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미년 11월 (1595년 11월)
10월 초1일 (경자) 맑다. [양력 11월 2일]
790
조방장 신호(申浩)와 함께 같이 아침식사를 하고 그대로 작별하는 술자리를 베풀었다. 저녁나절에 신(申) 조방장이 나갔다.
791
10월 초2일 (신축) 맑다. [양력 11월 3일]
792
대청에 대들보를 올렸다.
793
또 지휘선(上船)을 연기로 그을렸다.
794
우수사 ∙ 경상수사 및 이정충(李廷忠)이 와서 봤다.
795
10월 초3일 (임인) 맑다. [양력 11월 4일]
796
해평군 윤근수(尹根壽)의 공문을 구례의 유생이 가지고 왔다.
797
"김덕령(金德齡)과 전주의 김윤선(金允先) 등이 죄없는 사람을 쳐 죽이고 수군 진영으로 도망하여 진으로 들어왔다"
798
고 했다. 그래서 이들을 수색해 보니 9월 10일경에 보리씨를 바꿀 일로 진에 왔다가 곧 돌아갔다고 했다.
799
10월 초4일 (계묘) 맑다. [양력 11월 5일]
800
10월 초5일 (갑진) [양력 11월 6일]
801
이른 아침에 다락에 올라가 역사(役事)하는 것을 보고서 다락 위 바깥쪽 서까래에 흙을 치올려 발랐다.
802
투항해온 왜놈들로 하여금 물건 나르는 일을 시켰다.
803
10월 초6일 (을사) [양력 11월 7일]
804
식사를 한 뒤에 우수사 및 경상수사가 와서 봤다.
805
저녁에 웅천현감(이운룡)이 왔다. 그 편에 명나라 사신(楊方亨)이 부산으로 들어갔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806
이 날 사로잡혔던 사람 스물네 명이 나왔다.
807
10월 초7일 (병오) 맑다. [양력 11월 8일]
808
화창하기가 봄날 같다. 임치첨사(홍견)가 와서 봤다.
809
10월 초8일 (정미) 맑다. [양력 11월 9일]
810
조카 완(莞)이 들어왔다. 진원(珍原)과 조카 해의 편지도 왔다.
811
10월 초9일 (무신) 맑다. [양력 11월 10일]
812
각처에 답장을 써서 보냈다. 대청을 짓는 것을 다 마쳤다. 우우후(이정충)가 와서 봤다.
813
10월 초10일 (기유) 맑다. [양력 11월 11일]
814
저녁나절에 대청으로 나가 공무를 봤다. 우수사 ∙ 경상수사가 아울러 와서 조용히 이야기했다.
815
10월 11일 (경술) 맑다. [양력 11월 12일]
816
일찍 다락 방으로 올라가 종일 역사(役事)하는 것을 보았다.
817
10월 12일 (신해) 맑다. [양력 11월 13일]
818
일찍 다락 위로 올라가 역사(役事)하는 것을 보았다. 서쪽 행랑을 만들어 세웠다.
819
저녁에 송홍득(宋弘得)이 들어왔는데, 미친 듯이 망녕된 말이 많았다.
820
10월 13일 (임자) 맑다. [양력 11월 14일]
821
일찍 새로 지은 다락에 올라가 대청에 흙을 치올려 붙이는데 투항해 온 왜놈들에게 시켰다.
822
송홍득(宋弘得)이 군관으로 따라 나갔다.
823
10월 14일 (계축) 맑다. [양력 11월 15일]
824
우수사 ∙ 경상수사 ∙ 사도첨사 ∙ 여도만호 ∙ 녹도만호 등이 와서 봤다.
825
10월 15일 (갑인) 맑다. [양력 11월 16일]
826
새벽에 망궐례를 행했다. 저녁에 달빛을 타고 우수사 이억기에게 가서 전별했다. 경상수사 ∙ 미조항첨사 ∙ 사도첨사도 왔다.
827
10월 16일 (을묘) 맑다. [양력 11월 17일]
828
새벽에 새로 지은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우수사 ∙ 임치첨사 ∙ 목포 만호 등이 나갔다. 그대로 새 다락방에서 잤다.
829
10월 17일 (병진) 맑다. [양력 11월 18일]
830
아침에 가리포첨사 ∙ 금갑도만호가 와서 같이 아침식사를 했다.
