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기도
아침 텔레비젼에선 인간극장이란 드라마를 방영했다. '아픈만큼 사랑한다' 제목부터 가슴에 와서 남는다.
필리핀 의료(병원)선교를 하는 박00 의사의 이야기다. 자신이 중증 말기 암환자이면서 가난한 필리핀의 시골 환자들을 돌본다. 슈바이처가 따로 없다.
자신의 여덟번째 항암치료, 췌장암과 두번의 위암 수술, 이번엔 복수가 차서 귀국했다. 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도 아픈 다른 사람들 걱정이다.
'까치는 가고 싶은 곳 날아가니 참 행복하겠다. 10년 더살면 모든 것을 바쳐서 병원선을 만들겠다'라고 의욕을 펼친다.
7남매 형제들과 친척들이 모두 나서서 일을 돕고, 그의 질병의 안타까움에 눈물을 보인다. 빠른 쾌유와 그의 선교활동이 활짝 꽃이 피기를 기원한다.
모대학병원에 근무하는 둘째 조카가 부산에서 의과대학을 다닐때부터 자신은 나중에 의료선교를 가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모교에 남지않고 수련의 과정을 마치고, 자신의 진로를 뒷바침 해줄수 있는 병원을 찾아떠났다.
나는 병원의 생태를 잘알고, 오지에 대한 관심이 많아 극히 짧은시간 그곳에 대한 여행을 해보았기에 매우 힘들 것이라며 만류를 했었다.
아이셋을 키워야 하는데 교육환경이 열악한 타국에서 그게 쉽지 않을 것 같기에 그랬다. 그래도 아이들이 크고나면 보람있을 것이란 생각을 안해본건 아니다. 우선은 아이들 잘키우고 꿈을 간직하기를 바래야겠다.
엇그제 낯선 사진이 카톡으로 날아왔다. 웬 것인가?하고 자세히 살펴보니 오래전 캄보디아 선교를 떠났던 최00목사가 보낸 것이었다.
작은형의 대학 후배라던 그는 우리가 다니던 교회로 부임해 왔었다. 담임목사님도 부산에서 왔는데 그와 대학동문이었고 우리와는 먼 인척이었다.
최목사는 나이가 내 또래이고 작은형의 후배이니 나에게는 매우 다정다감하게 대했다. 그리고 2년쯤 후 가족들을 이끌고 홀연히 선교지로 떠났던 것이다.
이후로도 가끔씩 나에게는 소식이 왔다. 내가 작은 성의니마 선교활동을 도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그가 침착하지 못한 성격이란 선입감에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웬만히 자리를 잡은 것 같아 좋아 보인다.
지금와서 생각하니 어려운 그에게 도움을 주지 못한것이 조금은 후회스럽다. 그의 건투를 빈다.
어제는 부산의 초등학교 동창회에 첨석했다. 올들어 참석이 저조했더니 총무와 시골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친구가 전화가 와서 얼굴 좀 보게 꼭참석 하라고 했다.
시청옆에 위치한 새로생긴 식당에 들어서니 많은 손님들로 정신이 사납다. 돗대기 시장? 시골 잔치집 같은, 나는 평소 그런 모습을 낯설어 하는 편이다.
요즘엔 텔레비젼 프로도 '00정보'라는데, 알고보면 먹는 정보다. 어쩌다 우리는 소크라테스를 외면하고, 배부른 돼지가 되고 말았을까? 아님 별다른 사는 재미가 있겠냐?마는...
70대 친구들은 이제 남은 시간을 걱정했다. 유독 나에게만 술잔을 권하며 '너밖에 먹을 사람 없다'고 말한다.
이 나에에 그게 뭐가 좋다고? '야! 이러면 나 집못찾아 간다' 사양하며 마지못해 꾸역꾸역 든 술잔에 취기가 올랐다.
아침일찍 애 엄마가 서둘러 아침밥상을 차렸다. 아침밥상이 아니라, 새벽밥상이란 마음이 들었다. 교인의 발인예배에 참석하기 위해서란다.
올년초까지 강아지 앞세우고 건강하게 다니시더니... 남편과도 인사 나누며 지냈던 분인데 그렇게 가시다니 안타깝다. 부디 원하시던 곳으로 초대 받으시길 기도해본다.
누군들 어차피 가야할 길, 우리는 언제까지 머무를줄 알고, 때론 탐욕에 빠져든다. 그래도 우리모두 떠나는 날까지 건강하길 빌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