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태적 전환이라 쓰고 회개라 읽는다.
요한1서 3장 18절
서론
오늘은 ‘환경주일’이라는 제목으로 한국교회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돌아보는 시간입니다.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있습니다. ‘환경’이라는 단어를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제안하고 싶은 지점은 ‘환경’을 ‘생태’로 바꾸는 것입니다. 표기는 ‘환경주일’이라고 했지만, 내용은 ‘생태주일’이 되길 소망합니다.
이를 위해, ‘환경’과 ‘생태’의 의미를 바로 알아야 하는데요.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환경은 인간을 중심으로 하나님이 주신 이 세상을 가꾸어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휴가를 가면 자연을 만끽하기 위해 산속에 자리잡은 숙박시설을 이용합니다. 겨울에는 스키를 타고, 여름에는 물놀이도 합니다. 기억을 더듬어 생각해보십시오. 주차장 내려 짐을 들도 체크인을 위해 프론트를 향할 때 우리를 맞이하는 정원의 모습을 말입니다. 관리된 잔디밭과 조경수들이 보일 것입니다. 한쪽에는 스키 슬로프가 있고, 한쪽엔 야외 풀장이 자리를 하고 있습니다. 금쪽같은 휴가를 보내기 위해 우리는 들떠 있고, 아무도 산 중턱을 깍아 만든 숙박시설의 부자연스러움을 불편해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우리는 잘 관리된 잔디밭과 조경수를 보며 크게 숨을 들이쉬고 “아 공기 좋다”라고 말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제가 활동하고 있는 군산에는 새만금 방조제가 있습니다. 바다를 간척하기 위해 물을 막는 벽을 세운 것이지요. 많은 사람은 새만금 방조제에 방문하여 지평선을 바라보고, 바닷바람을 맞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이 장면만 보면 새만금 방조제의 모습은 희극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방조제 안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희극은 금새 비극으로 바뀝니다. 방조제에는 바다의 바퀴벌레 갯강구조차 찾아볼 수 없는 무생명지대입니다. 심지어 어마어마한 쓰레기 유입으로 방조제는 쓰레기 전시장이 되었습니다. 방조제에 방문한 사람들의 시선은 방조제를 향하지 않고, 바다를 향하기 때문에 전망대 위에서 희극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동시에 인간들의 희극이 상영되는 그 장소의 원주민인 바다생물들은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인간의 편안함과 효율성을 위해 산을 깍고, 물을 가두고, 다른 생명은 살 수 없는 녹색공간을 만드는 것을 ‘환경적’이라고 합니다.
반면에 ‘생태적’이라는 표현은 인간이 하나님이 만드신 이 세상의 구성원으로서 1/N의 몫을 다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생명들과 우리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살펴야합니다. 우리는 이를 표현하는 좋은 말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사이’입니다. ‘바람과 나는 무슨 사이인가?’ ‘지저귀는 새와 나는 무슨 사이인가?’ 혹시 이런 질문을 해보신적 있으신지요? 이렇게 질문을 하고 살아가신다면 그 삶은 절대 환경적 삶에 동조할 수 없습니다. 인간과 인간 사이만을 주목하지 않고,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모든 존재들과의 관계에 주목하며 사이를 만든 삶의 방법이 바로 ‘생태적’이라고 합니다.
교계는 아니지만, 이명박 정부시절 환경부 초청강의에서 최재천 박사는 ‘환경부’라는 명칭을 ‘생태부’로 바꿀 것을 제안했습니다. 당시 최재천 박사의 강의 내용 일부를 공유하면
“정작 사람이나 동식물이 환경과 무슨 관계를 맺이며 살아가고 있는지는 살피지 못한다. 그래서 ‘환경부’라 하지 말고 ‘생태부’라 했으면 좋겠다.”
최재천 박사의 제안을 받아들였으면, 4대강 사업을 하지 않았을까요?
무튼, 우리는 ‘환경주일’이라 썼지만 ‘생태주일’이라 읽기를 소망합니다.
