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보다 하얗게.
아이보다 순수하게.
雪라벌 기행7. 경주 구시가지.
졸업식이 끝났다. 생각과 달리 졸업식 날 많은 눈이 쏟아졌다. 학교에서는 강당이 있는 곳까지 안전하게 가야 하므로 운동장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길을 뚫었다. (정말 장관이었다.) 그래도 아무 탈 없이 중학교 생활을 마무리했다. 후련함과 허탈함이 같이 몰려온다. 어찌보면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많은 변화가 있었던 시절인데. 문예부, 도서부, 답사부 활동을 한 것도 그때고 이렇게 답사기를 쓰기 시작한 것도 그때다. 다음 고등학교에서도 좋은 일만 있기를.
(운동장 한복판에 오직 인력으로 뚫은 길. 선생님들과 정보고등학교 선배님들, 정말 대단하다.)
그리고 오늘. 발렌타이 데이다 안중근 기념일이다 참 말이 많은 날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역시 아침 일찍 시내로 간다. 원래 오늘은 박물관을 가려고 했으나 중간에 바꿔서 구시가지로 향한다. 대릉원까지 왔다가 다시 돌아가는 길에 문정헌이란 곳을 들른다. 경주에서 국제 팬 대회가 열린 후 기념으로 만들어진 도서관이다. 문정(文井)이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곳에는 오래된 우물이 하나 자리 잡고 있다. 언제적 우물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모양새를 보아 신라 때 우물로 보인다. 저 우물물을 마시면 지식이 샘 솟으려나?
(문정헌.)
(문정헌 내 우물.)
대릉원을 거쳐 돌아가는데 눈이 생각보다 많이 녹았다. 박물관을 포기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다. 다시 시내로 돌아와 경찰서와 소방서가 있는 쪽으로 간다. 경찰서에 있는 석탑을 봄으로써 답사를 시작한다.
(저번보다는 날씨가 맑아져 황남대총의 능선이 확실히 보인다.)
(경주 경찰서 내 석탑. 눈이 많이 녹았다.)
경찰서 맞은 편 동경관으로 간다. 동경관 앞에 있는 옛 교육삼락회 앞에는 여러 석조유구가 널려있다. 그리고 삼락회 건물 뒤로 가면 언제봐도 어색한 느낌의 동경관이 모습을 드러낸다. 눈이 다 녹았을 줄 알았는데 꽤 남아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박물관으로 갈 걸 그랬나?
(교육삼락회 앞 석조유구. 정말 경주는 곳곳에 이런 게 참 많다.)
(3분의 1만 남은 동경관. 제발 복원되었으면.)
동경관 옆에는 일제강점기 경주 최초의 서앙식 병원이었던 야마구치 병원이 보인다. 그리고 야마구치 병원 바로 앞 골목을 따라 걸어가면 옛 경주 관아가 나온다. 이 구시가지 일대는 대체로 조선 시대부터 일제강점기 사이의 유물들이 산재해 있는데 옆에 있는 대릉원이나 월성의 명성에 묻혀 주목을 많이 못 받고 있다. 뭐, 경주시 입장에서는 다른 곳에서도 관광수입이 많이 나오니 여기에 굳이 주목할 이유는 없겠지만. 여기도 유물전시관으로 이용되고 있는데 항상 갈 때마다 사람이 거의 없어 쓸쓸하게 느껴진다. 이곳의 분위기를 망칠 지 몰라도 많은 사람이 관심을 두었으면 좋겠다.
(경주 구 야마구치 병원. 예전에 한나라당 당사로도 사용됐다고 한다.)
(경주 관아. 지금은 경주문화원으로서 유물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앞에 주춧돌 몇 개가 있다.)
다시 아까 사거리로 나와 정면으로 걸어가면 한국 방사성폐기물관리공단이란 곳이 나오는데 예전에 경주여중 건물이었던 곳이다. 그 앞에는 경주 토종견 동경이를 키우고 있고(웃긴 건 이 두 동경이의 이름이 '방폐'와 '공단'이다.) 두 개의 비석이 있다. 하나는 예전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셨던 집경전이 있었던 터라는 것을 알리는 집경전구기비고 다른 하나는 그 집경전 앞에 서 있었던 하마비다. 저 비석을 대부분 별생각 없이 지나가는데 이래 봬도 정조대왕 친필이다. 주변에는 비각의 흔적인지 주춧돌과 계단 같은 석조유구가 있다.
관리공단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이상한 유적이 나오는데 여기가 바로 예전 태조 이성계의 어진이 걸려 있었다는 집경전이다. 다만, 어진을 모신 공간이라고 하기엔 조금 맞지 않는 느낌이다. 그래서 그런지 안내판에는 주전지(鑄錢址)라고 적혀있어 동전을 주조하던 곳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일부에서는 성문 일부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잘 보이진 않지만, 집경전 윗부분을 보면 당간지주가 끼워져 있다고 한다.
(집경전구기비. 정조 친필이다.)
(하마비.)
(작년에 찍은 동경이, '방폐'와 '공단'. (한문으론 다른 뜻이라는데 그렇게 믿기로 한다.))
(집경전 터(주전지). 모양새가 참 특이다.)
