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포 이야기 II] 예쁜 꽃에 어울리지 않는 얄궂은 이름의 식물들
[2010. 10. 11]
자주 받는 질문 가운데, “어떤 나무를 가장 좋아하느냐”는 질문이 있습니다. 질문은 쉽지만, 대답은 어렵습니다. “유난히 좋아한다 할 나무 없이, 다 좋은 걸 어쩌죠”라고 답하면, 그래도 한 가지 나무만 꼽아달라고 말씀하십니다. 며칠 전에는 저와 함께 공부하는 학교의 학생이 학교 신문에 저와 나무에 관해 쓰겠다고 찾아와서 또 똑같은 질문을 했어요. 그렇게 어쩔 수 없이 꼭 하나만 짚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약간 방향을 달리 해서 대답하지요. 좋아한다기보다는 각별한 관계를 가지는 나무라며, 위의 나무를 꼽곤 합니다.
경기도 화성시 전곡리 물푸레나무인데, 버려질 수도 있던 나무를 찾아내 천연기념물이 되게 한 나무이거든요. 얼마 전 이 나무를 찾아가 나무 아래에 사시는 어른을 만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바로 나무 아래에서 오십 년 동안 살았지만 이 나무에서 꽃이 피어나는 걸 보지 못하셨는데, 2004년에 이 나무에 꽃이 피었다는 겁니다. 그때가 바로 제가 이 나무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했으면 좋겠다고 문화재청에 건의를 넣었던 때이거든요. 신기한 일이지요. 그 사연은 노인의 이야기를 곁들여 신문의 나무 칼럼으로 썼습니다.
천리포수목원의 식물들은 너나없이 모두가 가을채비로 분주합니다. 어느덧 무늬식물원의 팽나무와 화살나무의 잎사귀에는 노랗고 붉은 단풍이 올라왔습니다. 아직 가을의 상징이랄 수 있는 국화 꽃은 피어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가을 느낌은 완연하게 느껴졌습니다. 수목원 숲을 거닐며 눈 감으면, 이제 곧 활짝 피어날 다양한 종류의 국화과 식물들이 부를 가을 노래가 들려오는 듯합니다.
오늘 편지에서는 지난 여름의 숙제부터 풀고 지나가야겠습니다. 꼭 한 달 전인 9월 13일에 보내드린 편지의 맨 끝 사진, 기억하시는지요? 부들과 창포를 이야기한 편지였습니다. 그 끝에는 까만 날개를 활짝 펼친 나비 한 마리가 조그마한 꽃에 살포시 내려앉은 사진을 보여드렸습니다. 그 다음의 편지에서 자세히 소개할 요량이었기에 식물의 이름도 밝히지 않은 것이지요. 위 사진이 바로 그 사진과 같은 식물입니다. 그리고는 한 달이 훌쩍 지나버렸네요.
계요등(Paederia scandens)이라는 덩굴식물니다. 8월 말 쯤의 어느 아침에 천리포 해변을 통해 수목원을 들어가 천천히 걸을 때, 눈에 들어왔던 식물입니다. 전시를 목적으로 식물을 심어 키우는 곳이 아닌 우리 수목원의 대부분의 식물이 그렇듯이 그냥 아무렇게나 자라난 덩굴식물이 허공으로 뻗어낸 줄기에 아주 작은 꽃이 조롱조롱 피어있는 게 눈에 들어왔지요. 제가 모르는 식물이 아직도 많기만 하지만, 계요등 역시 그 중의 하나였습니다. 나중에 우리 지킴이들에게 물어서 알게 된 예쁜 식물입니다.
계요등을 이야기하려면 먼저 그의 독특한 이름부터 이야기해야 하겠습니다. 한자로 ‘鷄尿藤’이라고 쓰는 그의 이름은 한번 들으면 잊기 어렵습니다. 발음을 예쁘다고 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뜻은 참 흉합니다. 닭 鷄, 오줌 尿, 등나무 藤이거든요. ‘닭오줌등’이라는 뜻이 되겠지요. 우리 민간에서 부르는 이름도 흉하긴 마찬가지입니다. ‘구렁내덩굴’이라고 부르니까요.
앙증맞게 피어난 예쁜 꽃에 어울리지 않는 흉한 이름이 붙은 건, 계요등에서 나는 냄새 때문입니다. 그의 잎과 줄기에서 그리 유쾌하지 않은 냄새가 난다 해서 붙인 이름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 냄새를 맡지 못했어요. 굳이 나뭇잎이나 줄기를 꺾어 비벼댈 일은 없으니까요. 흉한 냄새가 있다는 건 나중에 식물도감을 통해 알게 된 겁니다. 학명인 Paederia 역시 냄새가 있다는 뜻의 라틴어입니다.
꼭두선이(Rubiaceae)과에 속하는 계요등은 우리나라의 모든 지역에서 잘 자라는 식물입니다. 따뜻한 곳을 좋아하는 탓에 비교적 충청남도 이남 지역에서 더 흔하게 볼 수 있는 식물이지요. 줄기를 타고 오르며 단정하게 마주나는 잎사귀는 길이 12센티미터, 너비 7센티미터 정도로 크게 돋아나는데, 꽃은 참 작습니다. 한 송이의 지름이 6밀리미터밖에 안 되는 작은 꽃입니다.
