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5. 해석의 행복 : 이해실천과 이해관용(2)
제대로 이루어진 해석으로 실천에 접어든 이해는 어떤 안목을 갖게 되는 것일까요? 가다머(Hans-Georg Gadamer)가 「진리와 방법」(1960)에서 펼친 철학적 해석학으로 보면, 이해는 다시 해석으로 순환되면서 ‘실천적 지혜(phronesis)’가 됩니다. 해석자의 구체적 현실 삶 속에서 바른 실천에 관해 갖는 안목을 말합니다. 바른 실천이라 함은 현실 삶에서 마주하는 관계적 삶을 조화롭게 함과 등치됩니다.
행복은 고통에서 벗어나고(해탈), 번뇌에서 자유로운(열반) 상태를 뜻합니다. 관계적 삶을 조화롭게 하는 이해실천은 관계 상대의 고통과 번뇌까지 관용하는 군자보살의 이해관용으로써 완전해질 것입니다. 해석자 자신의 이해를 관철함이 아니라, 타자를 또 다른 자신으로 해석하는 거룩한 행위입니다. 이러한 맥락을 열행자는 ‘이해실천’이 ‘이해관용’이 됨으로써 해석학은 행복학이 되는 것이라 표현해 봅니다.
[보충]
* 해석과 이해의 순환을 ‘해석학적 순환(hermeneutic circle)’이라 하는 바, 이는 과거의 텍스트와 현재의 해석자라는 두 ‘지평의 융합(fusion of horizons)’을 통해 이해가 되고 이 이해는 해석으로 순환됨을 말합니다. ‘이해관용’은 순환된 해석이 좋고 나쁨에 대해 중도합일적 안목을 가지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양변에 대한 합일적 중도이니까 이해관용이 이루어집니다.
*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6권 제3장에서 진리에 도달하는 방법으로 <기술(테크네), 학문적 인식(에피스테메), 실천적 지혜(프로네시스), 철학적 지혜(소피아), 직관(누스)> 등 다섯 가지를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