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친구가 있잖아!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일상을 집안에서 보내는 이런 가을날에는 문득 오래된 팝송이 듣고 싶다. 1971년 캐롤 킹(Carole King)이, 누군가 자신에게 영감을 주어, 작곡한 ‘넌 친구가 있잖아“(You’ve got a friend)란 노래이다. ‘내 이름만 불러봐. 그러면 내가 어디 있든지 네게로 달려갈 거야. 넌 그냥 부르기만 하면 돼. 그러면 내가 거기로 가지. 암, 그럴 거야. 넌 친구가 있잖아’란 노랫말이 아가페의 사랑을 노래하는 듯하다. 한때 고난을 체험한 제임스 테일러(James Taylor) 버전의 호소력이 있는 음색이 더 가깝게 다가온다.
이 같은 친구란 우리에게 무엇인가? 영어속담에는 ‘어려울 때 함께하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이다’라는 표현이 있고, 삼강오륜에는 ‘붕우유신’(朋友有信)이란 말이 있듯이 친구 간에는 서로 신뢰하는 믿음이 우선되어야 하는가 보다. 공자는 중용에서 군자에게 ‘네 가지 도’(道)가 있는데 그중에 ‘붕우에게 바라는 것을 자신이 먼저 베풂을 능히 하지 못함’을 고백하였다. 그러므로 사랑이란 선물을 주듯 먼저 베푸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친구란 말을 아무에게나 남발할 수가 없다. 실제로 이런 원칙을 고수하는 까칠한 분들이 있다. 동창 모임에도 동창이나 동기란 어휘를 쓰고 ‘친구’란 말은 제한적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란 말도 가족에 한하고 그러하지 않은 경우는 ‘아버님’, ‘어머님’이라고 호칭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친구, 아버지, 어머니’란 우리말은 참으로 귀한 호칭이다. 친구의 우리말에는 ‘동무’가 있고 ‘벗’이란 아름다운 말이 있다. 동무란 ‘마음이 서로 통하여 가깝게 사귀는 사람’을 일컫는데, 어릴 때는 많이 부른 말이나 북쪽 사람들이 쓰는 언어라서 금기어가 되었다. ‘벗’이란 말도 동무와 같은 의미인데, 놀라운 사실은 고산 윤선도는 ‘오우가’(五友歌)에서 ‘물’(水), ‘바위’(石), ‘소나무’(松), ‘대나무’(竹), ‘달’(月) 모두를 벗이라 불렀다는 것이다.
그런데 남녀 간에 가까운 사이를 어떻게 부르는 것이 편할까? 남녀 간에도 친구가 있을 수 있다. 흔히들 남친(男親), 여친(女親)으로 부르는데 이 낱말의 의미는 친구 이상을 뜻하는지 알 수가 없다. 사전에는 ‘남자친구’란 연애하는 관계의 남자를 이르는 말이며, 연인관계가 아닌 경우는 ‘남자 사람 친구’라고 정의를 한다. ‘남사친’이란 말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낯선 어휘이다. 우리말도 세태에 따라 놀랍도록 변화의 모습을 보인다. 영어의 ‘Boyfriend’와 ‘Girlfriend’ 의미와 같다. 이런 말은 쉽게, 또는 함부로 쓸 수 없는 단어이다.
이런 세미한 의미의 차이를 아는 7살짜리 외손녀가 유치원 남자아이의 ‘친구 하자’는 말에 어이가 없어 미칠뻔했다고 한다. 딸아이가 손녀에게 그런 뜻이 아니고 그냥 사이좋게 지나자는 제안이라고 설명하여도 수긍하지 못한다. 외국물을 먹은 영향이라고 생각하니 씁쓸하였다. 손녀와 친한 여자아이 2명은 스스로 3총사라고 한다. 남자아이가 끼어들면 3총사가 깨질 수 있어 곤란하다고 하니깐, 남자아이가 4총사가 되면 어떠냐고 역제안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남자아이에게 테스트를 통과하면 받아주겠다고 했다. 재미있는 것은 그 테스트 내용이다. ‘너는 병원에 가는 것이 좋으냐?’ 이 세 명의 여자아이들은 병원 가기를 매우 싫어하기 때문에 그 남자아이가 그들과 같은 성향이면 수용하겠다는 아이들의 어처구니없는 수용조건이다.
성경에서 하나님과 예수님은 친구와 벗이란 말을 어떻게 사용했을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나의 벗’(이사야 41: 8)이라고 칭하셨다. 예수님은 나사로에게 ‘우리 친구 나사로’(요 11:11)라고 하셨고,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요 15:14), ‘이제부터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요 15:15)라고 하셨다.
이처럼 우리 인간들은 관계에 따라 다양한 표현으로 서로 차별하여 호칭하지만, 두 분께서는 우리를 차별하지 않으시고 정다운 말로 똑같이 부르시니 고마울 따름이다. 캐롤 킹의 ‘넌 친구가 있잖아’라는 노랫말은 마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로 생각이 된다. ‘내 이름만 불러봐. 그러면 내가 어디 있든지 네게로 달려갈 거야. 넌 그냥 부르기만 하면 돼. 그러면 내가 거기로 가지. 암, 그럴 거야. 넌 친구가 있잖아’ 세상에 어느 누가 이런 친구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오직 그분만이다.
첫댓글 마음은 어수선하고 근심 걱정으로 불안한데 비까지 내려 더욱 힘든날...부르기만 하면 달려와 나의 친구라며 다독거려주실 예수님이란 친구가 있음을 깨우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힘을 얻고 갑니다.
시 한편 소개해드립니다.
가을레슨/채희문
가을이 가기 전에 한 번쯤은
떠나 볼 줄도 알아야지
좀 돌아서 갈 줄도 알아야지
좀 천천히 갈 줄도 알아야지
떨어지는 잎, 다시 볼 줄도 알아야지
싸늘한 바람에 손만 흔들고 서있는
나무들도, 다시 볼 줄 알아야지
가을이 가기 전에 가을비
아침 이슬 같은 빗물로 만나
한 번쯤 썰렁한 가슴
젖어 볼 줄도 알아야지
가을이 가기 전에, 한 번쯤은...
감사합니다.