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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마을 '둔터니'에 닿는 방법이 나에겐 두어 가지가 있었다.
친구들은 날더러, '만경'이나 '군산'으로 와서 함께 자기네 차로 가자고 했지만,
어쩐지 이번 만큼은 나 혼자 가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그리고 잠깐 전주에 들를 일도 있었다.)
물론 그러자면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그들의 차를 이용하는 것에 비해 어려움도 많고 시간도 많이 걸릴 것이지만, 그래도 어쩐지 그러고 싶었다.
그래서 이른 아침에 서울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전주'에 내려서,
요즘엔 가뭄에 콩 나듯이 하루에 몇 차례 없다는(그래서 도심의 버스 정류소에서마저도 그 노선안내조차 없는) 시외버스를 타려다 보니, 전주에서 시간을 지체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옛날에 내가 '몽상'에 살 때 이따금 전주로 외출을 할 때의 기억을 살려,
'운암'의 '막은댐'까지 찾아가는 것은 낯선길이 아니었기에,
물어물어 오후 버스를 타게 되었고(그 버스를 놓치면 갈 수 없다던가? 하던데.....),
겨우 3시 버스를 타고,
빙빙 돌아가 어디로 가는지조차 헷갈리는 경로를 거쳐(옛날과는 다른 코스로), '막은댐'에서 내릴 수 있었다.
거기서부터 '둔터니'까지는 걸어가야 했다.
물론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면 나를 데리러 왔을 테지만,
어쩐지 이번 만큼은 약간 센치해지는 기분으로 그 길을 걸어가고 싶어서, 일부러 그렇게 했다.
옛날에는 자주 그렇게 했었으니까.
길을 조금 걷다 보니, 내가 살았을 땐 없었던 새로운 다리가 떡하니 버티고 있었고(아래),
그 길을 걸어 마을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아래)
가다 보니 길 모퉁이에 '산국'이 펴 있었는데, 반갑기 그지없었다.
그래! 내가 이 마을에 살 때서야 그 진가를 알기 시작했던 '가을 꽃'이지. 하면서 나는 그 향기를 맡아보기까지 했는데,
사실 나는 2003년 이 마을에 살기 전까지는 '매화'거나 '산국'에 대해선 거의 모른 상태로 살아왔었다.
그러다(늦 겨울에 도착) 봄이 되면서, 뭔가 낯선 향기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그게 바로 내가 살던 집(몽상) 뒤 언덕에서 피고 있던 '매화'라는 사실에,
그래, 바로 이 거야! 하고 뭔가 큰 진리를 깨달은 듯 반겼다가('인생의 맛' 같았다.),
가을이 되어서 또 다른 향기에 빠지게 되었는데, 그 향기가 바로 이 '산국 향'이다.
(그래서 이 꽃을 따다가 말려 '국화차'를 만들어 주변 지인들에게 선물하기도 했던)
그렇게 여기 '몽상'에 살면서 나는 봄과 가을의 향기를 알게 되었고,
그 뒤로는 지금껏 해마다 그 냄새를 맡으러 여기저기 발길(자전거를 타고)을 옮기며 살고도 있는 것이다.
근데, 여기에 또 한 구비가 있네!
물론 예전에도 알았을 테지만, 나는 뭔가 생소한 기분에 그 한 모퉁이의 사진까지 찍어두었다.(아래)
그렇게 '둔터니' 입구에 닿자,
역시 그 전에는 없던 버스 정류소가 있었고, 거기엔 '둔덕'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래도 나에겐 '둔터니'가 더 좋은 이름이지......
그 사진을 찍은 뒤,
이제는 둔터니로 내려가게 되는데, 바로 그 아래 '00산장'이 내 눈에 들어왔다.(설레는 마음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 때였다.
운명이었을까? 언뜻, 그 분이(산장 아저씨) 창고 쪽에서 움직이다가 그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 건강히 살아계시구나! 그 잠깐의 움직임 만으로도 그 분의 건강 상태를 가늠하게 했고, 나는 약간 가슴이 뛰고 있는 것을 스스로 느끼고도 있었다.
