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게 재미없다는 말은 여행에서도 마찬가지다. 올해는 단풍과 억새 말고 새로운 가을 풍경을 담으러 충남 태안으로 떠난다. 가을바람에 고갯짓하는 팜파스 아래에서 사진을 찍고 분홍 솜사탕처럼 몽글몽글한 핑크뮬리 사이를 누빈다. 어둠이 내리면 수백만 개 불빛에 휩싸여 가을의 밤을
지난다. 팜파스, 핑크뮬리, 오색 불빛이 있어 더욱 아름다운 태안의 가을날이다.
태안군 남면 청산수목원의 팜파스원. 팜파스 군락은 가을 정취를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가을의 새로운 전령 팜파스, 청산수목원 팜파스축제
태안의 연관 검색어로 ‘태안 팜파스축제’가 뜨고, SNS에 ‘태안 여행’을 치면 팜파스 배경의 인증샷이 줄을 잇는다. 이름도 낯선 외래종의 인기가 날로 뜨겁다. 팜파스는 범박하게 말하면 키가 큰 서양
억새다. 햇살에 반짝이며 넘실대는 은빛 팜파스 군락에는 가을의 정취가 화려하게 머물러 있다.
팜파스의 군무를 보러 팜파스축제가 한창인 청산수목원으로 향한다.
태안군 남면에 자리한 청산수목원은 10만㎡ 규모로 수목과 야생화 600여 종의 집이다. 봄부터 초
여름에는 잎이 붉은 홍가시나무가, 여름에는 꽃창포와 연꽃이 수목원을 장식한다. 뭐니 뭐니 해도 수목원의 피크는 가을이다. 나들이하기 좋은 계절이 되면 팜파스와 핑크뮬리를 보러 여행자들이
몰려든다. 올해 팜파스축제는 11월 24일(일요일)까지 열린다.
청산수목원의 상징이자 서양 억새라고 불리는 팜파스 군락
청산수목원 연원에 자리한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는 연인
목줄을 채운 5kg 이하의 반려견은 동반 입장이 가능하다.
수목원 관람은 수생정원에서 나무정원으로 이동한다. 하이라이트는 끝에 등장하는 법. 관람 동선상 팜파스원은 마지막에 나타나지만 팜파스로 향하는 길목마다 곳곳이 포토존이니 걸음을 서두를 필요는 없다. 그중 놓치지 않아야 하는 핫스폿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황금삼나무길이다. 홍련원과 로터스샵 사이, 황금삼나무가 일렬로 늘어선 조붓한 길이다. 황금빛이 도는 연두색 아름드리나무는
가을이 깊은데도 싱그럽기만 하다. 황금삼나무길을 걸으면 아직도 봄이다.
다음은 팜파스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리는 핑크뮬리 포토존이다. 핑크뮬리가 군락을 이루는 곳은
크게 세 군데로 연원과 카페팜파스 사이, 밀레정원 맞은편, 주차장 출구로 빠져나가기 전의 부지다. 앞의 두 곳은 사람들이 꽤 있는 반면 마지막 부지는 인적이 드문 편이다. 사람 손을 덜 타서인지
분홍빛도 유독 짙다. 핑크뮬리는 ‘사진발’을 잘 받는다. 솜사탕 같은 분홍빛이 몽글몽글하니 사진
솜씨와 상관없이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홍련원과 로터스샵 사이의 황금삼나무길을 걷는 연인
인증샷 성지로 자리 잡은 핑크뮬리 포토존
핑크뮬리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
모네의연원을 지나 밀레정원으로 들어서기 전, 왼편의 홍가시나무 포토존도 어여쁘다. 단풍처럼
붉은빛이 곱기만 한데 꽃이 아니라 잎사귀 색이 붉은 것이다. 잎은 자라면서 녹색이 되는데 가지
치기를 해주면 항상 붉은 새순을 볼 수 있다. 홍가시나무 군락은 제주도의 어느 고요한 숲을 연상
시킨다. 색색의 우산 장식이나 ‘YOU ARE THE BEST’ 갈런드(garland)를 배경 삼아 사진을 찍어
도 근사하다.
홍가시나무를 배경 삼아 사진 찍는 사람들
제주도 휴양림처럼 평온한 분위기의 홍가시나무 군락
홍가시나무 포토존 근처의 홍가시카페
드디어 청산수목원의 주인공, 팜파스를 만날 차례. 팜파스는 남미 초원 지대와 뉴질랜드 등지에
서 자라는 볏과 식물이다. 팜파스그라스라는 이름도 남미 초원 지대를 뜻하는 ‘팜파스(Pampas)’와
풀을 뜻하는 ‘그라스(grass)’가 합쳐진 것이다. 팜파스는 우리가 아는 억새보다 키가 훌쩍 크다.
어른 키를 껑충 넘어서는 것은 물론이요, 3m까지 자라는 것도 있다. 꽃도 풍성하다. 한데 모여 피
는 꽃무리는 누렁이의 복슬복슬한 털인 듯 탐스럽다. 바라만 봐도 가을 추수를 끝마친 농부처럼
마음이 넉넉해진다.