꽃잎이 꽃자루 부분에서부터 1센티미터 쯤 길쭉하게 나팔 모양의 통으로 솟아오른 뒤에 끝부분에서 다섯 개로 갈라지며 활짝 펼쳤습니다. 꽃송이 안쪽으로는 자줏빛이 선명한데, 그래서 더 독특합니다. 이런 작은 꽃은 얼핏 보아서는 그게 얼마나 예쁜 꽃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바라보면 볼수록 더 아름다운 게 이처럼 작은 꽃들이지요. 쉽게 드러내지 않아 더 아름답다는 건 이처럼 작은 꽃들을 두고 하는 말이지 싶습니다.
꽃이 지고 나서 곧바로 맺는 동그란 열매도 작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지름 6밀리미터 정도의 작은 구슬 모양의 열매는 황갈색으로 익는데, 이는 한방이나 민간에서는 거담제 관절염 황달 신장염 이질 등을 치료하는 약재로도 쓴다고 합니다. 약재로 긴하게 쓰였다고는 하지만, 작은 꽃이나 넉넉한 잎사귀의 초록을 즐기기 위해 심어 키웠다고 합니다. 하긴 일부러 심어 키우지 않아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식물이기도 했고요.
초록이 깊을 뿐 봄만큼 화려하지 않은 수목원 숲을 화려하게 한 식물 가운데 맥문동(Liriope platyphylla)이 있습니다. 아직 꽃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지금은 거의 시들어 버린 이 맥문동은 여름 내내 수목원 숲의 길섶에서 지나는 관람객들의 눈을 즐겁게 했습니다. 지난 주말에 보니, 몇몇 개체가 여전히 꽃을 달고 있기는 하더군요. 그래봐야 이미 수명을 다 한 듯, 시들시들한 꽃 뿐이고, 대부분의 맥문동은 꽃을 떨어뜨렸습니다.
그런데, 혹시 ‘맥문동’ 하면 식물보다는 한약재, 혹은 먹을거리의 이름처럼 들리지 않으시던가요? 워낙 한약재로 유명한 식물이다보니, 그런 것이지요. 또 제 선입견일 수도 있겠지만 그 발음의 느낌 역시, 선뜻 식물 이름처럼 다가오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어떤 용어사전에서는 아예 맥문동을 약재 이름으로 등록해놓기도 할 정도입니다. 그만큼 약재로서 긴한 식물이라는 증거겠지요.
한방에서 맥문동을 이용하는 건, 맥문동의 뿌리 부분입니다. 뿌리 끝에 동그란 땅꽁처럼 매달리는 덩이뿌리가 바로 약재로 쓰이는 부분이지요. 특히 기침과 천식에 좋은 효과를 보인다고 합니다. 그밖에도 해열 작용도 있어서, 다양하게 활용한다고 합니다. 한방이 아니라 해도 바로 그 덩이뿌리를 달인 맥문동 차라든가 술로 담근 맥문동술을 마시기도 합니다.
백합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인 맥문동은 상록성이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겨울에도 땅 위에 솟아있는 잎사귀는 푸르게 유지된다는 겁니다. 우리 수목원의 맥문동 종류 가운데에는 잎에 무늬가 있는 종류도 있습니다. 꽃은 똑같지만, 잎에는 세로로 줄무늬가 있어서 독특해 보이는 식물이지요. 그런 잎들이 수명을 다할 때까지 시들지 않고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정원에 맥문동을 심어두면 겨우내 초록을 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1센티미터 안팎의 가느다란 잎은 20~50센티미터 길이로 길게 자라서 땅 바닥에 낮게 깔립니다. 이 잎사귀들 사이로 꽃대가 불쑥 올라와 꽃을 피웁니다. 대개 30~50센티미터까지의 길이로 올라오지요. 그리고는 여름 시작될 무렵이면 그 꽃대 위에 사진에서 보시는 것처럼 보랏빛의 작은 꽃을 조롱조롱 피워냅니다. 대개는 무리를 지어 심기 때문에 이같은 보랏빛 꽃들이 줄을 이뤄 피어난 모습은 장관입니다.
특히 큰 키의 나무들이 줄지어 서있는 곳의 아래 쪽에 맥문동을 줄지어 심어두면 개화기에 더할 나위 없는 장관이겠지요. 맥문동이 그늘을 좋아하는 나무이니, 그런 곳이 자라기에는 더 유리하기도 합니다. 여름에 볼 수 있는 꽃 가운데에는 빼놓을 수 없는 아름다운 꽃입니다. 이름이 좀 생경하긴 하지만, 맥문동은 우리나라가 고향인 토종식물입니다. 맥문동이 중국과 일본에서도 자생하는데, 우리는 중국에서 부르는 이름을 따라서 부르게 된 것 아닌가 싶습니다.
이제 은행나무 잎이 노랗게 물드는 가을입니다. 설악산의 단풍 소식에 마음 설레지만, 아직 은행나무 잎에 단풍 물 오르기에는 이릅니다. 사진은 몇 해 전에 환장할 만큼 아름다운 단풍 모습을 보여준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 반계리 은행나무의 모습입니다. 나무처럼 풍요로운 가을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고규홍(gohkh@solsup.com) 올림.
첫댓글 환장할 만큼 아름다운 반계리 은행나무...정말 눈이 부십니다. 잘 읽고 마음에 새기겠습니다.*^^*
올해는 단풍이 더욱 곱다고 하지요? 저 은행나무도 더 예쁠 거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 이렇게 아름다운 꽃을 보게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넵, 행구님은 뭐든지 고맙지요?^^
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