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역사책을 뛰쳐나온 고전 소설들
김시습을 읽었으니,
그의 대표작을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여,
한참 전에 헌책방에서 사놓고, 읽지 않은 이 책을 집어들었다.
이 책은 금오신화 뿐만 아니라,
다른 고전들도 많이 수록하고 있다.
역사책에서 제목들만 들어봤던 많은 작품들이다.
오랜 우리나라 역사.
책을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민족.
그에 비해서 우리 고전들을 소개하는 자리가 많지 않다.
학창시절에도 교과서에 나오는 고전 몇 편만 그것도 일부만 배워서,
전체적인 내용을 잘 모른다.
역사책에서도 주로 제목만 언급하지, 그것을 읽어볼 생각을 못했다.
우리 고전 소설을 읽는 것은,
그 소설이 재미가 있고없고를 떠나서 색다른 기분이 든다.
그 옛날 이 땅에 살았던,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읽고 나서 웃고 울었다는 생각을 하면,
그들과 공통점이 하나 생겼다는 생각에 묘함마저 느낀다.
그래서, 나는 읽기 어렵지만, 고전읽는 것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많이 즐긴다는 것이다.
기회가 접하게 되면 읽을 뿐이다.
1. 금오신화
김시습이 전국을 떠돌다가 경주 금오산(남산)에 있을 때
쓴 소설집이다.
작년 봄에 경주를 놀러갔다가 금오산에 올라 정상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그때는 그 금오산이 이런 김시습의 <금오신화>의 그 '금오'인줄 몰랐다.
그저 오랜만의 산행이 힘들다는 생각만 들었다.
아마 다시 경주 금오산에 오르면 또다른 기분을 느낄텐데..
더욱 벅찬 느낌이 있을텐데,
역시 아는만큼 보이고,
아는만큼 더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 금오신화는 더 많은 작품을 싣고 있었지만,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온 것은 다섯편뿐이라고 한다.
금오신화는 소설의 형식이기는 하지만,
지은이 김시습은 자신의 詩 재주를 뽐내고 있다.
많은 시가 소설 속에 포함되어 있었다.
김시습은 소설가 이전에 훌륭한 시인이다.
* 만복사저포기
노총각 양생이라는 자가 있다.
그가 만복사에 머무르고 있다고 심심했는지 놀 사람이 없었는지,
부처상과 저포놀이를 하면서 이기면 아리따운 아가씨를 달라고 하였다.
양생은 혼자 저포놀이를 하고, 혼자 이겼다.
그때 어떤 아리따운 아가씨가 불당으로 들어왔고,
양생과 아가씨는 뜨거운 밤을 보냈다.
그 다음날, 아가씨는 여인을 이끌고 그녀가 사는 집으로 데리고 갔고,
여인의 집에서 사흘을 보냈다.
그런데, 그 여인은 이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여인은 왜구에게 목숨을 잃은 억울한 귀신이었다.
양생은 여인의 부탁으로 여인의 부모에게 여인의 뜻을 전하기도 하였다.
* 이생 규장전
개성의 가난한 선비 총각인 이생은 부자집 딸인 최랑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이생의 아버지는 공부는 안하고, 사랑타령을 한다고 아들 이생을 지방으로 보냈다.
최랑 부모도 최랑이 이생과 사랑하고 있음을 알고, 이들을 결혼시키려 하였다.
최랑부모는 이생부모를 찾아가 설득을 시켜고,
이생은 최랑과 결혼을 하였다.
이후, 이생은 과거시험에 급제하여 잘 풀리는듯했다.
하지만, 고려 공민왕때 홍건적의 침입으로 그만 부인 최랑이 죽었다.
죽은 최랑은 귀신이 되어 이생에게 나타났고,
이생은 최랑이 마치 산 사람처러 대하며 지냈다.
그렇게 지낸지 몇년 뒤 최랑은 더이상 이승에 머물수 없다며 이생을 떠났다.
이생은 홍건적에 의해 죽음을 당해 수습하지 못했던 최랑의 유골을 찾아 장례를 치르고,
몇달 뒤 병을 얻어 죽었다.
그는 죽은 것이 아니라, 이생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아른다운 사랑이야기는 예나 지금이나 가슴시리다.
* 취유부벽성기
개성의 부잣집 선비 아들 홍생이 평양에 놀라갔다가
옛 기자조선의 공주의 혼령을 만나 사랑을 나눈 후,
공주의 혼령은 저승으로 돌아갔다.