어릴 적 함께 지내다 헤어진 뒤 어른이 되어서 다시 만나는 친구 사이(?) 같은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그러면서 나는 결정했다.
오늘은 저 분을 만나자! 고.(그러니까 원래는 이번에 그 분을 만나겠다고 작정했던 건 아니었는데, 그 순간의 기분에 맞춘 것이다.)
그래도 약간 걱정스러웠던(?) 건,
내가 20년 전 이 마을을 떠날 때, 그다지 좋지 않은 감정이었기 때문에,
바로 그 당사자가 지금은 어떤 상태고, 이렇게 (이빨까지 빠져 볼품없이)변해버린 나를 어떻게 맞아줄까? 하는 불안감이기도 했다.
(사실, 원래는 서울에서 오늘 임플란트를 하는 날인데, 약속 날짜가 오늘로 잡혔고, 친구들을 만나면 술이라도 한 잔 해야 할 텐데, 임플란트를 한 날에 술도 못 마실 터라, 내 스스로 병원에 전화를 걸어 그 날짜를 일주일 뒤로 미뤘기 때문에 이도 없이 가는 모습인데, 엊그제 자전거 타고 다니다 '임시틀니'를 잃어버린 결과가 이런 식으로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공교롭게도 이빨 빠진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옛 친구도, 20년 만에 이 산장아저씨도 만나는 일이 이어진 것이다.)
그 해, 내가 이 마을에 오자마자 가장 관심있었던 게 바로 '호수에서 배타는 일'이었는데,
(그 전에도 내가 친구 따라 이 마을에 두어 차례 왔을 때, 그 분이 그 배를 타고 호수를 오락가락하곤 해서)
그 얼마 뒤, 내 속내를 알아차린 그 분은 서슴없이 그 배를 나에게 타라고 내주었고(노젓는 법도 가르쳐주면서),
1 년을 그 분과 '바늘과 실'처럼 붙어다니며 잘 지낸 뒤, 내가 '몽상' 생활을 마치면서, 이 마을을 떠나기 직전에 '까미노 겨울 길'을 갔다 3개월 만에 돌아왔는데(2004년),
갑자기 그 분의 태도가 확 바뀌어(1년 동안 정들여 놓고 떠난다고 해서 그랬던 듯......),
마치 심통난 아이가 땡깡을 부리는 것처럼 나를 못살게 구는 것도 모자라 그 배까지 어딘가에 감춰두는 이해 못할 엉뚱한 심통(?)을 부려,
(나도 마을을 떠나는 게 섭섭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여기에 눌러앉을 사람이 아니었던지라 시간에 쫓겨 떠날 수밖에 없었는데)
제대로된 송별회조차 못한 채 떠났던 내 입장에서도 늘 마음이 좋질 않았었는데,
이렇게 20년 세월이 지난 다음 불쑥 나타나면, 그 분은 어떻게 생각하실까? 그래도 가고 싶다. 그게 두려워 그냥 그 집을 지나치기엔 우리들이 가지고 있던 추억이 너무 많다...... 하면서,
짐 수레 가방은 그 입구에 놓고, 조심조심 그 아래로 걸어내려 갔다.
산장 아저씨는(옛날엔 그렇게 불렀었다.) 뭔가를 하고 계셨다. (나는 손에 디카를 들고 있었다.)
그래서 거리를 좀 좁힌 뒤,
"안녕하십니까?" 하고 인사를 하자,
처음엔 그 말도 못 알아듣는 것 같았는데,
결국 그 분이 인기척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렸다.
