. 3A 베테랑답게 출중한 타격을 자랑했는데 베이스러닝도 공격적이었고 의욕이 좋았다. 다만 의욕이 지나쳐 선수/코칭스탭에까지 이런저런 충고를 해 코칭스탭과 관계가 나빴다. 조금 유연한 감독진과 있었다면 굉장히 멋진 선수로 알려졌을 것이다.
이승엽의 홈런타구를 데이비스가 걷어내자 대구관중이 오물을 던지며 난동을 부렸을 땐 1루측 관중들에게 가서 이러지말라고 호소하기도 한 의욕파다. 허나 스포츠신문의 반응은 '나서기 좋아하는 로마이어...'
관중들이 뭔 짓을 하든 자신에게 피해가 안가면 그만이라 생까는 대부분 선수들 대신, 외국인 선수가 폭력사태를 막기위해 관중들에게 진정해달라고 호소하는 것은 나서는 것이었다. 지금도 그다지 나아진 것은 아니지만, 그때 한국야구계는 외국인 선수들이 국내 리그에 연대감을 가질 거라는 의식을 하지못하던 때였다. 엘지로 건너가서는 김성근 감독의 눈밖에 나서 도중 퇴출당했는데, 어처구니없게도 당시 타점 1위를 달리고 있었다.
아모리 가르시아
2002년 .260 2홈런 8타점 4볼넷 20삼진
내야가 부실한 한화는 언제나 전천후 내야수를 원해왔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적응을 돕는데는 비협조적이었다. 그런 고로, 한화에서 성공한 외국인내야수는 없다. 가르시아는 시범경기서 빠른 발과 날카로운 타격으로 주목을 받았는데,개막전에서 발을 삐끗해버렸다.
관리를 해주어야 하는데, 코칭스탭이 계속 경기출전을 강행해 상태악화, 일찍 짐을 쌌다.
호라시오 에스트라다
2003년 1승 3패 방 4.71 36.1이닝 20볼넷 26삼진
베네주엘라 출신 좌투수로 삼성전서 퀄리티스타트를 하며 승리투수가 된 바 있다. 그러나 유승안감독이 미들맨으로도 써보며 실험을 하다가 피홈런 (8개)이 많은 게 탐탁찮은지 보내버렸다. 135~142KM로 빠른 공은 아니지만 체인지업 ,슬라이더가 좋은 기교파였다. 엘비라의 경우를 볼 때 꾸준히 선발로 쓰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데이빗 에반스
2001년 1패 방 13.50 5.1이닝 5볼넷 7삼진
첫 경기 삼성전에서 두들겨맞고 물러난 기교/제구력파 투수다. 다음 등판에선 삼진을 여럿 잡았다는데 쫓아냈다. 참 참을성없는 구단이다...
호세 누네스
2001년 2승 1패 4세 방 5.52 29.1이닝 7볼넷 19삼진
도미니카 출신의 경력파투수 누네스는 일본 다이에에서 릴리프로 활약한 바 있다. 직구는 138~145KM수준이며 슬라이더, 싱커로 적당히 맞춰잡는 유형이었다. 그러나 외국인 2인로스터를 쓰며 그들에게 큰 기대감을 거는 한국에선 좀 기대치가 부족한 친구였다. 적당히 막긴했지만 주자를 많이 출루시키는 게 흠.
그리고 부인 몰래 다른 여자를 데리고 들어와 한국에서 동거하다 본처가 이를 눈치채고 아파트를 급습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혼 소송이 무서웠던 누네스는 조강지처를 달래려고 미국을 오가다 구단에 피해만 잔뜩 입힌 채 퇴출됐다.
브랜든 리스
2001년 7승 7패 방 3.16 99.2이닝 59볼넷 62삼진
투수 못뽑기로 유명한 한화에서 배출한 첫 투수 성공작이다. 리스는 20대 중반에 플로리다 3A에서 활약한 슬라이더 투수인데, 중도에 합류해 예상 외로 안정된 모습을 보인다. 역회전공과 슬라이더를 잘 혼합해 특히 두산킬러로 떠올랐다.
실제로 두산에선 시즌 종료 후 리스를 잡으려 했는데 한화가 임의탈퇴시켜 구하지못하게 되었다. (두산은 대신 레스를 뽑는다) 스토브리그서 한화-두산 사이에 강인권:이도형 포수 트레이드가 있었는데, 한화가 두산에 강인권과 함께 5억원을 더 넘겨주었다. 아무리 이도형의 공격력이 강인권보다 뛰어나다 해도 상식적으론 이해할 수 없는 웃돈인데, 리스를 잡지 못한 두산에게 보내는 위로금을 포함했다고 필자는 추측하고 있다.
앙헬 페냐
2004년 .275 9홈런 27타점 23볼넷 30삼진
빅리그 경력이 있는 지명타자/포수. 허리사이즈 42인치에 달하는 뚱뗑이로 등록명은 엔젤이었다. 분명 힘은 있는 타자였는데 수비 위치를 맡기기 힘든 선수라 처음엔 3루에 넣다가 지명타자를 하다가, 1경기엔 포수로 나서기도 했다. 포수를 한다면 웃돈을 더 얹어달라는 요구를 하다가 미움을 샀고, 훈련에 빠지거나 이쑤시개를 물다가 유승안 감독의 분노를 사 퇴출당했다. 수비수로 써먹기가 어려운데 한화에서 그걸 감안하지 않은 경우다.
로베르토 메히아
2003년 30경기 .259 3홈런 13타점 2볼넷 23삼진
유격수/3루수를 보았던 타자. 굉장히 독특한 오픈스탠스 타격폼으로 화제에 올랐다. 얼마나 독특했는지 한 시인은 메히아를 언급한 시를 만들기도 했다.. 볼넷을 못고르고 삼진을 많이 당해 떠났다. 도대체 한화의 내야수 짝사랑과 변덕스런 결별은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
레닌 피코타
2002년 6승 6패 14세 방 3.51 102.2이닝 44볼넷 104삼진
2003년 3승 6패 15세 방 3.86 56이닝 19볼넷 43삼진
파나마 출신의 정통파투수. 외국인투수로선 드물게 포심만을 구사했다.143~150km에 이리는 직구를 주로 던지다가 드물게 슬라이더, 포크볼을 섞었다.
처음엔 선발투수로 쓰다가 신통치않자 마무리투수로 돌렸는데, 놀라운 것은 이 해 구원투수 전환 후 피코타가 기록한 방어율은 0.90이다. 거기다 그 기간 동안의 블로운세이브는 3번 안팎이다. 노장진이 승승장구하던 때지만 실제 이때 최고 마무리투수는 피코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다음 해는 박정진과 함께 합작 불쇼를 벌이며 한화팬들의 아쉬움을 샀다. 불펜에 좀 더 좋은 투수가 받쳐주었더라면 더 나은 모습을 보일 수 있는 친구였다. 쿠바 야구대회에서 파나마 대표로 출전, 김태균-이범호 등이 주축이 된 한국대표팀을 상대로 5이닝 2실점했다.
카를로스 차베스
2001년 방 3.38 8이닝 7볼넷 6삼진
이런 투수도 있었다. 마무리로 쓰려 데려왔는데, 잠깐 쓰다가 보내버린 것이다. 140초중반의 싱커를 구사하는 투수였는데, 당시 한화 포수 조경택이 빠른 싱커를 잘 못잡아 패스트볼/폭투가 나오자 쓰기 힘들다며 보낸 케이스.
브라이언 워렌
2001년 2승 1패 3세 방 4.30 14.2이닝 10볼넷 6삼진
워렌은 대만에서 피칭하다 98년 일본 지바 롯데에 들어와 99년 세이브왕을 차지했다. 140km초반의 구속에 제구가 정교하며, 커터와 싱커로 일본 타자들의 커트를 무력화하는 피칭을 했다. 매 경기, 매 아웃, 매 스트라잌마다 독특한 제스쳐를 취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때 지나친 오버액션으로 상대구단(세이부)과 몸싸움 직전까지 가는 상황을 연출한 적이 있다. 메이져리그의 터크 웬델(前메츠)를 연상시키는 선수. 한국에서 잠깐 피칭하다 어깨 부상으로 금방 해고되었다.
삼성
스캇 베이커
98년 15승 7패 방 4.13 172이닝 81볼넷 87삼진
베이커는 135~1백42㎞의 볼스피드와 너클커브, 체인지업을 구사하는 기교파좌투수다. 컨트롤과 스피드는 그다지 내세울 게 없었는데 각도 큰 너클커브 하나는 일품이었다. 본격적인 좌완변화구 투수를 거의 상대해보지 않은 한국타자들의 베이커의 커브에 혀를 내두를뿐이었고, 당시 팀동료 박동희도 그에게 너클커브를 배웠다.
그러나 한국 주심들이 걸치고 떨어지는 커브를 잘 잡아주지않아 상당한 불만을 가지기도 했다. 경기가 끝날때마다 여자를 요구하는 등 경기 외적으로 삼성구단에 속을 썩힌 선수이기도 하다.
호세 파라
98년 삼성 7승 8패 19세 방 3.67 95.2이닝 46볼넷 55삼진
2002년 한화 승 1패 4세 방 6.00 39이닝 21볼넷 32삼진
도미니카 출신으로 LA 다저스와 미네소타 트윈스 등에서 활동해온 파라는 최고구속 150㎞에 육박하는 정통파투수다. 변화구로는 슬라이더를 던지는데 구질 자체는 무척 단조로웠다. 삼성 시절의 성적은 어느정도 했지만 경기마다 불안한 모습이었다. 직구가 워낙 깔끔해 구속에 비해 잘 얻어맞는 편이었다. 나중에 한화에서 불러왔지만 다른 불펜투수 피코타에게 밀려 별 활약하지못했다.
