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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태환 연출의 신작 [좋은이웃]은 2016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창작산실 우수신작으로 선정된 초연작이다. 인물설정과 소재에서 파생되는 분위기에서 쉽게 예측되는 흐름이 있는 가정극/치정 심리극인데다 창작초연 연극이어서 다소 못 미덥긴 했지만 박윤희 신작이란 점에 혹해 충동적으로 관람했다. 나는 2016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창작산실 우수신작, 이런거엔 주목도 안 했고 관심도 안 갔다. 이런 특정 감투로 주목을 유도하는 작품이 대학로 정극 세계에선 너무 흔한 일이다. 그저 박윤희가 나와서 관심이 급속도로 올라간것뿐이다.
사실 작년까지만 해도 이런 작품이 있는 줄도 몰랐다. 올 해 들어 공연계 흐름이 어떤지 파악하려고 의무적으로 접속하는 온라인 예매처에서 우연히 작품명을 발견하고 작품정보를 찾아보다 관람일정 잡고 예매해서 바로 보게 된것이다. 가끔은 이렇게 도박하듯 충동적으로 예매해서 보는 작품 중에 운대 좋게 맞아 떨어지는 작품도 더러 생기는지라 간만에 모험을 시도해 봤다. 결국 모험은 모험에서 그쳤고 불필요한 도박에 갇히고 말았지만 말이다. [좋은이웃]을 본것은 정말이지 괜한 시도였다.
내 공연관람 목록을 뒤져보면 9년전부터 박윤희 출연작이 사이사이 껴있다. 9년 전 [고곤의 선물]을 시작으로 박윤희가 나오는 연극을 꾸준히 접했다. [고곤의 선물]은 피터 쉐퍼와 정동환 때문이 본것이었는데 그 작품에서 박윤희 연기는 답답했다. 당시 쓴 관람후기에도 박윤희 연기에 대한 불만이 기록되어 있다. [고곤의 선물]을 볼 때는 정동환 밖에는 안 보였기 때문에 박윤희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이후 [나생문]과 [심판]을 타의에 의해 보면서 연극배우 박윤희를 다시 봤다. 두 작품 다 박윤희 연기가 좋았는데 [나생문]같은 경우는 외형적으로 별로 어울리지 않는 육중한 체격의 산적 연기를 하려고 몸을 그을리고 근육을 불리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여서 배역에 대한 성의가 느껴졌다. 그로부터 1년 전에 처음으로 무대에서 봤던 맥없어 보이고 발성도 답답했던 [고곤의 선물]의 그 배우가 맞나 싶었다.
[심판]에선 처절하게 이용당하다 결국은 버려지는 카프카의 비극적 주인공을 실감나게 표현하여 선명하게 남았다. 나중에 인터뷰를 찾아보니 [심판]은 박윤희 본인에게도 의미있는 작품이었다고 밝혀 관람한 보람을 느꼈다. 나는 2010년 아르코 예술극장에서 재공연을 했을 때 이 작품을 봤었다. 이후부터 박윤희 출연작이라면 일단 주목을 했고 웬만하면 놓치지 않고 관람했다. [데스트랩]같은 김수로 연극도 박윤희가 중도합류한 덕분에 관람했었다. 정극배우인 박윤희가 그런 김수로표 상업연극에 출연한다는것이 당시 연극계에서도 주목을 받았지만 나 역시도 굉장히 의외의 조화로 느껴졌었다. 박윤희가 신시컴퍼니의 [맘마미아!]에서 초연 때 연극배우 박지일의 뮤지컬 데뷔작으로 관심을 받았던 빌 역을 박지일이 그랬던것과 비슷한 배역구성 흐름으로 합류했을 때 가히 신시컴퍼니다운 선택이다 싶으면서도 그 정도 규모의 작품에서도 박윤희를 볼 수 있다는것에 반가웠었다. [더 파워]같은 실망스러운 초연작도 있긴 하지만 박윤희 출연작 중 괜찮은게 많아서 배우의 안목을 믿고 찾아볼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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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좋은이웃]은 그간 굵직굵직한 정극들에 출연해 온 박윤희의 안목만 믿고 관람으로 이은 경우였다. 근데 작년까지 박윤희가 몸 담고 있었던 국립극단 시즌단원직은 어떻게 된건지 궁금하다. 이게 타사 기획물과 병행을 할 수 있는건지, 아니면 말 그대로 시즌단원이라 1년만 전속으로 활동하고 끝나는것인지를 모르겠다. 박윤희는 재작년에 국립극단 시즌단원을 하려다가 예술의 전당 연극인 [맨 끝줄 소년]출연 때문에 포기하고 작년에 국립극단 시즌단원 2기로 들어가 2016년 국립극단 마지막 작품인 [실수연발]까지 마쳤다. 그리고 바로 국립극단과 무관한 극단 수의 [좋은이웃]에 참여하였다.
[좋은이웃]은 박윤희와 [나생문][심판][고곤의 선물]등 다수의 작품을 함께 했던 구태환 연출과의 인연이 출연을 결정짓는데 큰 부분을 차지했을것같다. [좋은이웃]은 익숙한 일상의 공간과 인물들을 끌어와 보편적 공감대를 유도하려는 신경질적인 심리극이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마주할 수 있는 환경과 상황, 인물설정이란 점에서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구도인데 소재와 설정이 끼치는 보편성 만큼이나 잘 만들내기가 힘든 이야기이다. 작가나 연출이 능력에 못 미치는 과욕을 부린것같다. 작가의 내공부족을 연출의 노련함으로 극복하는데에도 실패했다.