본론 1 - 한일교회 사례
오늘 본문은 환경주일/생태주일을 지키기 위해 한국기둑교교회협의회에서 정한 주제 성구입니다. 배포된 자료를 보면 그 의도가 아주 명확합니다. 본문의 말씀을 통해 이제는 말만 하지말고 교회가 기후붕괴 시대를 맞이하여 그에 맞는 움직임을 가져가자는 것입니다. 실제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생명문화위원회를 조직하여 한국교계가 힘을 합쳐 생명을 살리기 위한 활동을 전개하였습니다. 그 대표적인 활동이 바로 ‘녹색교회 운동‘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말로만 혀로만 하지 말고 직접 무엇인가 해보자라는 각오로 환경적인 세상을 생태적인 세상으로 전환하기 위해 지역사회에서 고분분투하는 교회들을 발굴하기 시작했습니다.
2006년부터 시작된 녹색교회 운동은 24년까지 약 150여개의 교회를 발굴했고, 지금도 진행중입니다. 2006년에 시작되었지만 아직도 150여개 밖에 선정되지 않았다는 점이 놀랍지 않으신가요? 한국 교회 숫자가 전국 편의점과 치킨칩을 합친 숫자보다 많다는데, ‘150여개 교회‘라는 숫자는 교회도 편안함과 효율성이라는 우상을 쫓아 환경적인 삶을 지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편안함과 효율성을 우상으로 섬기는 삶은 예수님의 사랑의 실천할 수 없게 합니다.
분명 교회는 예수님의 사랑을 이야기 하고, 그 사랑을 입은 우리는 제자된 삶, 자녀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오늘 본문처럼 말만 하지말고 삶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자고 수없이 설교를 했고, 들었고, 필기를 하시는 분들은 노트에 고스란이 받아 적으셨을 겁니다. 그런데 그 사랑의 대상이 굉장히 한정적이었나 봅니다. 생각해보면 교회에서 사랑의 대상은 늘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군산한일교회는 매주 목요일 10시 교회 앞 경포천에서 운동하시는 분, 통행하시는 분들에게 토스트와 음료를 건네며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자 행인뿐만 아니라 점심을 챙겨먹기 힘든 택시기사 택배기사 분들이 찾아와 주셨고 , 2주에 한번씩 반찬을 만들어 지역사회 혼자사시는 어르신들에게 안부를 묻는 반찬배달을 했습니다. 기아대책본부를 통해 베트남에 살고 있는 아이들의 교육을 위한 후원을 하고 있고, 국내외 선교단체들을 돕고 있습니다.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지만 참 많은 일을 해왔습니다. 공통점은 사랑의 대상이 사람이었다는 점입니다.
그 동안 ‘말로만 혀로만’과 ‘행함’ 사이에서 ‘뭐라도 해야지’라는 생각에 그 가운데 아주 중요한 단어를 건너뛴게 아닌가 싶습니다. 바로 ‘진실함’입니다. 사랑을 진실하게 하기 위해서는 대상을 한정지어서는 안됩니다. 특히 환경적인 요건이 가득한 우리의 삶 속에서 사람만을 위한 사랑은 더이상 진실하다 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오늘 저는 ‘생명사랑교회’에 와서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교회 이름이 ‘생명 사랑’입니다. 바라기는 오늘 본문의 ‘진실함’이 반영된 ‘생명사랑교회’가 되길 축복합니다.
다시 군산한일교회로 돌아가서, 21년에 생태선교를 담당하는 역할을 포함하여 군산한일교회에 부임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22년부터 교회 표어를 ‘하나님과 동행’ ‘지역사회와 동행’ ‘자연과의 동행’ 으로 잡았습니다. 왜냐하면 생태선교부를 조직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전같으면 지역사회와의 동행에서 끝났겠지만, 생태적 전환을 위해 ‘자연과의 동행’을 추가하여 녹색교회로 체질 전환을 시작하였습니다. 물론 말로만 혀로만 하지 않는 ‘행함’과 ‘진실함’을 놓치지 않기 위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 시작은 교육이었습니다. 생태학교를 만들어 5주 과정으로 매주 토요일 생태적 전환에 필요한 개념과 생태신학적 성서해석,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 교회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이며 나아가 지역사회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군산한일교회가 군산에서는 시설이 잘 되어있는 교회여서 노회, 총회 행사를 많이 합니다. 작년 여신도회 군산지부 모임을 한일교회에서 했는데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약 200여명이 모였는데, 교회 여신도회 회원들이 우리 교회는 일회용기 청정구역임을 외치며 불편함을 감수하셨습니다. 올해는 정기노회를 한일교회에서 했는데, 총 3일동안 쓰레기가 75L 봉투 1/4도 차지 않았습니다. 편안함과 효율성을 쫓아 준비했으면 75L봉투로 4-5장은 족히 나왔을 것입니다.