빌리 홀
99년 .244 4홈런 23타점 47도루 34볼넷 68삼진
도루만으론 과연 이 선수를 따라올 자가 누가있을까? 당시 삼성팀 내 최고 구멍이었으면서도 달리기만큼은 누구에게 져본적이 없던 빌리 홀. 1루를 135번 밟았던 그는 47도루를 기록, 타율이 3할만 되었어도 이종범의 84도루 기록에 도전했을만큼 정말 야구선수인지 의문이 생길정도로 발만 빠른 선수였다. 다음 해 독립리그에선 100도루를 돌파-_-;
트라이아웃 당시 삼성 서정환 감독은 제이 데이비스를 1순위로 꼽고 지명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밤에 고민하다 코치를 불러 '유격수가 필요하니 빌리 홀을 뽑자'고 생각을 바꿨다. 만약 데이비스가 삼성에 갔으면 역사가 어떻게 바뀌었을까...
그러나 홀은 내야 수비에 문제를 보여 중견수로 뛰게 되었다. 영화 [메이저리그]에서 쌕쌕이로 이름난 선수(웨슬리 스나입스 역)가 2루에 있다가 번트 타구때 홈까지 파고들어 세이프된다. 영화의 한 장면이지만, 홀도 실제로 경기에서 그것을 해냈다^^
찰스 스미스
99년 삼성.287 40홈런 98타점 25볼넷 100삼진
2천년 삼성.274 20홈런 57타점
2천년 엘지.314 15홈런 43타점
스미스는 장타력은 있지만 정교한 맛이 떨어져 5월까지만 해도 전혀 한국투수의 공을 못치고 있었다. 5월 어느 경기서 주형광은 배불뚝이 삼진머신인 스미스를 상대로 높은 공을 가볍게 던지며 페이스를 조절하다가, 결국 높은 공을 홈런맞았다. 이 때부터 스미스의 페이스는 쭉 올라가 결국 40홈런을 쳐낸다. 타구스피드도 빠르고 좁은 대구구장을 홈으로 쓰고있어 그런지 방망이 끝에 맞은 타구도 슬쩍 펜스를 넘어가곤 했다..
2천년에도 좋은 페이스를 보였는데, 당시 삼성은 포스트시즌의 확실한 투수 카드를 위해 마이클 가르시아를 데려오면서 7월에 스미스를 퇴출시켜버린다. 당시 거포가 없던 엘지의 이광은 감독은 그를 영입했는데, 과연 넓은 잠실 구장에서 특유의 홈런포가 제대로 작동될 지 반신반의였다. 그것이 쓸데없는 걱정이었다는 것을 스미스는 성적으로 입증했다.
특히 LG가 플레이오프를 직행하느냐 마느냐를 결정짓는 시기였던 시즌 막판 LG가 쳐낸 홈런의 반 이상은 그의 방망이에서 나왔다. 실제 10월 들어 마지막 경기인 12일까지 LG의 7개의 홈런 중 스미스가 쳐낸 것이 5개다. 결국 포스트시즌의 해결사로 스미스가 분투했지만, 두산과의 플레이오프에서 승리가 확정적이었던 9회 2사, 이광은 감독은 호투하던 김용수를 빼고 장문석을 내보냈다. 그러나 장문석은 안경현에게 동점포를 허용한 후 역전패, 그 다음 경기도 두산에 져서 한국시리즈 코 앞에서 탈락했다.
훌리오 프랑코
2천년 .327 22홈런 110타점 63볼넷 86삼진
빅리그 16년 경력의 거물타자 훌리오 프랑코는 1982년 메이저리거가 된 후 통산 3할 1리의 타율에 141홈런, 981타점을 기록한 강타자. 1991년 텍사스에서 활약하며 3할 4푼 1리로 아메리칸리그 타격왕에 올랐고 90년에는 올스타전 MVP로 선정되기도 하는 등 교타자로 이름을 날렸다. 자기 스윙대로 무리없이 공을 치는 재주를 지닌 프랑코는 95년과 98년 일본 롯데에서도 활약하며 3할 타율에 골든글러브를 차지했고, 멕시칸리그에선 4할타격을 유지했다. 전반기엔 한국 리그 적응때문인지 땅볼안타 위주였지만 후반부터 점차 장타가 늘어났다. 선구안도 좋았으며, 일본 롯데에선 주장을 맡을 정도로 통솔력과 책임감이 뛰어나, 술/담배에 몸관리 게을리하는 선수들에게 따끔히 충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에선 1루와 2루를 보았는데, 당시 삼성엔 내야 자리가 가득 차 있어 처음 보는 우익수로 뛰면서 어쩔 수없이 어설픈 수비를 보였다. 당시 삼성의 외야는 프랑코-김기태-김종훈으로 이어지는 엽기라인이었다-_-;
또한 한국 심판들의 일관성 없는 판정과 대우에 불만을 품고 탈퇴한 후엔 한국리그의 문제점을 동료들에게 널리 퍼뜨렸다고한다. 실제로는 57년생으로 만 43세에 그런 활약을 했던 셈이다. 현재도 아틀랜타에서 1루수로 뛰고있다.
마이클 가르시아
2천년 2승 5패 방 2.91 55.2이닝 23볼넷 34삼진
포스트시즌의 비밀병기로 데려온 가르시아는 대만리그 다승왕 출신의 싱커투수다. 140~147km에 이르는 빠른 싱커에 타자 앞에서 수직으로 떨어지는 스플리터와 스리쿼터폼으로 던지는큰 각도의 슬라이더는 국내선수들이 좀처럼 치기 힘든 까다로운 구질이었다. 처음엔 해설자들이 가르시아 공이 힘없어 툭툭 떨어진다 했지만, 그건 싱커였다...
시즌 막판엔 상대 에이스들과 맞붙으며 패전을 기록했지만 내용은 좋았다. 그의 진가가 드러난 것은 롯데와의 포스트시즌 대결에서다. 당시 삼성킬러였던 박석진과의 맞대결에서 가르시아는 스플리터의 진수를 보여주며 8이닝 동안 롯데 타선을 2안타 무실점으로 틀어막아 롯데를 꺾었다.
매니 마르티네스
2001년 삼성.278 25홈런 96타점 50볼넷 79삼진 28도루
2002년 엘지.279 15홈런 69타점 49볼넷 70삼진 22도루
2003년 엘지.273 17홈런 70타점 53볼넷 67삼진 27도루
삼성 마르티네스는 해태戰서 용병 첫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한 타자다. 처음엔 1번 쌕쌕이 역할을 하라고 데려왔는데, 대구구장을 홈으로 해서 그런지 생각 외의 장타력을 보이며 중간부턴 클린업타선에 들어갔다. 20홈런-20도루를 첫 해 기록한 마르티네스는 삼성에서 해고통보 받은 후 엘지에 입단한다.그러나 2002년 개막전 당일 덕아웃에서 그물망 사이로 팬들에게 사인해주던 마르티네스는 그만 찢겨진 그물망에 천금같은 오른손바닥을 찢기는 부상을 당해 개막 한달을 쉬는 사고를 당했다.
2002시즌 LG 최초의 말썽꾼으로 시즌을 출발했던 마르티네스는 반년이 지난 준플레이오프 현대와의 첫 경기에서 5회 김수경에게 수원구장 왼쪽담장 너머로 날려버린 역전 결승 그랜드슬램을 날렸다. 그 해 주자가 있을 때 타율은 3할2푼8리에 달해 팀에서 김재현(0.357) 다음으로 높았다. 흡족한 4번 타자는 못됐지만, 엄연히 팀을 4강에 밀어올린 중심 타자다. 잠실구장을 흠으로 해선 적당하게 홈런/타점 거품이 빠졌다. 중견수로서 의욕이 넘쳐 간간이 에러를 범하긴 했지만 강한 어깨와 정확한 송구, 포구 후 송구동작이 민첩해 훌륭한 저격수로 이름을 날렸다. 특히 첫해엔 마땅한 외야수가 없던 삼성의 중견수로, 2002년엔 부상당한 김재현의 자리를, 2003년 이병규의 부상공백을 잘 메꿔주었다. 성적을 보면 참 기복이 없었던 선수다.
벤 리베라
2천년 6승 3패 21세 방 2.62 58.1이닝 33볼넷 63삼진
리베라는 98,99시즌에는 일본 한신타이거스에서 뛰면서 특급소방수로서 위력을 발휘했었다. 2m의 그가 던지는 공은 2층에서 던지는 공이라는 별명을 얻었을 만큼 위력적이었다. 삼성의 소방수로 시즌 초 뛰어난 활약을 보였는데, 시범경기 150km에 이르던 구속이 개막 후 140내외로 줄어들었다. 허리에 이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설상가상으로 김응용감독이 7,8회만 되면 리베라를 불러내 부상이 더 악화되었다. 구속은 130 중후반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그런데도 스피드뿐만 아니라 원체 제구력과 슬라이더가 좋아서 타자들이 잘 공략하지 못했다. 단, 외국인타자들에겐 약한 모습을 보였다. 결국 전반기에 58이닝을 던지고 난 후 건강 악화로 퇴출되었다. 다친 선수에게 뽕을 뽑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써먹었다.
카를로스 바에르가
2001년 39경기 .275 4홈런 17타점 6볼넷 12삼진
1990년 클리블랜드에서 데뷔한 스위치 2루수 바에르가는 클리블랜드에서 3번이나 메이저리그 올스타로 뽑혔던 거물이다. 메이저리그 통산 10년동안 타율 .291, 124홈런, 686타점을 기록한 바있다. 2001년엔 독립리그인 애틀랜틱리그의 롱 아일랜드 덕스에서 52경기에 출전, 타율 .315, 9홈런을 기록하다가 중간에 삼성에 합류했다.
