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을 걷는 나이: 영화 '버닝'을 보고>
이승우
2018년 5월 17일에 개봉한,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은 이해할 수 없는 미스터리를 다루는 영화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 중 '헛간을 태우다'를 리메이크한 영화인 '버닝'은 감독이 직접 '청춘'과 '미스터리'라는 키워드를 놓고 영화를 소개할 만큼 한번만 보고 이해하기에는 쉽지 않은 영화이다. 근원이 명확하지 않은 '분노' 또한 다루고 있는 만큼 제목처럼 불이 타오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이 영화는 어딘가 어려운 감정을 느끼게 한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유통회사 알바생인 종수는 배달을 갔다 어릴 적 같은 동네 친구인 해미를 만나고, 그녀가 아프리카 여행을 가있는 동안 자신의 집에 들러 자신의 고양이를 돌봐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여행에서 돌아온 해미는 아프리카에서 만난 벤이라는 신원미상의 남자를 종수에게 소개한다. 그 이후로 벤과 해미를 만날 때 마다 종수는 이상한 기분을 떨칠 수 없어 한다. 벤은 상류층의 남자이고 종수는 하층민의 젊은 청년이다. 해미 또한 하층민의 젊은 청년이지만, 벤에게 어딘가 빠져있는 듯한 모습을 보며 종수는 답답함과 불안함을 느낀다. 벤이 종수와 해미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비밀스러운 취미에 대해 고백한 이후 종수는 무서운 예감에 사로잡히고 영화는 절정을 향해 달려간다. 해미가 사라진 이후, 벤은 마치 아무것도 없었던 것 처럼 종수를 대한다. 해미가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대하는 벤에게 종수는, 그동안 품어왔던 분노를 풀어내고, 그를 살해한다.
간단한 줄거리만 보자면 '버닝'은 참 이상한 작품이다. 쉽게 이야기할 수 없는 등장인물들의 묘한 기류, 배우들의 복합적인 감정표현등 글만으로는 풀어내기 힘든 영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닝'의 감상문을 쓰고자 한 이유는, 현 시대의 청춘을 가장 잘 표현한 영화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청년들은 불확실한 삶을 살아간다. 보이지 않는 목표, 쉽지 않은 내 집 마련, 바늘틈보다 좁은 구직 그리고 무엇보다 대비되는 윗 세대들과의 삶의 질 등은 마음 속에 꿈틀거리는 분노의 싹을 키우게 된다. 위와 같은 복합적인 감정들과 모호한 원인들을 하나의 플롯으로 잘 풀어낸 영화이다. 해미를 마치 웃기다는 듯 바라보는 벤, 그런 벤이 못마땅한 종수와 아랑곳 하지 않고 추상적인 꿈만 꾸는 해미 등은 현실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청년들의 삶과 같다. 우리는 누구나 해소되지 않는 감정의 골들을 품고 살아가지만, 벤은 그것을 풀 수 있는 능력이 있고, 해미와 종수는 그렇지 않다. 해미는 '망상'으로 여겨지는 불가능한 꿈들을 가지고 살아가며 조금씩 해소시키지만, 종수는 그렇지 않다. 매일 받아도 회신이 돌아오지 않는 전화처럼, 종수는 불가능 한것 들을 품고 살아가지 않는다. 어느순간, 불과 같이 종수의 감정은 터져나온다. 종수가 벤을 살해하는 장면은, 불과 같이 일어난다.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풀어낸 종수의 얼굴에는, 행복감보다는 당황과 무서움이 공존한다. 오히려 칼을 맞고 쓰러지는 벤의 얼굴에 처음으로 행복감이 보인다고 말할 정도로,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미스테리와도 같다.
20대를 살아가는 지금은 나에게도 미스테리와 같다. 불확실을 걷는 나이인 20대는 무한한 두려움이 있지만, 동시에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고도 생각한다. '버닝'은 분명 배드엔딩처럼 보이지만, 해피엔딩으로 구성될 여지도 충분히 있는 영화였다. 그럼에도 감독이 딱 잘라 영화가 우울하거나 혹은 행복한 영화가 아니라고 이야기 한 이유는, 우리의 인생은 그 높낮이는 다르더라도, 결국 굴곡이 있는 인생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굴곡을 가장 크게, 감정적으로 느끼는 시기가 '청춘'으로 여겨지는 20대이지 않을까 싶다. '꿈은 높지만 현실은 시궁창'이라는 표현처럼 아는 것도 많고, 이루고 싶은 것도 많은 청년들에게 현실의 벽은 매우 큰 절망으로 다가온다. 여전히 청년들은 'N포 세대'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이상을 내려놓은채 살아간다. 분명 이전 세대와 비교할 수 없는 물질적 풍족함을 누리는 세대임에도 그것이 정신의 피폐와 갈증을 해소해주지는 못한다. 인물들이 느끼는 외로움, 무력감 그리고 대상을 특정할 수 없는 분노는 우리 세대의 고민을 거울처럼 비추고 있다. 그렇기에 실체없이 애매모호한 거짓말 같은 이 영화는 더욱이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과 공감이 되는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