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메랑 앞니
김기수
흐르는 세월에 몸에도 적신호가 온다. 늘그막에는 신호의 징후를 빨리 깨달아야 한다. 코로나19와 함께 지내는 삶 속에서도….
어린 시절 불렀던 ‘앞니 빠진 중강새 우물가에 가지 마라. 붕어 새끼 놀란다. 잉어 새끼 놀란다.’라는 노래가 꿈에서 나를 깨웠다. 이 동요는 이 빠진 아이 놀리기의 노래다. 놀림으로 인한 수치심을 유발하기도 했지만 이런 놀이를 통해서 자신의 신체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심리 치료의 효과가 있던 노래다. 멍하니 앉아 있다가 입안을 혀로 굴려보았다. 앞니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잇몸만 매끈거렸다. ‘어어, 충치가 생겨 모두 썩어 빠진 건가?’ 꿈에까지 나타나는 인공치아 공사에 온 신경이 쏠렸다.
이(齒)가 오복 중에 하나라던데. 예부터 행복의 조건으로 전하는 말 가운데 오복(五福)이란 것이 있다. 오복의 출전은 서경(書經) 홍범(洪範)편에 맨 처음 기록되어 있는 구절로서 옛사람들이 행복에 대한 정의(定義)라고 볼 수 있겠다. 오복은 ‘오래 사는 장수(長壽), 부유하고 풍족하게 사는 부(富), 건강하게 사는 강녕(康寧), 남에게 덕을 베푼다는 유호덕(攸好德), 자기의 천수대로 사는 고종명(考終命)’의 다섯 가지 복을 말한다. 민간에서는 유호덕과 고종명 대신 ‘귀하게 되는 것’과 ‘자손이 많은 것’을 오복에 넣기도 한다. 간혹 이(齒)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이가 오복에 들었다’고 하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치아 건강이 몸 전체의 건강과 연관이 깊어 세 번째 항목인 강녕에 끼워 맞춘 것이라고 한다.
즐기던 술도 인공치아 공사로 멀리 하고 있다. 지인들과의 만남도 되도록 멀리하고 있다. 피할 수 없는 모임에서는 임시 의치를 빼고 식사하면서 술은 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술을 피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게 대화다. 의치를 빼고 말하다보면 간혹 발음이 샌다. 자연 말수를 줄이게 되니 상대가 오해하지 않을까 눈치 보인다.
고교 시절 나를 동네 친구들에게 ‘나쁜 놈’이라고 하고 친구 간에 이간질 하는 아이를 불러내서 앞니를 부러뜨린 사건이 있었다. 그 아이 엄마에게 큰 잘못을 했다고 사과도 하고 치료를 약속했는데도 녀석은 ‘나중에 두고 보자’며 한사코 마다했다. 언제 앙갚음을 당하게 될지 몰라 그 뒤에 태권도를 열심히 배웠다. 녀석은 고교 졸업 후 귀신 잡는다는 해병이 되었다. 1년여가 흐른 뒤에 나는 대학을 갔고 사건을 잊을 만 할 때쯤 휴가를 나온 녀석과 마주쳤다. 앞니 사건을 화제 삼으면서 소주잔을 기울이고 화해의 시간을 가졌다. 걱정과 달리 오해가 빚은 일인데 괘념치 말라며 녀석이 어른스럽게 말했다. 화해하여 걱정은 덜었지만 끝내 그 녀석과는 가까워질 수가 없었다. 그 일이 씨앗이 되어 부메랑처럼 내 앞니로 돌아와 수난이 시작된 건 지 하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대학 시절 세상이 돈짝만 해 보여, ‘한잔의 추억’을 부르며 갈지(之)자로 거리를 쓸고 다닐 때였다. 취중에 젊은 군인과 시비가 붙었나보다. 아침에 눈을 뜨니 눈앞에 철창이 어른거렸다. 유치장이었다. 어제 밤의 기억을 찾으려 애를 쓰며 양손으로 세수하듯 얼굴을 쓰다듬었다. 인중 아래 한 곳이 탄력이 없었다. 놀라서 손가락으로 이 하나하나를 눌러보니 앞니 하나가 곧 부러질 듯 흔들렸다. 작취미성의 띵한 머리로는 필름이 이어지지 않았다. 즉결담당 판사가 내 이름을 불렀다. “공부해야 할 학생이 싸움질이나 하고 다니면 되겠어? 학생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술이나 마시고 쯧쯧…. 다음에 또 이런 일 있으면 엄하게 벌할 거야! 학생 신분이기에 경범죄 벌금 3백 원(당시 짜장면 30원)!” 콩알만큼 쪼그라진 가슴에 허탈감만 남았다.