물론 나는 마스크를 쓴 상태였기 때문에, 그 분은 조금 놀라는 표정이었고,
그 상태로 두어 발자욱을 더 가는데,
"누구신디?" 하면서 눈을 동그랗게 뜨는 표정이었다.(나중의 말로는, 처음엔 전혀 누군지 몰랐는데, 뭔가(내 안경 쓴 눈과 이마만으로도) 약간 감을 잡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도,
"건강하시네요. 그래서 다행입니다." 하면서 마스크를 벗자,
"아이고! 이게 누구여? 남궁 문씨, 이게 어쩐 일여?" 하고 쓰러질 듯 다가오셨다.
"제가 이렇게 이빨까지 빠진 모습으로, 다 늙어서야 왔습니다." 하며 일부러 아랫입술을 벌리며 그 모습을 보여드리자,
"그게 어뗘서?" 하면서 둘이는 손을 덥석 잡았다.
그 분의 손은 여전히 거칠었고, 떼가 낀 굵은 손톱은(평생 일밖에 모르는 분이라) 나에겐 마치 '훈장' 같다는 생각도 드는 순간이었다.
"근디, 이게 뭔 일여?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온 거여?" 하셔서,
자초지종을 설명해 드렸다.
"저 쪽 집에서(내 친구 집 쪽을 가리키며) 친구들이 지금 저를 기다리고 있을 텐데, 어쩐지 여기부터 들르고 싶어서... 왔습니다."
"잘 혔어! 잘 혔어...... 일로 와, 여기 앉어......" 하고 내 팔을 끌면서 얘기가 시작됐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거의 늙지 않아 보이세요."(내가 늙은 것에 비해, 지금 여든이신 그 분은 거의 늙지 않아 보였다.)
"아녀! 나는 그동안 위 수술도 허고, '전립선 수술'도 혔는디... 지금은 괜찮여."
"그러세요? 정말, 다행이네요."
"근디, 남궁 문씨는?" "그 전에 0씨가 그러든디(내 친구를 가리킨다.), 내가 어떻게 지내는가 물었담서?"
"그 친구를 만날 때마다 늘 묻곤 했지요......"
(그 사이 몇 년 동안 내 친구와는 이 마을의 새로운 집 건설 문제로 사이가 안 좋아져서, 서로가 모르는 것처럼 왕내도 없이 지낸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나도 이 분과 내 친구의 최근 사이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우리 집 식구랑... 늘, 남궁 문씨 얘기 혀......"
"그러셨어요?"
그렇게 둘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차 한 대가 들어왔고,
아주머니가 나갔다가 돌아온 거라는 것이라기에,
나는 다시 마스크를 쓰고 차 있는 곳으로 갔는데(놀라게 하려고),
"안녕하셨습니까?" 하고 인사를 하자,
역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누구셔요?" 하는데,
마스크를 벗자,
"엄마! 이게 누구여? 남궁 문씨 아녀요?"
"예, 접니다!"
"이게 얼마 만이래요?"
"계산해 보니... 20년 만인데요."
"아이고, 어쩌까? 어서 와요! 반가워요. 그동안 우리집 양반이랑 얘기 참 많이 혔는디......"
"저도 그랬답니다."
"아이고, 살고 봉께, 이런 일도 있네!" "아니, 점심은 드셨어요?"
"그럼요! 지금이 몇 신데요......" 하는 식으로 아주머니(옛날에도 '아주머니'란 호칭을 썼었다.)도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아주머니는 과일을(사과와 주먹만 한 대봉시, 그리고 밭에서 땄다는 무공해 오이까지) 깎아 오는 등,
셋이 앉아서 그동안 지내왔던 일들에 대해 얘기 꽃이 피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내 전화가 울렸고,
"어딘데, 아직도 안 와?" 하는 친구들의 성화에 쫓겨, 내가,
"절 부르네요. 이젠 가봐야 합니다." 하자,
"아녀, 밥 먹고 가!" 마치 옛날에 그러 듯, 나를 잡기에,
"친구들이 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럴 순 없지요." 하자,
"그려! 친구들이 맛있는 거 준비해 놓고 기다릴 튼디, 가셔야지... 그럼, 내일 아침에 오셔요. 식사는 여기서 허시게......"
