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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일대의 유업
염 상 섭
1
저녁때 젊은것들이 화장들을 하는 부산한 통에 휩쓸려서 기현 어머니도 마룻일을 끝내고 손을 씻으러 내려간 길에 세수까지 하고 오래간만에 저녁 화장을 엷게 하였다.
"오늘두 오시는 게로군요?"
김 과장이 이 집에 처음 오던 날부터 대객을 하던 젊은것이 우스갯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기현 어머니는 웃어도 아니 보이고 머리 빗은 손을 또 씻으러 마루로 가려니까,
"노신랑이라, 삼 일을 보름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씩 치르는 게지."
하는 주인 마누라의 웃는 소리가 안방에서 난다. 김 과장은 한 이십 일 전에 다녀간 뒤로 어제 비로소 친구들을 끌고 술을 먹으러 왔던 것이다. 그동안 기현 어머니는 혹시 들러 주지나 않나 하고 기다리다 못해 인제는 지쳐 자빠질 판에 어제 불쑥 왔던 것이다. 처음 오던 날 추운데 기차에 삐치고 달겨드는 길로 찾아와서 술을 이기지 못해 그대로 정신 잃고 쓰러져 자고 갔기 때문에 젊은아이들은 놀리느라고,
"새서방님이 왜 안 오시나? 왜 안 오시나?"
하며 늘 우스갯소리를 하던 것이지마는 기현 어머니는 그 조롱이 억울하기도 하고 체모에 깎이는 것 같으면서도 듣기에 싫을 것까지는 없었다.
"너희들은 왜 이리 겉몸이 달아 그러니? 허나 기현 어머니두 이왕 팔자들 고칠 작정이건 가만 있수. 그 사람은 젊은 맛에 좋기두 하겠지만 남 젊은 내외가 갖추어 사는 그런 자국에 어린것들을 끼구 얹혀 살기란 어려운 거요. 아무래두 늙직하구 푸근한 자국이야지! 서두르지 말구 가만 있어요. 내 하나 알맞은 자국을 골라 줄께."
주인 마누라는 이런 소리도 하던 것이었다.
김 과장을 몸이 달아 기다리는 눈치를 보인 것도 아니지마는 사동집 마누라부터도 한편은 젊은 과수요 한편은 밥 사먹고 묵던 청년인데 여기에까지 쫓아와서 자고 갔으니 으레 그런 사이려니 대중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주인 마누라의 말도 귓가로 들렸고 더구나 저번에 집에 갔다가 시아주비가 집문서를 들고 나서 잡힌다고 하는 통에 악다구니를 하다가 하도 분하고 기진한 끝에 졸도를 한 뒤로는 모든 것이 심란하니 무심하고 김 과장도 인제는 아주 잊어버리자는 작정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래간만에 불쑥 찾아오니 반갑지 않을 수 없고 차츰차츰 가라앉던 마음이 또다시 설레지는 것이었다.
어제 갈 때 내일 또 오마고 한 말을 고지식하게 믿는 것은 아니나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이렇게 저녁 화장도 하고 머리를 곱게 빗고 난 것이다.
그것도 무슨 뜻이 있어 내일 오마고 한 것이 아닌 것은 뻔한 일이다. 사택으로 짐을 옮겨간 뒤로는 코빼기도 볼 수 없던 사람이 아무리 요릿집이로니 친구를 셋씩 몰아가지고 와서 주석에 나와 앉으라고 불러내려하니 기현 어머니는 그것부터 못마땅하였던 것이었다. 나를 보러 왔으면 혼자 와서 만나고 갈 일이요 친구와 일되어서 술을 먹으러 왔거든 계집애들 데리고 술이나 먹고 갈 일이지 손님 앞에 나가는 접대부로 아는지 주석에 끌어내려는 것이 괘씸한 생각까지 나서 젊은것들이 두세 차례나 부르러 와도 모른 척하였었다.
나중에는 김 과장 자신이 안으로까지 들어왔기에,
"이건 누구를 작부나 갈보루 아셨습디까?"
하고 쏘아 주었었다. 자기를 무슨 정부나 되는 듯시피 친구들 앞에 구경을 시키자거나 그렇지 않으면 저희끼리 이야기가 나서 선을 보이자는 것 같다는 토라진 생각도 없지 않았으나, 김 과장은 단순히 집 들던 날 저녁에 한턱 내러 오마고 하고 헤어진 뒤로 무심했던 것에 토라져서 그러는가보다는 생각이 있었다.
