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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병매(189) *무송(武松) 6
“저년 봐라. 못된년···”
내왕이는 춘매를 뒤쫓으려다가 그만둔다.
무송이 제지했던 것이다.
“자, 반금련이를 해치웠으니 속히 이곳을 빠져나가자구”
“서문경이는 어떻게 하죠?”
“도리가 없지 뭐.
그놈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순 없잖아.
그러다간 우리가 낭패를 본다구”
“아 - 원통하군요”
“글쎄말이야. 또 후일을 기하는 수밖에···”
“대륜 스님은 왕파와 반금련이를 처치했으니 그래도 원수를 절반은 갚은 셈이지만, 나는 이거 뭐 숫제 공쳤잖아요.
서문경이 그놈의 새끼가 왜 하필 오늘밤에 계집질을 하러 나갔지. 나참 더러워서···”
“후일에 기회를 봐서 반드시 다시 쳐들어오자구.
나도 왕파와 반금련이만으로는 분이 풀리질 않는다구.
원흉은 서문경이잖아”
“아 - 젠장, 더럽네”
바깥에서 개짖는 소리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한 마리가 아니라 여러 마리였다.
춘매가 고래고래 외쳐되며
회랑을 달리는 바람에 개들도 놀란 모양이었다.
“자, 서둘자구”
개 짖는 소리에 무송은 바짝 긴장이 되는 듯
후다닥 앞장서서 밖으로 뛰어나간다.
몇 해 전 혼자서 서문경이를 처치하려고 쳐들어왔을 때 결국 세불리(勢不利)하여 도망치려고 담을 뛰어넘다가 결국 개들에게 물려서 굴러 떨어져 붙잡히고 말았던 일이 생각났던 것이다.
뒤따라 나온 내왕이에게 무송이 묻는다.
“마구간이 어디지?”
“저쪽이에요. 날 따라 오세요”
내왕이가 앞장서서 두 사람은 회랑을 달리기 시작한다.
서문경과 반금련을 처치한 다음 마구간의 말을 끌어내어 타고서 도망을 치기로 미리 작전 계획을 그렇게 세웠던 것이다.
앞서 달리던 내왕이가,
“대륜 스님, 잠깐만···”
하면서 어떤 방문 앞에 멈추어 선다.
그리고 안으로 잠겨있는 그 문을 쾅쾅쾅·· 두들기면서 소리친다.
“마님, 마님, 손설아 마님, 내가 왔어요. 내왕이가 왔다구요. 문 좀 열어봐요”
그러나 방안에서는 아무 기척이 없다.
내왕이는 혼자서 속으로 원수를 갚은 다음 가능하면 월미나 손설아 중에서 한 사람을 데리고 떠나리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량이의 말이 월미는 집을 나가 버렸다고 하니,
손설아 마님이나마 만나보고 싶었던 것이다.
개들 짖어대는 소리가 더욱 요란해진다.
두어 마리는 어둠 속에서 이쪽으로 달려오는 기척이다.
“뭘 하고 있는 거야?”
무송이 버럭 소리를 지른다.
“마님, 나 내왕이가 돌아왔다구요.
문좀 열어 보라니까요. 예? 예?”
내왕이는 안타까워 못견디겠는 듯이 냅다 문을 두들겨 댄다.
“밖에 그 누구냐?”
안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손설아가 깨어 일어나 침실에서 나오는 모양이다.
그러자 무송은 벌컥 화를 내어 내뱉는다.
“이제 보니 이 사람이 정신이 나갔어. 이판에 마님인지 지랄인지 뭐 할려고 찾는 거지? 소륜! 정신 차려! 이러다간 우리가 큰 코 다친다구”
“잠깐만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그럼 나 혼자 갈 거라구. 알아서해. 마구간이 어디야?”
그 말은 들은 척도 안하고 내왕이는 이번에는 방문을 좀 약하게 두들기며 애원을 하듯 지껄여 댄다.
“마님, 내왕이라니까요. 내왕이가 맹주땅에서 돌아왔단 말이에요. 어서 문을 열어봐요”
“뭐? 내왕이라구?”
안에서 약간 놀라는 듯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손설아임에 틀림이 없다.
“예, 마님, 어서 문을 열어요”
거실에 불을 켜는 듯 창문에 불빛이 어린다.
