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7. 28(목) 색다른 투어 cafe의 아침편지
일의 균형을 잘 잡는 기술
쉬운 일은 어려운 일처럼,
어려운 일은 쉬운 일처럼 하라.
자부심이 나태해지는 것을 막고,
용기가 스러지는 것을 막는다.
어떤 일을 마무리하지 않고
팽개쳐 두는 것을 막기 위해,
때로는 그 일을 끝마친 것처럼
지긋이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와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세상에는 노력하고 애쓰면
불가능한 일도 가능해질 수 있다.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일은
근심걱정과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좋다.
몸과 마음이 위축되지 않도록
일 그 자체만을 보는 것이다.
- '미래를 보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중에서 -
책소개
『미래를 보는 지혜』는 스페인을 대표하는 철학자 그라시안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292개의 잠언을 담고 있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처세술을 그라시안 특유의 냉철한 사유로 풀어냈다. 19세기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독일어로 번역하여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이 책은 영국ㆍ프랑스 등에 번역되어 순식간에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지금도 전세계 독자들에게 꾸준히 읽히고 있는 불후의 명작이다.
저자소개
발타자르 그라시안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스페인을 대표하는 대철학자로 작가이자 신부다. 1601년 스페인 아라곤 지방에서 의사의 아들로 태어나 15세에 발렌시아 사라고사 대학에서 철학 공부를 시작했고, 18세에 예수회 신부가 된다. 이때 풍부한 식견과 지혜를 바탕으로 한 강의가 큰 명성을 얻었다. 예수회 대학에서 교수로 일하며 글을 썼지만 현실 비판적인 내용 때문에 여러 번 예수회로부터 제명당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하지만 군종신부로서 탁월한 재능을 발휘해 ‘승리의 대부’라는 칭호를 받고, 스페인 국왕의 고문으로 마드리드 궁정에서 강론하고 철학을 강의했다. 예수회 사제로서 교육·설교·고해 업무를 담당하면서 저술 작업을 계속했다.
그의 저서 『오라클: 신중함의 기예에 대한 핸드북』은 서구의 근대 철학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비판자』의 발표 이후 내려진 교단의 징계로 건강이 악화되어 1658년에 사망했다.
아침의 하늘은 잔뜩 찌푸린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출근 시간이 조금 늦었던 관계로 교통혼잡에 동참하는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방학이고 또 하계휴가철이라 안심했던 것이 화근이었지요.
어떻든 밀린 차량틈을 뚫고 아슬 아슬하게 지각을 면한 것은 다행이었지요. 아니 행운이었다는 표현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아침회의 시간에 새로운 업무를 맡게 된 이변이 발생해 다소 당혹스럽기는 했지만 배려해 준 것 같아 고마움이 들었습니다. 식당문제에서 해방된 것만으로도 감사했지요. 어떻든 오늘부터 내 책상 앞에는 특별업무표가 부착 되었습니다. 이에따라 두명의 李차장이 중화요리 전문점 유치를 위해 연남동과 연희동을 방문하게 되었지요.
회의를 마친후 임원들과 함께 송추떡갈비에서 '얼큰한 육계장'을 배달시켜 해결했습니다. 그러나 수없이 송추떡갈비집의 음식을 배달 시켰으나 정작 상기인이 유치한 도시락집의 '도시락'은 한번도 배달 시키지 않은 것이 마음에 좀 걸렸습니다. 점심 후 늘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는 속초 출신의 의리맨인 李사장과 진지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많은 위안이 되었지요.
오후 늦은 시간 권건축사가 내방하였기에 시장 계약문제를 심도있게 논하였고, 퇴근시간에는 곧바로 집으로 향했습니다. 남영동을 지나 숙대역 앞을 지나면서 언제 이런 큰 건물이 들어섰나 싶게 큰 호텔 건물이 선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동안 퇴근 길 코스는 늘 공덕과 신촌을 경유하여 다니다 보니 잘 몰랐던 것이지요. 철도부지에 바짝 붙어있는 협소한 공간에 어떻게 20층이나 되는 이런 큰 건물이 들어섰는지 다소 의아했습니다. 아마도 관광객의 증대에 따라 호텔건립 허가가 많이 완화된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침에는 한바탕 비라도 쏟아질 것 같이 잔뜩 흐렸는데, 오후 퇴근시간에도 흐린 날씨이긴 했으나 날씨는 푹푹찌는 더위였습니다. 광화문 앞의 이순신 장군 동상 앞 분수대에는 아이들이 물장구를 치는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도심의 분수대에서 아이들이 마치 냇가에라도 나온 것 마냥 물줄기에 들락날락 하는 것을 보노라니 코흘리던 시절 남대천 냇가에서 뛰놀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습니다. 그땐 우린 속옷을 모래에 파뭍고 그 위치를 돌로 표시해 놓곤 벌거숭이도 물속에 뛰어들어 물장구를 쳤었는데... 집에 귀가하여서는 더위를 참을 수 없어 그냥 곧바로 화장실 샤워꼭지를 틀고 아이처럼 물장구를 쳤습니다.
- 오늘의 일기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