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의 생활 원리 1
– 창세기 : 하나님은 인간과 함께 새로운 일들을 시작하신다
창세기는 하나님을 제외한 모든 것의 기원에 관해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거기엔 매우 중요한 두 가지 시작이 들어 있는데, 하나는 인류의 시작이고 다른 하나는 히브리 민족의 시작이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에서 대부분 인간과 함께 새로운 일들을 시작하셨다. 하나님은 항상 인간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에서 인간들이 알아내려고 갖은 애를 쓰는 천지창조와 같은 큰 사건들은 간략하게 다루시는 반면, 남자와 여자에 대해서 많은 부분을 할애하여 말씀하셨다. 그만큼 인간에게 관심을 갖고 계시기 때문이다.
당신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일을 계획하는 데 주된 관심을 쏟는가, 아니면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는가? 또 방법론에 역점을 두는가, 아니면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가? 만일 하나님께서 당신의 나라나 교회나 가정에서 새로운 일을 하신다면 필경 사람들을 통해 이루실 것이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할 때 방법론을 찾는 경향이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나타낼 자를 찾으신다.
창세기 1장에서 11장까지는 창세기의 첫 번째 중요한 시작인 인류의 시작을 다룬다. 우리는 이 부분을 아담, 아벨, 노아, 바벨의 네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창조, 타락, 홍수, 흩어짐의 사건 모두가 사람들을 중심으로 발생했다.
아담 : 첫 번째 인간(창 1-3장)
하나님께서는 천지창조의 처음 닷새를 설명하는 창세기 1장과 2장에서 하루 평균 다섯 절 미만으로 말씀하셨다. 그러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신 여섯째 날에 대해서는 다른 날보다 여섯 배나 많은 분량으로 말씀하셨다. 성경의 발단에 해당하는 이 부분에서 하나님은 원하시는 일들을 스스로 이루시는 능력을 보여주셨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부분 이후로는 인간들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로 결심하셨다는 것이다.
아담은 금단의 열매를 먹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그 열매는 사과였을까? 누가 알 수 있을까 싶지만, 누구라도 귤을 한 입 먹기 위해 세상을 죄에 푹 담그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가장 먼저 죄를 지었을까? 하와인가? 아니다. 그건 바로 뱀이다(사 14:12-15).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와 교제를 나누기 위해 그들을 찾으셨던 것처럼(창 3:9) 이후에도 줄곧 인간들을 찾으셨다(요 4:23). 당신은 당신의 창조주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누리고 있는가? 그리고 그분께 순복하고 있는가?
아벨 : 인간의 첫 번째 제사(창 4,5장)
아담과 하와의 처음 두 아들은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유일한 두 가지 방식, 곧 하나님의 방식과 우리의 방식을 예시한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지은 인간이 오직 자기를 대신하는 피의 희생제사를 통해서만 하나님께 다가갈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셨다. 하나님께서는 아벨과 그의 동물제사는 받으셨지만, 가인과 그의 곡물제사는 거부하셨다.
이후에 땅에서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가인을 따르거나 아벨을 따랐다. 자신의 선행이나 공로를 의지하여 하나님께 인정을 받으려는 사람은 가인과 같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두 번째 대안’을 거부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 바란다.
우리를 대신하는 다른 누군가의 피의 희생을 의지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구속(救贖)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창세기 3장 21절은 하나님께서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다고 말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희생제물을 공급하셨다는 의미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거룩한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세상의 죄를 단번에 영원히 속죄하고도 남을 완벽한 희생제물을 공급하셨다(히 9:11,12).
당신은 영원한 구원을 위해 무엇을 의지하고 있는가? 누구를 의지하고 있는가?
