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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주전 가족들과 저녁 식사를 하다가 앙코르와트에 가자고 했다.
년초부터 계획했던 만주 고구려 역사탐방은 아무래도 남북관계의 악화로
조금 더 뒤로 미뤄야할것 같고, 아들내미 군대 가기전에 시간내기가 마땅찮다.
미술사학과를 전공하는 딸은 세계문화유산 탐방이라 즉석에서 찬성이고...
입대를 앞둔 아들은 썩 내키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강하게 반대를 하지는 않는다.
아마, 가보고 싶기는 한데 세상에서 가장 못산다는 후진국에서의
불편이 꺼림칙 한가 보다.
엄마는 며칠간의 연속 결근은 곤란하다고 해서 아쉽게도 이번 여행에서 제외...
네식구가 모두 움직이지 못할 때는 가능한 식구만이라도 떠나는게 맞다.
모두의 시간과 여건을 맞추려고 하다보면 결국 시기를 놓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1997년 캄보디아의 실권자 훈센총리가 내부 반발(전통적으로 북한과의 수교국)을
정치생명을 걸다시키하며 한국과 수교를 튼후 캄보디아는 적대국가에서 이웃나라로 다가왔다.
2007년에는 한국인관광객을 태운 국내선 여객기가 캄보디아에 추락하여
더욱 기억에 남는 곳이기도 하다.
가장 못사는 나라에 있는 가장 눈부신 앙코르왓의 잊혀진 문명을 보기 위해
어렵게 캄보디아를 찾았던 많은 사람들이 밀림에 떨어져 죽었다.
역시 원인은 낡은 비행기의 안전성 부족과 스콜로 일컫는 순간 폭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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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왓의 문화유적군은
14 c부터 19c후반까지 500여년을 감쪽같이 밀림에 덮여 세상의 눈에 띄지 않았고
사람들은 500년동안이나 찬란한 힌두문명을 일궈냈던 제국을 잊고 지냈다.
1860년 프랑스인에 의해 처음 신비의 베일이 벗겨진 정교한 고대사원은 이제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받아 많은 관광객과 학자들이 잊혀졌던 역사를 복원하느라
땀을 아낌없이 뿌리고 있다. 더불어 세계7대불가사의 건축물중 하나로 인정되었다.
누구나 어릴적 재미있게 읽었던 정글북이란 동화책의 배경이 앙코르왓이라고도 한다.
먼 남국의 밀림을 배경으로 신비롭게 솟아난 사원의 첨탑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누구나 세상을 구경하고 싶어하는 사람들마다 가슴속에 꿈처럼 남아 있는 곳,
앙코르와트의 신비한 석탑사이를 아들, 딸과 배나온 아빠와 함께 빠져들었다.
출발때까지 열악한 환경을 걱정하던 아들내미도 크메르의 신비로움에 감탄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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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내 눈에 비친 캄보디아의 이미지는 안타까움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못 사는 나라, 국민 모두가 가난한 나라...더구나 2백만의 국민이
자기나라 정치지도자에 의해 학살이 된 나라...지금도 숲으로 몇발작만 들어가도
발목지뢰가 터지는 나라...그리고, 유적지마다 까맣고 순진한 눈망을의 꼬마들이
'원 달라'를 구걸하는 나라...
<유적지 어디서나 볼수 있는 아이들 모습...>
<학살된 주검을 수습, 유골을 모아놓은 위령탑...>
바로 그 캄보디아 바레이 호수가에서 천상의 합창단을 만났다.
애절한 아리랑의 애틋함이 우리나라에서 듣던 아리랑보다 더 진하게 스며들었다.
십여명의 아이들은 정기연습을 하지도 않았고 한국말을 배우지도 않았지만,
수제팔찌를 1달라에 팔기위해 한국인 관광객을 청중으로 노래공연을 했다.
그들은 값싼 수제팔찌를 1달라에 팔아야만 가족의 하루를 이어갈수있는
캄보디아의 아이들이었다.
<크메르제국 최대의 인공호수...가로 8km, 세로 2.5km의 거대한 호수다 수심은 2m 정도?...>
누군가가 한국노래 한가락을 가르쳐주면 그들은 입에서 입으로 연습을 해서 합창단을 만들었단다.
그리고, 한국관광객이 올때면 다른 유적지에서처럼 거지떼처럼 관광객에게 매달리지 않고
떳떳하게 한국인들앞에서 한국노래 메들리로 멋진 공연을 하고 팔찌를 팔았다.
아기곰세마리, 사랑해, 우리만남은, 아리랑...몇가지 되지 않는 레파토리지만
국내 어느 합창단보다 더 가슴 따뜻한 호소력으로 노래를 했다.