"이거 암만해두 내일 다시 와 뵙구 멍석 대죄나 드려야 풀리시겠나보군."
멀쩡한 김 과장은 이런 실없은 소리도 하는 것을 기현 어머니는,
"사람 그만 놀리세요."
하고 한 달 전 하숙 아주머니로 돌아간 듯이 쌀쌀스립게 그러나 수줍은 기색으로 눈을 내리깔고 돌아서 버렸었다.
그러나 김 과장이 갈 때도 일부러 만나러 들어와서 내일 조용히 다시 오마고 은근한 인사를 할 때 기현 어머니는 그 말에 귀가 솔깃해서 비로소 꼭 다문 입가에는 숨기려는 웃음이 피어오르면서 무겁던 가슴이 훤하게 트이는 것 같았었다. 그러나 간밤에는 잠자리가 편치 못하고 오늘도 온종일 그저 심란할 뿐이었다. 무슨 김 과장이 그립다거나 원망스러워 그런 것이 아니라 어쩐지 자기 신상이 딱하고 가엾은 생각에 끌려들어가면서 세상이 귀찮다는 따분한 기분에서 헤어나지를 못하는 것이었다.
『내가 왜 이 지경으로 태어났던구…….』
하며 선잠에서 깨어난 듯이 새삼스럽게 자기의 주위를 어리둥절히 둘러보고는 처녀 때를 그리워하며 오늘 하루를 그런 기분으로 보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김 과장이 오늘 오려나 하는 은근한 기대가 혼잣속으로 구슬픈 웃음이 떠올라 오기도 하는 것이었다.
해는 좀 길어졌어도 제대로 전기가 들어왔으면 불을 켜도 좋을 침침한 건넌방 웃목에서 생률(生栗)을 치고 있는 장서방을 좀 도와주려고 기현 어머니도 마주 앉아서 껍질을 벗긴 물 묻은 밤을 들고 칼질을 하면서 귀는 문간으로 가곤하였다. 술 파는 다섯 시가 넘었으니 벌써 한 축 들어와 있다.
"참 어제 그 양반 오늘두 온댔죠?"
하얗게 붉은 껍질이 떨어져 나가는 손끝의 밤을 들여다본 채 장서방은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불쑥 이런 소리를 하고는 칼 든 손을 잠깐 쉬고 기현 어머니를 힐끗 치어다본다. 어둑한 속에서 기현 어머니의 갸름한 상이 다소곳한 채 하얗게 떠오를 뿐이요 대답이 없다. 잽싸게 놀리는 손끝에서는 칼날이 반짝이며 하얀 밤이 저며 떨어져 나간다.
"딴은 이런 세월에는 하숙 영업두 셈 안 될 거요."
장서방은 다시 칼질을 하며 말을 돌린다.
"그러게 오죽해야 이런 데 와서 신세를 지게 됐답니까!"
기현 어머니는 머리를 숙인 채 마지못해 대꾸를 하여주었다. 장서방이 못마땅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이 집에서 장서방까지가 김 과장과 자기와의 관계를 눈여겨 보고 아는 체를 하려 드는 것이 싫은 것이다.
장서방이 이 집에서 하는늑 일은 마님 따라다니며 장보아 오는 것과 생률이나 치고 과실을 다루며 마른 안주를 보살피는 외에 손님의 안내를 하는 것이지마는 사람이 직실스렴고 푼더분하여서 주인의 신임도 두턱우려니와 계집아이들 사이에도 평판이 좋다. 한 열흘 있다가 떡국 한 그릇을 더 자시면(음력설로) 서른이 꼭 찬다는데 아직도 장가도 못 가보았다니 생김새 보아서는 의외로 주변성 없는 숫보기인 모양이다. 딴은 나가서도 그렇게 얌전하고 숫보기인지는 보증할 수 없으나 이 집에 그렇게 젊은것들이 우글우글 드나들건마는 엄두가 아니 나서 애초에 손을 댈 생각도 안 내어 그런지 이때껏 뜬소문 하나 낸 적이 없다.
