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1일 온고을교회 수요예배 설교 – 황의찬 목사
두루마리 환상
슥 5:1~4
<두루마리>
스가랴 선지자가 본 여섯 번째 환상은 “두루마리 환상”입니다.
‘두루마리’는 요즘 식으로 말하면 책입니다.
고대에는 종이가 없으니까, 파피루스나 양피지로 책을 만들었습니다.
평소에는 이 두루마리를 둥글게 말아서 잘 보관합니다.
지금 이스라엘에 가면 두루마리가 엄청나게 많습니다.
구약성경은 물론 신약성경 사본들이 모두 두루마리로 보관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뿐 아니라, 유럽 여러나라 도서관에도 보관되어 있습니다.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이스라엘에서 유출된 두루마리를 세계 여러나라가 보관하고 있어요!
이 두루마리를 위하여 도서관마다 ‘항온항습실’을 만듭니다.
바깥의 기온과 상관없이 최적의 온도와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곳이 항온항습실입니다.
항온항습실에 두루마리를 보관합니다.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수백년 수천년이 지나도 고스란히 보존이 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손에 쥐어져 있는 성경책은 당초에는 두루마리입니다.
두루마리에 적힌 내용을 현대식 문자와 책으로 제작하여 우리가 읽고 있습니다.
☞ 본문에서는 주전 6세기 선지자 스가랴가 환상을 본 이야기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스가랴 선지자가 본 6번째 환상입니다.
첫 번째 환상은 ‘먹줄 환상’입니다.
두 번째 환상은 ‘네 뿔 환상’입니다.
세 번째 환상은 ‘불 성곽 환상’입니다.
네 번째 환상은 ‘타·남·토 환상’입니다.
여기까지 ‘먹·네·불·타’입니다. 다섯 번째 환상은 ‘메노라 환상’입니다.
<날아가는 두루마리>
오늘 본문은 여섯 번째 환상입니다. “날아가는 두루마리 환상”입니다.
여덟 글자입니다. 글자 수가 많습니다. 그래서 흔히 “두루마리 환상”이라고 줄여 말합니다.
이렇게 기억해두면 자칫 스가랴 선지자가 본 환상의 뜻이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두루마리 환상”으로 기억하되 반드시 “날아가는 두루마리”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냥 두루마리”와 “날아가는 두루마리”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그냥 두루마리”는 이스라엘과 세계 각국 도서관 항온항습실에 보관된 두루마리입니다.
스가랴 선지자가 본 두루마리는 그 두루마리가 아닙니다.
“날아가는 두루마리”임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날아가는 두루마리는 그냥 두루마리에 비해 몇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는 “펼쳐진 두루마리”입니다.
둘째는 “하늘의 두루마리”입니다.
셋째는 “살아있는 두루마리”입니다.
넷째는 “저주의 두루마리”입니다.
첫째는 “펼쳐진 두루마리”입니다.
(2절) “그가 내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기로 내가 대답하되 날아가는 두루마리를 보나이다 그 길이가 이십 규빗이요 너비가 십 규빗이니이다”
환상 중에 두루마리가 펼쳐져서 날아가는데 길이가 이십 규빗이요 너비가 십 규빗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길이가 9m 너비가 4.5m입니다.
꽤 큰 두루마리입니다.
스가랴 선지자가 환상에서 본 두루마리는 둘둘 말린 채로 날지 않습니다.
활짝 펼쳐져서 글씨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마치 에니메이션 「알라딘」에 나오는 ‘마법의 양탄자’ 비슷합니다.
사실 두루마리를 둘둘 말아서 도서관에 보관하면 별 의미가 없습니다.
두루마리가 펼쳐져 사람들이 읽을 때 비로소 두루마리는 가치가 있습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둘둘 말아놓은 두루마리가 아니라 펼쳐진 두루마리를 보았습니다.
제가 설교 중에 가끔 이야기합니다. “덮어놓고 믿지 말고 펼쳐놓고 믿읍시다!”
스가랴 선지자가 본 두루마리는 “덮어둔 성경책이 아니라 펼쳐진 성경책”입니다.
성경책은 펼칠 때 의미가 있습니다.
성경책은 덮어두면 다른 책들과 다를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펼쳐서 읽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서 우리의 골수를 찔러쪼갭니다.
스가랴 선지자가 본 환상 속 성경책은 펼쳐진 성경책입니다.
오늘 본문의 두루마리 환성 첫째 의미는 “펼쳐진 두루마리”입니다.
둘째는 “하늘의 두루마리”입니다.
둘째는 “하늘의 두루마리”입니다.
두루마리가 펼쳐져서 날고 있습니다. 어디를 날고 있습니까?
하늘을 날고 있습니다. 하늘을 날고 있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땅위에서 야트막하게 날아가는 두루마리가 아니라 하늘을 날아갑니다.
이 두루마의 내용은 율법입니다.
그 내용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담겨 있습니다.
(3~4절) “그가 내게 이르되 이는 온 땅 위에 내리는 저주라 도둑질하는 자는 그 이쪽 글대로 끊어지고 맹세하는 자는 그 저쪽 글대로 끊어지리라 하니 4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이것을 보냈나니 도둑의 집에도 들어가며 내 이름을 가리켜 망령되이 맹세하는 자의 집에도 들어가서 그의 집에 머무르며 그 집을 나무와 돌과 아울러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하니라”
날아가는 두루마리는 하나님이 스가랴 선지자에게 보여주시는 환상입니다.
하나님이 율법이 적힌 두루마리를 쫘악 펼쳐서 하늘로 날게 하셨습니다.
그것을 지금 스가랴 선지자가 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간혹 환상을 봅니다. 비몽사몽간에 환상을 볼 때가 있습니다.
