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퇴적된 시간 위에서 별을 헤아리다
글 / 隱律 장 기 주
지도를 보다가 문득 서쪽 끝으로 차를 몰았던 것은, 가슴속에 고여 있던 해묵은 기억 하나가 기어이 넘쳐흘렀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당도한 변산반도 채석강은 여전히 거대하고 묵직한 침묵으로 나를 맞아주었다.
채석강의 바위 절벽 앞에 서면 누구나 시간의 압도적인 무게를 느끼게 된다. 수만 권의 책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듯한 거대한 퇴적암 암벽. 수천만 년 동안 조수가 밀려오고 밀려가며 한 줄 한 줄 새겨 넣었을 그 단단한 결들을 보고 있으면, 인간의 생이란 그저 스쳐 지나가는 잔파도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거대하고 차가운 바위 틈새에서 내가 발견한 것은, 가장 작고도 따스했던 한 사람의 온기였다.
그날, 우리는 그 거대한 자연의 서책 아래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서해의 낙조는 유난히도 붉어서, 채석강의 검은 바위들마저 온통 붉은 물을 들이며 타올랐었다. 수평선 너머로 해가 완전히 가라앉고 사위가 푸르스름한 어둠으로 물들 때쯤, 우리는 비로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이 별은 내 별, 저 별은 네 별."
어린아이 같은 유치한 장난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대한 바위 절벽이 만들어낸 어둠의 그늘 속에서, 서로의 손을 꼭 쥔 채 나눈 그 나직한 속삭임은 채석강의 파도 소리보다 깊게 귓가에 고였다. 우주의 수많은 별 중에서 오직 서로만을 바라보던 그 고운 시간 동안, 우리의 사랑은 말없이 깊어졌다. 바다가 오랜 세월 동안 흙과 모래를 쌓아 단단한 바위를 만들었듯, 우리의 마음 사이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다정한 감정들이 켜켜이 쌓여 은은하게 무르익어 갔던 것이다.
세월은 채석강을 깎아내는 조수처럼 쉼 없이 흘러갔고, 우리의 계절도 멀어졌다. 해식동굴 안으로 밀려들었다가 이내 빠져나가는 바닷물처럼 많은 것이 변했지만, 문득 별빛이 유난히 낮게 내리깔리는 밤이면 나는 어김없이 변산의 그 차가운 바위 위로 돌아가곤 한다.
비록 지금은 홀로 이곳을 찾았지만, 채석강의 바위 결마다 우리의 추억이 퇴적되어 남아있는 듯하다. 바람이 불어와 뺨을 스칠 때, 나는 여전히 내 곁에 나란히 앉아 하늘 가득 별을 헤아리던 그대의 따스한 어깨를 느낀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채석강의 절벽처럼,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쌓인 그 밤의 사랑은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든든한 지층이 되어 나를 지탱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