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추억 - 소사역에서 전철을 타고 인천으로 간다. 늦은 나이 덕분에 전철은 공짜고 경노석은 편안하다.. 동인천역을 지나 종점인 인천역에 도착한다. 인천역의 실제 이름은 하인천역이다. 인천에 상인천역은 없고 상인천중학교는 있었다. 인천역은 옛날 모습 그대로다. 길 건너에 차이나 타운 솟을 대문이 보인다. 언덕길을 올라 차없는 거리로 들어간다.울긋불긋한 중국음식점들이 가득하다. 만다복으로 가서 문지기의 안내를 받아 기다리다가 자리를 배정받는다. 전통적인 중국음식점 분위기다. 음식메뉴는 다양하고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일인당 3만원 코스요리와 이과두주를 주문한다. 중국은 평생을 먹어도 다 먹지 못할 정도로 음식종류가 많다고 한다. 배불리 먹고 음식점을 나와 경사가 가파른 계단을 올라 자유공원으로 가본다. 인천 앞바다가 시원하다. 고등학교 시절 점심시간에 후문을 통해 이곳으로 나와 쌍고등소리를 들으며 머리를 식히기도 하였다. 맥아더 장군동상이 높다랗게 서 있다. 언덕길을 따라 내려가는데 나무들에 가려져 비탈 아래 고등학교는 볼 수가 없다. 학교 정문으로 가본다. 옛날 모습 그대로다. 57년전 시골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제물포 고등학교에 입학하였는데 그 때 중학교 1년선배 김승환, 이병일, 2년선배 박운배도 같이 입학하였다. 정문길을 따라 들어가본다. 강당도 도서관도 옛날 모습 그대로다. 도서관은 그 당시 대한민국에서 시설이 제일 좋았었다고 한다. 도서관에서 이광수의 흙이나 폭풍의 언덕 같은 소설들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인천중학교 자리에는 길영희 교장선생님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인천중학교는 제물포고등학교로 간판이 바뀌었다. 인천중학교는 다른 곳으로 이전한 것 같다. 고등학교 교훈은 '학식은 사회의 등불, 양심은 민족의 소금'이다. 고등학교 교훈은 내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지침이 되었다. 시골에서는 정서를 배우고 고등학교에서는 삶의 지침을 마련하고 대학에서는 삶의 방법을 마련하였다. 운동장에서 고등학교로 올라가는 높다란 계단도 그대로 다.내가 공부하던 교실들은 나무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학교는 의구한데 동창들은 간데가 없다. 2022년 6월 18일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