잠자는 중에 꿈 속에서 보기도 합니다.
어느 때는 자다 깨어나 어떤 이미지를 봅니다.
아침에 잠에서 깰때도 가끔 어떤 생각이 강력하게 자기를 지배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때 우리는 영 분별을 먼저 해야합니다.
이것이 사탄이 나에게 보여주는 것이냐, 하나님이 부여주는 것이냐?
사탄이 보여 준 것이라면 기도로 물리쳐야 합니다. 그리고 잊으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여주신 것이라면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묵상 중에 하나님이 나를 향한 뜻이 무엇인지 헤아려야 합니다.
지금 스가랴 선지자는 날아가는 두루마리 환상을 보고 의미를 새기고 있는 중입니다.
첫째는 “펼쳐진 두루마리”입니다.
둘째는 “하늘의 두루마리”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스가랴에게) 보여주신 매우 의미심장한 환상입니다.
셋째는 “살아있는 두루마리”입니다.
셋째는 “살아있는 두루마리”입니다.
우리가 바람이 많이 부는 날, 간혹 하늘 높이 올라간 비닐봉지를 볼 때가 있습니다.
포장용 비닐이 꽤 높이 날아가는 것을 목격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금, 스가랴 선지자가 보는 환상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살아서 자유자재로 하늘을 날아가는 두루마리입니다.
환상 속에서 하나님이 스가랴에게 보여주는 환상입니다.
하나님이 섭리하시기 때문에 이 두루마리는 단순하지 않습니다. “살아있는 두루마리”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합니다. “말씀이 살아있다!”
믿는 우리에게 성경 말씀은 한글자 한 획도 우리 안에 살아있습니다. 할렐루야~
말씀이 살아서 우리에게, 나에게 역사하시고 섭리하십니다.
스가랴 선지자가 보는 “날아가는 두루마리”를 통해서 우리는 “말씀이 살아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은혜입니다.
한국의 트롯트 가수 중에 남진 부른 “오빠 아직 살아있다!”가 있습니다.
오빠만 살아있는 것이 아니지요?
예수 믿고 구원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습니다!” 할렐루야~
스가랴 선지자의 여섯 번째 환상, “날아가는 두루마리” 그 의미,
첫째는 “펼쳐진 두루마리”입니다.
둘째는 “하늘의 두루마리”입니다.
셋째는 “살아있는 두루마리”입니다.
넷째는 “저주의 두루마리”입니다.
넷째는 “저주의 두루마리”입니다.
(3절) “그가 내게 이르되 이는 온 땅 위에 내리는 저주라 도둑질하는 자는 그 이쪽 글대로 끊어지고 맹세하는 자는 그 저쪽 글대로 끊어지리라 하니”
3절에서 “저주”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예수 믿으나 안 믿으나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저주’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저주’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이 무엇입니까?
한국의 드라마 사극에서, 왕비와 후궁 간에 치열한 저주가 오고 가는 것을 봅니다.
인형을 만들어놓고 바늘로 콕콕 쑤시기도 하고, 그림을 걸어놓고 활을 쏘기도 합니다.
한국인이 떠올리는 저주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하나님이 저주하신다는 대목이 간혹 눈에 띱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여러분에게 질문 해 봅니다. “하나님은 저주하는 분일까요?”
맞습니다. 하나님은 저주를 하십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었을 때, 하나님은 저주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러나 정작 죄를 지은 당사자 아담과 하와를 저주하시지 않았습니다.
하와를 유혹한 뱀을 저주하셨습니다. 그리고 땅을 저주하셨습니다.
범죄 한 아담과 하와에게는 저주를 내리지 않고 징벌을 내립니다.
인간이 범죄 했지만, 하나님은 인간을 직접 저주하지 않으시고, 다른 피조물을 저주하십니다.
왜 그렇게 하실까요? ~하나님은 사람을 그만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타락해도 하나님은 사람을 향한 사랑의 끈을 놓지 않으십니다.
☞ 우리도 다른 사람을 저주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미워도 저주하지 않아야 합니다.
☞ 예수 믿고 구원받은 우리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다른 사람을 저주하지 않습니다!
<선지자들의 저주 선포>
우리가 성경을 읽다보면, 마치 하나님을 저주하시는 분으로 말하는 대목을 만납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서 읽어야 합니다.
선지자들은 대부분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게 하면 너희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수 있다!”
오늘 본문 3~4절도 이것입니다.
“너희가 그렇게 하면 저주받을 수 있으니 그렇게 하지 말라!”
(3~4절) “그가 내게 이르되 이는 온 땅 위에 내리는 저주라 도둑질하는 자는 그 이쪽 글대로 끊어지고 맹세하는 자는 그 저쪽 글대로 끊어지리라 하니 4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이것을 보냈나니 도둑의 집에도 들어가며 내 이름을 가리켜 망령되이 맹세하는 자의 집에도 들어가서 그의 집에 머무르며 그 집을 나무와 돌과 아울러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하니라”
하나님이 스가랴 선지자에게 거듭 환상을 보여주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성전을 짓다가 낙심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성전을 지어 헌당하는 것을 기뻐하는 분이 아닙니다.
성전을 지으면서 하나님의 백성이 복을 받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을 세워가는 일에 충실할 때 우리 안에 평강이 있습니다.
이제는 신약의 시대입니다.
우리가 성전입니다.
우리를 더럽히지 말고 거룩하게 해야 합니다.
첫째는 “펼쳐진 두루마리”입니다.
둘째는 “하늘의 두루마리”입니다.
셋째는 “살아있는 두루마리”입니다.
넷째는 “저주의 두루마리”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