당시 삼성은 2루 정경배가 부상을 당해 그 공백을 메워보려 한건데, 아다리가 맞지않는지 바에르가 입단 후에 정경배가 빨리 회복해 실전에 나섰다. 언론에선 바에르가가 태업을 했다 하는데, 막상 정경배와 겹쳐서 교대로 나오다보니 적응할 기회가 많지않았다. 부상선수 대체를 위해 데려왔는데, 부상선수가 일찍 회복해 겹쳐버린 황당한 케이스다.
살로몬 토레스
2001년 2패 방 20.25 5.1이닝 10볼넷 5삼진
선동열氏가 삼성에 이 친구를 권유하면서 무조건 3년 이상의 다년계약을 하라했었다...구위만 보면 그렇겠지만, 초반 부상으로 나오지못해 김응용감독의 애간장을 태우다가 단 2경기만 등판하고 떠나갔다.
필자는 이 2경기를 모두 보았는데, 구위 하나만은 지금까지 본 용병 중 최고급이었다.
평균구속 144~149km, 메이저 스카우팅 리포트엔 '직구 밖에 못던진다 '써 있었지만 이닝을 지나며 간간이 구사했던 슬라이더, 커브의 각을 보고 포커페이스 김응용감독이 잠깐이나마 씩~웃을 정도였다. 역시 문제는...정신적 공황이었다. 분명 빅리그 미들맨중에서도 중상급의 구위를 지녔으면서도 빅리그를 떠난 것은 정신적문제가 크다는 의미로, 몬트리올 시절 중남미선수들의 대부인 펠리페 알루감독마저 그를 치료하는데 실패한 바 있다.
바깥쪽 공을 박경완이 받아쳐 만루홈런을 만들자, 그 다음엔 제 정신 아닌듯 공이 엉망이 되어 일찍 강판당했다. 부상기간 주엔 치어리더 꽁무니만 쳐다보며 실실거렸던 친구다. 후엔 피츠버그로 진출해 점차 나아진 모습을 보여 불펜요원으로 자리잡았으며, 새미 소사(컵스)의 헬멧을 부수는 강력한 빈볼을 던져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브론스웰 패트릭
2002년 5승 7패 방 5.96 77이닝 25볼넷 45삼진
직구 구속은 136~143km. 슬라이더,포크볼,싱커를 이용해 땅볼을 유도하는 흑인투수다. 멕시칸리그 성적은 엄청 좋았는데, 한국에 와선 피안타가 많았다. 초반 부진하자 김응용감독은 그를 4,5회에 종종 강판시키곤 했는데, 참 어중간했다. 믿고 맡기긴 그렇고, 그렇다고 일찍 무너지는 건 아니고...
캐리어가 있었던 투수니만큼 길게 끌면서 믿어보는게 어땠을까도 생각해본다. 패트릭 왈 던질 만하면 강판시킨다고 불만..
발비노 갈베스
2001년 10승 4패 방 2.47 116.2이닝 42볼넷 85삼진
갈베스의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의 5년간의 성적은 다음과 같다.
1996년 : 16승 6패, 203.2 이닝, 방어율 3.05, 완투 12
1997년 : 12승 12패, 192.2 이닝, 방어율 3.32, 완투 8
1998년 : 9승 7패, 137 이닝, 방어율 3.21
1999년 : 9승 12패, 187 이닝, 방어율 3.66, 완투 7
2000년 : 0승 6패, 30. 1이닝, 방어율 3. 26
* 통 산 : 46승 43패, 749.1이닝, 방어율 3. 31, 완투 27
갈베스는 일본에서 선발투수로서 통산 방어율 3점대 초반을 기록했고, 많은 완투경기를 펼치며 높은 팀 공헌도를 자랑했다.
일본에서의 마지막 시즌이었던 2000년에 비록 6연패를 당했지만, 그 때까지의 방어율 3. 26은 그가 얼마나 불운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일본서 심판에게 위협구를 던진 사건으로 일본야구계에선 악동취급을 받았다 (갈베스를 싫어한 팀동료들이 일부러 에러를 했다고한다. 갈베스를 좋아한 사람은 당시 감독인 나가시마씨뿐이었다.)
그는 실력은 출중했지만 심판과의 불편한 관계,팀워크 문제 등 실력 외적인 요인에서 문제를 드러냈었다.
갈베스는 지금까지 한국프로야구에 진출한 용병투수 중에서 가장 좋은 기량을 갖춘 투수였다. 김응용감독이 그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고 애지중지한 것도 플러스로 작용했다. 당시 선발 방어율 1위인 sk 이승호가 3.50이었는데 규정이닝 미만이지만 2.47의 방어율을 기록했다는 건 리그를 갖고 놀았다는 뜻이다.
143~149km에 이르는 직구와 슬라이더, 스플리터, 그리고 역회전볼을 적절하게 섞어 던지며, 제구력도 정교했다. 그런데 일본서 심판위협구 사건이 지나치게 널리 알려지며 갈베스가 조금만 몸쪽으로 던지거나 몸에 맞춰도 과민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악동취급 받던 선수가 리그를 갖고노는 모습도 한국야구판으로선 시기와 질시가 날만도 했다. 결국 일부 심판은 갈베스의 스트라잌을 잡아주지 않기도 했다. 그리고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어깨 이상이 생긴 갈베스는 고국에 돌아가 상당기간 연락이 끊겨 양치기 갈베스란 비난을 받고, 결국 한국시리즈에서 부진했다.
나르시소 엘비라
2002년 13승 6패 방 2.50 137이닝 56볼넷 111삼진
2003년 1승 1패 방 7.06 21.2이닝 16볼넷 21삼진
멕시코 출신의 노장 좌투수 엘비라는 중도에 들어와 삼성의 우승 청부사로 맹활약했다. 일본 긴데츠 시절 세이부전서 노히트노런을 세운 기록이 있지만, 당시는 중간계투로 돌며 성적을 올릴 기회가 없었다. 구속은 135~143km정도로 보통이지만 슬라이더, 슬로커브, 체인지업 등 다양한 변화구와 제구력이 뛰어났다.
시즌 중 장마로 경기순연이 될 때 삼성은 4일 간격으로 임창용-엘비라 원투펀치를 출격시키는 승부수를 걸었고, 이 덕에 삼성은 정규시즌 1위를차지했다. 엘비라는 외국인투수 첫 방어율 1위에 올랐다. 좋은 투수긴 했지만 한국타자들이 지나치게 왼손 기교파투수에게 약점을 보였다. 다음 해는초반 부진하자 퇴출당했다.
라이언 글린
2003년 1승 3패 1세 방 5.02 57.1이닝 16볼넷 28삼진
퇴출된 엘비라의 대체 용병으로 등록명은 '라이언'이다. 계약조건은 이적료 7만 5000달러에 잔여시즌 연봉 10만 달러(5개월). 빠른 공이 주무기인 글린은 그 해 애틀랜타 산하 트리플A 리치먼드에서 뛰면서 16경기에 나와 6승 5패(방어율 2.91)를 기록했다. 첫 등판에는 140 중후반의 빠르고 정확한 직구에 주심이 '지금껏 본 외국인투수 중 최고다' 찬사했지만 그 이후 제법 얻어맞기 시작했다. 슬라이더를 던졌는데 구질은 비교적 단조로웠다. 그러나 직구가 빠르고 컨트롤이 탄착군이 정환하긴 했다. 좀 더 신뢰했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은 든다.
트로이 오리어리
2004년
빅리그 보스턴에서 활약한 왼손 중거리 외야수. 현재는 빅리그 캐리어가 지난 선수라 기량이 떨어졌지만, 삼성은 옛날 성적만 보고 영입했다. 결국 풀타임 빅리거에게 종종 볼 수있듯 한국 적응력문제를 드러내며 스프링캠프때 미국으로 출국했다가, 아버지에게 꾸지람을 듣고 한국에 되돌아왔다.
개막 후 지방구장에서 10홈런을 일찌감치 쳐냈으나 결국 그게 끝이었다. 적당히 볼을 고르고 적당히 쳤지만 득점권타율이 1할5푼대로 규정타자 중 가장 낮고 파워가 없었다. 6월까지 버틴 이유는 삼성선수들에게 방망이를 몇십자루 돌리고 김응용감독에게 골프채를 사줬으며, 직원들에겐 수고비로 달러를 주는 등 뇌물(?)공세가 좋았다는 얘기가 있다.
케빈 호지스
2004년
2002년 일본 야쿠르트에서 17승 다승왕을 차지한 195CM의 장신 싱커피처다. 스리쿼터폼에서 140~145KM에 이르는 싱커와 슬라이더를 구사하는데 컨트롤은 별로고 볼넷이 많은 편이다. 그러나 우타자 몸쪽으로 파고드는 싱커 하나는 위력적이며 땅볼을 잘 유도한다. 폭투가 많은 유형이라 블로킹이 좋은 포수를 필요로 하는데, 진갑용과는 호흡이 잘 맞지않아 시즌 초 패전을 당하며 퇴출 위기에 몰렸다. 그러나 현재윤이 마스크를 쓴 후 5월부터는 거의 매경기 퀄리티스타트에 성공하면서 적응하고 있다.
롯데
덕 브래디
98년 .258 3홈런 6타점 6볼넷 30삼진
우투좌타의 백인유격수로 스마트한 만능형선수로 기대받았지만...한국에 전혀 적응 못해 밥에 물을 말아먹기도 했다. 보다 못한 구단관계자가 스테이크를 사준날 홈런을 터뜨렸다-_- 역시 외인선수는 적응이 가장 중요~
펠릭스 호세
99년 .327 36홈런 122타점 12도루 79볼넷 119삼진
2001년 .335 36홈런 102타점 127볼넷 72삼진
99년 롯데를 포스트시즌으로 이끈 스위치 외야수 호세는 그 해 삼성과의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임창용으로부터 끝내기 3점홈런을 터뜨리는 등 맹활약을 펼쳤고, 2001년에도 타율 3할3푼5리에 36홈런을 기록한 강타자다. 그러나 지난 99년 삼성과의 플레이오프 7차전에서 오물이 날아온 관중석에 배트를 던지고 2001년 9월 삼성전에서는 빈볼을 던진 배영수를 폭행한 뒤, 시즌 후 롯데 및 미국 마이너리그와 이중계약으로 물의를 빚어 제한선수로 묶였었다.
