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제 비문에는 沙▨城으로 되어 있으며 누성(婁城) 등 중국측 사서에는 기재되어 있으나 삼국사기 등에는 없다. 이걸 백제전으로 맞추기 위하여 패퇴하는 沙口城 등 백제 6성으로 맞추는 방식의 짜깁기식 설명은 믿을 수 없음.
전리품의 규모와 정황을 근거로 판단해 보아도 백제와 전투설은 믿기 어렵다.
첫째,서기 407년은 고구려 서쪽의 강적이었던 후연이 내부 정변과 고구려의 압박으로 최종 멸망(이후 북연 건국)한 해이며, 고구려 사략에 AD407년 장무의 서쪽에서 싸워 모조리 참살하고 개갑 만 벌을 노획하였으며 군자.기계는 그 수를 셀 수도 없다고 하였다.
둘째, 당시 중장기병(철갑기병) 중심의 고도의 무장 능력을 갖추고 갑옷 1만 벌을 드롭할 만한 대국은 백제보다는 후연일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분석이다. 당시 백제는 거듭된 패전으로 심각한 병력 부족을 겪고 있었는 데 이런 대전을 할 능력이 없었다.
셋째, '사구(沙溝)'나 '루(婁)'라는 글자는 고구려나 중국 요서 지방 지명(예: 책구루)에서도 흔히 발견되므로 백제만의 전유물로 볼 수 없다는 지적이 있다.
첫댓글 영락 17년 기사에서 공파한 성중 구체적으로 나와있는 사구성은 자치통감에서도 북위와 남조 송과의 전쟁 기록에 공통적으로 나타날 정도로 중국쪽 지역을 가리키는 것으로 유력할수밖에 없지요
자치통감 권128, 송기10, (유송) 대명 2년(458년) 겨울 기사에 대왕비에 나오는 사구성이 나오지요
上遣虎賁主龐孟虯將兵救清口,青、冀二州刺史顏師伯遣中兵參軍苟思達助之,敗魏兵於沙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