집경전 터에서 앞으로 가면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계림초등학교가 나온다. 초등학교 앞 문방구에는 애들이 학교를 마쳤는지 몰려들어 간식을 사고 오락을 하고 있다. 그 문방구 맞은 편에는 다 떨어진 간판을 달고 있는 '미나문방구'란 문방구가 자리 잡고 있는데 작년에 개봉한 영화, '미나문방구'의 촬영지다. 원래 저 문방구 이름은 계림문방구였는데 영화 촬영 후 기념으로 영화에 나오는 간판을 그대로 쓰고 있다고 한다. 영화를 보지도 않았고 영화 자체도 흥행엔 실패했지만, 저 문방구만큼은 정말 정겹게 느껴진다.
(미나문방구(계림문방구.))
계림초등학교는 지금 많이 어수선하다. 기록적인 경주의 폭설로 인해 강당 지붕이 그만 주저앉아 버렸다. 다행히 학교가 마친 후에 일어난 일이라 인명피해는 없었다. 운동장에는 걸레같이 되어버린 지붕이 놓여있고 크레인들이 강당 주변에 붙어서 작업을 하고 있다. 눈이 주는 피해를 황성공원에서도 봤지만, 더 참담한 상황에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그래도 아이들은 걱정 없이 노는 것 같아 다행인 것 같다.
(폭설이 만든 참단한 풍경.)
계림초등학교에도 여러 유물이 있다. 화단에 가면 석탑 부재와 여러 석탑 부재를 섞어 만든 듯한 석탑이 서 있다. 어디서 왔는지는 알고 싶다. 그리고 신기한 유물이 하나 더 있는데 보살 같아 보이는 불두가 사면에 새겨진 사면 석불이다. 조각이 무척 섬세해 한참을 들여다봤는데 조각이 이국적이어서 우리나라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근대나 현대작품처럼 보이기도 한다. 봐도 봐도 참 특이하다.
(화단에 놓여있는 석탑 부재.)
(각종 석탑 부재를 섞어 만든 석탑. 낯설지 않은 모습이다.)
(이국적인 모습마저 느껴지는 특이한 석조물.)
*혹시 이 석조 유물의 정체를 아시는 분은 댓글에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유신 장군 동상. 작년 학교 답사부에서 간 구시가지 답사 때 월성초등학교의 세종대왕상을 올린 적이 있었는데 그때 한 분이 경주답게 경주의 위인 동상을 세웠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신 분이 계셨다. 그 말씀이 생각난다.)
(오른쪽에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과 거북선 모형.)
이제 마지막 목적지인 경주읍성으로 향한다. 역시 눈을 소담스럽게 맞은 모습이다. 최근 목원공사 중인데 언양읍성처럼 부디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처음으로 읍성 위에 올라가 보는데 높은 편은 아니지만, 중부동 일대가 보이고 멀리 아까 왔던 계림초등학교도 살짝 보인다. 그때 마침 작은 싸락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살짝 따가운 듯한 느낌의 눈 알갱이가 쏟아진다.
(경주읍성 치.)
(올라가 본 치. 아무도 밟지 않은 숫눈이 잔뜩 깔렸다.)
(위에서 본 경주읍성 성벽.)
(경주읍성에서 본 경주 구시가지.)
(성벽.)
눈이 다시 내리니 기쁨도 잠시 아까 계림초등학교가 떠올라 걱정이 더 많이 된다. 이러다 작업하는데 무리가 있으면 안 될 텐데. 아무래도 마지막으로 내리는 눈이 아닌가 싶다. 답사를 끝내려다 눈도 내리니 정말 마지막으로 옥산서원으로 향한다.
(인제 와서 생각해보니 구 서경사를 답사에 빼먹었네...)
-여정- (2014. 2. 14. 金)
경주 경찰서→ 경주 교육삼락회(구 경주 교육청)→ 동경관→ 구 야마구치 병원→ 경주 신라문화원(경주 관아)→ 경주 방사성폐기물관리공단, 집경전구기비, 하마비→ 집경전 터(주전지)→ 미나문방구→ 계림초등학교→ 경주읍성--------------→ (8부에서 계속)
(雪라벌 기행1. 대릉원, 계림, 교동마을: http://cafe.daum.net/sanjoa035/4a0U/685)
(雪라벌 기행2. 월성, 동궁과 월지, 황룡사터, 분황사: http://cafe.daum.net/sanjoa035/4a0U/686)
(雪라벌 기행3. 낭산: http://cafe.daum.net/sanjoa035/4a0U/687)
(雪라벌 기행4. 황성공원: http://cafe.daum.net/sanjoa035/4a0U/688)
(雪라벌 기행5. 남산 삼릉계곡: http://cafe.daum.net/sanjoa035/4a0U/689)
(雪라벌 기행6. 불국사, 석굴암: http://cafe.daum.net/sanjoa035/4a0U/690)
(雪라벌 기행8. 옥산서원, 독락당: http://cafe.daum.net/sanjoa035/4a0U/692)
새롭게 펼쳐라!
羅新
첫댓글 옛 교육청은 교육삼락회로, 신라문화원은 경주문화원으로 수정했습니다.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