831
진주의 하응구(河應龜) ∙ 류기룡(柳起龍) 등이 계원미(繼援米) 스무 섬을 가지고 와서 바쳤다.
832
부안의 김성업(金成業) ∙ 미조항첨사 성윤문(成允文)이 와서 봤다.
833
정항(鄭沆)이 아뢰고 돌아갔다.
834
10월 18일 (정사) 맑다. [양력 11월 19일]
835
경상수사 권준(權俊)과 우우후(이정충)이 와서 봤다.
836
10월 19일 (무오) 맑다. [양력 11월 20]
837
아들 회(薈) ∙ 면(葂)이 나갔다.
838
송두남(宋斗男)이 장계를 가지고 서울로 갔다. 김성업(金成業)도 돌아갔다. 이운룡(李雲龍)이 와서 봤다.
839
계향유사莞(양식 잇대는 책임자) 하응문(河應文) ∙ 류기룡(柳起龍)이 나갔다.
840
10월 20일 (기미) 맑다. [양력 11월 21일]
841
저녁나절에 가리포첨사 ∙ 금갑도만호 ∙ 남도포만호 ∙ 사도첨사 ∙ 여 도만호가 와서 보기에 술을 먹여 보냈다.
842
저물 무렵에 영등포만 호도 와서 저녁식사를 하고 돌아갔다.
843
이 날 밤바람은 몹시도 싸늘하고 차가운 달빛은 대낮 같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새도록 뒤척거리니 온갖 생각이 가슴을 치민다.
844
10월 21일 (경신) 맑다. [양력 11월 22일]
845
이설(李渫)이 휴가 신청을 했으나 허가하지 않았다.
846
저녁나절에 우우후 이정충(李廷忠) ∙ 금갑도만호 가안책(賈安策) ∙ 이진권관 등이 와서 봤다.
847
바람이 몹시 싸늘하여 잠을 이룰 수 없어 공태원을 불러 왜적의 정형을 물었다.
848
10월 22일 (신유) 맑다. [양력 11월 23일]
849
가리포첨사 ∙ 미조항첨사 ∙ 우후 등이 와서 봤다.
850
저녁에 송희립(宋希立) ∙ 박태수(朴台壽) ∙ 양정언(梁廷彦)이 들어왔다. 전문(箋文)을 모시고 갈 유생도 들어왔다.
851
10월 23일 (임술) 맑다. [양력 11월 24일]
852
아침에 전문(箋文)을 보낸 뒤에 대청으로 나가 공무를 보았다.
853
10월 24일 (계해) 맑다. [양력 11월 25일]
854
경상수사가 와서 봤다. 하응구(河應龜)도 와서 종일 이야기하고 저물어서 돌아갔다.
855
박태수(朴台壽) ∙ 김대복(金大福)이 아뢰고 돌아갔다.
856
10월 25일 (갑자) 맑다. [양력 11월 26일]
857
가리포첨사 ∙ 우후 ∙ 금갑도만호 ∙ 회령포만호 ∙ 녹도만호 등이 와서 보고 돌아갔다.
858
저녁에 정항(鄭沆)이 아뢰고서 돌아가므로 전별했다.
859
띠풀을 베어 올 일로 이상록(李祥祿) ∙ 김응겸(金應謙) ∙ 하천수(河天壽) ∙ 송의련(宋義連) ∙ 양수개(楊水漑) 등이 군사 여든 명을 거느리고 나갔다.
860
10월 26일 (을축) 맑다. [양력 11월 27일]
861
임달영(任達英)이 왔다고 한다. 불러서 제주도 가는 일을 물었다.
862
방답첨사가 들어왔다. 송홍득(宋弘得) ∙ 송희립(宋希立) 등이 사냥하러 갔다.
863
10월 27일 (병인) 맑다. [양력 11월 28일]
864
우우후 ∙ 가리포첨사가 왔다.
865
10월 28일 (정묘) 맑다. [양력 11월 29일]
866
경상우후(이의득)가 와서 봤다.
867
띠풀을 베러 갔던 배가 들어왔다.
868
밤에 비가 오고 우레가 여름철 같이 치니 괴상한 일이다.
869
10월 29일 (무진) 맑다. [양력 11월 30일]
870
가리포첨사(이응표) ∙ 이진권관가 돌아갔다.
871
경상수사(권준) ∙ 웅천현감(이운룡) ∙ 천성보만호(윤홍년)도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