그가 2년간 보여준 성적은 MVP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으며, 카리스마가 대단해 부산팬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특히 그전엔 좌투수에 다소 약한면을 보였으나, 2001년엔 좌투수 상대로도 맹타를 휘둘렀다. 그리고 입기 편하고 롯데팀의 하의와 색깔이 같다며 전에 뛰던 양키즈 하의를 입고 경기했다^^
폭력적인 이미지로 남아있으나, 실제 99년 대구관중이 그의 급소에 물병을 맞힌 일은 누구라도 격분할 일이고, 2001년의 배영수 폭행도 연이은 빈볼에 대한반발이라 볼 수 있다.
부산 환락가에서 러시아 여성들과 노는 밤의 황제란 이미지도 강한데, 실제론 술은 거의 안마시고 다음날 가장 먼저 야구장에 나와 연습하는 선수였다고 한다. 호프집에서 사인회를 하다가 어린이들이 문틈으로 들여다보자 아이들도 들어오라하고 다 사인해주었다^^
마이클 길포일
99년 1세 방 13.50 6이닝 4볼넷 3삼진
기교파 좌투수인 길포일은 빠르지는 않지만 제구력과 슬라이더가 쓸만했다. 그러나 그 이상의 공과 위압감은 없어 떨려났다. 김홍집을 연상케하는 투수였다.
에밀리아노 기론
99년 5승 1패 2세 방 3.30 73.2이닝 33볼넷 57삼진
2천년 10승 8패 방 5.01 169이닝 85볼넷 134삼진
2001년 4승 2패 방 5.48 47.2이닝 30볼넷 42삼진
2003년 3승 3패 1세 방 4.59 64.2이닝 31볼넷 49삼진
기론은 처음엔 호세 말동무(실제론 시다바리)하라고 큰 기대없이 데려온 불펜투수였다. 독립리그 출신이며 컨트롤은 들쭉날쭉한데 체인지업 하나로 삼진을 잡으며 버티는 식의 투수다. 99년 당시만 해도 국내타자들에겐 생소했던 마법의 서클체인지업으로 포스트시즌의 고무팔이 되었던 이 깡마른 친구의 직구 평균구속은 135~140km초반대에 불과했다. 그러나 타자들에게 있어서 스피드감이 무척 좋은 친구였다. 특히 장타자들에게 헛스윙을 유도하는 높은 공 (라이징 패스트볼)은 턱도 없어 보이는데 타자들의 방망이가 나가 삼진을 뺏곤 했다.
기론의 긴 팔에서 나오는 특이한 릴리즈포인트가 시야에 착각을 일으켰고, 실제로 측정스피드에 비해 종속이 좋았다. (140을 던지는 보통 투수들의 종속이 120후반일 때, 기론은 같은 스피드에 130초반의 종속이 나왔다)
체인지업밖에 없다 알려져있지만, 그가 간간이 구사하는 각도 큰 커브도 낙차가 상당히 컸다. 99년 포스트시즌 17승투수 문동환이 이상하게도 부진을 보이며 조기 강판되면, 어김없이 롱맨으로 나와 한국시리즈 진출의 견인차가 되었다. 2천년엔 선발로 나와 컨트롤이 불안정했지만 어쨌든 10승투수가 되었다.
2001년에 비극은 시작되었으니... 직구 스피드를 늘린다고 열심히 훈련해 직구구속은 140~147km대까지 늘어났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팔꿈치에 실금이 가는 부상이 생겨 재활한답시고 하다가 계속 등판을 못하게 된다.
작년엔 중간에 한화에 들어와 적당히 활약하기도 했다.
훌리안 얀
2001년 .270 17홈런 62타점 52볼넷 88삼진
멕시칸리그 홈런왕출신의 얀은 파워와 정확도를 겸비한 것으로 평가받았지만 실제 실력은 아직 미지수였다. 2M에 육박하는 큰 키에 바짝 마른 체구, 주름이 가득한 시커먼 얼굴을 보면 도저히 30대 중반으론 믿기지않고, 분명 40이 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롯데에선 1루를 보았는데, 땅볼타구 처리엔 문제를 보였지만 키가 크고 팔다리가 엄청 길어(기린이었다-_-)내야수들의 높은 악송구를 척척 걷어내었다. (신경식 저리가라였다...)
한국의 볼배합에 애를 먹다가 시즌 초 잠실좌중간 펜스 맨상단에 꽂히는 대형홈런을 2발 작렬한다. 그러나 꾸준히 쳐내지못해 결국 인상적인 활약은 펼치지 못했다.
레이 데이비스
201년 1승 5패 방 5.36 50.1이닝 40볼넷 32삼진
중간에 들어온 흑인우투수로, 슬라이더 하나는 제법 각이 날카로웠다. 허나 직구 구위가 받쳐주지 않아 볼넷과 안타를 남발했다. 슬라이더만 기억난다.
데릭 화이트
2천년 74경기 .303 11홈런 53타점 25볼넷 60삼진
화이트는 5월21일 첫 출장한 해태전에서 홈런을 터뜨려 강한 인상을 심어줬다가 이후 심한 허리 통증을 호소해 우려를 자아냈다. 하지만 검진 결과 단순한 염증으로 밝혀졌고, 복귀전인 5월27일 삼성전에서 투런 홈런을 터뜨려 한국 야구에 적응해 나갔다.
장거리타자는 아니지만, 찬스에 강하고 타구 방향이 좌우측을 가리지 않을 정도로 타격에 능했다. 의욕이 좋아 분위기 메이커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해내며 후반기 롯데의 연승을 이끈 1등공신 우익수였다.
그러나 시즌 막판 우측 파울펜스 쪽 다이빙캐치를 하다 머리를 부딪치며 부상을 당했고, 결국 그는 포스트시즌에 출장하지 못해 이후 퇴출당했다.
마리오 이시온
2003년 90경기 .290 13홈런 45타점 33볼넷 92삼진
롯데의 암흑기 시절에 그나마 제 몫을 해준 흑인 중견수다. 당시 롯데가 전력적으로 거의 받쳐주지 못했으므로 저 정도 성적이면 분투한 것이다. 삼진/볼넷 비율이 나쁜 게 흠이고, 중견수로선 어깨가 상당히 강했다. 단지 전력이 약하니 무리한 송구가 있었고 이런게 판단미스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고질적으로 무릎이 좋지않았다. 결국 2004년 정수근을 영입한 롯데는 이시온을 포기했다. 본명은 마리오 인카나시온이다.
로베르토 페레즈
2003년 50경기 .314 9홈런 30타점 7볼넷 13삼진
2003년 기록만 보자면 컨택트 중거리타자 같은 성적인데, 당시엔 페레즈가 고질적인 손바닥 부상을 안고있어 출장이 들쭉날쭉했고 롯데의 전력이 최악이라서 타점 올리기도 힘들었다.
페레즈는 멕시칸리그, 윈터리그에선 홈런타자로 이름을 날렸다. 전형적인 인파이터로 볼넷을 고르지 않고 일단 안타를 만들어내는 중장거리타자인데, 올해엔 20홈런 이상을 기대해본다.
평균 이상의 어깨를 바탕으로 우익수 수비는 무난하고, 발은 느린 편인데 의욕이 지나쳐 주루사도 제법 있으며 능력에 비해 실수가 많은 편이다. 그래도
계속 공격적으로 플레이하며 롯데에서 장기간 활동하려는 의지가 강한 게 장점이다. 득점권에서 강하다.
크리스 해처
2002년 .162 1홈런 5타점 2볼넷 22삼진
백인타자였는데, 죽만 쑤다가 나갔다.
제로니모 베로아
2002년 .097 1홈런 3타점 3볼넷 15삼진
베로아는 지난 1989년 애틀랜타 소속으로 메이저리그에 데뷔했으며 이후 지난해까지 11년동안 9개구단을 떠돌아 다니며 통산 101개의 홈런을 때렸다. 빅리그 경력은 먹어주는 베로아였지만, 빅리그 캐리어가 끝난 그는 한국에선 초라한 성적을 남긴 채 본국으로 돌아가는 수모를 당했다. 빅리그 캐리어가 끝나 선수는 절대 안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예다.
라이온 잭슨
왼손 외야/1루수인 라이온은 백인 중거리 타자로, 빅리그에서 4년간 활약하며 타율 2할 3푼 9리, 7홈런 52타점을 기록했다. 최근에는 애틀랜타 트리플A 리치몬드에서 3번타자로 활약했다.