그리고 가지런히 평상에 올려놓은 자기 바구니의 팔찌를 사주기를 눈으로 애원하고 있었다.
<10개의 바구니 주인이 노래를 불렀다>
<앞에 서 있는 한 놈과 딸이 서로를 느꼈다..
1달라어치만 사라는 가이드의 충고를 무시하고 5달라 어치를 샀다.
캄보디아의 현실을 알고서는 꼬마들과 물건값을 흥정하는 것 자체가
천상의 합창을 선물한 캄보디아 신사숙녀에 대한 예의가 아닌것 같다.
무슨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냥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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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엠립 공항을 떠나는 비행기가 활주로를 벗어나자마자 칠흙같은 어둠이 도시를 덮는다.
한국에서는 어느 공항이든 이륙후 5분 이상을 날아야 그 도시의 불빛이 뒤로 밀려난다.
칠흙같이 어두운 그 도시도 언젠가는 야경의 아름다움도 자랑할수 있기를 바란다.
한국에 돌아온 후 밀린 업무를 대충 정리하면서도 가슴이 무거웠다.
그동안 내 기억속에서 사라졌던 어릴적 가난했던 추억이 캄보디아의 어린 꼬마들과 겹친다.
그러나, 40여년전 내가 그 꼬마만했을때는 저렇게 구걸까진 하지 않았었다.
부모님이야 뼈빠지게 농사를 지으시며 힘들었겠지만, 자식들은 공부를 하길 바랬다
.
부모님도 내게 돈벌라는 소리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고
당신 어깨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지도 못하고 자식들의 커가는 모습을 보며 그 무게를 견디셨다.
이제, 잊어버렸던 기억이 캄보디아를 보면서 다시 선명하게 살아났다.
Dreams come True. 꿈은 이루어진다. 그러나, 꿈을 꿀수 있어야 한다.
그 꼬마들에게 원달라에 팔찌 네개를 팔아야만 식구들이 먹고살 수 있는
암담한 가난에서 언젠가는 벗어날수 있다는 꿈을 키워가게 하고 싶었다.
작년 연말에 후원을 한 세이브더칠드런의 1:1후원 프로그램 가입을 생각했다가
문득, 노래 부를때 딸내미와 몇번이나 계속해서 눈이 마주쳤다는 여자애가 생각난다.
아홉살쯤 되려나?....서로 눈이 마주치면 겸연쩍어 웃고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보면 또 서로를 쳐다보고 있었다고 했다. 전생에 무슨 인연이 있었나?...
전혀 낯 모르는 제3의 아이보다는 딸내미와 정이 통하는 그 놈이 낫지 않을까?
늦동이 딸을 얻었다고 생각하하기로 하고 대학입학때까지 함께 하기로 결심이 섰다.
다음날 현지 가이드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그 놈의 생활형편과 연락처 등등을 알아보도록 부탁을 했다.
가이드도 귀국해서까지 캄보디아을 기억하고 전화를 줘서 고맙다고 한다.
일회성 후원금이 아닌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지속적으로 프로그램을 짜서 실행해야 한다.
옷이며 학용품이며 상급과정으로 진학할 때마다 필요한 학자금 등을 알아야 한다.
또한, 더욱 중요한건 최대한 가정이 자립 경제 생활을 할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한다.
물을 떠주기 보다는 물마시는 방법을 알려주어야 한다.
그래야 가늘지만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 끈은 처음에는 가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동아줄로 변할것이다.
나혼자 하자면 불가능한것도 아니지만 쉬운 일도 아니다.
다행히, 내 얘기를 들은 딸내미도 큰언니로서 꼭 챙겨주겠다고 한다.
딸아닌 딸을 새로 얻은 집사람도 조프란 프로젝트에 적극 동참하기로 했다.
이번 앙코르왓 여행에서 압살라의 후예인 예쁜 세째딸을 얻었다. <끝>
첫댓글 따님께서 살아 있는 역사공부를 하시고, 프로잭트가 기획 충원 조직 실천에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아리랑을 부르는 고운 목소리의 천사들에게 산역사의 다리가 연결돠는 성문학입니다. 카터는 톱과 망치를 들고 산 역사를 만들어 갔습니다. 더 큰 초석이 될 것이 틀림 없습니다. 꽃삽 어딨지?
