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지갑 직장인들이 뿔났다. 그 동안 연말정산이라고 하면 당연히 세금을 돌려받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근로자들 사이에 연말정산은 ‘13월의 월급’으로 통했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환급 세액이 줄어든 것도 모자라 일부 고소득자들 중엔 추가로 세금을 더 내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일까? 연초인데도 불구하고 근로자들 사이에선 세액공제혜택이 큰 ‘연금저축’과 ‘개인형퇴직연금(IRP)’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여기에 세액공제 제도의 변화도 한 몫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근로자들은 연금저축과 퇴직연금에 추가로 저축한 금액에 대해 연간 최대 400만원을 공제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올해부터는 세액공제 한도가 700만원으로 확대된다. 세액공제율이 13.2%인 점을 감안하면, 연간 최대 39만6천원의 세금을 절감할 수 있다.
그림 1. 가구소득 구간별 분포현황
자료 : 통계청(2014년 가계금융복지조사)
세액공제 금액의 확대는 재무설계 관점에서도 중요한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근로자 중 순전히 노후대비를 위해서만 매년 700만원씩 저축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통계청에서 실시한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2013년 우리나라 가구의 평균소득이 4,676만원이다. 중위소득은 3,800만원 밖에 안 된다. 700만원이면 중위소득을 가진 가구가 연소득의 18%를 저축해야 한다는 얘기인데, 일부 40~50대 고소득층을 제외하고 나면 상당수 근로자들이 연간 세액공제 한도를 채우기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당연히 합리적 이성을 가진 근로자라면 노후대비 저축을 할 때 세액공제 한도부터 채우려고 할 것이므로, 연금저축과 IRP를 제외한 다른 금융상품을 찾는 사람은 그만큼 줄어들 게 뻔하다. 이번 세액공제 확대가 재무설계사들에게 중요한 이유가 여기 있다.
근로기간 동안 연간 700만원씩 저축할 수만 있으면 노후자금을 상당부분 충당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40세인 근로자가 20년 동안 연 복리 3%로 매년 700만원씩 저축하면 60세가 됐을 때 1억8,800만원을 손에 쥘 수 있다. 이 돈으로 연금을 수령하면 월 90만원 정도 연금을 받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여기에 국민연금과 퇴직금을 더하면 넉넉하진 않아도 기본적인 생계는 해결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노후대비를 위해 별도의 저축을 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이뿐만 아니다. IRP는 근로자들 세액공제뿐만 아니라 퇴직자들의 퇴직소득세 절세 관점에서도 중요하다. 지금까지는 퇴직금을 연금으로 수령하거나 일시금으로 수령하거나 실효세율에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대부분의 퇴직자들이 퇴직금을 일시에 수령해 갔다. 물론 퇴직연금에 가입한 근로자들은 퇴직금이 강제로 IRP로 이체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대다수가 퇴직금이 IRP로 이체되자 해지해 버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사정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퇴직금을 일시금이 아니라 연금으로 수령할 경우 퇴직소득세를 30% 정도 경감해 준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퇴직금을 일시에 받으면 1000만원 정도 세금을 내야 하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 사람이 퇴직금을 IRP에 적립한 다음 10년간 연금으로 찾아 쓰면 매년 70만원씩 총 700만원만 연금을 납부하면 된다. 즉 세금도 줄고 납부시기도 뒤로 미룰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다른 자금을 먼저 쓰고 퇴직금은 연금으로 수령하려고 할 것이다. 이때 퇴직자들이 직장 다닐 때 세액공제를 받을 목적으로 가입한 IRP가 있으면 여기에 퇴직금을 적립한 다음 연금을 수령할 개연성이 크다고 하겠다.
그러면 이 같은 환경변화에 재무설계사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세액공제 혜택을 제대로 활용하고 있는지 점검해 줄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보자. 어떤 근로자가 연금저축에 가입해 매년 400만원씩 저축하고 있다고 해보자. 이 사람이 연금저축에 추가로 300만원을 더 저축하면 연말정산 때 700만원을 세액공제 받을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400만원을 초과한 금액은 DC형 퇴직연금이나 IRP에 적립해야만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그러면 자영업자도 700만원까지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자영업자는 연금저축에 가입해 연간 400만원까지 세액공제 혜택을 누릴 수 있지만, 근로자가 아니므로 IRP에 가입해 추가공제혜택을 받을 수 없다. 그렇다면 근로자들은 모두 연간 700만원까지 세액공제 한도를 누릴 수 있을까?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다. 해당 직장에 근무한 지 1년이 안됐거나, 아직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하지 않은 사업장 근로자는 아쉽게도 IRP를 개설할 수 없다. 그렇다고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다. 상시근로자 300인 이상 사업장은 올해 말까지, 100~300인 사이의 사업장은 2016년 말까지 퇴직연금제도를 의무적으로 도입하기로 되어 있다. 그리고 2022년 이후에는 모든 사업장에 퇴직연금제도가 도입된다.
퇴직연금 도입 의무화 일정 (상시근로자수 기준)
기한 | 2016.1.1 | 2017.1.1 | 2018.1.1 | 2019.1.1 | 2022.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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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사업장 | 300 인 이상 | 300~100 인 | 100~30 인 | 30~10 인 | 10 인 미만 |
포트폴리오 관리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통상 연금저축이나 IRP라고 하면 세액공제상품으로만 생각하고 수익률 관리에는 신경 쓰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일까? 시중금리가 2%대로 떨어졌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연금자산이 국내 중심, 금리상품 중심으로 운용되고 있다. 혹시 ‘연말정산 때 세액공제를 받으니 수익률은 좀 덜 나와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최근 일부 증권사를 중심으로 ‘저축에서 투자로’ 또는 ‘국내에서 글로벌로’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면서 연금자산의 시프트를 도모하고 있고 가시적인 성과를 낸 곳도 있다. 고객이 언제까지나 내 곁에 머물 것으로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고객은 언제든 움직일 준비가 되어 있다. 그것도 재무설계사가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