홍생은 공주를 잊지 못해, 병이 생기고
얼마 못가 삶을 마감하였다.
이 또한 슬픈 죽음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한 만남을 위한 길이었다.
* 남염부주지
경주에 사는 박생이라는 영특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중용>, <역경>을 읽고 극락, 귀신, 무당 등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어느날 꿈에 염부주에 가서 염마왕을 만나게 되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였다.
염마왕은 강직한 성격을 가진 박생에게 왕위를 물려주기로 한다.
꿈에서 깬 박생은 몇달 후 세상을 등진다.
그리고 이웃집 사람의 꿈을 통해 박생이 염부주의 염마왕이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 용궁부연록
개성에 한생이라는 사람이 꿈을 꾸었다.
그는 꿈 속에서 개성의 박연폭포에 살고 있는 용신으로부터 초대를 받아 용궁에 갔다.
그는 용신의 청을 받사 상량문을 써주었고,
용신은 한생의 재주에 감탄하여
잔치를 베풀고, 구슬, 비단을 선물을 주었다.
꿈에서 깬 한생은 그 꿈을 통해 일장춘몽같은 세상에서,
벼슬과 명예를 추구하지 않고, 속세를 떠나 자취를 감추게 된다.
2. 화왕계
이 작품은 신라 설총의 작품이다.
설총은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아들로 유명하고,
그림에서 탁월한 재주가 있고, 이두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이두는 설총이 만든 것이 아니고, 정리했다고 하는 것이 옳다고 한다.
이 소설에는 사연이 있다.
신문왕이 한가한 어느날 설총에게 무슨 신기한 얘기가 없느냐고 묻자,
이 소설 내용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설총은 이것을 민간에서 들은 것이라 하며 은근히 임금을 풍자하였다.
왕은 글로 써서 올리라 하여 임금된 자의 경계가 되도록 했다고 한다.
그 후 왕은 설총을 높은 벼슬에 올려 섰다는 사연이 그것이다.
그 내용은 이렇다.
온갖 꽃이 있는 꽃나라에 꽃의 왕(花王)이 있었는데,
가장 아름다운 장미를 사랑했다.
그러나 할미꽃이 나타나 이렇게 이야기했다.
"가민히 보건대, 좌우에서 보살피는 신화는 고량진미와 향기로운 차와 술로 수라상을 받들어
전하의 식성을 흡족케 하고 정신을 맑게 해드리고 있사옵니다.
좋은 약으로는 전하의 양기를 돕고 나쁜 돌이 있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전하의 몸에 있는 독을 제거해올려야 할 줄 아옵니다.
그래서 말하기를 '비록 명주나 삼베가 있고, 부족에 대비하지 않음이 없다' 하옵니다."
이 밀은 바른 도리로 정치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3. 의인화 소설
이 책에 나온 소설 중에 내가 흥미를 가지고 읽었던 것은
국순전, 공방전, 국선생전, 정시자전, 죽부인전, 저생전, 여용국전 등
사물을 의인화한 작품이다.
전에 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를 통해
임춘의 <국순전>, <공방전>, 이규보의 <국선생전>,
이곡의 <죽부인전>, 식영암의 <정시자전>, 이첨의 <저생전>의 줄거리는 대충 알고 있었다.
그렇게 줄거리만 알고 있던 작품들을 완독하게 되어 좋았다.
그리고, 여인의 얼굴을 하나의 나라로 표현하고,
여인의 미용도구를 군사로 표현한 안정복의 <여용국전>은 가장 인상깊었다.
읽으면서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피곤과 살궁리에 쫓기는 사람들에게
한줄기 미소를 건낼 수 있는 우리 고전을 추천하고 싶다.
4. 그밖
그 밖에 생육신 중에 한명인 원호의 <몽유록>, 유몽인의 <진이>, <홍도>
김부식의 <온달> 등이 실려 있다.
이 중 원호의 <몽유록>은
꿈 이야기를 통해 단종과 사육신의 대화 자리에 지은이 자신이
참석하여 서로 마음속에 품고 있는 여러 가지 생각을 말하는 형식을 띠고 있다.
현대 소설 중 황석영이 지은 <손님>이 이런 형식을 빌려왔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몽인이 지은 <진이>는 황진이를 말한다.
책제목 : 금오신화, 화왕계 外
지은이 : 김시습, 설총 外
펴낸곳 : 범우사
펴낸날 : 1991년 1월 10일
정가 : 3,000 원
독서기간: 2009.03.25 - 2009.03.27
페이지: 210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