그리고 딸그락 문을 열어젖힌다.
“여보, 나요”
‘마님’이 대번에 ‘여보’로 바뀐다.
손설아는 어리둥절해진다.
문밖에 승려가 서있으니 말이다.
“내가 이렇게 살아서 돌아왔소”
하면서 내왕이는 삿갓을 뒤로 젖혀 보인다.
“어머나 - ”
내왕이를 알아본 손설아는 너무나 뜻밖의 일에 입이 딱 벌어진다.
“꿈만 같구려. 당신을 다시 만나다니···”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
“원수를 갚으려고 맹주 땅에서 도망쳐 왔지 뭐요.
지금 반금련이를 죽이고 오는 길이오”
“어머”
손설아는 화들짝 놀란다.
반금련과는 지금도 여전히 견원(犬猿)의 사이지만 그녀를 죽였다고 하니 어처구니가 없을 따름이다.
“먼저 서문경이를 처치하려고 했는데 그놈은 계집질을 하러 나가고 없지 뭐요. 원통하고 절통하다오”
손설아는 그만 덜컥 겁이 나서 말문이 막혀 버린다.
춘매로부터 반금련이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오월랑은 놀라 뛰어 일어났다. 그러나 무송과 내왕이가 강제로 독살을 했다는 것을 알고는 두려움과 어찌할 바를 몰랐다.
맹주 땅으로 귀양을 간 그들이 살아서 돌아와 이 한밤중에 들이닥쳤다면 복수를 하러 온 게 틀림없질 않은가. 마침 오늘밤에 서문경이 외도를 하러나가고 없어서 천만다행이라 싶었다.
오월랑은 바깥에서 개들이 짖어대는 소리를 들으며 잠시 어쩔 줄을 모르고 서 있다가 얼른 도로 침상의 이부자리 속에 푹 파묻혀 버렸다. 밖으로 나갔다가는 어떤 변을 당할지 모른다 싶었던 것이다.
오월랑 마님의 그런 모습을 보자, 춘매도 속으로 ‘아이고 나도 모르겠다’ 하고는 재빨리 옥소의 방으로 가서 그녀가 자고 있는 침상으로 기어올라 한 이부자리 속에 파고들었다.
요란하게 짖어대는 개들 소리에 잠을 깬 집안사람들은 난데없이 이 한밤중에 무슨 일인가 싶어서 밖을 내다보기도 했고, 더러는 바깥으로 슬금슬금 나오기도 했다.
하인 남정네들 가운데는 개 짖는 소리가 아무래도 예사롭지가 않아서 도둑이 들었거나 무슨 일이 일어난 게 틀림없다 싶어 몽둥이를 찾아들고 개들이 짖어대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기도 했다.
어둠 속으로 사람들이 모여드는 기척이 나자, 무송은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판국에 내왕이가 정신 나간 놈처럼 마님인지 지랄인지를 붙들고 노닥거리고 있으니 분통이 터질 노릇이었다.
무송은 혼자서 마구간을 찾아가려고 했으나,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 이 깜깜한 밤에 알 길이 없어 몇 걸음 가다가 그대로 회랑에 멈추어 서서 내왕이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뭘 하고 있는 거야? 사람들이 몰려 온다구”
고함을 지르면서 무송은 다시 내왕이에게로 다가갔다.
그러자 손설아가 내왕이에게 묻는다.
“저분은 누구예요?”
“무송 어른이오”
“무송? 어머-”
손설아는 눈이 휘둥그레진다.
“무송과 내가 원수를 갚으려고 맹주 땅을 같이 도망쳐 나와 이렇게 돌아온 거요. 자, 인제 당신도 우리하고 같이 가자구요. 나하고 같이···”
“뭐라구요?”
손설아는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짓는다.
무송은 다짜고짜 내왕이의 뒷덜미를 불끈 거머쥐고,
“정신 나갔어?”
호통을 치면서 냅다 끌어당긴다.
손설아는 문을 쾅! 요란하게 닫아 버린다.
“음 - 저년을 그저 그저···”
내왕이는 마치 무슨 사랑의 배반이라도 당한 것처럼 분해서 못견딘다.
무송은 내왕이를 끌다시피 하여 회랑을 걸어가며 화가 치밀면서도 재미있다는 듯이 빈정거린다.
