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로 시작하는 자기만의 질문을 깊숙이 파고들다 보면, 지금 우리가 가장 큰 관심을 두는 사안이 어린 시절에 겪은 특정한 사건에서 비롯됐음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나의 글로 세상을 1밀리미터라도 바꿀 수 있다면> p.78
책을 읽으며 내가 꽂혔던 문장이다. 아마도 내가 처음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던 때가 어린 시절에 자라지 못한, 내 안의 어린 영혼을 치유하고 싶다고 마음먹었던 때였던 것 같다.
내 안의 작은 영혼
나의 아이가 학령기가 되어 갈 즈음 아이 공부에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배울 때였다. 여성 센터에서 성격유형검사를 했는데, 나의 검사 결과는 한두 가지 성향이 두드러지는 것이 아니라 세 가지 성향에서 모두 높은 점수가 나왔다. 다중인격인가 싶어 강사님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부모님’이라는 단어가 쏟아지면서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내 마음속에 꽁꽁 숨어서 자라지 못하고 웅크리고 있는 어린 영혼을 그날에서야 인지하게 되었다. 이따금씩 그 아이가 튀어나올 때면 한없이 소심해지거나 우울해지고 분노를 폭발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럴 때면 나 자신이 너무 싫었다. 심리상담을 받아봤지만 오래 지속할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다.
시간이 흘러 독서모임에서 우연히 <마음아, 넌 누구니>라는 책을 받았다. 작가는 자신이 마음치유 전문가임에도 어머니와 갈등을 해결하지 못해 고민하다 어머니께 글쓰기를 권유한다. 어머니는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써내려가면서 자신을 들여다보고 이해하고 치유되는 과정을 겪는다. 그걸 보면서 나도 글을 써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만의 노트를 만들고 나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한 번에 쓴 건 아니고 오랜 시간 드문드문 나의 어린 시절을 떠 올리며 글로 토해 냈다. 그 과정에서 과거에는 왜 나만 불행을 겪어야 했는지 억울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누구나 살면서 아픔과 시련을 겪는다는 것, 그저 난 조금 일찍 겪은 것뿐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렇게 나를 이해하고 보듬어 주다 보니 자신을 조금 더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글을 써서 공유한다는 것
나의 문제가 어느 정도 해소되고 즐겁게 생활하고 있을 때였다. 한 번은 친구와 대화하다가 자신의 진로를 막았던 부모님에 대한 원망을 듣게 됐다. 나도 마흔이 넘어갈 무렵 내가 잘 살고 있는 것인지 고민이 많았고, 부모를 원망하기도 했던 터라 친구가 꼭 이전의 나 같았다. 원망해도 소용없는 일이니 지금의 내 삶을 위해 놓아주라고 말해 주고 싶었다.
나는 친구들 중에서 가장 먼저 결혼했다. 아이도 제일 먼저 낳아서 친구들이 육아 고민이 있을 때 나에게 종종 묻는다. 그렇게 아이를 키우다 보면 아이 나이에 따라 부모가 비슷한 고민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긴 나도 아이를 키우며 고민이 들 때마다 육아 선배를 찾고 조언을 듣고자 했으니까. 이제는 동생들도 뒤늦게 아이를 낳아서 나에게 고민을 털어 놓는다. 물론 육아에 정답은 없다. 그저 나의 경험을 말해 줄 뿐이다. 그런데 기억은 한계가 있다. 잊기 전에 어딘가에 기록으로 남겨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경험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 이왕 시작하는 김에 공개 블로그를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힘이 된다는 것
공개적인 곳에 글을 쓰다 보니 좀 더 잘 쓰고 싶다는 생각으로 연결됐고, 글쓰기 책과 강의를 기웃거리며 읽고 들었다. 그러다 우연히 노워리 기자단 모집 메일을 보게 되었고 공적인 글쓰기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 하나만으로 신청했다. 작년에 노워리 기자단에서 함께 읽은 책 <그냥, 사람>은 유독 강렬했다. 이 책을 읽고 과연 내가 어떤 글을 쓸 수 있단 말인가. 그동안 눈 감고 보지 않고 나 몰라라 했던 차별 받고 고통 받는 이들의 삶. 내가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사람들. 이러한 나의 마음을 써내고 한발 더 다가가겠다는 다짐의 글을 겨우 썼다. 그 글을 나의 블로그에도 올렸고 어느 날 댓글이 달렸다.
“지금 이 책을 읽다가 작가님이 궁금해져서 네이버 창에 검색하다 덤으로 님의 글을 보았네요. 홍은전 작가님은 글을 어쩌면 이렇게 따뜻하고 탁월하게 쓸까요? 저는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양육하는 맘인데요, 뭔가 마음이 꽁꽁 얼어붙어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님의 글을 읽으니 마음이 녹는 게 느껴지네요. ㅠㅠ”
부족한 나의 글을 읽고 마음을 녹이셨다니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계속 쓰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글을.
나의 어린시절 때문인지, 유난히 아이들의 삶을 들여다보게 된다. 힘겨웠던 내 어린 시절을 보상받기라도 하듯 아이들이 지금 즐겁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그래서 나처럼 육아를 하느라 힘든 부모들과 과도한 학습량에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글을 쓰고 싶다. 계속 쓰다 보면 잘 쓸 수 있겠지. 쓰다 보면 10편 중 1,2편은 건지겠지. 그렇게 포기하지 않고 계속 써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