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무(海霧)
우리의 삶은 빛과 어둠이 교차하면서 빛으로 나가려고 희망하고 노력한다. 그런 희망을 품고 동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갔다. 흥해를 지나 칠포에 이르니 갑자기 칠흑 같은 어둠이 몰려왔다. 불이라도 나서 연기가 온 주위를 뒤덮나 싶었다. 바다 쪽은 안개로 보이지 않고 안개가 뭍으로 밀려와 산허리를 감싸고 있다. 강구를 지나니 안개가 걷혀 푸른 바다를 볼 수 있었다.
울진을 지나 삼척의 쏠비치에 도착하여 딸애 가족과 상봉했다. 코로나로 일여 년 동안 영상으로 손자 손녀의 모습을 보와 왔으나 직접 대하니 의젓한 모습이다. 남매간에 뛰노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정다워 보였다. 바닷가에서 물놀이도 하고 모래로 장난치는 모습이 옛날 우리 부부가 남매를 키우는 듯 추억이 반추되었다.
저녁이 되어 산토리니 광장에 올라갔다. 시원한 바람이 바다에서 불어왔다. 낮에 본 안개구름이 몰려와 주위를 암흑으로 덮어 한 치 앞도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 현상은 따뜻한 해수면의 공기가 찬 해수면 쪽으로 이동하면서 수증기가 응결되어 그런 현상이 일어난다. 그 광경을 처음 본 나는 ‘구름’을 떠올리면서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성경에서 ‘구름’은 하느님을 상징하기도 한다. 탈출기에서 모세가 이스라엘을 이끌고 사십 년 동안 광야 생활하면서 하느님과 만날 때는 구름 속에서 천둥과 땅이 흔들리면서 하느님이 나타나셨다. 또 이스라엘 그들을 이끌어갈 때 ‘구름기둥’이 길을 안내했다. 오늘 바다에서 떠오르는 안개를 보면서 며칠의 여행이 어려움도 닥치며 그 뒤에는 희망의 빛으로 다가오리라는 느낌도 들었다.
다음날 그곳에서 멀리 떨어진 도계의 무건리 ‘이끼폭포’에 갔다. 폭포는 육백산(1,244m)의 중턱 계곡에 자리 잡고 있었다. 폭포는 바위 위에 짙게 뒤덮은 초록의 신비로운 이끼와 세찬 물소리를 내며 아래로 흐른다는 정도의 정보만 갖고 갔다. 산기슭에 이르러 길이 좁아 조심하며 차를 몰아 ‘폭포 가는길’ 입구에 주차했다.
거기서부터 산길이 3km이었다. 전혀 예상 못 한 산길로 가파른 길을 올라 고개를 하나 넘으니 푯말에 폭포까지 2.5km로 쓰여 있었다. 겨우 500m 올라온 셈이다. 아내의 표정을 보니 실망의 빛이 보였다. 그 순간 모세가 이스라엘을 이끌며 고생스럽게 사십 년 동안 길을 갔던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의기에 찬 빛으로 아내에게 말했다. 이런 어려움 뒤에는 값진 보람과 희망이 있을 거라며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우리는 말없이 묵묵히 걸었다. 500m마다 푯말에는 남은 거리를 제시하고 있었다. 가는 길에는 아름드리 적송이 군락을 이루었다. 거무스레한 소나무가 자기의 살갗을 벗겨내며 고통스럽게 붉은색으로 변하고고 있었다. 드디어 마지막 내리막길은 계단식으로 되어 있었다. 육칠백 개나 되는 계단을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가까이 가니 계곡의 물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왔다. 듣던 대로 푸른 이끼와 폭포의 세찬 물소리가 피로감을 씻어주었다. 아내의 표정은 밝았으며 하느님께 ‘감사합니다.’라며 화살기도를 드리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어제와 오늘의 ‘해무와 폭포 가는길’은 두려움과 고난의 어둠이 빛으로 다가와 희망을 주었다. 추암 해변에서의 촛대 바위와 조각 공원을 둘러보면서 자연의 신비에 놀라웠다. 특히 조각 공원에서 만난 ‘빛과 인간’, ‘환원•빛’의 빛으로 인한 우리 삶의 어두운 고뇌를 씻는 듯한 작품이었다. 그 어두움을 빛으로 환원시키는 모습의 영광을 ‘해무와 폭포’의 체험으로 다가와 얼마나 영광이며 감사했는지 모른다. 또 계획에 없는 ‘이사부길’은 바다와 육지가 함께 어울린 자연의 아름다운 멋진 극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