페레즈와 마찬가지로 볼넷 안고르는 배드볼히터지만 타구를 우중간으로 날려보내는 컨택트 능력은 양호하다. 롯데에서 처음 제대로 활약하는 백인선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다니엘 매기
2002년 롯데/SK 6승 9패 방 4.69 132.1이닝 86볼넷 124삼진
두산이 파머를 영입할 때 저울질했던 좌투수가 바로 이 매기다. 당시 두산은 매기의 구위가 다소 우위지만, 컨트롤과 적응력에선 파머가 낫다고 보고 고른 것이다. 롯데에 들어온 매기는 195CM의 키에서 꽂는 143~148KM의 쾌속구와 슬라이더를 던지는 스터프 만땅의 탈삼진투수였다. 그러나 어설픈 컨트롤 때문에 불안감을 노출한 것도 사실이다. 시즌 중 백인천 감독 취임과 함께 구상에서 제외된 매기는 중도에 와이번스로 건너가 활약했다. 잘 기억나지않는 사람은 만자니오의 구위를 연상하시라~
테드 우드
2천년 35경기 .255 1홈런 9타점 11볼넷 20삼진
97~99년까지 대만 프로야구 형제 엘리펀츠에서 활약하며 타격왕 출신의 왼손중견수 우드는 88년 서울올림픽 미국대표팀 4번타자이기도 했다.(한국전에서 박동희에게 안타를 뽑은 것으로 기억한다) 시범경기에서 고감도 타격을 보였으나 막상 개막하자 파워부족을 드러내었다. 시즌 끝까지 뛰었으면 2할8푼~3할은 쳤을지도..그러나 장타력이 없었다. 주자 임수혁이 쓰러지자 바로 달려와 구급진을 요청한 것도 우드다. 자기보다 나이도 적은 치퍼 존스(아틀랜타)를 존경한다고...겸손인지 밸도 없는건지
보이 로드리게즈
2003년 .190 2볼넷 11삼진
멕시칸리그,대만리그, 일본 요코하마에서 활약한 베테랑 좌타 1루/외야수다. 장타력은 보통이지만 어느 리그에서든 적응하며 3할급의 타격을 보여준 바 있다. 단지 일본리그에 1년 있었단 이유만으로 백인천이 추천했지만 한국에 장타력이 떨어지는 타자는 필요없었다.
기아
숀 헤어
98년 .206 0홈런 3타점 4볼넷 25삼진
첫 해 광주구장을 보며 '펜스를 넘기면 홈런이냐, 관중석 뒤까지 넘어가야 홈런이냐?'고 건방진 발언을 한 타자. 결국엔 홈런 하나 못치고 돌아섰다.
트레이시 샌더스
99년 .247 40홈런 94타점 105볼넷 133삼진
트레이시 샌더스. 그는 그 해 활약했던 외국인선수 가운데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성적을 남발하며, 한국야구를 호령했던 별난 우투좌타 1루수였다. 타석에서 모든 것을 홈런,삼진,볼넷으로 3등분한 희대의 파워히터다.
그는 자신이 기록한 101개의 안타 가운데 54개를 장타로 채웠고, 9할8푼3리의 OPS를 기록했다. 특히 지방구장에선 거의 장외포를 쏘아올렸고, 뛰어난 출루율로 타율이 전부가 아님을 보여주었다. 화끈/시원했던 추억의 강타자다.
윌리엄 브릭스
99년 .283 23홈런 74타점 13볼넷 85삼진
브릭스는 발이 빠른데다 외야수비 범위가 넓고 타격도 꾸준해 눈길을 끌었다. 처음엔 김응용의 원산폭격식 다루기에 반항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출장을 금지하자 곧 말을 듣기 시작했다. 잔부상을 달고 살았지만 우익수를 보던 그의 송구력은 한국야구 사상 최고급이었다.
안타가 나와도 2루의 주자들은 3루에 멈추거나 홈에서 횡사, 거의 2개의 선택이 있을 뿐이었다. 수비가 돋보이는 한국의 알렉스 오초아였다.
루이스 데 로스 산토스
2001년 .310 26홈런 107타점 46볼넷 66삼진
산토스는 96년 대만리그에서 4할타율에 23홈런을 쏜 타자로 이듬해 일본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적응에 실패한 이후 대만과 멕시칸리그 등에서 선수생활을 해왔다. 30대 중반이라지만 실제는 40이 넘어보이는 주름진 풍모에 구식 안경까지 쓴 흑인 지명타자/1루수였다.
부채꼴로 밀고 당기는 스윙이 좋아 계속 3할을 유지하며 홈런도 심심치않게 쳐주었다. 그런데도 당시 해태는 홈런이 적다고 중간에 산토스에게 해고 통지를 하고 투수 다니엘 리오스를 데려오려 했다(미친 놈들-_-)
다행히 리오스가 당시 방광염 증세가 있어 한국행 비행기 탑승을 거부, 산토스는 시즌 끝까지 뛸 수 있었다. 수비활용도가 떨어진다는 걸 제외하곤 타격에선 영양가 만점이었다. 기아로 거듭나기 이전, 해태는 2000~2001년 외인영입 실패만을 거듭하는 데, 그 기간 중 유일한 성공작이 산토스였다. 그런 수모를 당하고도 김성한 감독이 외인선수를 구하려 도미니카에 오자, 자기 별장에 초대해 후하게 대접한 사람좋은 친구다.
마티 젠센
이런투수가 있었나...기억도 안난다.
헤수스 타바레스
2천년 74경기 .334 3홈런 44타점 31도루 21볼넷 32삼진
2001년 .237 1홈런 14타점 16볼넷 26삼진
도중에 들어온 스위치히터 타바레스는 정수근에 이어 도루 2위를 차지했는데, 정수근이 127경기에서 47개를 기록한 반면 타바레스는 74경기에서 31번을 훔쳤다. 단순 수치로 비교해도 타바레스는 경기당 0.42개로 0.37개인 정수근을 앞서고 있다. 3할3푼4리로 타격도 쏠쏠했다. 간만에 나타난 생쥐여서 다음해 도루왕을 기대했지만, 발바닥부상을 당해 쌕쌕이로서의 가치가 떨어져 퇴출당했다. 중도에 떠나도 잔금을 못받는다는 노예 계약을 해태와 한 것이 나중에 드러났다.
루이스 리치
2001년 1패 1세 방 6.14 7.1이닝 4볼넷 4삼진
루이스 안두하의 탈퇴 후 급하게 들여왔던 투수인데, 140km도 되지않는 구속으로 전혀 인상적이지 못했다.
루이스 안두하
2001년 2승 1패 방 3.00 24이닝 9볼넷 14삼진
시범경기 때만해도 135㎞에도 이르지 못하는 볼스피드로 조급한 해태 코칭스탭에게 실망을 안겼던 루이스. 그러나 개막을 하자 140km를 넘기며 특유의 스플리터와 슬라이더의 절묘한 배합으로 땅볼을 잘 유도했다. 그러나 김성한과의 궁합이 매우 좋지않았다. 구단에서 시켜먹는 닭튀김대신 파파이스 치킨을 원했고..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요구였지만 한국형 보수색채가 강했던 해태에선 통하지 않았던 요구였다. 결국 잠실경기에서 7회까지 리드하며 잘 던지고 있다가 별 위기도 아닌데 강판당하자 분노, 그대로 팀을 떠나버렸다. 이 시절 해태의 용병다루기는 최악이었다. 구질이 괜찮은 투수였다.
다니엘 리오스
2002년 14승 5패 13세 방 3.14 157.2이닝 44볼넷 102삼진
2003년 10승 13패 방 3.82 188.2이닝 62볼넷 121삼진
에스파냐 마드리드 태생에 쿠바를 잠깐 거쳐 주로 플로리다에서 활동했다. 원래 리오스는 2001년 기아에서 중반 영입하려 했다가 몸상태가 좋지 않아 포기한 바 있다. 시즈 종료 후 삼성에서 테스트를 받았지만 당시에도 몸이 별로였는지 딱지를 맞았다. 결구 기아는 2002년 다시 리오스 영입을 시도해 계약을 하는데, 이것이 최고의 선택이 되었다.
처음엔 마무리로 기용했는데 선발 출신인 그에게 맞지않는 보직이라, 매 경기 접전과 불쇼를 연출했다. 중간에 최상덕이 부상을 당해 그제서야 선발로 돌렸는데, 리오스는 선발 전환 후 8연승 등 한동안 12연승을 달리는 맹활약을 한다.
145km를 넘나드는 속구도 좋지만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 등 전 변화구가 평균 이상이고 완급조절을 잘해 선발을 할 때는 투구 수가 적은 편이다. 그러나 몸쪽 컨트롤에 다소 기복이 있어 힛바이피치볼을 많이 내주는 게 흠이다. 스태미너가 좋아 불규칙한 등판에도 잘 견디는 편이고 꾸준히 6~8이닝을 소화해준다. 결국 올해로 3년째 활동하며 워크호스로 불리고 있다.
훌리오 마뇽
마뇽은 몬트리올 소속으로 지난 6월 메이저리그에 승격돼 23경기에서 불펜투수로 뛰며 1승 2패 1세이브에 방어율 4.16을 기록했다. 시속 144~148㎞에 이르는 직구와 스플리터가 일품이며, 변화구 제구력 &마운드 운영능력이 뛰어나다. 슬라이더도 괜찮은 편이다.
처음엔 부상으로 시즌 초 다소 늦게 합류한 후 마무리로 나와 첫 경기서 안경현에게 만루홈런을 내주었다. 그러나 기아 선발투수들이 줄줄이 부상당하자 선발로 전환, 호투를 하고 있는 선발형 투수다. (선발투수를 첨에 마무리로 써먹는 기아의 3번째 닭짓) 부상만 피한다면 정상급의 피칭을 할 것이다.
마이클 존슨
2003년 8승 1패 3세 방 3.00 69이닝 31볼넷 53삼진 49피안타
캐나다 출신의 존슨은 직구 구속이 140~145㎞에 달하고, 제구력은 물론 낮게 구사되는 커브와 슬라이더 등 변화구 구사 능력도 탁월하다.
역시 처음엔 마무리를 하다가 선발로 돌아선 후 8연승을 달렸다. 브레이킹볼을 매우 잘 구사해 후반기엔 언히터블의 투수로 군림했다. 그러나 시즌 후엔 돈이 맞지 않아 결별했다.
마크 키퍼
2002년 기아 19승 9패 방 3.34 202.1이닝 523볼넷 135삼진
2003년 기아/두산 8승 7패 방 3.79 168.2이닝 46볼넷 77삼진
키퍼는 정확한 제구력에 다양한 변화구와 상대 타자의 심리를 읽는 두뇌피칭으로, 외국인 투수로는 처음으로 다승왕(19승)을 차지한 역대 최고의 투수 중 하나다. 그는 타자 방망이의 중심을 벗어나는 공을 구사하는 투수다. 직구구속은 130~135km대지만 스리쿼터폼에서 직구, 싱커, 커터, 체인지업, 그리고 커브를 매우 다양하게 던진다.