문간에서 손님이 들어서는 기척이 나자 장서방은 밤 깎던 칼을 내던지고 걷어올린 검정 양복 소매를 내리며 벌떡 일어나 마루로 나간다.
"어서 옵쇼…… 네, 계십니다. 추우신데 어서 저리 들어가십쇼."
어쩌고 하는 장서방 목소리에 섞여서 나직나직 김 과장의 말소리가 나며 뒤채로 들어가는 기척이다. 창칼든 손을 쉬며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앉았는 기현 어머니는 어두워가는 방 속에 전등불이나 확 들어온 듯이 따분하던 머리와 전신에 생기가 부쩍 솟는 것을 깨달았다. 김 과장이 방에 혼자 들어가 기다리고 앉았거니하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울렁하며 잔 파동이 사지에 번져 나갔다. 지난일은 어쨌든지 약속대로 와준 것만이라도 고맙고 실없는 소리들을 하던 젊은아이들이 보기에 체면이 선 것 같아서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아주머니 좀 나가 보세요."
장서방이 방에 들어서며 히죽 웃는다.
"왜요?"
기현 어머니는 일부러 딴전을 하였다.
"그이가 왔어요."
"여럿 입니까?"
혼자더냐고 묻기가 어려워서 반대로 물었다.
"둘이요."
장서방은 다시 제자리에 앉으며 눈살이 짜붓해지고 입귀를 빼쭉하는 기현 어머니를 한참 바라보다가,
"원 그렇게 눈치두 없는지 오늘은 혼자 올 일이지."
하고 혀를 끌끌 찬다. 기현 어머니는 얼굴이 발개지면서 선뜻 일어나 술상을 차리러 마루로 나와 버렸다. 사람 좋은 장서방이라 동정을 해 하는 말 같기도 하나 자기 속을 빤히 들여다뵌 것 같아서 부끄럽고 이 사람에게까지 놀림감이 된 듯싶어 싫었다.
이날도 손님방에는 끝끝내 아니 나갔지만 김 과장은 붙들러 들어오지도 않고 점잖이 술만 먹고 가다가 숨어 버리려는 기현 어머니를 기어코 불러내서,
"조카놈들이 오늘 올라왔죠. 아주머니가 여기 와 계시다니까 깜짝들 놀라면서 한번 보구 싶다하던데 내일 좀 놀러 안 오시겠어요? 나두 무심했지만 무얼 그렇게 노하셔서 발을 뚝 끊으시나요."
하고 새판으로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예, 인제 개학이 돼 올라왔군요? 한번 가죠."
기현 어머니도 천연히 지나는 말로 대꾸를 하였으나 석 달이나 밥을 지어 먹이고 아주머니 아주머니 하며 따르던 아이들이 만나보고 싶다하니 반갑게 들리기도 하였다.
"내일은 토요일이니까, 오후에는 다들 들어앉었을 테니 꼭 오세요. 안 오시면 아이들이 모셔라두 올 거니까요…… 가끔 들러서 부엌 구석이라두 보살펴 주시려니 했더니……. "
그 말을 듣고 보니 그편에서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요, 자기도 처음에는 그럴 요량이었는데 어째 이렇게 멀어졌던지 생각하면 까닭없이 너무 꼬부장하였던 자기 마음을 뉘우치기도 하였다. 하여튼 이러한 집에 학생들이 찾아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만이라도 이편에서 가 보아야 하겠다는 생각도 들고 학생들이 있는 바에야 자기가 서먹서먹할 것도 없었다. 무슨 그리운 사람이라기보다도 의지할 곳이라곤 없는 처지에 우연히 만난 사람이라도 그만큼 점잖고 믿음성스런 인물이면야 남성 친구로 길이길이 사귀어 두는 것이 좋은 일이라는 타산도 없지 않았다.
이튿날 기현 어머니는 자기 맡은 일을 대강 마치어 놓은 후 치장을 차리고 나섰다. 잠깐 나갔다 온다는 말에 쥔마나님이나 색시들이나 눈치는 채면서도 그런 일은 으레 있는 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라 아무도 실없이 곯리지도 않고 도리어 잘 놀고 오라는 인사들이었다. 그러나, 장서방만은 갈비를 다루고 있다가,
"안녕히 다녀옵쇼."
