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한 세 母女를 애도하며.....
(세 모녀의 자살 뉴스를 TV로 보고)
생활고에 시달리던 세 모녀가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을 남긴 채 동반 자살한 소식에
설마 이런일이 대한민국에서 일어 났을까하고 의심해본다.
지난 2월26일 오후 9시 20분경 서울 송파구 석촌동에 있는 한 단독주택 지하 1층에서
60세 어머니와 그의 두 딸이 숨진 채 발견됐다.
두 딸은 방 안에서 이불을 덮고 누운 채로 어머니는 거실에서 누운 채로 숨졌다.
현장을 조사했던 송파경찰서는 세 모녀가 살던 지하 방 창문은 빈틈없이 청테이프로
봉해진 상태였고 시신 옆에는 타버린 번개탄이 발견된 점을 미뤄볼 때 세 모녀는 동반
자살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들 가정사를 보면 딸의 아버지는12년 전 돌아가셨고 그 후 많은 빚과 생활고에
시달렸으며 특히 30대 두 딸은 평소 고혈압과 당뇨 등으로 직업을 갖을 수 없으니
어머니 박 씨가 식당일을 하면서 겨우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그러다 어머니마저 한 달 전에 팔을 다치면서 식당일을 그만두게 되었고 더욱 살길이
막막해지자 극단적인 결정을 내린 것이다.
더구나 지병을 앓고 있는 두 딸은 신용불량자였으며 그 어느 곳도 도움의 손길은
없었다고 한다.
아마 세 모녀는 더 이상 버틸 여력이 없자 결국 죽음을 택한 것 같다.
또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마지막으로 가는 길에서도 집세와 공과금으로 현금
70만원을 남겼고 봉투에는
“주인아주머니께…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남겼다고
하니 그들의 착한 마음씨에 그저 안타까움만 더할 뿐이다.
집주인 말에는 그동안 집세와 공과금은 밀린 적이 없었다고 한다.
마지막 까지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집세와 공과금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 메시지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전까지 세 모녀의 삶이 얼마나 고되고 힘들었을까?
죽기로 결심하는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참담하고 삶을 포기하는 상실감을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을까?
"같이 죽자"고 결정을 내린 후 엄마는 딸들을 생각하고 딸들은 어머니를 생각하며
긴 시간 동안 소리 없는 울음을 얼마나 토해냈을까?
또 서로 끌어안고 얼마나 많은 작별의 눈물을 흘렸을까?
그들이 죽음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가 경제적 어려움이었으니 그동안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병원도 제대로 가보지 못하고 치료약조차 제대로 써보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하니 더욱 측은한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70만원을 집주인에게 집세와 공과금이라면서 남겼다.
신통한 벌이도 없는 처지에 그 돈을 모으느라 얼마나 힘겨웠을까?
그런데도 세 모녀는 그 돈으로 죽기 전에 먹고 싶었던 것을 실컷 사먹는 방법을 선택
하지 않았다.
그들 세 모녀는 마지막 순간까지 ‘내가 아닌 타인’을 생각했던 것이다.
그 동안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삶을 살아 왔는가?
우리 이웃의 어려움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기울여 왔었던가?
세 모녀는 대한민국의 가장 기본적인 복지제도인 기초생활보장제도나 의료급여제도
대상에 들지 못했다고 한다.
우리 사회의 안전망이 얼마나 허술하고 형식적인지 입증시켜준 사건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저소득층에 최저생계비 수준의 소득을 보장해주는 복지제도이고
의료급여는 기초수급자와 차상위층을 위한 의료보장제도이지만 진짜 필요한
사람들에겐 그저 먼 나라 얘기라는 것이다.
만일 이들 세 모녀가 그런 혜택을 받았다면 절대 죽음으로 내몰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세 모녀는 장애인, 노인, 한 부모 가정 등 전형적인 취약계층에 해당되지 않으므로
관련 복지혜택을 전혀 받지 못했다고 한다.
또 극심한 생활고로 이웃과 어울리지 못하다보니 어려운 사정을 헤아릴 수 있는
이웃이 없었다는 것이다.
세 모녀가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릴 때까지 사회와 정부가
무엇을 했느냐고 따지기 이전에 우리가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반성하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제부터라도 우리 주위에 그 세 모녀처럼 곤경에 처한 이웃은 없는지 살펴보자.
부디 그들 세모녀의 안타까운 죽음이 우리로 하여금 주위를 돌아보는 따듯한 사회를
만드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부디 평안한 안식을 빌어 본다.
-신문 기사 발췌 정리함-
내주를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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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예수님께서 우리의 이웃이 어디에 있느냐?
우리의 행함없는 믿음을 행함으로써 보이라고 호통치는 것 같습니다.
주여, 죽은 영혼위에 안식을 주소서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2 만불시대, 모두 잘먹고 잘입고 잘사는 줄만 알았는데
이런 사각지대에서 눈물겨운 삶을 사는 사람도 있네요.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아~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며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요?
이렇듯 분명한데도, 그 이기심이라는 깊은 늪에서 빠져나오지를 못합니다...
키리에 엘레이션
죽은 영혼들의 평안한 안식을 기원합니다..
내 배가 부르면 남 배고픔을 알턱이 없고
내 배가 따시면 남도 따시게 지내는 줄 아는게 인간의 속성인가 봅니다.
옆 사람을 살피고 역지사지의 마인드를 갖고 살아야 하는데.....
아쉬움이 많은게 현실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더불어 사는 사회가 아니고 나만 잘살면 된다는 이기주의가 팽배한
사회입니다.
게다가 이런 비극이 일어나도 관심이 별로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