190대의 큰 키와 긴 팔, 긴 손가락을 가졌는데, 내려찍지 않고 옆으로 구사해 투수판의 3루쪽을 밟고 던지면 굉장히 많이 휘어들어온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위력적인 구질은 커터와 커브다. 커터는 잘 구사할 경우 베이비 슬라이더 (Baby Slider)라 할 정도로 빠르고 예리하게 휘어나가는데, 선천적으로 동양인과 전혀 다른 신체를 갖고 태어난 키퍼의 커터는 웬만한 투수의 슬라이더 저리가라 할 정도로 강하게 휜다.
따라서 그의 경기에선 빗맞은 텍사스타구가 많이 나와 수비수들의 유연한 수비 시프트를 필요로 한다. 커브 역시 긴 손가락으로 수직에 가깝게 구사해 각도가 매우 크다. 2003년엔 기아에서 쫓겨났지만 두산이 그를 받아들여 그 해에도 Whip(이닝당 출루수)부분에도 1위를 차지했다. 올해도 활약 중이다.
루디 펨버튼
2002년 75경기 .255 11홈런 48타점 23볼넷 19힛바이피치 56삼진
펨버튼은 메이저리그 디트로이트(1995년)와 보스턴(96, 97년)에서 52경기에 출전해 130타수 45안타(.350)를 기록한 중장거리타자다.
나름대로 맞히는 재주가 있지만 태도에 좀 문제가 있다. 한국에 와선 경기 수에 비해 상당히 몸에맞는 볼을 많이 맞아 흥분, 임창용이 맞추었을 땐 격분해 뛰쳐나간 바 있다.
아르키메데스 포조
2천년 .213 1홈런 8타점 6볼넷 17삼진
178㎝, 72㎏의 포조는 도미니카 출신으로 99년엔 일본 요코하마에서 뛴 전천후 내야수다. 그런데 동양야구를 거친 왜소한 동양형선수라는 이미지만 갖고 해태에선 그를 마구잡이로 대했다.
화가 난 포조는 고국에 돌아가 에이전트를 통해 항의한 바 있다. 동양야구를 거친 선수는 한국형이니 막 다뤄도 된다?란 이상한 논리로 선수를 푸대접한 케이스.
제이슨 배스
2천년 15경기 .271 3홈런 13타점 9볼넷 22삼진
베네주엘라 출신의 거포형 좌타자인데, 슬슬적응하는 듯 하다가 부상으로 한국을 떠났다. 전형적인 대가족형 중남미인답게 해태 회식때 사촌 여동생을 데려와 람바다춤을 추게 한 넉살좋은 선수였다^^
키스 미첼
2천년 77경기 .227 8홈런 38타점 38볼넷 51삼진
당시 개비오 규정에 따라 전년도 9월 이전 빅리그 승격자라, 당시로는 부정선수였는데 유야무야 넘어갔다. 흑인외야수로 퍼투켓에서 뛴 바 있다. 적당히 준수했지만, 말 그대로 적당한 선수였다.
워렌 뉴선
2002년 35경기 .209 7홈런 17타점 17볼넷 38삼진
왼손타자 워렌 뉴선은 2001년 멕시칸리그에서 타율 3할8푼6리에 홈런 39개를 기록하며 타격왕과 홈런왕을 차지했던 슬러거. 하지만 한국에선 변화구에 애를먹으며 저타율을 보여, 결국 떠나게되었다.
두산
타이론 우즈
98년 .305 42홈런 103타점 65볼넷 112삼진
99년 .297 34홈런 101타점 83볼넷 126삼진
2천년 .315 39홈런 111타점 77볼넷 132삼진
201년 .291 34홈런 113타점 83볼넷 114삼진
2002년 .256 25홈런 82타점 50볼넷 123삼진
한국 최고의 외국인타자라 할 수 있는 타이론 우즈, 98년초엔 한국야구 적응과정을 거치며 부진했지만, 후반기에 괴력을 보이며 이승엽을 따돌리고 홈런왕을 차지했다. 그 후 매년 잠실구장을 홈으로 3할에 30홈런-100타점을 넘기는 파워히터로 사랑받았다. 일단 힘과 적응력에서 압도적으로 우수했으며, 1루 수비범위는 좁은 편이지만, 어깨는 강해 간간이 2,3루에 총알송구를 선보이기도 했다. 2002년엔 두산 구단의 푸대접, 배려소홀로 건강 문제를 일으키며 성적이 다소 떨어지자 해고당했다.
2003년엔 일본 요코하마에 진출해 첫해 홈런왕에 오르는 뛰어난 실력을 보였고, 올해엔 일본리그에 완전 적응해 3할을 넘기며 다시 홈런왕에 도전하고 있다.
에드가 케세레스
98년 .250 2홈런 36타점 18도루 24볼넷 53삼진
99년
처음 입단 시엔 우즈보다 더 기대했던 스위치 2루수. 정교한 타격과 빠른 발,탄탄한 수비를 기대했건만, 나이가 들어 다른 리그에서 뛰려니 정교함과 파워는 없었다. 단, 2루 수비는 무척 탄탄했다. 99년엔 현대 김인호의 스파이크에 찍혀 별 활약도 못하고 퇴출당했다. 그 뒤 두산의 2루를 맡은 이종민이 연이어 실책을 범해 2루수의 공백을 상당히 느끼게했다 -_-
마이크 파머
2천년 10승 9패 방 4.54 152.2이닝 90볼넷 92삼진
2001년 1승 2패 방 9.00 11이닝 8볼넷 12삼진
미남형의 왼손 흑인투수로 140~145km에 이르는 직구에다 커브, 슬라이더, 체인지업을 구사해 베이커형 투수로 관심을 모았다. 미국에선 원래 타자였다가 뒤늦게 투수로 변신한 케이스로, 마이너 시절 현 토론토의 강타자인 카를로스 델가도를 3구 삼진으로 잡았다는 게 멋진 추억이라고 -_-
2천년 전반기만 해도 직구와 변화구의 능숙한 구사로 10승을 올렸지만, 후반기부턴 심판들이 파머의 독주를 우려했는지 존을 짜게 잡은 감이 있다. 결국 그 해 후반기엔 승수를 하나도 추가하지 못했다. 다음 해엔 부상으로 일찌감치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트로이 니일
201년 .193 1홈런 3타점 10볼넷 15삼진
196cm, 103kg의 건장한 체구를 지닌 니일은 우투좌타의 1루수로 미국 오클랜드에서 1992년부터 3년간 활약했고, 1995년부터 일본 오릭스에서 선수생활을 한 베테랑이다. 특히 1996년에는 일본리그 홈런왕,타점왕을 차지했을 만큼 뛰어난 타격 감각을 자랑했다. 뉴질랜드 부근의 바누아투 섬 리조트를 소유할 정도로 거부인 니일은 돈보다는 야구가 좋아 한국에 왔고, 자신의 마지막 야구 인생을 두산에서 멋지게 장식하겠다며 입단 소감을 밝혔다. 나이가 많았던 그는 자기 정도 나이면 덕아웃에서 담배를 피워도 된다고 건방을 떨었고, 말년병장심리로 공줍기도 해서 당시 김인식감독의 환심을 사곤 했다. 당시 김인식은 니일 좀 본받으라고 우즈를 닥달하곤 했었다-_- 그러나 실전에선 파워를 보여주지 못하다가 발가락 부상을 당해 휴업했다.
그 해 5월 말 먼저 퇴출된 마이크 파머의 환송파티를 위해 이태원의 술집을 찾은 그는 패싸움에 연루됐다. 곁에 있던 한국여자가(이태원에서 백인남자 건지려는 골빈 년들)이 유혹하며 유부남인 니일의 엉덩이를 만졌고, 헤어모델 출신인 그의 부인이 격분해 한국여자를 향해 술병을 집어던진 게 화근이었다. 그 사건으로 인해 니일은 구치소에 가게 되었고, 두산은 어차피 나이가 많고 부상으로 제대로 못뛰는 니일도 퇴출시켰다.
셰인 베넷
2001년 2패 방 7.32 19.2이닝 9볼넷 16삼진
2천년 시드니올림픽 호주 대표로 나와 쿠바전에서 1실점으로 호투한 베넷은 2001년 중반 두산과 계약을 한다. 그때 얼마나 한국인이 조급한지...3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한 선수를 당일 6시반 잠실경기에 선발로 내보냈다 -_- 갑자기 처음 보는 선수들과 호흡을 맞춰야 하는 베넷... 그저 사람좋은 인상에 히죽히죽 웃으며 직구와 스플리터, 슬라이더를 구사해 6이닝동안 3실점으로 막다가 7회 무너졌다.
그러고나선 결국 부상을 당해 몇번 나오지도 못하고 퇴출당했다.
이리키 사토시
2003년 7승 11패 5세 방 3.74 159이닝 53볼넷 87삼진
이리키 사토시는 일본에서 12년동안 긴테츠,요미우리, 야쿠르트에서 뛰면서 2001년 10승투수가 된 바 있다. 그러나 부인과 이혼하면서 계약에 따라 전 재산을 몰수당하면서 부진, 2002년 야쿠르트에서 재계약 포기 선언을 받았다. 일본야구계에서 사실상 버림받은 그는 야구를 계속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첫번째 일본인선수가 되었다.
일본은 다소 낮은 볼도 스트라이크로 인정하는데 반해 한국은 높은 볼을 잘 잡아준다는 차이점을 느꼈는데, 제구력이 좋아 특별히 문제는 없다고 첫 소감을 밝혔다. 처음엔 팀에서 마무리로 기용했는데 본인이 원래 선발체질이고,팀 사정도 당시 좋지않아 패전만 당했다. 그러다가 중반부터 선발로 기용하자 실제 실력을 발휘한다.
