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지 않는 천사’
81년 도 조양국민학교에서 3학년을 담임했을 때 일이다. 이철종이라는 까만 얼굴의 남자 어린이가 오랜 결석 끝에 어느 하루 아침 나타났다.
학급 어린이들은 반가워하기보다 몸을 도사리며 적대시하는 표정들이었다.
이유를 알아본 즉 도벽성이 심한 어린이라 했다. 어린이들은 참새같은 입을 모아
“이철종이는 할아버지네 가계에서 빵을 세 번 훔쳤어요.”
“이철종이는 공사장에서 철근 두 개를 훔쳤어요.”
“이철종이는 이수미 집에서 텔레비전 위에 있는 손목시계를 훔쳤어요.”
재잘거림 속에서 철종이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깡마르고 검은 그의 얼굴, 영양이라고는 한 푼어치도 없어 보이는 안색, 새장에서 완전 버림받은 애정결핍증에 걸린 버림받은 천사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짧은 소매의 때묻은 윗저고리며 넓은 바지 차림에 땟국이 흘렀다.
요즘 서울 중류 정도의 가정 어린이를 보라. 쇠고기 장조림 줄까. 미제 소시지를 줄까. 귤 좀 줄까. 뭘 좀 먹을래. 계란 토스트 구워줄까. 왜 안 먹니. 왜 안 먹어. 요것 조것 영양있는 것은 모조리 구해다가 먹어라 먹어라 하는 영양 팽창의 부유층 어린이들에 비하면 이 아이는 얼마나 가엾단 말인가.
어느 따뜻한 손길이 허기진 저 영혼의 여백을 메워주겠는가. 이런 한탄으로 서성이는데 조양 파출소에서 오후 3시까지 이철종 담임 출두 명령이 내려졌다.
수업을 마치고 난생 처음으로 파출소 문을 두드렸다. 경사쯤 되어 보이는 정복의 경찰관 앞에 섰다.
“당신이 이철종의 담임이오?”
“네, 그렇습니다.”
둥그런 눈을 뜨고 처다보는 나에게,
“당신 교육자가 아동들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거요?”
“교육이 아니라 도둑놈 양성하는 거 아니요?”
그제서야 조용히 학교에서의 일과 종합하여 철종이가 무슨 일을 저질렀나 보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단히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제 교육방법이 졸렬하여 저의 반 어린이가 불상사를 저질렀나 봅니다. 용서하십시오.”
자존심 다 버리고 머리숙여 사죄하였다. 파출소로 나와서 때묻은 철종의 손을 이끌고 해변가 바라크 촌락을 찾아 들었다. 철종의 집에는 칠순이 넘으신 할머님 한 분이 오징어 낚시를 찍고 계신다. 철종이의 아버지는 공사장에서 도둑으로 몰려 경찰에 감금된지 여러 해나 된다고 했다.
‘부전자전’ 퍼뜩 스쳐 가는 단어였다. 단칸 방에는 그래도 전자밥통 하나가 놓여 있었다. 오징어 낚시 찍는 비린내가 방안 가득 출렁였다.
할머니 말씀에 의하면 철종이 엄마는 다섯 살에 가출하고 생계는 아버지의 무직으로 호구지책이 없단다.
도벽성이 있는 철종이 환경에 수긍이 갔다. 필연적인 경과를 눈앞에 보는 것이었다.
“철종이 좀 더 사랑해야지.”
사회에서, 가정에서 버림 받는 아웃사이더 속에 던져진 어린 천사. 이 아이는 과연 어떤 인간형이 될까?
철종이 아버지처럼 가정 하나 따뜻이 이끌어가지 못하고 사흘이 멀다하고 철창을 두드리지 않는 인간이 되지 않는다고 그 누가 보장하겠는가.
다음 날부터 다른 아이들이 이상하게 여길 만치 특별한 애정으로 철종이를 감쌌다. 오직 철종이를 사랑하기 위하여 학교에 오는 양 철종에게 학용품, 도시락, 재미있는 책, 모두 가득가득 안겨주기 시작했다. 애정어린 눈길도 주었다. 생전 웃는 일이라고는 안 보이던 입가에는 누런 잇발 사이로 귀한 웃음이 삐죽이 내다보였다. 학급 어린이도 철종이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그후, 학급 어린이와 담임인 나는 철종이를 환한 세상으로 이끌어 들인 양, 기쁨에 충만해 있었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난 후 11월,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면서부터 이철종이 또한 의문의 결석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었다. 담임인 나는 또 한 핏줄 앞에 통곡하게 되었다. 담임의 정성도 아랑곳없이 친구들의 우정도 저버리고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의문의 장기 결석, 어쩔 것인가. 어쩔 것인가. 가슴을 조이며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이웃에 사는 학급 어린이들의 전갈에 의히면 이철종이는 어디 먼 곳으로 가출해버리고 없다는 것이었다. 그해 겨울이 와도 이철종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겨울방학을 맞이하고 학년말이 되어도 이철종이는 그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아니 나는 영영 이철종이의 깡마른 모습을 못 본 체 조양국민학교를 떠나오게 되었다. 지금 철종이는 어느 곳에서 어떤 생활을 할까. 어디서 공부는 계속하는지. 불량배가 되어 돌아다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어린 천사 하나 구하지 못하고 학교를 떠나온 내가 무슨 교사라고 많은 어린이 앞에 서서 교육을 부르짖는단 말인가. 자탄에 빠져보는 순간이 있다.
사랑은 교사 제 1의 과제인 것, 사랑이 없는 교사는 색맹이다. 사랑이 결핍된 교사는 교육의 근본을 실천하지 못한다. 교사는 항상 너그러운 미소를 지녀야 하겠다. 미소를 안고 있는 교사는 따뜻한 햇볕을 가슴에 안은, 덕의 향기를 지닌 선각자이다. 교사와 아동의 대화 단절은 비극이다. 행복한 교실이란 서로 흉금을 털어놓고 다정하게 주고 받는 대화 속에서 자라간다. 하지만 졸렬하고 우매한 방법으로 이런 천사 하나 건져 올리지 못한 저 많은 교사가 되어버린 것이다.
철종아, 어서 돌아오너라.
네게는 아무런 죄목도 없다.
어서 뛰어 오너라.
선생님은 따뜻한 가슴을 열고 오늘도 너를 기다린다.
*박명자는 시인으로,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다.
1973년에 현대문학지에 시인으로 추천받았다.
시집, ‘아흔 아홉의 손을 가진 四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