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진리의증인
유튜브: 진리의 증인
벧엘에서 만난 하나님
“10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11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12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13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15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16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17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18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19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 20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21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22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창세기 28:10-22)
서론: 죄를 짓고 불의를 행하면 반드시 심판과 형벌을 받습니다. 어떤 죄인은 즉시 심판을 받고 어떤 죄인은 시간이 지난 뒤에 형벌을 받는다는 차이만 있을 뿐 죄인은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받습니다. 야곱도 지금 죗값을 치르고 있습니다. 야곱은 늙어서 눈이 어두운 아버지를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야곱은 그 일로 그의 형의 분노를 사서 ‘하란’으로 도망하고 있습니다. 야곱이 하란으로 도망하다 한 곳에 이르러 해가 지자, 들에서 돌을 베고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꿈에 땅에서 하늘까지 닿은 거대한 사닥다리를 보았는데 하나님께서 사닥다리 위에서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야곱은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베개로 사용했던 돌을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고 불렀습니다. 벧엘은 ‘하나님의 집’이란 뜻입니다.
이 시간에는 “벧엘에서 만난 하나님”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벧엘에서 만난 하나님은 죄인 야곱에게 은혜와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죄는 사생아(私生兒)란 말이 있습니다. 죄의 원인도 있고, 죄의 결과도 있고, 죄를 범한 사람도 있지만, 모두 다 모른다고 변명하고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에 죄를 사생아라고 합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죄인이 있습니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죄인과 나는 죄가 없다고 자기의 죄를 부정하는 죄인이 있습니다. 야곱은 나는 죄가 없다고 죄를 부정하는 죄인에 속합니다. 왜냐하면 야곱처럼 교활하고 이기적인 인간은 자기 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야곱과 같은 인간은 죄를 인정하지도 않고 회개하지도 않습니다. 야곱은 죄를 짓고 도망하면서도 아버지를 원망하고 형을 원망하고 동생으로 태어난 운명을 원망했을 것입니다.
야곱처럼 뻔뻔스러운 죄인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야곱이 행한 대로 벌을 받아야 할까요? 아니면 용서하고 다시 기회를 줘야 할까요? 사람들은 죄에 대해서 두 가지의 기준과 두 개의 잣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죄에는 한없이 엄격하고 자신의 죄에는 한없이 관대합니다. 성도 여러분도 야곱은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늙어서 눈이 어두운 아버지를 속이고 형을 속여 장자의 권리를 도둑질한 야곱에게 은혜와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과 같은 죄인을 사랑하시고 축복하시다니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죄만 보고 자신의 죄는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형제의 눈 속에 있는 작은 티는 보면서 자기 눈 속에 있는 커다란 들보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죄인은 벌을 받고 의인은 복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죄인은 벌을 받고 의인만 복을 받는다면 한 사람도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로마서 3:10). 예수님은 마음으로 음란한 생각만 해도 죄가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으로 불의한 생각만 해도 죄가 된다면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죄를 범하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의인만 복을 받는다면 한 사람도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복음! 복음!’ 하는데 복음(福音)이 무엇입니까? 복된 소식, 기쁜 소식을 복음이라고 합니다. 의인이 복을 받는 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의인은 당연히 복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야곱처럼 죄인이 용서받고 복을 받아야 진짜 복음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중에는 야곱보다 의롭고 진실하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이 평생 아버지를 속이고 형을 속인 것은 아닙니다. 아버지를 속이고 형을 속인 것은 야곱의 인생에서 한순간에 지나지 않습니다. 야곱이라는 인간의 신앙과 인격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실수와 허물과 시행착오에 불과한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야곱처럼 실수와 시행착오를 반복하면서 신앙과 인격이 성장합니다. 자녀를 길러낸 연세가 드신 부모님은 경험적으로 아실 것입니다. 한 생명이 핏덩이로 태어나서 성장해 갈 때 얼마나 많은 실수와 시행착오를 반복합니까? 부모의 사랑으로 자녀의 허물과 잘못을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해서 그렇지 인간은 누구나 야곱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자녀가 성장하면서 거짓말하고 죄짓고 부모를 속였다고 자식을 버리는 부모가 있습니까? 부모는 용서하고 다시 일어나도록 도와주고 붙잡아 줍니다. 부모는 훌륭하게 성장할 미래의 자녀를 보기 때문에 성장하는 과정에서 범하는 실수와 시행착오를 문제 삼지 않는 것입니다.