하고 머쓱한 낯빛으로 어설피 들뜬 목소리를 지른다. 기현 어머니는 웃는 낯으로 대꾸는 하여 주면서도 그것이 또 자기를 비웃는 듯이 들려서 덜 좋았다. 이 집에 온 지가 한 달밖에 안 되건마는 주인 마님한테와 마찬가지로 고분고분하고 이것 좀 잠숴 봅쇼, 저것 좀 맛봅쇼, 하고 지성껏 시중을 들어 주던 장서방이기는 하나 어제 그이가 왔다느니 눈치가 없이 혼자 오지를 않았다고 혀를 차고 하던 때부터 좀 실없이 구는 것 같아서 불쾌하였던 것이다. 설마 제가 시기를 하랴?―하는 생각이 머리에 떠오르며 기현 어머니는 혼잣속으로 웃기도 하였다.
2
"아, 아주머니!"
하고 두 학생이 내닫는 것을 보니 반갑기도 하였다. 밥짓는 아이도 두어 번밖에 못 보았건마는 여편네라고는 얼씬도 안 하던 홀아비 살림이라 어머니나 만난 듯이 반색을 하는 것이었다. 주인은 안방에서 손님과 이야기를 하다가 내다보며 들어오라 한다. 그야 웃는 낯이나 매우 정중하다. 어린아이들이나 친구가 있는 앞이라 해서 그런지 전에 집에 있을 때처럼 설면설면한 눈치가 도리어 기현 어머니에게는 실쭉하기도 하였다.
춥기는 하고 자꾸 들어오라니 남자 손님이 있는 방이지마는 기현 어머니는 하여튼 학생 아이들을 따라서 들어가려다 보니 원광이나마 사동집에서 어제 힐끗 보던 그 사람 비슷한 손이 마주 치어다보는 바람에 웬일인지 선뜻한 생각이 들며 멈칫하였다. 사십이 넘을락말락한 우둥퉁한 얼굴이 술에 절어서 부석부석하고 어딘지 메떨어지게 생긴 상판이 분명 어제 그 사람이다. 어떻게 생겼거나 기현 어머니에게는 상관도 없지마는 정기가 없는 뿌연 눈으로 체모 없이 멀뚱히 치어다보는 것도 불쾌하였다. 주인이 지나치게 정중한 데 비하여 그 사나이의 너무 나무람없는 태도에 기현 어머니는 자기가 술집 더부살이꾼이니까 저렇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또 분하였다.
"그래 아주머니를 모시구 올라오지 않구들……."
기현 어머니는 그 불쾌한 손님의 시선을 피하노라고 학생들에게 말을 붙이며 하는 수 없이 방으로 들어섰다.
"인제 날이 푸근해지면 아저씨께서 내려가셔야죠. 그동안 아주머니 여기 함께 계십시다요."
학생들은 말쑥하니 치장을 차리고 양직 두루마기를 곱게 입은 예전 하숙집 아주머니를 젊은 색시나 된 듯이 보고 또 보고 하며 신기해 한다.
"난 인젠 술장수가 됐으니까, 밥에미 노릇은 안할 테라구."
기현 어머니는 웃으며 앉도 서도 못하고 방문 밑에서 곧 나갈 듯이 엉거주춤하였다.
"앉으셔요, 우리는 저 방으로 갈 테니."
딴은 이 방이 전에 와 볼 때는 다다미방이었는데 분통같이 방은 널따란 온돌방이 되었다. 원래 이 사택에 달린 온돌이 저 뒤에 하나 있지만 이 방을 새로 들이고서 시골 식구를 불러오려는 것이었던 모양이다. 그런 것도 무심히 보이지 않고 부러웠다.
"어서 좀 앉으시죠."
"난 곧 가야 하겠어요."
기껏 놀러 오라 해 놓고 오늘도 또 친구와 마주 앉았는 것을 보니, 이런 좌석에 섞이기도 거북하거니와 또 속아넘어간 것 같다. 그러나 학생 아이들이 저희 방으로 끌어다 놓고 주인 조카 학생이 음식을 시키려는지 뛰어나가고 하는 통에 빠져나갈 수도 없었다.
"마침 ths이 와서 미안하게 됐군요."
뒤미처 김 과장이 들어오며 말을 건다. 책상 모퉁이로 앉았던 조카의 동무 학생은 선뜻 일어나서 자리를 비켜 나갔다. 기현 어머니는 이렇게 단둘이만 앉으니 마음과 몸이 저릿하며 얼굴이 달아올랐다.