가진 돈은 없고 연락도 되지 않았다. 유치장에서 주는 단무지와 보리밥 든 도시락을 먹으며 이틀 밤을 머물렀다. 실존적 체험만이 젊음의 구원이라고 생각하며 문학과 철학에 심취했던 때였다. 실존을 찾는 햄릿형이 낭만을 좇는 돈키호테의 삶을 동경했다. 유치장에서 흔들거렸던 앞니는 어머니의 용서와 자비로 부활했다. 비록 무면허 치과의사가 양쪽 이에 브리지를 해서 땜질한 것이지만. 이때부터 두고두고 치아 수난사로 이어져 오늘까지 이르렀다.
대학 졸업 후 먹고 마시고 씹는 일에 걱정 없을 만큼 이는 잘 버텨주었다. 브리지로 연결한 양쪽 이가 가끔 쑤시는데도 미련하게 참고 견뎠다. 교사로 부임 후 학교 주당들과 술을 마시고 취해서 잠든 다음 날 깨어보니 땜질한 앞니가 사라졌다. ‘요 이가 어디로 사라진 거야?’ 걱정은 되었지만 출근 시간에 쫓겨서 그냥 학교로 달렸다. 학생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살살 입을 다루면서 수업을 했다. 1교시 마치고 소변기 앞에서 지퍼를 내리는데 삼각팬티 이중문 앞부분에 빠진 이가 다소곳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니, 이곳이 너의 잠자리였냐?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고.’
그해 여름방학 때 집 앞에 있는 치과에서 썩은 이 두 대를 뽑았다. 그 자리에 브리지로 3개를 심었다. 몇 년 동안 잘 버티던 송곳니였는데 충치가 되어 이별할 수밖에 없었다. 퇴직한 뒤에도 남은 이와 고친 이로 잘 먹고 잘 씹었다. 이제 이 나이에 이들도 할 만큼 한 모양이다. 일, 삼, 오, 칠! 일곱 개가 고장이다. 한창 때 신앙처럼 모시던 소줏병 수와 같아진 우연을 생각하며 쓴 미소를 짓는다. 제자가 운영하는 치과에 한 달에 한 번 잇몸 상태를 점검하러 간다. 뼈 이식한 잇몸이 잘 아무는지를 확인하는 절차다. “선생님, 약주 좋아하시는 거 잘 알지만 치료하는 몇 달 동안은 절대 금주입니다.” “알았네. 꾹 참아야지. 자네가 애쓰고 비용도….” “선생님, 염려 마세요.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책임지겠다는 말이 여러 가지로 든든하였다.
‘이가 오복에 들었다’고 하는 것이 강녕에 끼워 맞춘 것이라고 하지만, 어금니가 남아 있어 잘 버텨 주니 복이려니 받아들인다. 인공치아 공사가 완공되면 친구나 제자 앞에서 자신 있게 흰 이를 드러내며 ‘술 한 잔에 갈비 좀 뜯어 볼까나’ 하는 꿈을 기른다. 그리고 뜯고 난 갈빗대를 날려버리자. 갈빗대는 부메랑이 되어도 좋다. 또 뜯으면 되니까! (2021 ‘수필과 비평’ 3월 발표작)
- 서울 출생
- ≪한국산문≫ 등단
- 한국산문작가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