베이지색 팜파스와 푸르른 가을 하늘의 조합은 실패가
없다. 배경이 도와주니 찍는 족족 인생샷이 걸린다. 시간대를 고를 수 있다면 오후 4시에서 5시
정도가 제일이다. 어느 정도 해가 누워야 팜파스 꽃무리가 입체감 있게 표현되기 때문이다. 사진
을 찍을 땐 활 모양으로 늘어진 잎에 다치지 않도록 주의하자. 1~2m로 좁고 긴 잎은 상당히 억세
고 날카로우니 손으로 만지지 말고 가까이 다가가지 않도록 한다.
팜파스가 만개한 팜파스원 전경
가을 하늘 아래 탐스럽게 꽃을 피운 팜파스에서 완연한 가을이 느껴진다.
땅
에 떨어진 팜파스를 소품 삼아 사진을 찍어본다.
사진 찍을 위치를 고르고 포즈를 잡는 사람들은 연령대도 다양하다. 옷을 맞추고 커플 사진을 찍는 연인들이 있는가 하면 할머니부터 손자까지 삼 대가 총출동한 가족도 있다. 누구와 함께든 사람들 얼굴에도 환한 꽃이 핀다. 소중한 사람과 팜파스 아래에 서는 순간, 팜파스와 함께 한 장의 추억을 남기는 순간. 꽃 같은 순간이 무르익는 가을날이다.
낮보다 눈부신 태안의 밤, 태안 빛축제
낮의 해가 저물면 밤의 장막이 걷힌다. 장막은 어둡지 않다. 전구 수백만 개로 빛의 향연을 이룬다. 청산수목원에서 차로 20여 분 거리의 네이처월드에서는 일 년 내내 태안 빛축제가 열린다. LED
전구를 쓰기 때문에 비가 올 때를 빼고는 연중무휴로 여행자를 맞이한다. 그럼에도 이맘때 축제장
을 찾기 좋은 건 일몰 시각이 부쩍 당겨졌기 때문이다. 어둠이 빨리 찾아드는 겨울의 초입, 긴 밤
을 즐기기 위해 따스한 불빛 아래로 향한다.
네이처월드에서 일 년 내내 열리는 태안 빛축제
600만 개의 LED전구가 어둠을 밝혀 낮처럼 밝은 축제장
태안 빛축제는 대개 입구를 등진 채 오른쪽으로 걸어 시계 반대 방향으로 둘러보게 된다. 지도나
안내판이 따로 없는 터라 발길 닿는 대로 걸어야 한다. 축제장은 봄에 수선화축제가 열리는 너른
부지다. 워낙 넓다 보니 여기저기 구경하고 사진 몇 장 찍으면 1시간이 훌쩍 지난다.
600만 개의 LED전구가 어둠을 밝히는 축제장은 시선 닿는 곳마다 눈이 부시다. 산책로 나무에도
색색의 전구를 감아 크리스마스트리를 연상케 한다. 포토존도 한두 곳이 아니다. 백조의 호수, 거대 버섯, 트로이의 목마, 천사의 날개 등 갖가지 조형물에 발걸음이 멈춘다. 그중 장미 화병, 조명 터널, 러브 트레인은 눈여겨볼 만하다.
대형 버섯 조형물 아래에서 사진을 찍는 여행객
LED장미 수십 송이가 꽂힌 거대한 장미 화병
장미 화병은 정문을 등지고 오른쪽으로 5분쯤 걸어가면 나타난다. 소인국에 온 걸리버의 것인 양
거대한 화병 속에 수십 송이 LED장미가 어둠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은하수를 걷는다면 이런 느낌
일까. 트로이의 목마 조형물 뒤에 자리한 조명 터널은 축제장에서 가장 컬러풀하다. 별 가루를 뿌린 듯 무지갯빛 전구가 터널을 뒤덮었다. 인증샷에 제격인 곳도 있다. 트로이의 목마 앞쪽에 자리한
러브 트레인이다. 기관차 뒤의 철로에 하트 조형물을 줄지어 세웠다. 여기서 사진을 찍으면 뷰티
유튜버들이 화장대에 조명을 다는 이유를 단번에 알 수 있다. 철로 바닥에 주황빛이 도는 전구를
깔아 얼굴이 화사해진다.
트로이의 목마 조형물 근처에 괜찮은 포토존이 몰려 있다.
무지갯빛 전구를 달아 반짝이는 조명 터널
철로를 따라 조명이 들어오는 러브 트레인
오색 불빛으로 치장한 축제는 밤 10시까지 계속된다. 새까만 어둠과 찬란한 불빛이 앙상블을 이루며 태안의 밤을 수놓는다. 주의할 점이 몇 가지 있다. 첫째, 축제장은 일몰 전에 들어갈 수 없다. 매달
입장시간이 다르므로 방문 전 홈페이지를 꼭 확인해야 한다. 11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는 오후 5시 반부터 입장이 가능하다. 둘째, 5kg 이하라면 반려동물도 들어갈 수 있지만 목줄 착용과 위생봉투 지참은 필수다. 셋째, 야외 전시다 보니 밖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다. 두툼한 겉옷이나 담요를 챙겨 보온에 신경 쓰자.
은은한 불빛 속에서 늦가을 밤 산책을 즐기기 좋은 축제장
여행 정보
청산수목원
주소 : 충청남도 태안군 남면 연꽃길 70
문의 : 041-675-0656
이용시간 : 10:00~일몰 1시간 전(11월~3월), 09:00~일몰 1시간 전(4~5월), 08:00~일몰 1시간 전(6~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