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 (證言) - [45] 문평래 (文平來) - 뜻길의 50년 생애 29. 이놈, 누가 그렇게 결정했느냐 1 1998년 12월, 판타날은 지구상에서 한국과 정반대에 위치해 있어 너무나 더운 여름이었다. 참아버님의 지시에 따라 전 세계의 국가메시아들이 파라과이 올림포에서 40일 해양 특별수련회를 하고 있었다. 수련생들은 참부모님과 함께 39일째까지 모든 일정을 잘 보내고 내일이면 마지막 낚시를 하고 수료식을 할 예정이었다. 2 밤늦게 돌아오신 참아버님의 배를 정리하면서 나는 “아버님, 내일 아침에는 몇 시에 출발할까요?”라고 여쭈었다. 그러자 아버님께서 “네 시에 출발하지.”라고 말씀하셨다. “아버님, 다섯 시가 아니고 네 시입니까?” 3 나의 재차 여쭙는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참아버님께서는 숙소로 들어가셨다. 나와 함께 몇 사람이 곁에 있었지만 정확한 뜻을 파악하는 사람이 없었다. 매일 아침 다섯 시에 출발하던 아버님이셨기 때문에 나는 다섯 시를 네 시로 잘못 말씀하신 것으로 판단했다.
4 일반적으로 모든 일을 마무리 할 때는 피곤도 하고 긴장이 풀려 스케줄을 좀 늦추게 된다. 하지만 나는 “무슨 일을 마무리할 때에는 더욱 긴장해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라는 참아버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그래서 4시가 되기 전에 깨었다. 5 그리고 허겁지겁 뱃머리로 나가보니 아무도 없었다. 사람을 보내어 보트 운전기사를 깨운 다음 낚시를 위한 미끼를 사러 보냈는데 이른 새벽이라 가게 문을 열지 않았다고 했다. 우왕좌왕 하는 사이에 아버님께서는 네 시 정각에 나오셨다. 6 배에 오르신 참아버님께서 “배가 왜 출발하지 않느냐?”라고 하문하셨다. 그래서 “아버님, 미끼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사실은 다섯 시에 출발하실 줄 알았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뭐야? 이놈, 누가 그렇게 결정했느냐. 내가 네 시로 말하지 않았느냐!” 7 참아버님께서 큰 소리로 말씀을 하시며 낚싯대로 후려치려 하셨다. 나는 그토록 크게 화 내시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보트를 타기 위해 모여들든 국가메시아들이 아버님의 격노가 얼마나 무서웠던지 모두들 긴장한 채 말도 못 하고 서 있었다. 그러는 사이 미끼가 도착했다. 8 나는 미끼를 실어드리며 “아버님 잘못했습니다. 앞으로 잘 하겠습니다!”라고 말씀을 올렸다. 참아버님께서는 금방 고요한 바다처럼 평온하게 “너희들도 빨리 배 타고 나가라. 오늘은 목표 달성 못하면 못 돌아온다.” 하시며 먼저 보트를 타고 낚시터로 가셨다. 9 우리는 마지막 최후의 순간까지 전력 투입하시는 참아버님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새로운 각오와 결의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하늘 섭리 앞에서는 자기 중심한 인간적 지혜나 판단이 얼마나 큰 과오를 범할 수 있는가를 깊이 통감하게 된 시간이었다. 10 나는 국가메시아로서 판타날 섭리에 부름을 받고 나의 임지 국가에서 참부모님을 모시게 된 것을 한없는 영광으로 생각한다. 모시는 가운데 여러 책망의 말씀을 듣기도 하였지만 지나고 보면 모두 큰 교훈으로 남아졌다.
11 그 순간에는 기쁘지 않고 죄송스러운 마음이었지만 가만히 돌이켜 보면 교훈이요 새 생명의 양식으로써 나를 붙들어 준 생명의 밧줄임을 절감하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도 한없는 감사를 드린다.
30. 마무리하면서 1 지금 이 시간에도 참부모님께서는 최후의 천주적 실체 골고다 산정을 앞장서 가신다. 천일국 실체 기반을 완성 완료하기 위하여 하늘 앞에 생축의 제물과도 같은 자세로 아낌없이 생을 투입하신다. 2 우리도 참부모님의 뒤를 따라 이 길을 가야 한다. 2013년 1월 13일 천일국 기원절을 바라보면서 종족적 메시아와 국가메시아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본다.
3 뜻길을 따라 온 지 50년, 뒤돌아보면 부족한 점이 많다. 그런데도 참부모님께서는 사랑으로 늘 이끌어 주셨다. 너무나 감사하다. 하나님과 천지인 참부모님께 승리의 억만세 찬양을 올리며 간증을 마무리하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