아랫목으로 앉은 김 과장도 좀 어색해서 잠깐은 먹먹히 앉았다가,
"댁 애기들은 학교 잘 다니나요?"
하고 말을 꺼낸다.
"네. 요새 개학해 다니죠."
또 말이 뜸하여졌다.
"그런데 이건 내가 좀 잘못 생각했는지 모르죠마는……."
주인은 정색으로 말을 돌린다. 기현 어머니는 바짝 긴장하여지며 대담히 눈을 치뜨며 남자의 기색을 살펴보았다. 김 과장은 그 기세에 찔끔하는 눈치였으나 도리어 그 반동으로 말이 쉽사리 나왔다.
"다른게 아니라 아까 그 사람 보셨죠? 실상은 그제 어제 사동집으로 간 것은 좀 만나보시구 교제를 하시게 하려던 것인데……."
"……."
기현 어머니는 아뿔싸! 하는 생각에 눈이 뚱그레지며 또 한번 마주 쏘아보았다.
"우리 회사의 총무과장인데 퍽 좋은 사람이요. 믿음직하구 구수한 사람이죠. 작년에 상처를 하구 지금 하숙 생활을 하는데……."
기현 어머니에게는 하숙이란 말만 귀에 들어오는 것 같았다.
"다행한 것은 열두 살인가 열세 살 먹은 다 자란 딸 하나가 제 외가에 가 있는 것밖에 없는데 사정이 서루 동정하실 만두 하구 저쪽이 아무 꺼릴 것이 없으니 차차 교제를 해 보시면 아시겠지만……."
기현 어머니는 얼굴이 핼쓱하다 못해 두 무릎이 제대로 있지를 않았다.
"뭐 내 친구 사정만을 생각하구 이런 말씀을 하는게 아니라 아주머니두 저런 데서 고생하시는 것보다는 나으리라는 짐작으로 이리저리 궁리해 본 끝에 하는 말씀인데……."
여자가 눈을 내리깔고 파랗게 질려 있는 양을 한참 바라보고는 달래듯이 또 말을 붙였다.
"네, 알아듣겠습니다. 그 말씀은 두었다 하기루 하구 전 좀 곧 가봐야 하겠어요. 바빠서 나올 수 없는 걸, 학생들이 오면 안됐기에 잠깐 왔죠.“
하고 발딱 일어섰다.
"아니, 잠깐만 더 앉아 계서요. 그 얘기는 별문제루 하구…… 이 애들이 돌아올 때까지만……."
그러나 기현 어머니는 방문을 열고 나섰다. 흥분한 기색을 감추려고 아적도 입귀가 바르르 떨리며 고개를 외로 꼬아 눈길을 피하는 양이 이 여자가 울지나 않는가 싶어 김 과장은 미안한 생각에 더 붙들 용기가 아니났다. 흰 고무신을 황황히 신고 내려서는 여자의 뒷모양을 무심히 바라보며 이쁜 몸매라는 생각도 새삼스레 났으나 귀엽기보다는 쓸쓸해 보이고 다만 가여웠다. 그러나 자기로서는 그밖에 어찌하는 수도 없었다. 중매를 들잔다든지 하는 것은 무슨 일을 좋아해서 그런 것도 아니요, 부질없는 짓인지도 모르겠지마는, 그것도 기현 어머니를 위해서 하자는 노릇이었다. 기현 어머니의 안존하고 얌전한 품이 그런 데서 뒹굴 사람도 아니거니와 저러다가 몸이나 버리고 엉정벙정하는 동안에 나이나 한 사십 훌쩍 넘으면 나중에 무에 될꼬 하는 생각을 하면 확실한 자리에 중매를 드는 것이 고맙게 구는 그 호의를 갚는 본의도 되리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또 설사 자기에게 어떤 생각이 있다손치더라도 그것은 단순히 『남성』을 요구하는 것이지 반드시 자기가 아니면 해결되지 못할, 그런 인격적 심각한 요구는 아니려니, 하는 간단한 생각으로 집어치우려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여자는 의외에도 커다란 모욕이나 당한 듯이 전신을 발발 떨며 쓸쓸히 돌쳐서는 것을 보니 새삼스러이 그랬던가, 싶고 남자로서의 자랑과 승리감 같은 것을 마음 한구석에 느끼기도 하였다.
