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 속이니까 해골바가지가 있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다.
그런데 그것을 바가지로 삼아 물을 마셨다는데 대하여 심한 구역질이 일어났다.
성사는 해골바가지 안을 들여다보았다.
께름칙한 것이 무엇인가 있는 것 같은데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것을 들고 바깥으로 나왔다.
햇볕에 드러난 그 해골 속에는 보일 듯 말듯 하는 온갖 미충들이 쉴 틈 없이 꿈틀대고 있었다.
특히나 빨간 실 같은 가녀린 벌레들이 서로 엉켜서 한가득 우글거리고 있었다.
그것을 본 성사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바로 우웩 하는 소리와 함께 토악질을 하기 시작했다.
성사는 내장이 뒤틀리도록 그 물들을 게워내었다.
얼마나 토악질을 계속했는지 나중에는 창자가 뒤집히는 따가운 통증까지 일었다.
그래도 게워냄을 멈출 수 없었다.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었다.
너무나도 기가 막혀서 소리내어 엉엉 울고 싶었다.
그 와중에도 토악질은 계속되었다.
급기야는 눈알이 튀어나오고 창자가 입 밖으로 뽑혀져 나올 것 같은 세찬 몸부림을 쳤다.
그때 그의 뇌리를 때리는 번갯불 같은 신호가 있었다.
''바로 그것이다. 정확히
그 말씀이다!!!''
성사는 그 순간 三界唯心 萬法唯識이라는 도리를 깨달았다.
삼계는 오직 마음이고 만법은 오직 識이라는 사실을 완벽하게 깊이 체득한 것이다. 그러면서 소리쳤다.
''부처님말씀 한마디라도 어찌 헛된 것이 있으리오.''
깨닫기 전에는 부처님말씀이 귓가에 헛바퀴로 돌았는데 깨닫고 보니 그 말씀들이 어쩜 그리도 정확하게 폐부를 찌른 말씀이셨는지 감탄과 탄성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그러면서,
''이것이 바로 心生則種種法生이고 心滅則種種法滅이지 않은가.''
드디어 한 수행자가 바로 성자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때부터 원효는 해골바가지 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이룬 성자로 소문이 나게 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깨달음은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깨달음의 개념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우리가 아는 깨달음은 조사선에서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성사가 활동하던 시기에는 조사선이 신라에 들어오기 전의 일이다.
그러므로 원효대사의 깨달음은 조사불교에서 주창하는 그런 깨달음이 아니다.
조사불교에서는 범부가 수행을 해서 깨달음을 이룰 수 있다고 하지만 신라불교에서는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일이다.
신라불교는 조사불교가 들어오기 전의 대승불교였다.
대승불교에서는 범부가 부처가 된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범부는 깨달음을 이룰 수 없다. 놀랍게도 그것이 대승불교의 교리다.
그러고 보면 사실 원효는 그냥 보통의 수행자가 아니라 보살의 화현이었다.
티벳불교에서 한 명의 포체를 추앙할 때 전생을 정확히 기억하는 자만을 인정한다.
전생을 알기 시작하는 시기는 보통 5살 정도일 때가 가장 많다. 그래야 자기의 기억을 정확히 표현할 수가 있다.
그러고 보면 성사가 자기 정체성을 찾은 시기는 많이 늦은 것 같다. 34살이 되어서야 몸소 부처님 말씀을 체득하고 당신이 보살임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당신의 이름을 원효라고 지었다.
원효라고 할 때 元은 주로 머리, 근원, 처음, 시초, 천지의 기운이라는 뜻들이 있다.
曉는 간단히 밝을 효
새벽 효 자로 보면 된다.
그분의 이름을 불교신행 쪽으로 보면 마음의 근원을 밝혀주는 스님이라는 뜻이고 대승불교 쪽으로 보면 대승의 근원을 밝혀 주는 스님이 된다.
또 국가적으로는 백성을 밝혀 준다는 스님이 된다.
내가 생각해 보건대 그분은 틀림없이 마명보살의 화현인 것 같다.
마명보살이 북인도에서 대승기신론을 써서 중국을 불교천지로 만들었다.
그리고 땅 끝인 신라까지 그 가르침이 들어왔다.
여기서 마명보살은 원효라는 이름으로 대승기신론을 새롭게 다듬어 대승불교를 널리 회향하고 싶으셨을 것 같다.
ㅡ계속ㅡ
출처: 대승기신론 해동소 혈맥기 4_공파스님 역해_운주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