네 성인남녀의 엇나간 치정관계와 파행을 다룬 가정 심리극인데 이야기는 도식적인 인물설정과 배경에서 시작되고 있다. 오랜 시골생활의 무료함에 염증나 있던 시골 부부가 농경생활의 낭만을 꿈꾸며 귀농을 시도했다가 고작 한 계절 반짝 살고 다시 도시로 떠나려는 예술가 부부와 얽히고설키는데 이 과정에서 네 남녀의 감춰진 욕망, 질투, 성욕과 식욕 등 인간의 본능적이고도 충동적인 심리와 야수성이 과감한 묘사와 자극적인 대사들로 넘쳐나는 치정극의 형태에서 극단적인 광기를 띈 채 냉소적으로 펼쳐진다. 알고보니 두 쌍의 부부는 각자의 배우자와 혼외정사를 즐기던 사이였고 뒤틀린 욕망과 질투와 시기로 내면은 회복할 수 없이 황폐해져 있다. 도시출신의 예술가 부부가 떠나기 전 날 밤 시골부부는 이들을 저녁식사에 초대하고 예술가 부부는 마지못해 시골부부가 마련한 불편한 저녁식사 자리에 함께 한다. 그리고 이 날 밤 상황은 우려했던대로 막장으로 치닫고 뚜렷한 결론없이 극은 막을 내린다. 열린결말로 관객에게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는 핑계로 극은 허무하게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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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은 익숙한 가정 심리극, 네 남녀의 엇갈린 관계라는 흔해빠진 치정극 형태를 탈피하기 위해 시간배열에서 머리를 굴렸다. 장면전환이 잦고 굉장히 빨리 진행되는데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차근차근 진행하는게 아닌 액자구성의 역순으로 전개시켜 호기심을 자극하고자 한다. 의도와 달리 역순으로 진행되는 치정 심리극의 구성에서 어떤 흥미도 생기지 않는다. 그러기엔 작품의 내공이 부족한 상태에서 너무 멋을 부렸다. 75분으로 요약되는 짧은 상연시간 동안 도시부부가 겪은 한 계절 동안의 농경생활이 순식간에 펼쳐지는데 인물관계도와 그들이 갖고 있는 저열한 속물근성,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 등을 그려내기엔 생략과 장면의 건너뛰기가 지나치다. 이왕 막장 치정극으로 갈거 남녀사이만 뒤틀어지는게 아니라 치정의 관계 속에서 동성애 설정도 끼워넣었으면 막장의 흥미라도 건질 수 있었으려나? 분별력없이 자극적이기만 한 부풀려진 관계양상과 수위 높은 애정묘사는 피곤할 뿐이다.
아무리 간결한 흐름을 의도했다 하지만 인물중심의 이야기인만큼 최소한의 동기부여는 제시했어야 했다. 그러나 이 작품의 네 남녀는 이유없이 상대방에게 끌려 관계를 맺거나 유혹하고 의미없이 화를 내거나 자학한다. 급기야 충동적으로 살인까지 저지르는데 계속되는 등장인물들의 알 수 없는 도발과 돌발행동의 계기가 정서적 흐름의 원만한 도움을 받지 못한 채 보여주기성 치기에 그칠 뿐이라 비웃음이 나온다. 인물들은 의식없이 자극적인 행동을 하도록 입력된 상황에서 주어진 동작을 하느라 분주하기만 하고 극의 마무리 시점도 너무 느닷없어서 당황스럽다. 충분히 시간을 갖고 더 파고들었어야 할 치정 심리극의 대미를 내공부족으로 채우지 못하고 열린결말로 얼버무려 관객에게 전가시키려는듯한 궁색한 처리방식이었다.
성인극인데 성인극 정서가 자극을 위한 자극으로 설정에 도취돼 있어서 굉장히 얄팍하고 낯간지럽다. 예술과 외설의 논란을 일으키던 1980~1990년대의 설정에 취한 공허한 성애물이나 예술적 허영심으로 겉멋 든 가정극의 냉소를 계승한듯한 느낌이 내내 들었다. 전혀 관능적이지 못한 여배우들도 배역과 내내 겉돈다. 예술가 출신의 세련된 도시여성이라 하기엔 너무 투박한 외모의 황세원이 제일 배역과 안 맞는다.
연극 [좋은이웃]은 올해 들어 처음 관람한 공연인데 배우 한명 의지하고 선택하기엔 괜한 모험이 됐던 셈이다. 집에서 멀어서 가기도 싫은 대학로를 금요일 저녁에 뚫고 가느라고 가는 길도 고생스러웠고 한파에 몸도 시렸는데 모처럼만에 시간낭비 제대로 했다. 요즘 대학로에 평이 좋은 창작 초연 뮤지컬도 많이 올라와 있는데 충동적으로 예매해서 보는 공연에 어쩌다 맞을 수도 있는 작품 운대는 소극장 뮤지컬에 기댈걸그랬나 보다.
- 나는 신한올댓컬쳐에서 반값에 할인 받아 봤는데 보고 나니 인터파크에서 내가 본 회차를 포함하여 타임세일을 했다는것을 알았다. 그래도 예매수수료를 받지 않는 신한올댓컬쳐가 더 저렴했다. 실제로 공연장에서 유료관객이 그리 많지는 않았던것같다. 관객 자체도 적었다. 매표소 상황이 아주 한산했다. 사전예매할 때 잔여석이 하도 넉넉해서 제일 좋은 자리에 앉아서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