사실 기현 어머니는 속았다는 것과 멋모르고 선을 보였다는 이중의 커다란 모욕을 느끼면서 수치와 분노에 가슴이 떨리었다. 그러나 아직도 남자를 원망하거나 미워할 수는 없었다.
『내 팔잔걸! 애초에 그이를 집에 들이기가 잘못이지……그때 내가 무에 씌웠던 게야!』
흥분이 식으니까 남는 것은 이런 자탄뿐이었다. 서방 복도 못 타고난 이년의 팔자로 어째 사내에게 눈을 뜨려는 깜냥이었던고 하고 자기를 자기 손으로 쥐어박고 싶었다.
『대관절 과부란 뭔구? 과부는 어떻게 살라는 거람. 과부가 무슨 죄가 있길래 이렇게 살라는 건구?』
기현 어머니는 이렇게 혼잣속으로 화를 내 보았으나 뉘게 물어 봐야 일러줄 것도 못 되고 다만 앞이 캄캄한 것 같을 뿐이었다.
『난 왜 공부두 못했던구? 허지만 영감이 먹을 거라두 남겨 주구 갔더라면 어느 미친년이 서방에 눈을 뜨려 들까!』
공부를 하였더라면 그 공부가 자식보다 더 든든한 지팡이가 되었을 것 같고 앞이 환할 것 같다. 그러나 김 과장에게 먹여 살리라고 하는 생각은 꿈에도 없던 것을 생각하면 먹고 살 수가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기현 어머니도 아니었다.
기현 어머니는 사동집으로 곧장 발길을 돌리기도 싫었다. 김 과장의 듬직하고 떡 버티는 몸집과 순수한 얼굴이 뒤범벅이 된 머릿속에서 구름 새로 비치는 햇발처럼 덜미를 쫓아오면서 반짝반짝 떠오를 때마다 가슴이 꼭꼭 막히고 숨이 답답하였다. 걸음도 제대로 걸을 수 없이 발길이 허청 나갔다. 사이다를 한 병 마시거나 먹을 줄 아는 술 같으면 한 대접 벌떡벌떡 켜고 싶다. 발은 기계적으로 장교 천변까지 빠져나왔다. 자식새끼들을 들여다본대야 시원한 일은 없으나 사동집 아니면 갈 데라고는 역시 제 집구석밖에 없다. 장사동으로 돌쳐섰다.
3
"마침 잘 오셨군요."
일자 이후론 더구나 잘 왔다고 반가워할 일은 없건마는 동서가 안방에서 나오며 인사를 한다. 그래서 마루 걸레질을 부옇게 쳐 놓은 꼴이 남의 집문서를 넣고 이십만 환 돈을 쓴 바람에 활기가 돈 것 같다.
"왜 뭣 땜에? 애들은 어디들 갔나?"
"놀러 나갔죠. 어서 올라오세요."
점점 더 내 집 같지가 않고 손님 같다. 일전에 큰놈이 개학하던 전날 잠깐 들렀을 때는 시아주비가 안방에 들어앉았는 것이 보기 싫어서 뜰에서 아이들만 보고 가버렸었다. 그때까지는 아직 은행에서 돈이 아니나왔다더니 어찌되었는지? 마침 잘 왔다니 그 이야긴가 싶어서 천행으로 그게 틀리지나 않았나 하고 무슨 말이 나오려나 입만 치어다보다가,
"그래 문서는 그예 넣고 말았나? 이십만 환 쓰는 구경이라두 좀 하세그려." ˙
하고 자연 꼬집는 소리를 참을 수 없었다.
"그건 염려 마시래요. 급한 대루 삼십만 환 내었지만 저희 집하구 두 집 팔아 가지구……."
"뮈? 삼십만 환? 자 그러니 삼십만 환인지 오십만 환인지 누가 알 일인가!"
기현 어머니는 눈이 휘둥그래지며 기절하는 소리를 친다.
"은행에서 잘 주어야 시세의 삼분지 일밖엔 안 준다는데 이 집을 지금 내놓아야 겨울철이라 고작 팔십만 환 보구 갔는데 웬 삼십만 환에서 더 쓰려야 주기나 한다구요."
이건 마치 제 집 가지고 말하듯한다.