“마님이라고 불러대더니, 보니까 좋아했던 계집이잖아.
하인이었던 주제에 주인 마님을 건드리다니···
이제 보니까 소륜, 간뎅이가 보통 아닐세 그려”
“내가 먼저 손을 댄 게 아니라, 그년이 나를 유혹했었다구요”
“그래? 마님이나 하인이나 그밥에 그나물이었군. 허허허···”
개들이 회랑 바짝 가까이까지 다가와 짖어대고, 몽둥이를 든 남정네들이 몰려와서, “웬 놈들이지?”
“중놈들아냐”
“중놈들이 도적질을 하러 온 모양인데···”
“야, 이놈들아! 죽고 싶어서 환장을 했나?”
하고 소리를 질러댄다.
무송은 이거 안되겠다 싶어 우뚝 멈추어 서서 냅다 큰소리로 한바탕 언변을 토하듯 늘어놓는다.
“모두들 내 말을 들어봐라. 나는 무송이다.
그전에 이곳 청하현의 순포도루였던 무송 말이다.
그리고 이 사람은 바로 이집에 너희들과 함께 살았던 내왕이다. 알겠느냐?”
그러자 내왕이는 재빨리 삿갓을 벗어 보이며 소리친다.
“나 내왕이라구. 내가 돌아왔어-”
모두 놀란 듯 수군덕거린다. 더러는,
“아이고, 내왕이구나”
“이 사람아, 이게 웬 일이야?” 하고 반긴다.
무송은 계속 위엄있는 큰소리로 늘어 놓는다.
“맹주 땅으로 귀양갔던 내왕이와 내가 그곳에서 탈출하여 근 일년이나 걸려서 오늘밤에 이곳에 도착했다. 원수를 갚으러 온 것이다.
내 원수는 형님을 독살한 서문경이와 반금련 그리고 왕파, 세연놈이고, 내왕이의 원수는 자기 아내를 빼앗고 억울한 누명을 씌워 귀양을 보낸 서문경이란 놈이다.
너희들도 잘 알고 있을 거 아니냐.
먼저 왕파를 처치하고, 이곳에 오니 마침 서문경이는 계집질을 하러 나가고 없구나. 그놈을 죽이지 못해 원통하고 절통하다.
반금련이만 해치우고, 도리 없이 이제 떠나려 한다.
우리 두 사람의 심정을 이해한다면 너희들은 가만히 물러서야 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고 우리 앞에 나서는 놈이 있다면 그런 놈은 내가 여지없이 박살을 내버릴 것이다 알겠느냐?”
예, 예, 하고 대답을 하는 축도 있고, 그저 말없이 두려운 눈길로 무송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도 있으며,
개중에는 벌써 슬금슬금 물러서는 사내들도 있었다.
감히 아무도 무송을 가로막고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박살이 날게 뻔하니 말이다.
내왕이가 앞장서고,
무송이 뒤따라 그들은 유유히 마구간을 향해 갔다.
개들이 요란하게 짖어대며 따를 따름이었다.
마구간에서 내왕이가 말 두필을 꺼냈다.
그리고 각자 한 마리씩 올라타고서 그들은 서둘러 서문경의 집을 떠났다. 들어올 때 대문을 닫아만 놓았을 뿐 빗장을 걸지 않았기 때문에 말 위에서 문짝을 열어젖히고 그냥 뛰어나갈 수가 있었다.
대문을 열고 나가면서 내왕이는 문지기를 묶어둔 문간방을 향해, “이 사람아, 나는 가네. 서문경이를 죽이지 못하고 떠나는 게 원통하다구. 후일에 반드시 또 복수를 하러 오겠어. 잘 있게-” 하고 소리를 질렀다.
거리로 뛰어나가자 무송이 앞장을 서고,
내왕이가 뒤따라 그들은 달리기 시작했다.
빠까빡 빠가빡···
두 마리의 말발굽 소리가 고요하게 가라앉은 심야의 거리를 뒤흔들 듯 울렸다.
무송은 저녁 무렵에 들어왔던 그 성문 쪽으로 말을 달렸다.
혹시 수문군과 또 부닥뜨리더라도 서문경의 처남으로 알고 있을 터이니 유리할 것 같아서였다.