구속은 140km내외지만 코너워크가 안정되었고 슬라이더의 컨트롤이 매우 좋았다. 일본기교파 투수로서의 실력을 보여주었는데, 한국 용병로스터가 2명밖에 없어 2004년엔 대만리그로 진출한다. 그의 동생 이리키 유사쿠는 요미우리에서 뛰다가 올해 니혼햄으로 옮겨갔다.
개리 레스
2001년 해태 7승 9패 방 4.34 153.1이닝 88볼넷 104삼진
2002년 두산 16승 8패 방 3.87 202.1이닝 77볼넷 154삼진
레스는 국내 투수들이 서툴게 던지는 서클체인지업을 완벽하게 구사한다. 체인지업뿐 아니라 직구와 슬라이더 등 190cm의 큰 키에서 오버핸드로 던지는 모든 공이 각이 좋아서 왼손타자뿐 아니라 오른손타자들에게도 잘 맞지 않는다. 국내 좌완투수 대부분의 팔이 스리쿼터처럼 처지는 것과는 다르다. 변화구든 직구든 횡으로 변하는 공보다 종으로 변하는 공이 타자 눈에 더 까다롭게 보이므로 레스는 135km대 직구로도 버티는 것이다.
처음 해태에 왔을땐 입국하자 마자 던지게 해 '120km대 아리랑투수다'라 비아냥을 받았지만, 점차 한국에 적응하며 성적을 올려주었다. 성적은 평범했지만 강팀과 상대해 거둔 성적임을 감안하면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두산 김인
식 감독은 이듬해 레스를 영입했다. 이 선택은 대성공이었다.
넓은 잠실구장을 홈으로 레스는 체인지업의 마술사로 불리며 에이스로 활약한다. 2003년엔 일본 요미우리에 입단했는데, 일본에서도 어느 정도 성적을 내다가 5월에 어깨가 좀 아파 로테이션을 한번 거르겠다했더니 2군에 내린 후 시즌 끝날 때까지 불러들이지 않았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일본실패의 이유다.
결국 그는 기회를 주지않는 요미우리를 떠나 2004년 다시 복귀해 6월 현재 8승으로 다승 1위를 달리고 있다. 의대에서 마취학을 전공한 바 있는 레스는 모험을 하고 싶어 야구의 길을 택했다고 한다.
마이크 쿨바
203년 44경기 .215 10홈런 24타점 12볼넷 46삼진
185㎝ 86㎏의 체격을 가진 마이크 쿨바는 98년 현대에서 뛰던 스캇 쿨바의 동생이다. 또 지난 2천 시드니올림픽에 미국 대표팀으로 참가했다. 2002년엔 주로 트리플A 멤피스에서 뛰며 타율은 2할4푼3리에 그쳤지만 29홈런을 기록할 정도로 힘이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격수,3루수 등 내야 여러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친구였는데, 시즌 초 팀 부진과 맞물려 헛스윙의 연속이었다. 그런 와중에서도 종종 홈런을 뽑아내주었다. 적응하려는 시기였는데,팀 사정이 어려워지자 두산은 쿨바를 포기하고 기아에서 키퍼를 영입한다. 좀 더 두고봤으면 한국리그에 적응했을거라 보인다. 시즌 초 정신없고 타격부진에 말려 실책도 8개를 했지만 수비스터프는 좋은 선수였다.
빅터 콜
2천년 8승 10패 2세 방 6.14 114.1이닝 83볼넷 71삼진
2001년 6승 9패 방 5.04 119.2이닝 60볼넷 95삼진
2002년 12승 6패 방 4.01 157이닝 81볼넷 114삼진
98년 첫 용병 트라이아웃에서 전체 1순위로 꼽혔던 콜은 롯데가 지명했지만 입단을 거절한 바 있는 투수다. 2천년엔 SK에서 선발,중간,마무리를 오가며 8승10패2세이브를 올리고도 퇴출된 콜은 한국 심판들이 스트라잌을 잡아주지 않는다며 국제야구계에 제소할 뜻을 보이기도 했다. 존이 다른 것도 있지만, 당시 강병철 감독이 마구잡이로 썼기때문에 지친 콜은 제 구위를 발휘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휴식 후 보여준 그의 위력적인 구위를 지켜본 두산 김인식감독은 때마침 두산에 러브콜을 보낸 콜을 영입했다. 145㎞를 넘나드는 빠른 볼에 쓸만한 슬라이더,커브, 체인지업을 지녔지만 들쭉날쭉한 제구력이 문제였다. 두산 입단 첫 해엔 보통(그나마 두산 최다승)이었지만, 완전히 적응한 다음 해엔 피칭패턴을 슬라이더 위주로 바꾸며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12승을 올린 해 콜의 변화구 구사율은 엄청나게 높아졌다. 그의 아버지는 러시아 대사관원이었다고 한다.
현대
조 스트롱
98년 6승 5패 27세 방 2.95 58이닝 54삼진 29볼넷
스트롱은 대만 프로야구에서 활약하다 방출된 뒤 한국에서‘새가슴’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마무리투수다. 구속은 145~150km에 이를 정도로 빨랐고 표면성적은 괜찮았지만, 컨트롤이 불안해 매 경기 숨가쁜 모습을 보였다. 국내서 퇴출된 지 1년 후 빅리그에 진출했다. 생애 첫 메이저리그 등판을 한 스트롱은 지난 1960년 피츠버그 투수 디오메데스 올리보(당시 41세) 이후 가장 나이 많은 신인 선수로 기록됐다.
스캇 쿨바
98년 .317 26홈런 97타점 51볼넷 102삼진
힘과 정확성을 겸비한 확실한 4번타자 역할을 해주어 박재홍-쿨바-김경기로 이어지는 최강 클린업 트리오를 형성, 현대의 첫 우승에 기여했다. 타점이 97개나 될 정도로 찬스에 강한 모습을 보여 줘 인천팬들은 아직까지도 최고의 용병으로 꼽고있다.
에디 피어슨
99년 .289 31홈런 108타점 47볼넷 85삼진
120kg에 이르는 거구의 스위치히터 피어슨은 보통 선수의 2배 가까운 엉덩이 사이즈 때문에 유니폼을 맞추는데 애를 먹었다고 한다. 결국 신축성 있는 '쫄쫄이' 유니폼 바지를 시험삼아 여러벌 만들어 이 중 가장 편안한 것을 선택하도록 했다고.
피어슨은 92년 메이저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 시카고 화이트삭스에 1순위로 뽑혔던 유망주였다. 99년 정점에 달했던 타고투저 현상으로 인해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진 못했지만, 유연한 스윙으로 30홈런-100타점을 기록한 강타자. 단,지명타자 밖에 볼 수 없어 수비수를 원하던 현대는 다음 해 그와 계약을 해지했다. 2천년엔 해태로 갔지만 당시 해태의 열악한 대우에 실망한 피어슨은 시즌 개막 전에 일찌감치 떠났다.
조지 카날리
99년 .184 1홈런 3타점 2볼넷 4삼진
3루수로 기용된 우투좌타의 조지 카날리는 96년 이탈리아리그, 대만리그 등에서 활동한 베테랑 선수로 그가 있던 팀은 모두 우승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전성기가 지났는지 3루수비도 시원찮았고 전혀 적응을 못했다. 결국 17경기에 나오곤 바로 퇴출~
브렌트 바워스
99년 .290 3홈런 12타점 6볼넷 27삼진
카날리 대신 중도에 들어온 왼손외야수로 중거리타자였다. 외국에선 쌕쌕이스타일이었는지 번트모션도 자주 취했고 안타는 그럭저럭 때려주었다. 그러나 한국구장 펜스가 딱딱하다는 걸 잘 몰랐는지, 펜스플레이 때 자꾸 펜스 바로 앞까지 가다가 타구방향을 잃곤 했다.
JR 필립스
2001년 .261 15홈런 46타점 25볼넷 62삼진
왼손1루수. 변화구에 쥐약이고, 3할을 못친다해서 올스타브레이크전에 15홈런이란 성적으로 퇴출당했는데...그 이후 대체용병 엔리케즈의 실패로 현대팀은 땅을 치고 후회하게 된다.
두꺼운 가슴 두께를 자랑하던 필립스는 트리플A의 거포, 빅리그의 1할타자로 한국에선 충분히 위협적인 타자였다. 변화구엔 정말 약했지만~ 직구는 '킬러'라 걸렸다하면 안타, 홈런이 나왔다. 홈런 페이스도 양호해 풀시즌을 뛰면 분명 30홈런을 넘길 수 있는 친구였다.
오스카 엔리케즈
2001년 3패 1세 방 9.00 9이닝 11볼넷 4삼진
베네수엘라 국적으로 최고구속 99마일을 기록했던 엔리케즈는 빠른 직구를 주무기로 하는 정통파 릴리프 투수다. 독특한 투구폼으로 갑작스런 팔스윙을 하는 그의 공은 위력적이었지만, 한국 심판들이 무릎하한선의 공을 잡아주지 않다보니 결과적으로 통하지 않았다. 결국 한국을 떠난 후 디트로이트에선 괜찮은 불펜요원으로 활약했다. 공 2~3개 판정이 다르면 승부가 갈리는 불펜투수 특성상 아쉬운 케이스. 부인이 엄청나게 섹시했었다.
톰 퀸란
2천년 .236 37홈런 91타점 36볼넷 173삼진
2001년 .242 28홈런 66타점 49볼넷 160삼진
2002년 [엘지].000 3볼넷 10삼진
미네소타 출신으로 아이스하키 골키퍼 경력도 있는 퀸란은 변화구엔 약하지만 높은 코스의 실투성 변화구와 직구에 강점을 보인 타자다. 메이저리그 통산 타율은 1할 5푼 5리로 저조하지만 로켓포같은 강한 어깨, 물 흐르는 듯한 송구 등 수비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았다. 수비범위도 엄청 넓고 강한 어깨로 선상수비도 좋은, 한 차원 다른 수비수였다.