생태학교를 통해 생태선교부원을 양성하고, 낮은 단계의 활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텀블러 사용하기, 플로깅, 우유팩 멸균팩 모으기, 병뚜껑 모으기, 리필스테이션 사용하기 등입니다. 최근에는 제로웨이스트 물품을 공동구매하기 위한 계획도하고 있습니다. 낮은 단계의 활동을 하다보니 다음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교회 앞 공터에서 쓰레기를 주우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새만금 방조제에 쓰레기 엄청 만던데…” 그래서 온 교인이 함께 모여 새만금 방조제 플로깅을 진행했습니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 자발적으로 그 다음 단계를 생각하고 움직이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주일 오후에 새만금 방조제에 모여 약 260여명이 딱 한시간 쓰레기를 주웠습니다. 말이 플로깅이지 정화작업에 가까웠습니다. 그렇게 주운 쓰레기가 5톤 차량 6대 분량이었습니다. 이 사례가 군산 시의회에 보고 되었습니다. 그리고 해양쓰레기 관련 조례안을 만드는데 군산한일교회가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한 해가 지나고 23년 군산한일교회 오션플로깅은 군산노회 오션플로깅으로 발전하여 31개 교회 약 1000여명의 성도와 100여명의 일반시민이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올해는 작년 총회에서 만들어진 기장 기후정의위원회 차원에서 총회 버전 플로깅을 기획중에 있습니다.
그 밖에도 에너지 소비량을 주보에 표시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예배시 사용되는 전력을 체크하여 줄일 수 있는 부분을 줄이고, 냉방은 조금 덥게, 난방은 조금 춥게 하여 에너지 사용량을 줄였고, 벌과 나비를 비롯한 이웃생명들이 찾아오는 정원/텃밭을 만들고, 교회에서 사용되는 일회용품을 끊어나가는 여정 중에 있습니다.
이 모든게 다 편안함과 효율성을 버려야만 가능한 일들입니다. 오늘날 우상화 된 편안함과 효율성을 버리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말과 혀는 당연히 아닙니다. 오직 행함만으로도 할 수 없습니다. 진실함이 있어야만 우리가 받은 사랑을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모든 존재들에게 나눌 수 있게 됩니다.
본론 2 - 정말로 할 수 있는가?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보통 교회에서 “목사님 은혜받았습니다.” “응원합니다.” 등 지지와 박수를 받습니다. 그런데 한 발자국 더 앞으로 가면 반응은 극적으로 바뀝니다. 왜냐하면 우상화된 편안함과 효율성은 우리가 버리고 싶다고 한번에 버릴 수 있는 작은 드라빔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편안함과 효율성은 사회적 시스템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즉, 우리의 삶의 기반 자체가 편안함과 효율성을 우상으로 섬기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생명사랑교회 성도님들께 ”군산새만금 공항은 꼭 생겨야 합니까?“ 라고 질문한다면 뭐라 답하시겠습니까? 오늘 환경주일/생태주일이고, 생태선교사로 활동하는 이창준 목사가 질문했으니 탄소배출많이하는 공항은 생기면 안된다고 해야겠지? 라고 대부분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요 당사자인 군산 시민들은 입장이 다릅니다. 공항이 생겨야 지역경제가 살아날 것이라는 신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민주당 표밭인 군산에서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이 내걸은 공약이기도 합니다. 새만금 신공항이 생기면 경사도 1도 미만을 자랑하는 세계적인 갯벌인 수라갯벌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 곳에 살고 있는 멸종위기 생물 36종이 집을 잃게 됩니다. 갯벌의 원주민을 희생시켜 사람들의 편안함과 효율성을 담보하려 합니다. 어떻게 해야할까요? 피부에 더 와닿게 이야기해볼까요? 서울 버전으로 사람을 대상으로 해보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이미 잘 알고 계실겁니다. 인천 서구에 있는 수도권쓰레기매립장에 매립할 수 있는 부지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제 새로운 쓰레기 매립지를 찾아야 합니다. 쓰레기 매립지가 없다고 수도권에 거주하는 모든 시민이 쓰레기 없는 삶으로 180도 전환하지 않을테니깐요. 쓰레기 매립지 부지가 우리 집 인근으로 왔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수도권쓰레기 매립지 인근 소수 사람을 희생시켜 다수의 수도권 사람의 편안함과 효율성을 담보한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기후붕괴 시대에 기후붕괴 저지선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단호하고 빠른 결단을 내려야만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 속에서 서로의 이익이 충돌할 경우 이해관계를 풀기 위한 시간이 지체되어 점점 더 빨라지는 기후붕괴의 저지선을 구축할 수 있는 시기를 놓치게 됩니다.