"글쎄요... 그래볼까요?" 하고 있는데,
잠시 그 쪽 구석으로 갔던 산장 아저씨가 갑자기,
"남궁 문씨! 이거... " 하면서 내미는 건, '5 만원' 권 지폐였다.
"예?"
"봉투에 넣어서 줘야 허는디, 지금 여기에 봉투가 어딨어?... 서울 올라가는 고속버스비라도 혀." 하며 건네시는데,
"받으셔요. 얼마 안 되지만 우리집 양반이 주는 거니......"
잠시 갈등에 젖었던 나는,
"예, 감사히 받겠습니다!" 하고 그 돈을 받았다. 그러면서, "아마... 오늘 밤 늦게까지 친구들하고 놀다 보면, 내일 아침은 늦게들 일어날 텐데... 그럼, 새벽 잠이 없는 저는, 내일 아침에 다시 올 수도 있습니다." 하자,
"그려! 얼마든지 와." "그러셔요. 와서 아침도 드시고......"
"예, 그렇게 될 겁니다." 하면서 나는 다시 마을길로 올라왔다.
그렇게 친구들이 있던 '통나무 집'에 도착하니,
"야, 근데 손에... 웬 돈을 들고 다녀?" 하고 묻기에,
"아! 내 정신 좀 봐라! 이 걸 여태까지 쥐고 있네!" 하면서, " '산장 아저씨'가 날더러 교통비 하라고 준 건데......" 하자,
"뭐어? 그 양반이?" 하던 친구는, "내일 해가 서쪽에서 뜨겠다! 별 일이네!" 하더니, "그 양반이 너를 좋아하긴 정말 좋아했나 보다. 그 구두쇠가! 그 거금(?)을? 하 하 하......" 하고 웃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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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친구들과 만나, 저녁을 준비해 먹으며(삼겹살) 막걸리도 했고,
잠은(그 곳에선 좁아서 잠을 잘 수 없어서) 그 마을의 다른 집에서(친구가 빌려놓은 펜션) 잤고,
거의 잠을 자지 못했던 나는 새벽 같이 일어나,
내가 산장 집에 도착하자,
산장 아저씨는 이미 아침을 드신 뒤 밭일을 하고 계셨고(눈을 뜨자마자 아침을 드신다고 한다.),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나물과 김치를 좋아하는)내 식성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던 아주머니가 서둘러 아침을 차려줘서, 과하게(?) 아침을 먹은 뒤,
나는,
서리가 오기 전에 따야 한다는 '풋고추 끝물' 따는 일에 손을 거들기도 했다.
(그러면서 셋이서 이런저런 살아온 얘기를 나누었는데, 겨우 이 사진(아래)을 찍었을 뿐이다.)
20년 전에도 이 분들과는 이렇게 지냈었는데......
10시 반이 되자,
"아니, 또 어디를 간 거야?" "빨리 안 와?" 하는 친구들의 짜증스런 전화가 왔고,
나는 그분들과 이별을 해야 했는데,
아주머니는 이미(그 사이에),
"아무리 남자 혼자 살아도, 필요할 건 다 있어야잖아요?" 하면서, '고춧가루' 조금과 그 집에서 농사 지은 '들기름' 한 병 등을 싸서 비닐봉지에 준비해 놓았던 듯, 가져가라고 막무가내로 주었고,
"주소 좀 적어놓고 가셔요. 나중에 뭐 보낼 거 있으믄 택배로 부쳐 드리게......" 해서,
내가 무슨 '고향 집'에 왔다 가는 건가? 하는 기분에 젖어,
주소까지 적어놓고 떠나왔다.
첫댓글 5만원 지페가 궁굼 합니다. 무슨 사연이 있는지?
본문에 나와 있듯이, 이 양반이 그런 건 퍽 이례적이거든요.(여태까지 이런 적이 없었답니다.)
그러니, 그 아까운(?) 돈을 그냥 쓰기가 썩 내키지가 않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