"그게 또 무슨 소린가? 팔십만 환을 보구 가더라니 누가 이 집 판다든가?"
기현 어머니는 목젖이 발랑말랑하며 숨이 곧 막힐 지경이다.
"그런 게 아니라 두 집을 팔아서 청창을 하고 좀 떨어져 앉으면 이보다 나은 집을 사드릴 수 있다는 말인가봐요."
"내 말 없이 집을 내놓다니? 집은 파는 날이 올라가는 날야. 그래 집 팔아 삼십만 환 바가지를 씌우구 문 밖에서 졸여 가란 말야? 그거 불한당의 심보 아니구 뭔가!"
숨을 할딱할딱 어깨로 쉬는 양이 저번처럼 또 쓰러져 정신을 잃을까 보아 무서웠다.
"그랬으면 어떨까 하는 말이죠. 집을 복덕방에 내놓게 되면야 아무러니 형 님깨 의논 안 하겠습니까?"
"글쎄 내놓게 되다니 어째 내놓게 됐단 말야? 이게 자기 집이야? 어서 그야말루 집 내놓구 나가 줘요. 양잿물을 먹구 죽으려야 발 뻗을 데나 있어야지. 어서 내일루 나가 주게."
아까 김 과장 집에서 나오면서 『이눔의 세상 죽어 버리면 그만이지 뭘 보자구 사는 거야!』 하던 생각이 분김에 입 밖에 튀어나오고 만 것이나 이러다가는 참 정말 이 아랫목에 결린 영감의 사진 밑에서 양잿물이나 마시고 허비적거리다가 죽을 것만 같다.
동서는 더 뜨렸다가 어느 지경에 갈지 몰라서 인제는 입을 쑥 치고 앉았다.
"모든 게 알 쪼야. 이 알량한 집 한 채나마 계집은 제쳐놓고 그 얌전하구 믿음직한 동생에게 맡기구 갈 제부터 벌써 이렇게 되라는 거야. 마음보가 고렇구야 죽어서두 죄 받는 거지!"
벽에 결린 사진에 채찍질을 하였다. 동서는 못 들은 척하고 아랫목으로 자리를 옮겨 앉으며 짜다가 둔 어린것의 털 자켓을 들고 난다. 기현 어머니는 그것이 또 보기 싫었다. 자기는 바느질 외에 그런 것은 손에 들어 보지도 못하고 엄두도 아니 나는 것이지마는 내 집을 횡령하다시피 잡혀서 그런 비싼 것을 사다가 자식새끼에게 짜 입히는 것이 눈꼴 틀렸다.
"그래, 무슨 얘기가 있어 날 기다렸던가?"
기현 어머니는 꼴 보기 싫어서 일어서고 싶으나 아이들이 들어오기를 기다리면서 말을 돌린다. 동서는 말을 꺼내기 전에 말끔히 기색을 살펴본 뒤에,
"말씀할께니 형님, 화나신다구 야단은 치지 마세요."
하고 미리 다지면서 좀 기분이 가라앉은 듯싶어 말을 꺼낸다.
"그동안 기현이가 학교에서 말썽이 생겼죠……."
"응? 뭣땜에?"
기현 어머니는 자식이 공부조차 변변치 않아서 못마땅하면서도 다만 가엾다는 생각에 끌려가는 것이지마는 깜짝 놀랐다.
"어떤 못된 녀석의 꾐에 빠져서 일학년생이 학급비 가지구 가는 돈을 뺏었더라나요……."
"그 무슨 소리야! 그래서?"
"그래서 어제 당장 부모를 오라구 학교에서 사람이 왔으니 누가 갑니까? 하는 수 없이 제가 갔었죠…… 실상은 벌써 일 주일이나 된 일인데 어제서야 발각이 났나보더군요."
동서는 이때까지 삼십만 환 때문에 몰려대었더니만큼 풀이 죽어 가던 것과는 달리 얼굴에 생기가 돋아 오르며 기가 나서 퐁퐁 쏘는 것이었다. 기현 어머니는 어이가 없어 멀뚱히 몽총한 동서의 얼굴을 치어다만 보고 있었다.