그는 4월5일 한화와의 개막전에서 3발의 홈런을 날렸고, 세번째 경기서도 3개의 홈런을 터뜨려 초반 돌풍을 일으켰다.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퀸란의 방망이는 심한 기복을 보였다. 삼진 1위(173개)에서 알 수 있듯이 헛방망이질이 많은게 흠이었는데, 2천년 한국시리즈서 진가를 보여줬다.한국시리즈 성적은 26타수 9안타(3홈런) 10타점, 마지막 7차전에선 2개의 홈런을 터뜨리며 외국인선수 최초로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하는 기쁨을 안았다. 2002년엔 엘지로 건너갔지만 초반 부진을 보이며 안타를 하나도 못치고 조기귀국했다.
에디 윌리엄스
2천년 .248 12홈런 26타점 25볼넷 36삼진
빅리그 경력이 제법 있는 흑인 1루수로, 일본 다이에에서도 잠깐 뛴 바 있다. 개막 3경기 연속 홈런을 치는 등 37경기에서 12홈런으로 나름대로 방망이질을 했는데, 지병이 있어 제대로 베이스러닝을 하지못했다. 인천에 집도 사고 가족도 데려왔지만 결국 지병이 악화되어 퇴출...무조건 잡아당기는 스윙을 했었다.
대럴 브링클리
2천년 .209 3홈런 14타점 6볼넷 25삼진
에디 윌리엄스 조기 퇴출 후 중간에 들어온 외야수. 처음엔 반짝하는가 했더니 곧 헛스윙을 연발하며 27게임만에 보따리를 쌌다. 흑인으로 엄청 험악한 인상을 갖고있어 상대팀 포수들이 모두 쫄았다는 후문도 있다 -_- 외국인동료 퀸란도 위화감때문인지 브링클리와는 말 한마디 안했다고 한다.
찰스 카펜터
2천년 .282 5홈런 32타점 13볼넷 32삼진
브링클리 해고 후 후반에 데려온 좌타 외야수. 39게임에 출장해 두드러진 활약은 보이지 못했지만, 타점은 제법 쏠쏠하게 올렸다. 백인 카펜터의 상체근육은 북두신권의 주인공처럼 장난 아니었다~
영입 이후 카펜터 본인보다는 초반 반짝 후 거의 공격에서 휴업하고 있다시피했던 퀸란이 갑자기 힘을 얻어 막판에 10홈런 이상 쏘아올린 바 있다. 前 멤버 에디 윌리엄스, 브링클리와 사이가 안좋았던 퀸란은 카펜터가 오자 매우 친밀감을 느꼈다고 한다.. 카펜터도 삼성과의 플레이오프에선 좌투수 김태한에게서 홈런을 뽑아내는 등 나름대로 활약을 펼쳤다.
이 친구를 데려오기로 한 것은 박종훈 현대코치의 권유때문인데, 양키즈 산하 콜럼버스팀에서 박코치가 카펜터를 처음 보았을때는 어깨가 닫힌 균형좋은 자세로 장타를 펑펑 날려대는 모습에 반했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에 와서 보니 공을 칠때 어깨가 일찍 열려 파워를 완전히 실어보내지 못하는 자세로 바뀌었다. 육안으로봐도 몸이 일찍 열리며 그냥 상체로만 치는 스윙이라 좋은 타구가 나오긴 힘들었다. 선수가 시간이 지나며 달라질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좋은 본보기다.
케리 테일러
2001년 8승 10패 방 4.75 155.1이닝 115볼넷 94삼진
엘지 해리거가 자기 친구라며 한국야구계에 소개한 투수가 바로 이 테일러다. 그는 슬라이더, 체인지업, 커브 등 다양한 변화구를 자유자재로 구사해‘변화구의 달인'으로 불렸으며, 시즌 초엔 상당히 각광받았다. 그러나 중반부터 스트라잌을 던지지 못하는 병에 걸리며 3류투수로 전락했다. 직구 위력이 떨어져서인지, 한국에서의 성공의지가 약해서인지, 컨트롤 자체에 문제가 있던 것인지 아직도 미스테리로 남아있다.
멜퀴 토레스
2002년 10승 11패 방 4.19 180.1이닝 85볼넷 97삼진
등판만 하면 비가 내려 경기가 취소되는 불운을 겪은 흑인투수. 삼성에서 조기 퇴출된 바 있는 살로몬 토레스의 동생이다. 3A 올스타 경력이 있으며 2002년 한국 올스타전에도 나가 2이닝 퍼펙트를 기록했다. 144~150KM에 이르는 묵직한 직구와 슬라이더가 주무기로, 한국 스트라잌존에 어울리는 공을 던졌다. 우타자에게 붙이는 몸쪽 역회전공으로 땅볼도 잘 유도해냈다. 결국 10승을 거두었는데, 비오는 날 로테이션을 몇번 피했어도 15승 가까이 해주었을거라 본다.
다리오 베라스
2002년 1승 4패 6세 방 7.33 23.1이닝 10볼넷 19삼진
다리오 베라스(188㎝, 75㎏)는 빅리그 통산 5승3패를 기록했던 정통파 투수로, 144~150㎞의 빠른 공과 슬라이더,체인지업을 구사한 릴리프투수였다. 현대에선 마무리로 중용해 초반엔 자기 몫을 하는듯 싶더니, 공이 단조롭고 가운데로 몰려 두들겨맞았다. 충분히 기회를 주지않은 것도 있겠지만...
코리 폴
2002년 .280 18홈런 64타점 35볼넷 115삼진
일본 세이부 2군에서 MVP를 차지한 폴은 정교한 타격을 구사하는 중장거리 좌타자로 기대를 모았다. 2군에 있던 이유는 당시 세이부가 카브레라, 맥클레인 등 강력한 거포를 지녔으므로 그에 밀린 것일뿐이라 긍정적으로 보았는데...3할을 치는 것도 아니고 20홈런 이상 치는 것도 아니고, 역시 어중간했다. 직구는 나름대로 잘 쳤는데, 좌익수 수비도 별로였고...계륵같은 존재였다.
셰인 바워스
2003년 13승 4패 1세 방 3.01 143.2이닝 46볼넷 85삼진
바워스는 2년간 요코하마에서 8승 20패 3점대 후반 방어율을 기록한 195CM대의 장신투수다. 요코하마의 최근 전력이 최악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동양리그에 적응력이 있는 투수였다.
145KM초반의 직구에 스트레이트 체인지업, 슬로커브, 스플리터를 구사했다. 컨트롤은 무난한 편이었으며 큰 키에 긴 팔로 내려찍는 그의 직구와 떨어지는 계통의 변화구는 한국타자들에게 빠른 체감구속으로 다가왔다. 결국 2003년도 방어율왕에 등극, 버뜨 부상으로 탈퇴했다. '장신투수가 2층에서 던지는 것 같다'는 의미를 확실히 일깨워준 케이스다.
마이크 프랭클린
2002년 49경기 .276 14홈런 30타점 34볼넷 52삼진
2003년 38경기 .221 10홈런 28타점 25볼넷 57삼진
2002년 7월에 들어온 스위치히터 프랭클린은 빠르게 국내 무대에 적응했다는 데 높은 점수를 받아 재계약에 성공했다. 그는 삼진을 많이 당하는 저타율의 타자지만 볼넷도 많이 얻으며 장타력이 확실한 거포다, 해태 트레이시 샌더스와 비슷한 유형의 타자였다. 그는 니혼햄 시절엔 30홈런을 친 바 있다. 단, 빅리그/마이너 시절부터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결국 2003년엔 대전 한화전에서 스트라이크 아웃을 당한 뒤 그라운드를 가로질러 달리고 홈 슬라이딩을 하는 등 노골적으로 심판 판정에 불만을 나타내 징계를 당한 바 있다. 타율이 자꾸 떨어지고 징계를 먹으니 현대로서도 금새 정이 떨어져 내보냈다.
클리프 브룸바
2003년 70경기 .303 14홈런 51타점 29볼넷 43삼진
좌익수 브룸바는 작년부터 이미 한국리그에 적응을 시작하고 있었다. 결국 3할을 넘겼고 SK와의 한국시리즈 7경기에서 10타점을 올리는 뛰어난 공헌도를 보이기도 했다. 현재 브룸바는 수준급의 어깨를 바탕으로 8개구단서 가장 믿음직스런 좌익수로 꼽히고있고, 올해엔 '하얀 호세'로 불리며 트리플크라운의 야망을 꿈꾸는 거포로 자리잡았다.
마이크 피어리
피어리는 일본 롯데에서 활동한 있는 정통파투수다. 동양투수같은 깔끔한 모션의 투구폼에 138~144km의 직구, 안정된 탄착군, 슬라이더/커터가 좋은 제구-기교파 투수다. 올 시즌 초엔 승승장구했지만 아무래도 국내서도 많이 보는 타입의 피칭이다 보니 피안타는 점점 많아지고 있다. 안타를 많이 맞고 규정이닝을 넘기는 투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커브, 체인지업, 스플리터도 던지지만 슬라이더에 비해선 완성도가 별로다.
첫댓글 와~ 이거 진짜 유익한 정보인데요?? ㅋㅋ
기아 루이스 안두하 ㅋㅋㅋㅋㅋㅋ
두산 부분 보면서 또 느끼지만 김인식 감독의 안목은 정말 대단하네요;;
용병이랑 인연이 없는 lg... 괜찮다 싶은 선수들은 퇴출 시키고. 데이텀 그리고 알칸드라.. 그 밖에.. 용병제 하고서 운이 없는 팀...ㅋ 올해는 제발..!!
3분의 1정도 보다가 말았네여
기억이 새록새록 나는 좋은 정보였네요 근데 이거쓴분은 어떡게 이걸 쓰셨을까나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