예, 그동안 건강하시고 잘 계셨지요? ... 이번에 앙코르왓에 다녀와서 많은걸 느꼈습니다. 딸도 천년전의 찬란한 문명의 흔적을 보고 사학에 대해 더욱 관심이 많아졌다고 합니다.ㅎㅎ 아마 까만 옷을 입은 이 놈은 내게 열심히 살라는 주님의 소개가 아닐까 합니다. 딸내미와 맘이 잘 맞을것 같습니다. 앞으로 자립에 방향을 맞춰서 제 힘껏 방법을 강구하여 꼭 희망을 찾도록 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ㅎㅎ
아라랑이 들리네요... 산역사가 아루어지는 것이 보입니다. 님의 헌신적인 열정도 보입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캄보디아에서 자주 듣던 가락이었습니다. 지뢰로 다리를 절단당한 부상자들이 유적지입구마다 연주를 하는데 한국사람 비슷한 관광객이 지나가면 늘 아리랑을 연주해서 구걸을 하더군요... 하지만, 제 귀에는 호수가의 이놈들의 노래가 더욱 애절했습니다. 학교에 다닐 꼬마들이 부르는 생존의 가락이라서 그냥 들리지가 않는가 봅니다...
건축기술물로 봐서 상당히 발전된 15세기 문명이 있었던거 같은데 어떻게 저렇게 가난하게 살까.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좋은 일 하십니다. 행복하세요~~
제국이 망하면서 완전히 기억속에서 잊혀진 문명이 크메르 문명이더군요. 그리고 19세기부터는 프랑스 식민지...독립후에는 수시로 바뀌는 정권...특히 폴포트 정권의 원시 공산주의로의 회귀정책은 대부분의 지식인, 승려들을 제거하여 지도자없는 나라를 만들었습니다. 지금 훈센정권하에서 그나마 10여년째 안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역시 국가의 안보와 지도자의 중요성이 대표적으로 드러나는 케이스입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한 여름 휴가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여행은 마음이 맞아야 갈 수 있는데 아드님도 참 착하시네요..요즘 않 보이신다 했더니 그새 외국문명탐방을 다녀오셨군요.외국에 나가야 정말 애국자가 되고 마음이 넓어지는 것 같아요..차기대통령후보로 제가 밀어드릴께요
ㅎㅎ 아들내미가 군대에 갈 때가 되니까 상명하복의 정신이 살아나는가 봅니다.ㅋㅋ 그래도 밖에 나가니 내가 안챙겨도 누나 에스코트 하면서 든든한 모습을 보입니다.ㅎㅎ 특히, 이번 캄보디아 여행은 우리 식구들에게 많은걸 깨닫게 해준 경험이었네요?. 세째딸 프로그램도 가족간의 합의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감사드리고...다만, 차기대통령후보는 적극 사양합니다.ㅋㅋ 곧 방학인데 애들에게 좋은 경험이 될수 있는 프로그램 계획하시고 즐거운 시간 되시길 빕니다.
혼성합창단이군요....5살짜리 동생도 같이 자리한 합창단이 눈겹습니다
예, 다섯살부터 열 두어살까지의 꼬마들이 학교에 다녀와서 또는 학교에 가지 못하고 팔찌 등 악세사리를 팔아서 먹고살고 있습니다. 제가 이번 프로젝트를 생각하면서 가장 필요한게 팔찌 몇개 더 사주는게 아니라 가족이 우선 생계를 해결할수 있는 일을 할수있도록 해주는게 우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각도로 해결책을 찾고 있습니다. 한국에 와서 일할수 있도록 도와줄수 있는지를 알아보려니 집사람이 가족의 이별로 인한 경제적인 자립은 않좋다고 하고...현지에서 할수 있는 일을 만들어 줘야겠습니다.오토바이 택시를 운전하게 한다든지....고민중입니다.ㅎㅎ 건강하십시요...
'키다리아저씨'란 동화가 생각납니다.글구 한국에도 많은 결식아동이 기아에 허덕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국가에서 도움을 준다로 하곤 있지만 글쎄요.우리 나라가 복지국가가 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넘 많습니다.부자들이 재산을 사회에 많이 헌납해야겠지요..^ ^.담임선생님들이 반 아이들 학비도 보태주고 짜장면도 사주고 그런답니다.좋은 일 많이 하세요.제 마음이 다 든든해집니다.
맞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복지정책에 대한 보완이 많이 필요하지요. 아마, 근본적인 해결책은 부모들의 안정적인 경제활동을 보장하는 정책이 가장 시급합니다. 그리고, 가정의 소중함과 가족간의 사랑에 대한 이해가 정신적으로 병행되어야 하고요. 저도 정책을 담당하는 부처와 기관에 기회있을때마다 얘기는 하지만...전반적인 문제해결에는 우리나라의 역량이 아직은 부족한것 같습니다. 아무리 선진국이라도 부족한 부분은 있을수 있습니다만, 개인소득 2만달러와 600달러의 차이를 이번에 느꼈습니다. 모든 전쟁의 희생자는 전사자가 아니라 어린이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