"학급비 칠백 환에 책값 이백 환, 모두 구백 환이라나요. 일학년 아이들이 가지고 가는 낱인 줄 알구 무어라나 하는 오학년 놈이 조고만 계집애를 끌구 가서 돈을 보자니까 내뵐 수밖에요. 그것을 기현이가 뺏어들구 두 녀석이 뺑소니를 쳤더라는군요……."
그래서 학교에서는 일주일을 두고 범인 수색에 노력한 결과 어제 진범이 나타나자 기별이 왔는데, 당장 가 보지 않으면 아이들은 경찰서로 넘길지 모른다는 바람에 뛰어갔었더라는 것이다. 그도 그렇겠지마는 팔자에 없는 호통만 받았다는 공치사와 함께 왜 그런 자식을 낳느냐는 듯이,
"원 이씨댁 가문엔 처음 보는 일이지……."
하고 동서는 입을 빼쭉한다. 기현 어머니는 코가 맥맥하였다.
"그래서 물론 출학이지마는 돈은 두 애 집에서 반반씩 물어 놓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경찰에 넘겨서 감화원으로 보내겠다나요. 그래 형님께 기별을 해야는 하겠는데 애아버지는 갈 틈이 없다 하구 저두 빠져나갈 수가 없던 판에 잘 오셨에요. 돈을 해 가지구 곧 학교루 가 보세요."
그 말 구조가 얄밉고 분통이 터지나 기현 어머니는 입을 봉한 듯이 앉았다가 벌떡 일어났다. 아무 말이 없이 쏜살같이 밖으로 나가더니 한식경이나 지난 뒤에 두 아이들을 우르르 몰고 들어왔다.
콧물을 질질 홀리는 작은놈은 영문을 모르고 어머니의 독이 난 얼굴을 바라만 보고 있으나 큰놈은 지은 죄가 있는지라 벌벌 떨고 있는 것을 방에 들어서는 길로,
"뒈져라, 네 애비 화상 밑에서 어서 뒈져 버려. 무슨 원수루 네따위를 내게 복장을 안기구 혼자 편안히 갔더란 말이냐. 누구를 못 살게 굴려구 육십 평생에 남기고 간 것이 이런 것들뿐야."
하고 그대로 후려갈기는 것이었다.
"난 안 그랬에요, 난 안 그랬에요, 그 애가 하라니까 그랬지……."
"씨도둑은 못하느니라. 남의 집문서 훔쳐다가 잡혀 먹고 팔아까지 먹겠다는 그런 배짱의 한 핏줄기 아니냐! "
동서는 독살이 난 눈으로 기현 어머니를 흘겨본다. 또 한바탕 두들겨 팼으나 매맞는 아이보다 어머니가 지쳐서 쌔근 벌떡한다. 기현 어머니 자신도 저번에 와서 집문서 때문에 까무라친 생각이 얼떨결에라도 머리에 떠오르자 겁이 나서 분을 참았다. 저번에도 그랬지마는 김 과장 집에를 거쳐 오다가 집에 들르면 이런 일이 닥쳐오는 것이 불길도 하고 더 분하였다.
학교에를 데리고 가서 빌어 불까 하였으나 시간도 넘었겠지마는 기현 어머니는 홧김에 그대로 뛰어나와 버렸다¸ 사동집에를 들어서니 석양판에 뜰에 섰던 장서방이 힐끗 거들떠보고 입을 삐쭉하다가 기현 어머니의 아직 꺼지지 않은 살기가 내배는 낯빛을 보고 어떤 무슨 짐작이 들었는지 늘 하는 입버릇으로,
"어서 옵쇼! "
하고 다시 반색을 하여 보이고는,
"점심이나 잡수셨나요? 시장하시겠는뎁쇼."
하고 은근히 인사를 하고 밥상이라도 차려다 주려는 듯이 서둘러 댄다. 기현 어머니는 그래두 자기를 아껴 주는 사람이 있구나 하는 생각에 잔뜩 목줄띠까지 치밀어오른 울기가 스스로 가라앉는 것 같아서 축대로 올라서는 몸이 금시로 가벼워지며 해죽 뒤를 돌아다보았다. 헤에 웃으머 뜰 한가운데 섰는 장서방의 얼굴이 어딘지 김 과장의 모습과 같은 데가 있다고 생각이 들자 기현 어머니는 찔끔하며 어깨가 오싹하는 것을 깨달았다.
〈1959년〉
2016년 11월 29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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