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봉역에서 내리세요
이향아
오렌지색 3호선 전철을 타고 흔들리면 흔들리는 대로 가만있다가, 내리고 싶으면 매봉역에서 내리세요, 오래된 집들로 나지막한 동네, 매화 꽃봉오리는 진작 벙글었어요, 동네 사람 태반은 양재천 냇물에 세 들어 살거나 늙은 나뭇등걸에 얹혀살아요, 떠날 수 없는 나도 그렇습니다
새로 피는 나뭇잎은 공원 숲까지 뻗치고, 숲속은 지금 수라장입니다, ‘허물고 높이 짓자’, ‘뼈대가 멀쩡한데 허물다니 당치않다’
상수리나무, 벚나무, 이팝나무들은 어쩌라고, 때 되면 가지가 찢어지는 대추나무 살구나무 은행나무 감나무들은, 물정도 모르는 산수유와 목단 명자꽃 진달래 능소화들은 또 어쩌라고, 모두 베어 없애고 허공에 매달릴까,
그래도 오세요 매봉역에서 내리세요, 우리 천천히 시냇가로 갑시다
----이향아 시집, {캔버스에 세우는 나라}에서
어쩌다가 우리의 조국인 대한민국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삶의 터전이 아닌 부동산 투기업자들의 투기장이 되었을까? 부동산 투기란 삼천리 금수강산을 다만 이익을 창출해내는 소모품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뜻하고, 우리 한국인들의 삶의 질의 향상과 행복,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조국을 물려준다는 국민의식은 손톱만큼도 없다는 것을 뜻한다. 사유재산제도는 만악의 근원이며, 이 사유재산 때문에 인간이 인간을 혐오하며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신풍조가 생겨나게 되었던 것이다.
문화선진국일수록 사유재산제도에 제약을 가하고, 개인의 재산이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잠시 잠깐 빌려쓰는 차용재산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부자로서 죽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고, 전재산을 아낌없이 다 환원하고 죽어가는 것이 선량한 시민의 의무이기도 한 것이다. 삼천리 금수강산, 우리들의 조국은 자연 그대로의 보존이 원칙이며, 제 아무리 주택정책이라고 하더라도 무차별적인 개발이란 있을 수가 없다. 모든 동식물들도 다 집이 있고 짝이 있는데, 가장 근본적인 보금자리(집)를 갖고 투기판을 벌이는 것은 반자연적이고 반인륜적인 대역죄와도 같다.
부동산, 즉, 집이란 그 자체로 사고 팔아야 하는 재화가 아니며, 이 부동산을 함부로 사고 판다는 것은 자연의 질서에 대한 도전이자 모든 생명체들을 대량살생하는 행위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가능하면 자연친화적이며 작고 아름다운 집, 그 어떤 재화도 낭비하거나 소모하지 않으며 천년, 만년 대대로 살 수 있는 집, 모든 동식물들에 대한 사랑과 애정과 행복이 가득한 집을 짓는 것이 모든 문화선진국의 주택정책이라면 대한민국의 주택정책은 무목표, 무의지, 무책임이라는 ‘삼무정책’ 아래 소위 사기꾼들의 ‘떴다방 정책’이라고 할 수가 있다. 첫 번째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정치인들과 고급관리들의 뇌물의 공급원이 되어야 하고, 두 번째는 실수효자들의 편안하고 안락한 주거환경보다는 건설업자의 최고의 이익이 보장되어야 하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일년 열두 달 내내 전국토가 부동산 투기로 활활 타오르지 않으면 안 된다. 자연보호와 환경보호는 일고의 가치도 없고, 상호간의 사랑과 애정과 행복도 일고의 가치가 없다. 역사와 전통을 강조할수록 돈과 시간이 낭비되고, 천년, 만년 영원한 보금자리정책은 건설사업을 다 망하게 하고 국가경제의 주름살만을 더하게 한다. 대한민국의 주택정책은 뇌물이 더욱더 많이 솟아나와야 하고, 건설업자의 최고 이익이 보장되어야 하고, 전국토가 부동산 투기장으로 일년 열두 달 내내 난장판이 되어야 한다. 천국 앞에서는 만인이 평등하고 모든 인간들에게 다 열려 있지만, 이 더럽고 추한 한국인들에게는 지옥의 문만이 활짝 열려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정치경제, 문화의 중심지, 우리 한국인들의 젖과 꿀이 흐르는 강남지역, 자고 나면 아파트값과 땅값이 치솟아오르고, 학군이 좋고 천당 중의 천당인 매봉역 근처도 대한민국의 부동산 재개발정책 때문에 아수라장이 되어간다. “허물고 높이 짓자”는 개발업자와 “뼈대가 멀쩡한데 허물다니 당치않다”는 반개발업자가 싸우면, 그곳의 원주민들마저도 찬성파와 반대파로 쫘악 갈라져 피투성이가 되도록 싸운다. 그 옛날보다도 건축기술과 건축자재가 천배, 만배 더 발전하고 좋아졌지만, 도대체 어떻게 해서 아파트를 지은 지 4~50년도 안된 매봉역 근처가 그처럼 이전투구의 장소가 되었단 말인가? 첫 번째는 천년, 만년 대대로 살 수 있는 집이 아닌 임시방편의 아파트를 지었기 때문일 것이고, 두 번째는 재개발사업으로 인한 엄청난 이익이 발생하기 때문일 것이다. 눈앞의 이익은 미래를 생각하지 않으며, 국력과 민심을 갈갈이 찢어버리고, 그 무슨 ‘저주의 선물’처럼 엄청난 재앙을 안겨다가 주게 된다. 수십 년 동안 자라온 상수리나무, 벚나무, 이팝나무들도 갈 곳이 없고, 때 되면 가지가 찢어지는 대추나무, 살구나무, 은행나무, 감나무들도 갈 곳이 없고, 산수유, 목단, 명자꽃, 진달래, 능소화들도 갈 곳이 없다.
이향아 시인의 [매봉역에서 내리세요]는 부동산 재개발정책에 반대하는 시이며, 그 ‘난감함의 미학’을 노래한 시라고 할 수가 있다. 오래된 집들로 나지막한 동네, 매화 꽃봉오리는 진작 벙글었고, 동네 사람 태반은 양재천 냇물에 세 들어 살거나 늙은 나뭇등걸에 얹혀 사는 동네, 상수리나무, 벚나무, 이팝나무, 대추나무, 살구나무, 은행나무, 감나무, 산수유, 목단, 명자꽃, 진달래, 능소화 등과 함께 나도 떠날 수 없는 이 동네에 오시면, 당신들도 너무나도 분명하게 이 부동산 재개발정책에 반대하게 될 것이다. 이향아 시인의 “그래도 오세요 매봉역에서 내리세요, 우리 천천히 시냇가로 갑시다”라는 시구는 자연보호와 생태환경의 보호, 그리고 자연친화적인 작고 아름다운 집에 반대할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라는 이성과 양심의 소산이며, 물이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살자는 뜻이 담긴 시구라고 할 수가 있다.
우리 한국인들은 모든 생명체들의 삶의 터전이자 보금자리마저도 투기의 대상으로 삼는 악마들이며, 자기 자신과 이 세계를 파괴하고, 궁극적으로는 동식물보다도 결코 행복하게 살지 못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