국제사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파리기후협약 이후 탄소배출 감량에 동의를 했지만 22년 글레스코에서 모였을 때 기후악당국가라 평가받는 인도, 호주, 일본, 중국은 그 책임을 다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참가국도 기준에 한침 못미치는 성적표를 보여주며 탄소중립의 길의 험난한 미래를 예고 하였습니다.
탄소배출권을 포함한 이른바 ‘탄소시장’을 형성하여 탄소중립을 위한 노력을 하였지만, 결국 탄소시장은 그린워싱에 가까운 모습이 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전기차로 유명한 테슬라는 차량 판매로만 돈을 버는게 아닙니다. 생산된 차량의 탄소배출을 기준으로 탄소세를 책정하는데, 내연기관 자동차를 생산하는 기업에서는 막대한 탄소세를 부담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비용절감을 위해 내연기관 자동차 업체는 테슬라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자신들이 생산한 차량을 테슬라의 생산량에 포함할 수 있도록 거래를 합니다. 일종의 탄소배출권 거래를 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거래를 하여 테슬라는 가만히 앉아서 돈을 벌 수 있었습니다. 테슬라는 탄소배출권 거래를 통해 내연기관 차량의 생산단가를 낮추는데 일조하여 더 많은 소비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이래도 전기차가 친환경차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기업들은 계속해서 우리의 소비를 부추깁니다. “이 정도는 입어줘야한다.” “이 정도는 먹어줘야한다.” “이 정도는 타 줘야 한다.” 등등 “이 정도”라는 기준을 세워서 우리를 현혹합니다. 최근 예능에서 소개된 라이프스타일이 시장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 단연 ‘나혼자산다’라는 예능이 있습니다. 저도 재밌게 봤던 예능입니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불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1인가구가 사용하는 에너지 양은 4인가구 기준 2/3 수준입니다. 그런데도 1인가구는 증가하고 있습니다. 예능에 소개된 먹거리는 금새 SOLD OUT됩니다. 대부분 육식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생태적 전환과는 거리가 멉니다. 1인 가구의 주식은 배달음식입니다. 다회용용기를 사용하는 모습은 볼 수 없습니다. 분리수거를 잘하는 모습을 칭찬하며 매일 배달음식을 먹는 삶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습니다. 집안을 청소할 때는 일회용 청소티슈를 사용합니다. 대표적으로 크린넥스가 있죠? 물티슈는 내 신체기관의 일부로 보여집니다.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먹어도 너무 많이 먹습니다. 조금 먹는 사람들을 ‘소식좌’라고 부르며 먹는 즐거움을 주입합니다. 건강한 식생활은 중요하지만 과도한 육식과 하루 6끼를 먹는 여행은 방송을 통해 권장될 사항은 아닙니다. 하지만 재밌으니깐 다들 그냥 봅니다. 오히려 올해의 브랜드상을 수상하고, 연말 시상실을 휩쓸어갑니다. 출연진들의 노고를 비하하는게 아닙니다. 지향하는 바가 기후붕괴시대를 역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더 불편한 사실은 좀 더 편안한 삶, 좀 더 효율적인 삶을 살기 위한 소비구조에 나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일회용컵을 사용하지 않기 위해 텀블러를 구입합니다. 1년이 지나면 더 이쁜게 나와서 또 삽니다. 아르헨 훅스트라의 물발자국 평가 메뉴얼에 따르면 355ml 텀블러 기준 3년 이상 사용을 해야 일회용컵을 사용하지 않은 의미가 있다고 말합니다. 일회용컵을 사용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위해 텀블러 소비도 멈춰야만 합니다. 여러분은 텀블러를 몇년간 사용하시나요?