막상 성문에 당도해 보니 삼경이 훨씬 지난 깊은 한밤중이라 그런지 수문군의 모습은 보이지가 않았다. 그저 문을 안으로 굳게 잠가놓았고, 수문군의 막사에 불이 가물거리고 있을 따름이었다.
무송은 한심하군, 싶었다.
반드시 교대로 한 사람씩 밤을 새워 성문에 서서 지키기로 되어있는 것이다. 순포도루였던지라 그런 수칙(守則)을 잘 알고 있었다.
내왕이가 얼른 말에서 뛰어내려 거창하게 큰 빗장을 뽑고, 성문 한 짝을 열어젖혔다. 삐그그그- 육중한 문짝이라 요란한 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잠을 깬 듯 수문군 하나가 막사에서 뛰어나오며, “누구야?”
하고 고함을 지른다.
“나다. 저녁때 들어왔던 서문경이의 처남이다.
볼일을 마치고, 이제 돌아간다. 수고해라”
무송은 큰소리로 응대를 하고는 냅다 말을 몰아 성문 밖으로 뛰어나간다.
내왕이도 후다닥 말에 뛰어올라 뒤를 따른다.
성 밖의 한없는 어둠 속으로 두 사람은 말발굽 소리를 여운처럼 남기며 아득히 사라져 갔다.
이튿날 이른 아침, 집에 돌아온 서문경은 분노에 치를 떨었다.
무송이와 내왕이란 놈이 맹주 땅에서 도망쳐 나와 이곳까지 무사히 오다니, 그리고 자기 집에 침입해서 반금련을 어거지로 독살해놓고 유유히 사라지다니, 생각할수록 화가 나고 분통이 터져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한편 서문경은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기도 했다.
자기가 간밤에 잘도 외박을 했다 싶었다. 그렇지 않고 집에서 잤더라면 아마 틀림없이 무송이 그놈의 손에 목숨을 빼앗기고 말았을 게 아닌가 말이다.
그는 당장 식전에 온 집안사람들을 한데 모아놓고 분풀이를 하듯 고래고래 악을 써댔다.
특히 문지기와 사내 하인들에게는 왜 대문을 열어주었으며, 사람을 죽이는데도 모두 뭘 하고 있었느냐고, 호통과 함께 몽둥이로 닥치는 대로 마구 두들겨 패기도 했다.
반금련의 시신을 잘 수습해서 상청(喪廳)을 만들도록 일러놓고는 아침을 좀 먹는 둥 하고 서문경은 서둘러 등청을 하여 부하 관원들에게 무송과 내왕이를 잡아들이도록 영을 내렸다. 물론 현청에도 통보를 했다.
아침부터 제형소뿐 아니라, 현청도 발칵 뒤집히다시피 했다.
유배지에서 도망쳐 나온 죄수가 성안에 들어와 더구나 제형소의 부전옥 대감의 집엘 침입하여 그 부인 한사람을 죽이고 달아나다니 경악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살인사건이라도 보통 살인사건이 아니었다.
제형소의 전옥도 크게 노여워했지만, 현지사의 진노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 범인이 다름아닌 무송과 내왕이라니, 바로 자기네가 유배형을 내려 맹주 땅으로 귀양을 보낸 놈들이 아닌가.
그 둘이 짝을 지어 탈주해 와서 보복살인을 하다니,
간이 써늘해지기도 했다.
그놈들을 붙들지 못할 경우에는 또다시 언제 들어와서 무슨 짓을 저지를지 알 수가 없었다. 필경 그들이 노리는 장본인은 서문경이 아니겠는가.
전옥도 지사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
만약 다음에 그자들에게 부전옥인 서문경이 살해되는 일이라도 생기면 관가의 크나큰 망신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지 그 두 놈을 붙잡으려고 긴급히 관병을 출동시켰고, 현상금까지 걸어서 널리 방문(榜文)을 붙여 수배를 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허사였다.
무송과 내왕이는 밤을 새워 말을 달려서 날이 밝아올 무렵에는 이미 청하현의 변방에 이르러 있었던 것이다.
그길로 무송은 서문경에 대한 후일의 복수를 다시 굳게 기약하면서 내왕이를 데리고 양산박(梁山泊)을 향해 갔다.
체천행도(替天行道)의 기치를 들고 세력을 떨치고 있는 대협도(大悏盜)의 송강(宋江)의 부하가 되기 위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