야곱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도 그와 같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죄를 짓고 도망자가 되었을 때도 변함없는 사랑과 은혜를 약속하신 것입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이 오늘 이 시간까지 살아있는 것도 우리가 선하고 의로워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참고 용서하시고 기다려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실수하고 죄를 짓고 하나님을 거역해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변함없이 사랑과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들도 야곱처럼 하나님 자녀와 하나님 택한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벧엘에서 만난 하나님은 죄인 야곱에게 은혜와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짓고 실수하고 넘어질 때도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에게 변함없는 사랑과 은혜와 축복을 베푸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난 야곱은 변하여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난 야곱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격해서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벧엘에서 하나님과 인격적인 만남을 체험하기 전에는 야곱도 에서 못지않게 믿음이 없었습니다. 야곱은 지금까지 한 번도 하나님과 인격적인 만남을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식하지도 못했고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야곱은 ‘여호와 하나님’이란 말을 딱 한 번 사용했는데 눈이 어두운 그의 아버지를 속일 때 사용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팔아서 아버지를 속인 것입니다. 야곱이 ‘에서’로 변장하고 염소고기를 사냥한 별미라고 가져가자, 눈이 어두운 아버지는 야곱을 에서로 알고 “내 아들아 네가 어떻게 이같이 속히 사냥감을 잡았느냐?”고 물었습니다. 사냥감을 잡아서 별미를 만들어 오려면 시간이 걸리는데 너무 일찍 왔기 때문에 이상해서 물은 것입니다. 그러자 야곱은 “아버지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로 사냥감을 순조롭게 만나게 해주셨다”고 대답했습니다. 아버지를 속인 것도 죄가 되는데 하나님까지 팔아서 아버지를 속인 것입니다.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받았지만 야곱은 불안하고 두려웠습니다. 야곱이 장자와 후계자의 축복을 받았기 때문에, 야곱이 아버지의 집에 남고 ‘에서’가 떠나야 하는데, 에서가 아버지 집에 남고 야곱은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냥꾼과 들사람으로 살아온 에서가 쫓아와서 죽이지나 않을까” 야곱은 불안하고 두려웠습니다. 불안과 두려움에 떨며 에서를 피해 하란으로 도망하는 야곱이, 해가 지자, 들에서 돌을 베고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 것이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꿈에서 깬 야곱은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새사람으로 거듭났습니다.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인간 야곱이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새사람으로 거듭난 것입니다. 이제 야곱은 아버지를 속이고 형을 속인 옛날의 야곱이 아닙니다. 야곱은 믿음이 진실한 하나님 백성으로 거듭나고 새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기적인 야곱을 새사람으로 변화시킨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야곱을 변화시킨 것은 징계나 채찍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동해서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은 사랑입니다. 야곱 같은 사기꾼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새사람으로 거듭났으며, 야곱같이 이기적인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격해서 새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야곱처럼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만나는 체험을 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과 인격적인 만남을 체험할 수 있을까요? 믿음이 진실해야 합니다. 하나님보다 돈과 명예와 세속적인 것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인격적인 만남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 새사람으로 거듭난 야곱처럼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새사람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새사람으로 거듭난 야곱은 하나님께 세 가지의 서원 기도를 드렸습니다.
서원(誓願)이 무엇이냐? 하나님과의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소원을 이루어 주시면 나는 하나님께 무엇을 해드리겠다고 약속하는 것을 서원이라고 합니다. 야곱은 아침 일찍 일어나 베개로 사용한 돌을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하나님께 세 가지의 서원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 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라고 서원했습니다. 세 가지 서원 중 첫 번째 서원은, 하나님께서 야곱을 지켜 보호해주시고 야곱이 무사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해주시면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라고 서원했습니다. 하나님이 지켜 보호해주시면 하나님만 믿고 섬기겠다고 약속한 것입니다. 야곱은 그의 서원대로 하나님만 믿고 하나님만 섬겨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두 번째 서원은 “야곱이 기둥으로 세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라고 서원했습니다. 기둥으로 세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라는 서원은, 야곱이 꿈속에서 하나님을 만난 벧엘에 제단을 쌓고, 예배를(제사) 드리겠다는 뜻입니다. 야곱은 그의 서원대로 20년 후에 가나안으로 돌아갈 때, 벧엘에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렸습니다(창세기 35:1-7).
세 번째 서원으로 “소득의 십 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서원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10분의 1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고 약속했습니다. 십일조는 모세 율법이 주어지기 전부터 족장들에 의해 지켜졌습니다. 창세기 14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그돌라오멜의 동맹군을 격파하고 돌아올 때, 하나님의 제사장인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와서 아브라함에게 축복하자, 아브라함은 전리품의 10분의 1을 멜기세덱에게 주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최초로 십일조를 드린 것입니다. 야곱은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다 지켰습니다. 성도 여러분도 하나님께 서원하신 것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서원하신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첫째, 벧엘에서 만난 하나님은 죄인 야곱에게 은혜와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들이 믿음이 완벽하고 행위가 의로워서 하나님 자녀와 하나님 백성이 된 것은 아닙니다. 우리들도 야곱처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구원받고 하나님 자녀와 하나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난 야곱은 변하여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도 야곱처럼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만나는 체험적인 믿음을 통해 새사람으로 거듭나셔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새사람으로 거듭난 야곱은 하나님께 세 가지의 서원 기도를 드렸습니다. 첫째 하나님만 섬기고, 둘째 베개로 사용했던 돌을 기둥으로 세운 곳에 제단을 쌓고, 셋째 십일조를 드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야곱은 세 가지 서원을 다 지켰습니다.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난 야곱처럼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만나는 체험적인 믿음으로 신앙과 인생에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3, 7,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