미디어를 비롯하여 SNS를 하다보면, 매년 옷을 사게됩니다. 왜냐하면 옷장을 열었을 때 입을 옷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옷을 소비하면서 옷을 생산하기 위해 들어간 에너지 비용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소비 기준은 가격대비 퀄리티이기 때문입니다. 종류에 따라 다르겠지만, 청바지 한벌을 만들기 위해 9000L 의 물이 소비됩니다. 맨투맨 티셔츠 한벌에 2900L의 물이 소비된다고 합니다. 이런식으로 물 소비량만 따졌을 때 우리가 보통 착장하고 다니는 옷을 생산하기 위한 물 소비량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우리는 이미 우리의 소비 생활을 이대로 유지하면 기후붕괴 시대가 경고한 인류의 고지된 멸종을 맞이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생태적 전환이 힘든 이유는 우리의 삶의 기반이 우리가 소비하는 에너지, 먹거리, 의류 등에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생태적 전환을 위한 강의를 하다가 플라스틱 용기를 생산하는 사장님이 이렇게 질문을 하셨습니다. “선생님 말씀대로 소비생활을 줄여야 하면 나같은 사람은 뭐 먹고 살아야 한데요?” 여러분 이 질문이 우리가 풀어가야 할 숙제입니다. 이 질문에 관하여 나름의 답을 내린 탈성장학자들은 공통적으로 어느정도 자급자족하는 삶의 형태를 구축해나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요. 정말 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 말씀을 다시 한번 봅니다.
자녀 된 이 여러분, 우리는 말이나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과 진실함으로 사랑합시다.
24년 환경주일/생태주일에 우리가 새겨야할 말씀입니다.
생명사랑교회 성도 여러분. 그리고 유튜브로 시청하고 계시는 모든 성도님들께 권면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기후붕괴 시대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붕괴를 막을 수 있는 저지선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가 우상화했던 편안함과 효율성을 마주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지금도 착취당하는 모든 생명을 향해, 말과 혀로 사랑했다고 잘못을 시인하시기 바랍니다. 진실함 없는 행동을 사랑으로 착각했다 머리 숙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편안함과 효율성이라는 우상을 숭배한 지난날을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눈을 들어 생태적 전환에 앞장서는 삶의 자리를 찾아가시길 바랍니다. 그 자리를 찾았을 때, 지킬 수 있는 힘과 능력을 하나님께 구하시길 바랍니다. 이를 통해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꾸셔서 모든 존재를 향한 우리의 사랑에 동참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소망합니다.
*보냄의 말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전국의 성도 여러분!
눈을 들어 나와 함께 살아가는 모든 존재를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사랑하십시오. 사랑을 받은 자로서, 사랑을 나누는 자로서 살아가십시오. 생태적 전환이라 쓰고 회개라 읽는 신앙의 여정에 동참하십시오.
*축도
우리와 동행하시는 성삼위 하나님께서 기후붕괴 시대를 마주하여 보이지 않는 미래의 등불이 되어주시며, 생태적 전환을 통해 편안함과 효율성을 숭배하던 옛 모습을 버리길 원하는 여러분을 인도하여 주시며, 우리와 함께 숨을 쉬며 내일을 만들어가는 모든 생명들을 안위하여 주시고, 우리를 향한 성삼위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나누며 살길 원하는 여러분의 신앙 여정 가운데 지금부터 영원까지 성부성자성령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