노아 : 하나님의 첫 번째 선박 제조자(창 6-10장)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쓸어간 홍수 심판으로부터 남은 자를 구원하고자 노아를 사용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치에 맞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노아는 하나님이 계시하신 그대로 행하였다. 육지 한가운데서 방주를 만들었던 노아의 선박 건조 프로젝트가 죄 많은 이웃 사람들에게 얼마나 우스꽝스럽게 보였을까? 그리고 그 당시 누가 홍수를 보거나 홍수에 대해 들어보았겠는가? 아마 그전까지는 비가 내리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나님은 노아의 세대가 ‘노아의 바보짓’이라고 여긴 일을 통해 인류에게 새로운 시작의 기회를 주셨다. 그리고 노아는 유일한 구원의 문으로 들어오라고 사람들을 불렀고, 노아의 방주에는 이들을 수용할 만한 충분한 공간이 있었다. 23미터의 폭과 135미터의 길이에 3층으로 이루어진 노아의 방주는 그 바닥 면적이 오늘의 미식축구 경기장보다 더 넓었다.
바벨 : 인간이 첫 번째로 세운 탑(창 11장)
이처럼 흥미로운 창세기 11장까지의 성경 본문을 다시 한 번 읽어보며 새로 시작된 것들을 공책에 기록해보기 바란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인간과 함께 시작하셨는지 주목하라. 또한 사탄이 대단한 흉내쟁이라는 것을 눈여겨보라. 사탄도 인간과 함께 새로운 것들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오늘 당신의 삶에서는 과연 누가 새로운 것들을 시작하고 있는가? 하나님이신가, 사탄인가?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창세기 12장에서 50장까지는 창세기의 두 번째 중요한 시작인 히브리 민족의 시작을 다룬다. 이 부분 역시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의 네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님은 인간과 함께 계속 새로운 일들을 시작하셨다.
“하나님의 벗”(약 2:23)이라는 최고의 칭호를 얻었던 아브라함은 고도로 발달된 이교 문명(갈대아 우르) 가운데서 부름을 받아 ‘히브리’라는 새로운 민족의 시조가 되었다.(창 14:13).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은 아랍인들의 조상이 되었고, 이삭은 유대인들의 조상이 되었기 때문에 오늘날 유대인들과 아랍인들은 각기 아브라함을 우러러본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믿었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의(義)로 여기셨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의로 여기심’을 선물로 받았다(창 15:6). 우리도 동일한 선택을 할 수 있다. 우리가 스스로 의를 세우기 위해 노력할 수도 있고, 하나님의 선물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딛 3:5)라고 분명히 가르쳤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통하여 큰 민족을 이루고 그의 이름을 창대하게 하고 땅의 모든 사람들이 그로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라고 약속하셨다(창 12:1-3).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창 17:19)과 손자 야곱(창 35:10-12)과 증손자 요셉(창 49:22-26)에게도 이 엄청난 약속을 해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유대 민족의 조상이 된 이 네 족장의 삶을 기술하기 위해 창세기에서 총 39장(12-50장)이라는 지면을 할애하셨다.
하나님은 혼자서 하나님의 일을 하기도 하시지만(사도행전 9장에 나오는 다메섹 도상에서의 사울의 회심 사건처럼), 대개는 사람들을 통하여 자신의 일을 하신다. 일례로 하나님께서는 나의 삶에서 주로 다른 사람들을 통하여 역사하셨다. 나는 열두 살 때 하나님을 찾지도 않았고 또 하나님께 관심도 갖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내 친구들을 통해 나를 찾아오셨다. 어빙이라는 친구는 정말 귀찮을 정도로 교회에 가자고 졸랐다.
마침내 그 친구를 따라 교회에 갔을 때 하나님께서는 성난 듯이 고함을 지르는 여성 설교자 한 분을 들어, 내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거저 주시는 구원의 선물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깨우쳐주셨다. 나중에 나는 은퇴한 장로교 사역자 한 분의 도움으로 복음 사역에 뜻을 두게 되었다.
중학교 3학년 시절, 교회에서 실시한 웅변대회에서 쓰라린 실패를 맛보았을 때, 그 분은 나를 격려하기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으셨다. 내 아내도 그녀의 간호학교 친구들이 주선한 모임에서 만났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통해 일하신다는 사실이 나는 기쁘다. 당신은 그렇지 않은가? 하나님께서 당신 인생의 화폭에 그려 넣으신 사람들을 돌이켜보며 감사하기 바란다. 그들에게도 고마움을 표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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